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정치범으로 시베리아에 끌려와 곧 사형 집행을 앞둔 한 청년에게 마지막 3분이 주어졌다. 첫 1분은 자신을 둘러싼 아름다운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두 번째 1분은 자신의 생에 함께 했던 소중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으로, 마지막 1분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으로 청년은 자신의 생에 마지막 남은 그 3분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청년은 극적으로 형 집행이 정지되어 살아남았고, 세계적인 대문호가 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청년 당시 실화로 알려진, 사실은 그의 작품 속 한 장면이 와전된 이 이야기는 마치 대한민국 총선을 앞둔 유권자의 마음을 비치는 우화 같다. 거대 양당인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는 ‘역대급’으로 불리는 희대의 ‘막장 공천’을 막 끝냈다. 정당의 철학과 비전은 고사하고, ‘누가 친박이냐’, ‘누가 친노냐’는 저열한 기준으로 서로를 비난하고, 언론은 이런 조폭 패거리의 세력 싸움을 연일 운동 경기처럼 중계한다. 정치 혐오는 이제 선거의 변수가 아닌 선거의 상수가 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에서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 종영한 한 드라마의 대사처럼 “살아 있으니 뭐라도 해야” 하는 저주받은 숙명을 타고 난 게 바로 대한민국 유권자다. 총선을 보름 남짓 앞둔 지금, 유권자의 권리이자 의무를 되새김하며 만들어진 단체가 있다. 총선시민네트워크(이하 ‘총선넷’)다. 총선넷에서 투표장에서 곧 투표할 유권자를 위해 ‘3분 총선’을 준비했단다.
이재근 총선넷 공동사무처장에게 ‘3분 총선’과 총선넷의 이모저모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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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근 총선넷 공동사무처장 인터뷰
– ‘3분에 끝내는 내 지역구 후보 정보’라는 모토로 ‘3분 총선’을 만들었다.
총선이 되면 수많은 후보자들이 쏟아져나온다. 유권자로선 우리 지역구에 누가 출마했는지도 모르고 기존의 선호 정당에 따라 투표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니 후보자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른다. ‘3분 총선’은 투표장에 가서 기다리는 그 3분 만이라도 후보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유권자의 판단과 선택에 도움을 줄 ‘핵심 정보’를 스마트폰을 통해 제공하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 ‘총선넷’에선 현재 낙천 후보 명단을 제공한다. 2000년에 낙천, 낙선 운동과 관련해 선관위로부터 벌금을 받지 않았나.
2000년에는 후보자 지역구에 가서 “이 후보를 떨어뜨려야 한다”고 항의 집회를 했다. 그래서 공선법 위반으로 벌금을 받긴 했다. 이에 대해선 법원이 유권자의 행동에 과도한 제약을 가했다고 평가한다. 중요한 것은 그때에도 낙천, 낙선 명단 선정과 발표(기자회견)는 합법적인 활동임을 확인받은 바 있다는 점이다.
특히 2012년 공직선거법 93조[footnote]공직선거법 93조 (탈법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 금지)[/footnote]가 한정위헌 판결을 받아 인터넷에서의 선거운동이 전면적으로 자유화됐고, 더더욱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한 낙천, 낙선 명단의 소개, 발표, 공유 행위는 합법이다. 맘 놓고 공유해주시면 좋겠다.
– 그래도 유권자가 주의할 점이 있다면.
후보자 비방죄와 허위사실 유포는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후보자 비방죄와 관련해선 후보자에 대한 욕설과 후보자 가족에 대한 비난, 허위사실유포죄는 후보자에 관해 사실관계가 다른 내용을 유포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고, 이런 행위는 여전히 처벌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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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공천’에 대하여
–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이른바 ‘막장 공천’에 대해 논평한다면.
공천은 기본적으로 당을 대표해서 국회에 들어가야 하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당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유권자에게 뽑아달라고 하는 공식적인 절차다. 하지만 이번에 드러난 공천 과정은 소위 ‘진박’이냐 아니냐, ‘친노’를 배제하니 마니, 대통령과 당 대표의 뜻을 따르냐 아니냐가 기준이 됐다. 급기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공천 도장을 들고 부산으로 피신하는 기상천외한 해프닝을 연출했다.
나는 당원들이 직접 투표해서 공천하는 게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경선을 하더라도 ‘여론조사’를 반영하고 있는데, 이런 방식은 당의 절차적인 민주성과 투명성을 훼손한다고 본다. 이유를 댈 수 없는 이유로 전략 공천하고,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특정 후보를 배제하는 등 파행으로 일관했다.
– 비례대표 후보 선정은 어떻게 보나.
비례대표 선정에서도 사회적 약자, 다양성을 보완한다는 취지에서 보면 이런 고려가 전혀 없다. 그 대신에 누가 추천했네 마네 하는 기준이 나도는 게 현실. 새누리당, 더민주, 국민의당 모두 마찬가지다. 결국, 공천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과 투명성을 갖추지 못해 전체적으로 정치적인 퇴행을 보여줬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 그래도 바람직한 공천을 한 정당을 뽑는다면.
정당은 당원의 조직 아닌가. 그러니 후보도 당원이 뽑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의당이나 노동당, 녹색당은 정당의 본질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후보를 선출했다고 본다.
– 공천 과정에 여론조사를 도입했는데.
정당의 민주적 정당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본다. 결국, 유명한지 아닌지로 결정되지 않나.
– 그마저도 여론조사가 조작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경선에 참여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2012년 국정원 선거개입이 없었다는 기자회견의 장본인이자 국정원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증인 선거를 거부한 장본인, 사진)이 경선에서 부정이 있었다면서 공천 탈락을 수용할 수 없다는 모습을 보니 세상이 요지경이다.
여론조사는 조사일 뿐이다. 참고자료일 수는 있지만, 경선 결과 자체를 좌지우지하는 것으로는 활용해선 안 된다. 경선은 결국 당원의 투표를 통해야 한다. 혹은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지역구 당원의 투표를 통해 지역구 후보를 결정하고, 비례대표 역시 당원의 투표로 결정하는 게 맞다.
– 이른바 ‘전략 공천’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지역구에 출마한다고 하는데, 자신이 어디 지역구에 나갈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후보로 내정되고…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국민의 대표이자 지역의 대표다. 최소한 해당 지역을 위해 스스로 출사표를 던져야 하지 않겠나. 어떤 당에선 특정 지역에서 떨어진 후보가 전략 공천되기도 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황당하다.
– 20대 국회에선 오히려 비례대표가 줄었다.
비례대표가 줄어든 건 바람직하지 않다. 국회의 다양성을 살리려면 비례대표는 확대해야 맞다. 비례대표를 대표가 선점하고, 공천위원이 차지하면 비례대표제도의 취지도 훼손됐다. 비례대표 선정이 밀실에서 이뤄진다면 정당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비례대표 확대는 사표(死票)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은 유권자 투표의 42%를 득표했지만, 과반이 넘는 의원을 얻었다. 비례대표 확대는 정치개혁의 큰 방향이다.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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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심판 + 약속
– 총선넷의 캐치프레이즈가 “기억! 심판! 약속!”이고, 각각 엘로우, 레드, 그린카드로 상징되는데.
기억(엘로우카드)는 유권자가 기억해야 하는 정보들이다. 심판(레드카드)는 공천 부적격자와 낙선 대상자들을 표시한다. 약속(그린카드)은 20대 국회에서 실현해야 하는 정책들을 ‘약속’한 후보자들을 의미한다. 꼭 반영해야 할 정책과제 100개 중 30개를 추려서 후보자들에게 약속을 받을 예정이다. 약속하면 후보자에게 녹색카드가 표시된다.
– 공천 레드카드(부적격자)는 어떤 방식으로 선정했나.
공천 부적격자는 지역과 부문(시민단체) 및 시민의 제보를 취합해 선정한 사람들이다. 최종적으론 총선넷 운영위원회 회의를 거쳐 합의해 선정했다. 테러방지법과 관련해선 특별히 4명을 시민 컷오프 대상으로 선정해, 현재까지는 총 19명이 대상자다.
– 몇 명이나 공천에서 탈락했나.
19명 중에서 5명이 공천에서 탈락했다. 그런데 이런 분들 대부분은 불복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경우가 많다. 공천을 받지 못한 5명 중 윤상현과 박기준은 무소속으로 출마를 준비 중이다.
– 공천 레드카드가 좀 적지 않은가.
2012년에는 좀 많이 선정했다. 100여 명 정도 뽑았고, 2004년에는 200명 넘게 명단을 발표했다. 우선 명단이 많아지면, 나쁜 후보자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최소한 이 사람은 국회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숫자를 줄인 면이 있다.
– 낙선 대상자는 언제까지 선정하나.
4월 2일까지 낙선 대상자를 1차로 선정 발표. 유권자 위원회 200명을 모아 회의를 통해 최종 결정한다.
– 유권자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되나.
각 부문 시민단체과 지역 시민단체에서 추천한 분들과 자발적인 가입을 통해서도 참여할 수 있다.
– 200명이 유기적인 회의가 가능한가.
운영위원회에서 초안을 만들고,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최종적으로 회의를 통해 결정하므로 자유토론이나 난상으로 진행하기는 어렵지만, 사전에 정보를 미리 제공하고, 보충토론을 통해 최종 결정.
– 낙선 후보 선정 기준은 뭔가. 가령, 뉴스타파가 보도한 나경원 후보 사례를 보자. 나 후보는 딸의 부정입학과 성적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하지만 아직 직접 증거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이런 사례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보고, 사실관계가 확정된 후보들을 뽑고 있다.
가령, 김효재(새누리당) 후보는 성북구을에 출마하는데, 이 후보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 디도스 사건(선관위 홈페이지를 다운시켜 투표소 검색을 못하도록 한 사건)때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었다. 김효재 후보는 수사 대상(최구식 의원)에게 수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것이 특별검사에 의해 확인됐다.
그래서 공무상 기밀누설죄가 적용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사면해 이번에 총선에 출마하게 된 거다. 이런 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낙선 대상이고, 성북구을 유권자도 이런 정보는 최소한 알아야 한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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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총선’ – 투표 전에 3분 만이라도!
– 3분 총선 아이디어는?
투표소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3분 동안 최종적으로 한 번 더 확인하고 투표하자.
– 3분으로 판단이 가능하다고 보나.
일단은 유권자들이 3분도 조사하지 못하고 투표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3분이 충분하다는 취지가 아니라 3분 만이라도 확인해보자는 취지다. 내가 투표할 후보자가 누구고, 정확히 어떤 일을 했는지 알아보자는 취지다.
– UI가 약간 불편하고, 검색이 정확하지 않은데.
검색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예비후보를 대상으로 3월 중순 기준 자료를 쓰고 있어서 그렇다. 내일(25일)까지 후보자 등록이 끝나면 검색이 정상화할 것으로 본다. 현역 의원은 예비후보 등록을 안 하는 경우도 있어서, 빠졌던 정보들을 반영한 주말에 작업해 3월 28일(월)부터는 제대로 된 정보를 검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월 24일 인터뷰 당시 상황, 현재는 자료 입력이 완료됐다 -편집자)
– 3분 총선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아직 우리 지역구에서 누가 출마했는지 알 수 있어서 좋지만, 아직 자료가 부정확하거나 미흡하다는 반응도 있다. 우리 지역구 자료를 올려 달라는 시민들도 있다. 28일까지 자료가 총정리될 예정이니 29일부터 이용하면 좋겠다. 선거운동 기간은 3월 31일부터다.
– 한시적인 사이트인가.
이번 총선에 쓸 거고. 이번에 효과가 검증되면, 이 데이터는 축적되는 거니까. 21대 총선에서도 쓸 수 있겠다.
– 1년 내내 상시로 운영할 계획은 없는지? 의안정보서비스나 ‘열려라 국회’ 등과 연동해서.
활용안은 계속 논의 중이다.
– 3분 총선도 결국 정치인의 철학과 정책을 강조하는 취지다. 반면 현실 정치와 이를 보도하는 언론은 누가 누구 편이고, 누구 힘이 더 센가, 이런 저열한 패거리 싸움과 중계로 전락하고 있다.
누군가 전략적으로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것이 거대한 선거전략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하다못해 ‘인물 경쟁’도 실종했다. 진박이냐 비박이냐 친노냐 아니냐 김종인과 친하냐, 김무성과 친하냐… 이런 수준이다. 이런 선거에 투표할 이유가 뭐가 있겠냐고 할 정도다.
하지만 투표를 포기한다면 결국 그런 정치혐오를 옹호하는 세력의 편에 서는 거다. 꼼꼼하게 살펴보고, 3분이라도 확인하고 투표에 참여하자.
– 3분 총선, 유권자들이 어떻게 이용하길 바라나.
예를 들어 친구가 대구에 살면, 대구의 후보자가 어떤 사람들인지 확인해서 친구에게 3분 총선 링크를 보내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한다. 자기 주변에 선거 정보 허브 역할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이랄까. 유권자들이 많이 쓰는 소셜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확장성을 보완하려고 한다.
지역 정보 중에 기억해야 할 말말말, 갑질한 사람들을 정리한 정보들이 있다. 큰 물의를 일으킨 사건인데도 4, 5년 지나면 잊히는 게 현실이다. 잊지 말아야 할 기억들을 환기하는 데 도움을 주길 바란다.
– 끝으로 독자에게.
정치가 시민들에게 실망을 주고, 사회적으로 경제도 어렵고, 민생도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치 혐오에 빠져 가만히 있으면 바뀌는 게 하나도 없다. 뭐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바뀐다. 김대중 대통령은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나. 정치가 개판이고, 현실이 절망이라도 뭐라도 해야 한다. 움직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