계간(鷄姦), 닭과 섹스하다
어쩌면 이 더러운 단어가 시발(始發)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군형법 제 92조는 과거 동성애를 ‘계간(鷄姦)'[footnote]계간(鷄姦): 사내끼리 성교하듯이 하는 짓. 같은 말 ‘비역’.[/footnote]이라 지칭하며 이를 금지했다. 헌법재판소는 이 규정이 ‘동성애를 금지’하는 조항임을 명확히 했다.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 법감정을 가진 군인이라면 어떤 행위가 이 조항에 해당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고, 그 전형적인 사례인 ‘계간’은 ‘추행’이 무엇인지를 해석하는 판단지침으로서 대법원 판결 등으로 구체적, 종합적인 해석기준이 제시되어 자의적으로 확대해석할 염려는 없다. (헌재 2002. 6.27, 2001헌바70)
2009년 11월 2일 법률 제9820호로 개정되면서 ‘계간’이라는 표현은 군형법에서 사라지고, ‘추행’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이 법의 핵심, 동성애를 처벌하자는 내용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군형법 제92조의6에서는 “제1조 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했다.
이 처벌 조항은 범죄를 기초로 하지 않는다. 폭력이나 위계에 의한 추행만 처벌하겠다는 단서가 없다. 그저 ‘항문성교’의 행위만으로 처벌한다. 바꿔 말하면 이 나라의 법이 ‘누군가가 어떤 형태의 섹스를 했냐’를 두고 처벌하겠다는 이야기다. 명백하게 ‘동성애’를 표적 삼았다.
법문에 동성 간의 섹스를 ‘계간’이라고 표현하는 저열함, 그것을 처벌하겠다고 이야기하는 야만, 그리고 두 번의 위헌법률심판에서도 이 조항을 ‘합헌’[footnote]독자의 오해를 피하고자 상술하면, 군형법 92조에 관한 두 번의 헌법 재판(2002년, 2011년)은 “계간”이라는 표현이 헌법에 반하는지를 검토한 것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계간 기타 추행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군형법 92조의 규정 중 “기타 추행” 부분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는지를 판단했고, 두 번 모두 헌법에 위반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헌법재판소 2002. 6. 27. 자 2001헌바70 결정, 헌법재판소 2011. 3. 31. 자 2008헌가21 결정).[/footnote]이라고 판단한 낯 뜨거운 우리의 보편적 인식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어느 군인이 단지 ‘게이’였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끌려간 군인, 죄를 자백당하다
휴대폰을 빼앗았다. 게이 데이팅 어플과 카카오톡 대화 등을 위법하게 복원했다. 그걸 토대로 게이 군인을 색출했다. 일단 잡아들인 후 물었다. 당신은 동성애를 한 적이 있느냐고. 처벌이 무서워 그걸 부정하면 되물었다. 10년 동안 알고 지냈는데 어떻게 섹스를 하지 않을 수 있냐고. 군 헌병대의 강압적인 표적 수사로 50명에 가까운 군인이 수사 선상에 올랐다. 그리고 한 명은 도주의 위험이 없는데도 체포되었다.
수사의 형태도 그야말로 야만의 연속이었다. 콘돔을 사용했느냐, 성 정체성은 언제 인지했느냐, 포르노의 취향은 어떻게 되느냐를 물었다. ‘당신의 성 정체성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조롱에 가까운 말까지 내뱉었다.
군인권센터는 13일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이 모든 일이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의 지시 아래 이뤄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육군 최윗선의 지시 아래 동성애자 군인들은 자신들이 죄가 있다고 고백했다. 아웃팅의 협박과 처벌의 공포로 겁에 질린 동성애자 군인들은, 자신들의 성적 지향이 곧 죄라고 자백하며 자신을 부정해야 했다.
2017년 대한민국에 일어난 일이다.
시민의 공영방송, 시민을 혐오하다
그 사건이 발표된 날 저녁, KBS는 “현역 군인 30여 명이 부대 안팎에서 동성 간 성관계를 벌인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 담당자는 이 내용을 게재하며 ‘포르노 영화 찍냐’고 소개했다.
방송은 ‘군인들이 동성애를 했다’는 내용 이외에 동성애 군인 차별과 같은 문제점에는 관심이 없었다. 보도된 내용과 소셜미디어에 소개된 문구는 궤를 같이했다. 다른 설명도 필요 없어 보였다. ‘동성애자를 색출하라’는 지시를 내린 육군참모총장과 마찬가지로, 그저 동성애를 죄악으로 내보내면 그만이었다.
국민에게 수신료를 걷고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해 방송을 내보내는 KBS는 시민 중 누군가에 관해 단지 그의 성적 지향만을 이유로 혐오 방송을 내보냈다. 자신의 차별적인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낸 소셜미디어 담당자에게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이날 벌어진 두 번째 야만이었다. 이미 상처받을 대로 상처받은 이 사회의 어떤 구성원은 KBS의 보도로 확인 사살당했다.
사람들은 이에 분노했다. 많은 민원이 쏟아졌고 이튿날 KBS는 사과문을 내보냈다. 그러나 이 사과문도 이해 못 할 내용이 가득했다.
[사과드립니다]
어제(13일) 오후 8시5분 ‘KBS뉴스’ 페이스북 계정에 ‘현역 군인 30여명, 부대 안팎에서 동성간 성관계’ 뉴스 리포트를 게시하며, 부적절한 멘션과 댓글을 작성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앞서 작성된 멘션과 댓글은 잘못된 것이 분명합니다. 해당 글을 작성한 담당자에 대해서는 엄중히 주의 및 경고하겠으며,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논란이 된 글은 특정한 의도를 갖고 작성된 것이 아닙니다.
다시 한 번,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사과드립니다.
동성애 혐오라는 특정한 의도를 갖고 만든 보도와 그에 대한 소개는 한순간에 ‘실수’로 표현됐다. 상처받은 이들은 그대로인데 KBS는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사과’하겠다고 했다. 자신들의 실수를 ‘해당 글을 작성한 담당자’에만 한정했다.
정작 상처받은 사람들은 아무런 사과를 받지 못했다.
군 당국, 당장 사과하고 반성해야
민주주의 국가는 왕의 지배를 받고, 누군가에게 자기 것을 빼앗기며, 삶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살 수 없었던 시절을 거치며 탄생했다. 누군가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왔던 우리가, 원래는 그렇게 지배받는 존재가 아니었다는 선언이 오늘날 헌법의 핵심이자 근간이다.
우리는 이 권리를 왕에게서 빼앗은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왕에게 빼앗겨왔던 것이다. 기본권을 한 때 ‘천부인권’이라고 불렀던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선언 자체는 불변이다. 이걸 부정하자는 건, 야만으로 회귀하자는 의미이며 시간을 거슬러 악으로 되돌아가자는 이야기다.
헌법은 모든 법의 상위법이며 법전과 국가 시스템을 넘어 공동체를 살아가는 개개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바꿔 말하자면 우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이야기를 절대 부정하면 안 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헌법의 가치를 누구보다 수호해야 할 사람 중 한 명인 육군참모총장은 우리 공동체의 약속을 전면적으로 위배했다. ‘동성애자를 색출하라’는 지시는 우리 시대가 합의한 모든 약속을 깨트리는 행위이며, 헌법의 가치를 발로 짓밟는 행동이다.
이 사건의 진상은 낱낱이 규명되어야 한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 있는 모든 자는 이 사건에 분노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도 이 사건에 입장을 밝히고, 이같이 잔인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한다.
선거 때마다 목놓아 부르는 경제성장의 당위조차도 결국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충분한 조건에서 영위하기 위한 목적이다. 따라서 어떠한 당위나 호소도 우리의 기본권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이는 타협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며 ‘나중에’ 해결하자며 뒤로 미룰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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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권센터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를 법률 지원하기 위해 모금 계정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