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참의원(상원)이 10일 저녁 현행 5%인 소비세(부가가치세) 세율을 10%로 인상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참의원 의원 242명 가운데 188명이 찬성표, 49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지난 6월 26일 중의원(하원)을 통과한데다 이날 참의원까지 통과하면서 소비세율은 2014년 4월에 8%, 2015년 10월에 10%로 올리도록 했다. 총리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는 이번 소비세율 인상을 위해 야당인 자민당·공명당에게 소비세 인상 법안 처리 뒤 가까운 시일 안에 총선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올해 안 선거 결과에 따라 총리가 바뀔 수도 있다.
소비세율 인상 문제는 올 한 해 일본을 뜨겁게 달군 핵심 쟁점이었다. 1979년 당시 총리 오오히라가 일반 소비세를 제기했지만, 선거 도중 단념하고 1987년 총리 나카소네가 매출세 법안을 제출했다가 폐기시킨 뒤 마침내 1988년 당시 세율을 3%로 하는 소비세법을 최초로 성립했고 1989년 4월부터 제도를 시행했다. 이후 1994년 소비세율을 5%로 인상하는 개정안이 통과해 1997년 4월부터 실시했다.
소비세율 인상이 중요한 건 증세가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월 발표한 사회보장과 세제 종합개혁방안은 소비세율 인상 다음 목표로 추가 증세를 강조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노다는 왜 굳이 인기도 없는 증세를 위해 총리직을 걸어야만 했을까? 그간 경과와 일본 재정 상황을 살펴보면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증세를 위해 총리직을 걸다
발단은 노다가 지난해 11월 G20 정상회의 참석차 프랑스를 방문한 뒤 기자간담회에서 소비세 인상 방안을 밝히면서 비롯됐다. 2009년 8·30 총선 당시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는 선거공약을 내걸고 정권교체를 이룬 민주당 소속 총리가 소비세 인상을 말하는 것 자체는 약속위반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전임자인 간 나오토 총리가 취임 직후인 2010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소비세 인상을 내걸었다가 참패해 여소야대를 부른지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재도전에 나선 것이다. 거기다 노다는 당시 2011년 9월 취임한 신참 총리에 불과했다. 여러모로 무모한 도전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노다는 실행 시기를 명시한 소비세 인상법안을 의회에서 처리해 증세를 시행하는 시점에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당장 집권당인 민주당 안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반발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와 민주당은 2011년 12월 29일 9시간에 가까운 심야 마라톤 회의 끝에 소비세를 2014년 4월까지 8%, 2015년 10월까지 10%로 늘리기로 방침을 정했다. 소비세를 1%포인트 올리면 세수는 약 2조5천 억엔 정도 증가한다. 따라서 5%포인트를 올릴 경우 연간 약 12조5천 억엔 정도 세수가 늘어난다. 처음엔 2012년 4월까지 10%로 올릴 계획이었지만 당내 반발을 고려해 시기를 다소 늦췄다.
일본 정부는 드디어 3월 30일 소비세율 인상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정치생명을 걸고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그는 “소비세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이상 전력을 다해 성립시키겠다. 이것이 바로 결단의 정치, 흔들리지 않는 정치, 달아나지 않는 정치, 미루지 않는 정치”라고 선언했다. 당시만 해도 의회 통과 가능성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당장 민주당 안에서 100여 명에 이르는 의원을 거느린 최대 계파인 오자와 이치로 그룹이 증세에 반대하며 법안을 무산시키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그를 따르는 내각과 당 고위 간부 20여 명이 법안제출에 반발해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다. 제1야당인 자민당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 각 정당에선 중의원 해산에 대비해 총선 준비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난관을 뚫고 6월 26일 소비세율 인상법안이 전체 480석 가운데 찬성 363표, 반대 96표로 중의원을 통과한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이후 하나같이 1년 안팎으로 단명하는 일본 정치 상황에서 소비세율 인상 같은 민감한 문제에서 뭔가 결론을 냈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부정적인 여론 때문에 지지율이 20~30% 수준으로 떨어지고 집권당부터 반대하고 나서는 상황에서 노다는 여당은 물론 야당인 자민당과 공명당까지 설득해냈다. 희생도 컸다. 야권이 교체를 요구한 방위상과 국토교통상, 농림수산상 등을 경질하고 2009년 총선 당시 핵심 공약이었던 최저보장연금제 실시와 후기 고령자 의료제도 폐지 등을 철회해 당내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일단 법안이 중의원을 통과하자 법안 최종 통과는 별문제가 없을 듯 보였다. 하지만 또다시 걸림돌이 등장했다. 중의원 표결에선 민주당 의원 57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대부분 오자와 계파였다. 이들은 곧 집단 탈당했다. 거기다 제1야당인 자민당이 정구국회 회기종료일인 9월 8일 이전에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할 것을 약속하지 않으면 총리 문책결의안을 참의원에 제출하겠다고 노다를 압박하고 나섰다. 위기감이 커지자 여당 안에서도 총리를 교체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위기는 극적으로 해결됐다. 노다는 8월 8일 자민당과 공명당 대표들과 당수회담에서 소비세 인상법안을 통과시키면 가까운 시일 안에 중의원 해산과 총선을 실시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그리고 마침내 8월 10일 참의원은 본회의에서 소비세 인상법안을 통과시켰다. 노다는 개혁을 위한 중대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과연 노다와 민주당이 이번 법안 통과를 총선 승리로 연결할 수 있을지 눈여겨볼 일이다.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증세
정치적 생명까지 걸고 소비세율 인상을 성사시킨 노다의 뚝심은 충분히 높이 평가받아야 하겠지만 현재 일본이 처한 상황은 나라가 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증세를 해야 할 상황이다. 일본 정부부채는 2011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 현재 959조 9503억엔을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233%나 된다. 압도적인 세계 최고다. 거기다 연간 재정적자가 평균 40조엔이나 된다. 한국 정부 1년치 예산보다도 더 큰 규모다. 2012회계연도가 끝날 때쯤엔 정부부채가 1000조엔을 넘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은 일본 국민들이 세금을 너무 적게 내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조세부담률은 2010년에 15.9%에 불과했는데 이는 19.3%를 기록한 한국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국민부담률도 2009년 기준 26.9%에 그친다. 독일은 2010년 기준으로 조세부담률 22.1%, 국민부담률 36.3%로 9.4%p나 높다.
스웨덴은 조세부담률 34.3%, 국민부담률 45.8%이고 핀란드는 조세부담률 29.6% 국민부담률 42.1%다. 모두 재정건전성이 양호한 국가들이다. 반면 연방정부 부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은 2010년 기준으로 조세부담률 18.3%, 국민부담률은 24.8%에 그친다. 국민들이 적정한 수준의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재정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나 일본처럼 GDP의 두 배가 넘는 정부부채를 떠안고 있는 국가에선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속에서 급속한 인구고령화 등으로 인해 사회보장비 지출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사회보장비 지출규모는 1980년에는 GDP 대비 12.2%(25조엔)였지만 2000년에는 21.0%(78조엔), 2008년에는 26.8%(94조엔)으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지금 추세라면 2015년에는 120조 엔, 2020년에는 140조 엔, 2025년에는 150조 엔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정부 재정지원에 의존하는 비중도 크다.
2011년도 사회보장비 지출은 107.8조 엔이었는데 이 가운데 보험료를 통한 조달은 59.6조 엔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국고부담 29.4조 엔, 지방정부부담 10.1조 엔이었다. 이는 쉽게 말해 사회보장비 부담이 현재 일을 하는 세대에게 상당히 쏠리고 있다는 점을 뜻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민들 스스로 사회보장제도가 지속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할 정도다. 일본 정부가 소비세 인상을 통해 늘어나는 세입을 전액 연금, 의료, 노인요양, 저출산 등 사회보장지출에 투입하기로 했다.
소비세를 인상한다고 해서 일본 재정상황이 곧바로 숨통이 트이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해마다 재정적자는 해마다 40조 엔을 넘어서는데 소비세율은 현행 5%에서 20%로 4배를 인상한다 하더라도 추가세수는 37.5조엔 가량이다. 다시 말해 소비세 인상은 재정악화 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재정상황을 호전시킬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일본 소비세율 인상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위에서 말했듯이 증세를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 정부가 지난 1월 발표한 세제 종합개혁방안에는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도 포함돼 있었다. 바로 과세소득이 5000만 엔을 넘는 고소득자에게 최고세율을 40%에서 45%로 인상하고, 상장주식 배당과 양도소득에 대해 현행 10% 비과세 규정을 없애고 법정세율인 20%를 적용한다는 내용이다. 만약 조기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한다면 추가 증세에 강력한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사례는 이제 전세계에서 증세가 돌이킬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탈리아는 1주택 보유자에게 재산세를 면제하던 제도를 폐지한 것을 비롯해 부유세와 금융자산세를 신설했다. 프랑스에선 부자증세를 공약으로 내건 프랑수아 올랑드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스페인은 지난해 말 정권을 잡은 우파 정부가 나서서 소득세율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조세저항운동을 상징하던 미국 캘리포니아조차 심각한 재정적자를 견디다 못해 주지사가 연 수입 25만 달러 이상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소득세 인상 여부를 오는 11월 주민투표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지출 삭감 중심의 재정건전화 방식은 물론 감세를 통한 경기부양조차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나 일본은 거품붕괴 이후 토건정책과 감세정책으로 경기부양을 꾀했지만 그 결과는 장기침체와 재정악화로 이어졌다. 어찌 보면 그런 뼈아픈 실패가 이번 소비세율 인상을 어렵게나마 성사시킨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한국 조세부담률·국민부담률 갈수록 줄어
이웃 나라 일본에서 일어나는 상황변화는 우리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한국은 2008년도 국가채무가 309조 원이었지만 2009년도 359.6조 원, 2010년도 392.2조 원, 2011년 420.7조 원으로 4년만에 국가채무가 110조 원 넘게 폭증했다. 재정수지 역시 2007년에 3.6조 원 흑자였던 것이 2009년엔 43.2조 원까지 적자가 늘어나는 등 적자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적자성 채무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런 속에서 조세부담률은 2007년 21.0%에서 2010년 19.3%로 해마다 꾸준히 감소하고 있으며 2012년에는 19.2%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국민부담률 역시 2008년 26.5%였던 것이 2009년에는 25.6%, 2010년에는 25.1%까지 떨어졌다. 정부조차 재정건전성 확보를 주요 정책과제로 강조하는 요즘, 지속 가능한 나라 곳간을 위해 증세를 고민해야 할 때다.
[box] 참고문헌 목록
국회예산정책처 (2012). 2012년도 대한민국 재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12.01.30). 일본의 사회보장 및 세제개혁방안: 내용과 시사점.
한국금융연구원 (2012.07.13). 소비세율 인상을 통한 일본의 재정수지 개선 노력.
(편집자 주: 이 기사의 표1,2는 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표3은 위 국회예산정책처의 자료를 바탕으로 재편집한 것입니다.) [/box]
[box type=”info”]* 알림: 표 1.을 재편집하는 과정에서 성명(호소카와)과 연도 표시에 오타가 있었습니다. 2012년 8월 21일 오전 0시 50분에 이를 바로 잡습니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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