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엘리와 크리스토프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둘 다 독일 사람입니다. 독일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히 역사 문제로 대화가 흘러갑니다. 그리고 매번 놀랍니다.
#. 크리스토프
나: 일본이 얼마나 악질인 줄 알아? 강제노역에, 생체실험에, 성 노예[footnote]국제 외교상에서 논의할 때는 성 노예(Sex slave)라는 표현을 씁니다. 듣기에 영 불편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위안부라고 부릅니다만.[/footnote] 문제만 해도 그래. 아직 인정하지도 않고 사과도 안 했어.
크리스토프: 전쟁 중에 그런 문제는 늘 있어. 독일도 똑같이 그랬어. 아니 우리는 더 나빠. 독일은 사람을 빠르게 죽이기 위해 살인 공장(홀로코스트)까지 지었으니까.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 인정하고 관련자를 찾아 단죄했어. 지금도 죄를 묻는 과정은 계속되고 있고. 그게 차이점이 될 수는 있겠지.
#. 엘리
나: 만약 중국을 비롯해 일본과 전쟁을 치렀던 나라에 가장 호감이 안 가는 나라를 꼽으라면 아마 일본이 수위에 오를 거야. 아직 우리는 과거에서 자유롭지 못해. 그런데 독일은 좀 다른 것 같아. 유럽 이웃 나라는 독일을 그렇게 미워하는 것 같지 않던데. 재미없다고 놀리기는 해도. 이제 독일은 과거에서 자유로워 진 거야?
엘리: 아니, 그들은 몰라도 우리는 자유롭지 못해.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나치의 만행에 대해 샅샅이 배웠어. 다시는 그런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돼. 난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들과 방학이 되면 조를 짜서 폴란드에 갔어. 희생자들을 찾아다니며 우리 윗세대의 잘못을 사과하려고. 우리 같은 친구들이 많았어.
어느 날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했어. 독일이 EU의 수장을 맡는 것이 불안하다고. 우리의 피 안에 전쟁을 일으키는 유전자 같은 게 있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어때? 우리가 자유로워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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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 “한국 위안부 협상은 일본과 미국의 승리”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나 자기 나라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고, 또 뼈저리게 아파하는 게 가능하구나. 이런 나라라면 다시는 같은 죄를 저지르지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독일이 다시 유럽 공동체의 리더십을 쥘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라 죄를 극복하는 방식 때문에 독일이 무서운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은 독일과 정 반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역사를 왜곡하고, 2014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즉, 전쟁할 수 있도록 헌법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돈 얼마 주고 더 이상 국제 외교무대에서 일본의 과오를 논하지 못하게 하려는 지금의 일본은 같은 죄를 반복할 수도 있는 나라일지도 모르겠다는 불안이 들게 합니다.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긴말 필요 없이 영국 신문 가디언은 지난 2015년 12월 28일 자 논평을 통해 “한국 위안부 협상은 일본과 미국의 승리”라고 썼습니다.
끝나지 않은 길
몇 년 전 쉼터로 할머니들을 찾아뵌 적 있습니다. 등이 굽고 주름이 가득했지만 ,마당에 앉아 ‘쎄쎄쎄’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노는 모습은 여전히 소녀였습니다. 끌려가기 전 어리고 해맑던 시절, 행복한 그때 시간이 멈춘 듯했습니다.
하지만 웃고 계시는 모습을 봐도 등 뒤로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것처럼 마음이 아렸습니다. 어떻게 저분들의 삶을 보상할까 싶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 집에 와서 울었습니다. 다시는 눈물 흘리는 소녀가 없도록, 그 소녀들의 눈물을 닦아드리는 것…
우리 모두 아직 갚지 못한 빚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