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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미디어에서 서로 크로스핏[footnote] 2000년 미국에서 그레그 글래스먼과 로런 제나이에 의해 설립된 피트니스 단체. 현재는 단시간에 여러 종류의 운동을 섞어서 고강도로 진행하는 피트니스 프로그램의 보통명사처럼 쓰인다[/footnote]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실제로도 만나게 되면서 친해진 누나가 있다. 앞으로 피트니스 업계에서 일할 생각을 하고 있던 이 누나는 오랫동안 크로스핏을 배웠고, 또 크로스핏을 전문으로 하는 ‘박스'(크로스핏 체육관을 부르는 말)에서 보조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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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정말 운동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스쿼트의 중량이 늘어나고, 데드리프트의 중량이 늘어나는 데에 진정으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건강하고 강인한 몸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다. 몇 번 같이 운동을 했을 때, 숨이 멎을 것만 같은 강한 운동을 함께 해냈고, 나보다는 몇 발짝 앞서 나가는 선생님 같은 누나다.

박스의 ‘동료’들, 헬스장의 ‘오빠’들

최근 누나는 직장을 옮겼다. 바빠진 일정 때문에 일하던 ‘박스’에서 일반적으로 ‘헬스장’이라 불리는 곳으로 직장을 옮겼고, 트레이너로 일하게 되었다. 일을 옮긴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누나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박스의 ‘동료’들이 자신을 대하는 모습과 헬스장의 ‘오빠’들이 자신을 대하는 모습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모든 크로스핏 박스가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크로스핏 박스 내에서 상대 성(性)이란 이성이라기보단 동료에 가까운 존재들이다. 항상 극한까지 호흡을 몰아넣는 크로스핏의 운동 특성상 서로에게 ‘전통적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기란 어렵고, 운동이 끝나면 남녀 할 것 없이 머리도 산발이고, 얼굴에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먼지가 묻어있다.운동 여성 스쿼트
내가 박스에 다닐 때도, 나보다 데드리프트를 10kg, 20kg씩 더 많이 드는 누나들이 있었고, 누나들의 더 빠르고, 더 강력한 모습은 내게 새로운 미적 기준을 심어주었었다. ‘강한 것은 아름답다.’였다. 나와 친해진 이 누나 역시 “난 강한 몸이 좋아”를 자신의 미적 기준으로 삼은 사람이었고 자신의 미적 기준에 걸맞은 노력을 하는 멋진 사람이었다. 스쿼트를 120kg 이상, 데드리프트를 140kg 이상으로 치며 운동하는 사람이고(스쿼트, 데드리프트를 해 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것이다) 나는 그런 누나가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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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연락을 한 누나는 “웨이트에 대한 흥미를 잃고 있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본인은 강인한 몸이 좋은데, 헬스장에서 오빠들이 자기가 중량을 많이 치는 것을 보며 ‘일반인들이 좋아하는 야들야들하고 날씬한 몸을 만들어야 한다’와 같은 종류의 말을 반복하는 것이 문제였다.

‘업라이트 로우'[footnote]서서 바벨, 덤벨 등을 들어올려 승모근과 삼각근을 단련하는 운동[/footnote]라는 운동의 자세를 물어보면 “여자는 승모가 발달할 여지가 있는 운동을 하면 안 된다”라는 답변이 돌아오고, 최근 있었던 [코치스 쓰로우 다운] 대회[footnote]리복 코리아가 연 1회 주최하는 크로스핏 현업 코치의 경연 행사[/footnote]영상을 보면서 “다리 안 쓰고 로프 클라이밍을 하는 여자가 멋있다”라는 말을 하면 “저게 뭐가 멋있냐? 여자가 여자다운 맛이 있어야지”란 말이 돌아온다고 한다.

누나는 주기적으로 그들의 이해를 받아야만 했다.

“OOO야, 넌 이해할 수 없는 존재야. 넌 여자야, 그걸 왜 부정하니?”

“왜 남자를 이겨 먹고 싶어 해?”

누나는 자신의 미적 기준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 적도 없었고, 그들을 ‘이겨 먹으’려는 생각도 없었다. 어제의 자신보다 강인해진 오늘의 나를 찾고 있지만, 누나의 ‘오빠’들은 끊임없이 그녀에게 굳이 사서 ‘이해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누나에게 굳이 사서 ‘지지 않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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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느 날 남자친구라도 만나려 얼굴에 화장하는 등의 외모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니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거 봐, 너도 어쩔 수 없는 여자야. 그게 여자 본능이야, 아름다워지고 싶은 거”

누나는 내게 말했다.

“술 취했으면 이해를 해, 아니 왜 멀쩡하게 10분 전까지 같이 운동하다가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지?”

“이 동네가 유난한 건가? 언젠가는 내가 오빠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자 트레이너의 모습이 뭔지 물어봤어. 그랬더니 뭐라고 대답이 오냐면 ‘식스팩은 징그럽고, 11자 복근, 가슴, 엉덩이는 크고 팔, 다리는 얇아야 해. 그리고 XXX야, 여자들은 스쿼트 할 때 와이드 스쿼트 위주로 해야 해. 대퇴 발달하면 보기 싫어’라고 한다니까. 와……”

누나는 자신의 답답한 경험을 확장해나가며, 회식 자리는 더욱더 가기 싫다는 이야기를 더했다.

“오빠들이 먼저 회식 자리에 가 있고, 내가 마감 끝내고 술자리에 가잖아? 오빠 중 한 명이 말해. ‘넌 OOkg까지 빼야 해. 너 지금 그냥 뚱땡이야. 살 무조건 빼’라고, 거기에 관장이 덧붙이지 ‘XX가 OOkg까지 빼면 회원이 OO명 늘걸?’이라고”

11자 복근, 마른 팔다리 요구하는 피트니스 산업

그들이 누나에게 바란 것은, 얼굴마담이자, 피트니스 업계의 기형적인 미적 기준이 만들어 낸, 전혀 ‘건강하지 않은’ 몸매였다. 말라서 나오는 11자 복근, 운동하지 않고, 적게 먹어 생겨나는 극단적으로 마른 다리와 팔이 피트니스 업계에서 누나에게 요구하는 몸매였다.

누나는 스쿼트 120kg, 데드리프트 140kg을 소화할 수 있고, 풀업[footnote]손바닥을 몸 바깥을 보게 매달려서 하는 턱걸이[/footnote]을 한 번에 스무 개씩 할 수 있었지만, 헬스장 ‘오빠’들에겐 ‘헬스’장의 여자 ‘트레이너’로서는 부적합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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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더 건강해지기 위해, 자신의 기준에서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또 타인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운동을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이유는 ‘당사자’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빠들이 정해준 매력적으로 보이는 기준’에 맞추어 운동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재미를 느끼는 방향으로, 내가 필요한 방향으로 운동해야 한다.

남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운동하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다. 인기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있고, 자신이 하는 운동 경기의 기록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있다.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어떤 것을, 여자이기 때문에 ‘특정한 요구’를 받아야 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할 때, 우리는 이것을 성차별이라고 이야기하고, 개념화된 용어를 사용하자면 ‘여성혐오’라고 부른다.

  • 사람은 식스팩은 좀 징그럽고, 11자 복근.
  • 사람은 가슴, 엉덩이는 크고, 팔다리는 얇아야 해.
  • 사람이야. 그걸 왜 부정하니? 왜 남자를 이겨 먹고 싶어 해.
  • 사람은 스쿼트 할 때 와이드 스쿼트로 해야지. 대퇴 발달하면 보기 싫어.
  • 다리 안 쓰고 로프 클라이밍을 하는 사람이 멋있다고? 그게 뭐가 멋있냐? 사람사람다운 맛이 있어야지.

누나가 들은 이야기의 ‘여자’ 부분에 ‘사람’을 넣어본다.

어색하다면, 이제는 바꿔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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