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이 글 필자는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의 극장 자막 번역가인 황석희 님입니다. 문맥 이해를 위해 미리 알려드립니다. (편집자)[/box]
[사일런스]에 출연하려고 스콜세지 감독을 찾아 뉴욕과 대만 촬영장까지 갔던 한국 배우가 있다.
배우 남정우의 용기와 열정
대학 시절 연극을 하던 시절부터 [침묵]이란 작품에 반해 있던 이 배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틴 스콜세지의 [사일런스]에 출연하고자 마음을 먹는다. 사실 감독과 약속을 잡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고, 촬영장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는다고 이 거장의 작품에 무명 배우를 써 줄 리도 없다.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상상하기 힘든 용기다.
[사일런스] 첫 내부 시사회 후에 배우 남정우와 만나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편집까지 완성된 영화는 처음 보는 순간, 남 배우의 어떤 심정이었을까. 나는 그 전에 이미 번역 작업을 하면서 작품을 많이 봤기 때문에 남 배우가 어느 장면에 나오는지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었지만, 남 배우는 그 짧은 분량이 혹시나 편집돼 날아가진 않았을까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고 한다.
번역 과정에서 남정우 배우의 페이스북을 찾아가 친구를 걸고 메시지로 물어봤다. 극 중에 대사가 있냐고. 단독 대사는 없고 싸움을 말리는 상황에서 다 같이 외치던 “야멩까!”(止めんか; stop!)”란 대사가 있다고 했다. 내가 영화 자막 번역가로서 뭔가 해 줄 게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건 이때다.
영화 번역엔 스파팅(spotting)이라는 과정이 있다. 1번 자막, 2번 자막, 3번 자막. 이렇게 자막 별로 호흡을 자르고 번호를 매기는 일, 이런 작업을 스파팅이라고 한다.
보통은 이렇게 미리 스파팅이 된 대본이 오고 번역가는 저 스파팅 대로 자막을 만든다. 위 이미지처럼 좌측에 1/1, 1/2처럼 넘버링이 돼 있어서 자막도 1/1, 1/2 순서로 만들면 된다. 직배사 같은 경우는 스파팅을 임의로 바꿀 수 없지만, 그 외 작품들은 스파팅에도 번역가의 재량이 어느 정도 있다. 쉽게 말해 번역가가 대사를 자르고 붙이거나, 들리긴 하는데 대본에 누락돼 있는 대사들을 넣을 수 있다는 거다.
번역가로서 남 배우에게 주고 싶었던 작은 선물
남정우 배우에게 대사가 있냐고 물어봤던 건 혹시나 신음 한 마디라도 뱉은 게 있다면 자막에서 잡아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 재량이 있던 대본이었으니까. 싸움을 말리는 장면에서 모두가 외쳤던 “야멩까!”(止めんか; stop!)”는 영문 대본엔 모두 누락돼 있다. 이렇게 오디오가 맞물리고 큰 의미가 없는 대사들은 영문 대본에서 아예 누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대사를 한국어 자막으로 넣느냐, 넣지 않느냐는 번역가의 재량이다.
영상 재생을 십수 번 반복하며 남정우 배우가 외치는 장면과 “야멩까!”(止めんか; stop!)”라는 대사가 같이 들리는 지점을 찾아냈다. 그 지점에 자막을 하나 채워 넣고, 영상에 자막을 올리는 작업을 하는 회사엔 그 장면의 시간(TC)을 적어 정확히 그 지점에 자막을 넣어달라고 당부했다.
남정우 배우의 열정에 대한 큰 존경심으로 번역가 나부랭이가 드리는 보잘것없는 선물이다. 앞으론 “대사라고 할 것도 없었다”가 아니라 “대사도 한마디 있었다”로 말씀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 멋진 용기와 열정으로 삶의 커다란 영감이 돼 준 남정우 배우에게 다시 한번 크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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