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부산 지방법원에서 시작된 상당히 특이한 소송이 대법원에 올라왔다. 개인연금보험이 대상인 사건이었다.
대법원에 올라온 특이한 사건
이 사건은 아래와 같은 특이점을 함축한다.
- 우리나라에서 개인연금상품 취급 시작 이래 처음으로 만기가 되어 연금을 타게 된 사람이 제기한 소송이고,
- 아직 만기가 된 연금이 흔치 않아 첫 소송사례로 남을 사건이며,
- 찢어진 보험증권에 실낱같은 희망을 담아 제기한 소송이었다.
이 사건 보험상품은 1993년 뜨거운 8월 금융실명제의 전격적 도입 후 (지하에 숨어버린 검은돈을 끌어내기 위해) 1994년 3월 조세감면규제법 (현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 개인연금보험제도를 실시하였고, 이에 따라 보험업계가 1994년 6월부터 판매한 개인연금보험 상품 중 하나이다.
이 개인연금보험상품은 보험료 소득공제, 연금액 이자소득 면제 등 파격적인 세재 혜택을 포함할 수 있었다. 해당 상품은 피보험자의 사망 시 보험금을 지급하고 만기 생존 시 연금액을 지급하는 상품이었음에도 손해보험사 또한 취급할 수 있어 당시 국내의 모든 보험사가 이와 같은 상품을 판매하였다(…이것만 봐도 당시 상황이 짐작된다).
1994년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돌파하고 경기 활성과 고금리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되는 시대적 분위기에서 은행에 가입한 연금 신탁액만 8조 원이 넘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으며, 2004년까지 10년간 은행과 투신사의 연평균 수익률이 9~10%에 이를 정도로 높은 수익률을 유지해 왔다.
‘박살’난 개인연금보험
당시 예상 수령연금액을 산정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정기예금금리나 기타 이율에 연동하여 연금액이 변하는 금리연동형 연금과 예금이자로 고정하여 연금액이 결정되는 확정금리형 연금이 그것이다. 당시 예금이율은 약 4%였고, 변동금리 수익률은 약 15%가 넘었기 때문에 대부분 변동금리로 연금보험계약이 체결되었다.
문제는 1997년 외환위기를 시작으로 경기가 급격히 침체했고, 이후에도 2007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세계적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금리 혹은 주가에 연동하는 금융상품의 원금손실이 현실화한 것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 연금보험상품이 대상 사건인 대법원 2015.11.17. 선고 2014다81542 판결은 호경기 금리를 기준으로 체결한 변동금리 개인연금보험의 연금 수령총액이 납입한 보험료의 70%, 예상 연금액의 30% 수준으로 감소하는 결과(여기에 20년간의 급격한 인플레를 고려하면 감소보다는 ‘박살’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가 발생한 것이 소송의 시발점이 되었다.
계약상 변동금리를 설정한 보험계약자의 책임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해당 약관 조항에 대한 보험자의 설명의무 이행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는지를 고려해야 했다. 독자가 자신의 연금도 살펴보시라는 의미에서 구체적인 사건 내용을 자세히 설명한다.
사실관계
보험계약자는 1995년 1월 25일에 자신을 피보험자겸 연금수익자로 하여 피고 현대해상화재보험주식회사(이하 ‘보험회사’)와 개인연금저축보험계약(이하 ‘이 사건 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 보험 기간은 1995년 1월 25일부터 2013년 1월 25일까지,
- 보험 가입금액은 1,000만 원이었다.
보험계약자가 10년간 매월 30만 원의 보험료를 내면, 보험회사는 보험기간 동안 급격 · 우연 · 외래의 사고로 인한 상해의 결과 발생한 사망 또는 후유장해에 의한 손해를 보상하고, 보험계약자가 만 55세 되는 해부터 10년 동안 연금을 지급하는 계약이었다.
보험계약자는 계약체결 당시 연금지급형태로 ‘정액형’을 선택하였고, 보험자로부터 받은 이 사건 보험계약에 관한 보험증권 하단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연금은 10년간에 걸쳐 3월마다 1,821,380원을 계약 해당 일에, 총 40회 지급하여 드립니다.”
보험자가 보유하고 있는 이 사건 보험계약에 관한 기본계약사항 조회 ‘연금 지급 형태’란에도 ‘정액형’이라고 기재돼 있었다. 이 사건 보험계약의 보험증권은 두 개의 점선을 이용하여 세 부분으로 접히게 되어 있었는데, 맨 아래의 부분은 잘린 흔적이 있고, 연금에 관한 기재는 이 사건 보험증권의 2단 부분에 기재되어 있었다.
이 사건 보험약관 제19조 제1항은 이렇게 규정한다.
‘이 사건 보험계약에 의하여 지급하는 연금액은 피고의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에 정한 바에 따라 계산한다.’
동조 제2항은 연금의 지급은 계약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 3개월, 6개월 또는 연단위로 지급하여 준다고 규정하고, 이 연금에 대하여 보험사는 아래의 지급형태 중 보험계약자가 요청하는 방법에 따라 지급한다고 규정하였다. 또한 단서로 1년 만기 정기예금 이율이 변동될 경우 연금액이 달라질 수 있다고 기재한 후 지급형태로 다음의 세 가지 지급 형태를 규정하였다.
- 정액형: 연금 지급 기간 동안 동일한 금액으로 지급
- 체증형: 연금 지급 기간 동안 매년 일정한 비율 또는 일정한 금액으로 증액한 금액을 지급
- 혼합형: 일정 기간은 매년 일정한 비율 또는 일정한 금액으로 증액한 금액을 지급하며, 나머지 기간은 동일한 금액을 지급
보험계약자는 이 사건 보험계약에서 정한 보험료를 모두 납입하였고(총 3천6백만 원), 이 사건 보험계약에서 정한 연금 지급 개시일인 2013년 1월 25일 이 도래하였다.
보험계약자는 3개월 마다 약 180여만 원( 1,821,380원)을 수령하여 총 약 7천2백8십만 원을 수령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보험회사는 변동이율을 적용하여 해당 연금 총액은 약 2천6백3십만 원이며 3개월 마다 10년간 65만원 씩 지급한다고 통보하였다. 이에 보험계약자가 소송을 제기하였다.
당사자 주장
보험계약자 주장
보험계약자는 보험증권에 기재된 1,821,380원을 매 3개월마다 지급하여 달라고 하였으나, 보험자는 보험증권에 기재된 1,821,380원은 이 사건 보험계약을 체결하던 1995년 1월 25일 당시의 이율로 계산한 예정금액이라며 변동기준 이율에 따라 계산된 658,320원씩 지급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보험계약자는 보험회사가 보험계약 체결 당시 보험계약자에게 이 사건 연금액이 예시금액에 불과하고, 기준이율의 변동에 따라 지급되는 액수가 변경될 수 있다는 약관 제19조 제2항의 단서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으며, 이 사건 보험증권에 그러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지도 않으므로 보험회사는 보험증권에 기재된 연금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보험회사 주장
보험회사는 이 사건 보험증권의 잘려져 없는 부분에 기준이율의 변동에 따라 실제 지급되는 연금액은 위 예정연금액과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고, 개인연금저축상품의 경우 금리변동에 따라 만기 이후의 수령금액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연금보험상품의 특성으로서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므로 보험자의 별도설명이 없이도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항에 해당하여 설명의무가 없음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금리변동을 적용한 연금액의 지급이 합당하다고 주장하였다.
법원은 뭐라고 했는가
1심: 부산지법 2014. 10. 24. 선고 2014나2737 판결
1심 법원은 보험계약자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이 사건 보험계약자가 보험계약을 체결하던 1995년 당시, 일반인으로서는 정기예금이율의 의미 및 이에 따른 보험금산출방법에 대하여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 개인연금저축상품의 경우 금리변동에 따라 만기 이후의 수령금액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당시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고 볼 증거도 없다는 점 등의 이유를 들었다.
이에 보험회사가 항소하였다. 항소심 법원은 동일한 이유와 함께 보험자가 이 사건 보험계약의 증거인 보험증권과 청약서를 제출하지 않은 점을 이유로 1심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이에 보험회사가 상고하였다.
대법원, 원심 파기환송: 2015.11.17. 선고 2014다81542 판결
대법원은 보험회사 편을 들어주었다. 대법원은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먼저, 보험계약 체결 시에 보험자가 특정 약관에 대한 설명의무를 위반하여 해당 약관이 배제되고 나머지 부분으로 계약이 존속하게 된 경우에 해당 내용에 대해 약관과 다른 내용의 개별적 합의가 있었다면, 그 사실의 증명책임은 주장하는 자에게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이 사건 보험계약자가 일부가 훼손된 보험증권을 증거로 제출하였는데 증권의 남아있는 부분의 기재와 상반된 주장이 있어 보험증권 전체의 취지가 증권을 제출한 보험계약자의 주장과 일치한다고 확신할 수 없는 경우, 이로 인한 불이익은 보험증권을 제출한 보험계약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판례에 따르면 이 사건 보험계약의 약관에 따르면 연금액이 정기예금이율에 따라 변동된다는 점은 선택 가능한 3가지 지급방식에 모두 적용되는 것으로 변동성은 지급방식의 선택 여부와 관계없다는 점을 들어 보험계약자가 주장한 설명의무 위반 여부가 결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 약관의 내용과 달리 금리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 확정액을 지급한다는 개별약정이 증권에 기재되어 있다는 주장에 대한 증명책임은 보험계약자에게 있다고 한다.
=> 요약하자면, 이자율에 대해 보험계약자와 보험회사의 주장이 서로 다른데, 보험계약자는 자신이 계약한 이자율은 약관과 다르고 그 내용은 보험증권에 있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보험증권의 해당 부분이 잘려나갔다는 것. 이 경우 문제의 증권에 있었다는 개별 약정에 대한 증명책임이 주장하는 자 즉 보험계약자에게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증명하지 못했으니 보험회사가 주는 대로 받으라는 결론이 난 것이다.
법원이 판단하지 못한 근본적인 문제점
기초지식을 잠깐 배워보자.
장기보험인 생명보험계약은 기본적으로 10년, 20년 후에 약정된 보험금액을 수령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물가 상승폭이 심해질수록 처음 설정한 보험금액의 미래가치가 감소하므로 이를 상쇄하기 위해 증시, 금리 등에 연동하여 보험금이 변동하는 변액생명보험계약이 고안되었다.
변액의 개념은 연금보험에도 반영되어 변액연금보험이 고안되었다. 본 사안의 보험상품 역시 이와 같은 개념으로 계약 체결 과정에서 확정금리 또는 변동금리를 선택할 수 있었다. 변액보험은 변동금리를 선택함에 있어서 변동금리의 개념, 기준, 방식 및 위험성에 대한 설명의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고, 설명을 고려하더라도 전문 용어와 복잡한 수식 등으로 인해 그 내용이 매우 어려워 약관 이해도가 매우 낮은 문제가 발생하여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왔다.
한편, 보험상품 허가를 얻기 위해 금융위원회에 제출해야 하는 3종의 서류(사업방법서, 보험약관,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를 보험상품의 기초 서류라 한다. 기초서류 중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것이 보험약관이며, 기초서류 중 보험계약자가 직접 접하게 되는 유일한 서류로 보험계약의 내용을 구성하는 사실상의 계약서 역할을 하는 중요한 문서이다. 상법은 별도의 조문을 두어 보험약관에 대한 보험회사의 설명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보험약관의 설명의무는 그동안 범위, 방법, 결과 및 위반의 증명책임 등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왔다.
⇒ 문제는 보험회사가 ‘산출방법서에 의한다’ 라고만 했을 뿐 대체 그것이 무엇이고 어디서 어떻게 볼 수 있는지, 무슨 내용이 어떻게 적혀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이 없었다는 점이다(뭣이 중헌디!!).
기초서류 중 사업방법서와 약관에 관해서는 법에 공시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나,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이하 ‘산출방법서’)는 공시 대상이 아니며 자발적 공개대상도 아니다. 즉, 보험자는 산출방법서를 보험계약자에게 교부하거나 설명할 의무가 없으며, 보험계약자는 산출방법서를 자력으로 구할 수도 없다.
⇒ 만약 산출방법서를 볼 수 있다고 하여도, 산출방법서는 보험료율과 책임준비금의 비율 등을 계산하는 과정을 보험수리를 사용하여 설명하는 매우 복잡하고 전문적인 문서로 훈련된 전문가인 보험계리사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문서다.
산출방법서에 따라 계산한다는 명제만을 설명하였을 뿐 산출방법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설명이 진행되었는지는 검증되지 않았고, 심지어 보험계약자는 산출방법서 자체를 접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해당 보험약관 조항에 대한 설명의무의 이행은 근본적으로 달성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설명의무는 이행되었나
이 사건의 개인연금보험계약이 체결된 1994년은 보험약관의 설명의무 도입(1991년) 이후이긴 하나, 변동성 또는 수익성이 있어 원금손실의 가능성이 있는 금융상품의 위험성 등에 대한 설명의무가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이전이다.
문제가 된 약관 조항에 대한 일차적인 설명의무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증명책임이 보험자에게 있음에도 그 확인이 부재한 것이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확정 연금액 외에 산출방법서에 따른다고만 하는 경우 보험계약자는 산출방법서와 그 내용을 접할 방법이 없으므로 해당 약관 조항을 설명한 것만으로는 설명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고 볼 수도 없다.
설명의무에 대한 논의가 축적되고 그에 따라 원금보장 광고 금지, 적합성의 원칙 도입, 원금손실 가능성 공지, 설명의무 강화 등 많은 조치가 추가로 시행되었으나, 현재까지도 변액보험 관련 민원은 2011년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1만 6천153건으로 이는 같은 기간에 예금을 제외한 전체 투자상품 관련 민원(1만9천472건)의 82.9%에 달하여 금융감독원 민원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저축성 변액연금보험처럼 경제 상황에 민감한 금리, 지수 등의 수치와 수익률이 연계된 상품을 취급하는 평균적인 보험자라면 장기적인 경제 상황에 변수가 많다는 점, 경기침체와 금리 하락의 가능성이 항시 존재한다는 점 등은 각 보험사가 보유한 보험계리사, 자산운용사, 변호사 등 해당 분야의 전문가 수를 고려하였을 때 충분히 알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반면에 일반적인 소비자 즉, 연금보험 계약자는 보험자(보험회사)와 달리 위험의 존재, 위험의 현실화 가능성 및 전문적인 예측이 불가하여 보험자의 설명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다.
⇒ 연금액이 금리 변동에 영향을 받아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만으로는 확정 연금액이 계약 체결 당시 예상 수령액의 약 30%, 납입보험료의 70% 수준으로 쪼그라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감수하기에는 부족하다. 이 사건 보험자의 주장처럼 개인연금저축보험상품의 연금액이 변동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변동될 수 있다’는 표현은 변동의 가능성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할 뿐 변동의 정도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판단: 계약 무효도 가능한 것으로 판단한다
이 사건 보험상품과 유사한 성격을 가진 변액보험은 2001년부터 판매되었고, 약 15년 동안 그 위험성에 대해 수많은 손실사례, 언론보도와 감독기관의 계도 및 법률의 제·개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그 위험성에 대한 설명의무 이행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와 비교하여 보면 이 사건 보험상품은 1994년 6월 이후 판매되었고 보험계약자는 1995년 1월에 계약을 체결하여 판매개시 시점으로부터 6개월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그 기간이 해당 상품의 위험성이 일반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충분한 기간으로 보기에는 말도 안 되게 짧은 기간이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한 원심(부산지법 2014. 10. 24. 선고 2014나2737 판결)의 판결에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변동 폭이 원금의 70% 혹은 예상수령액의 30% 수준으로 박살 나는 것을 일반적인 이해라고 보기 어렵고, 확정 연금액의 손실 규모를 고려하면 해당 개인연금 보험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 또는 일방 당사자인 보험계약자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것으로 보아 계약의 무효를 주장할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이래서 변호사를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 훼손된 보험증권에 관하여
마지막으로, 보험 분쟁에 있어 훼손된 보험증권이 개별약정의 증거자료로 제출되어 진위를 다투는 경우는 학술적으로나 실무적으로나 매우 희귀한 사례다. 그만큼 절박한 사례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법원은 보험증권의 효력에 대해 기존 입장을 변경하지 않았으나, 보험계약자의 주장을 전적으로 배척하지도 않았다. 다만, 민사소송법의 법리에 따라 훼손된 문서 증거인 보험증권 내용의 증명책임이 보험계약자에게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고, 보험계약자가 이를 증명하지 못하여 이와 같은 판결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하여 보험계약자와 보험자를 불평등관계로 전제하고 있는 상법의 법리를 고려하면 너무했다 싶기도 하지만, 본 사안은 훼손된 문서 증거의 경우에 한하여 훼손의 책임을 고려한 것으로, 제기된 소송의 내용을 현행법에 부합하는 판결을 해야 하는 법원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합리적 결과를 내기 위한 나름의 노력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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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담이지만, 보험계약자 승소 판결을 했던 하급심 법원은 약관사본이나 증권 등의 증거조차 일절 제출하지 않는 보험회사의 무성의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는 증명 책임이 보험계약자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취할 수 있었던 태도인데, 어쨌건 결론은 “얼마가 박살 나든 주는 대로 받아라”라고 나긴 했다. 저축성 보험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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