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올해 탈꼴찌에는 성공했지만, 포스트시즌에는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김성근 감독에게 늘 따라다니던 혹사 논란은 여전합니다. 핵심 불펜 4인방에게는 ‘살려조(組)’라는 웃지 못할 별명까지 붙었습니다.

2015년 김성근 감독과 관련된 논란에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들이 스며들어 있다고 봤습니다. 이에 관련 문제들을 연결해 분석해보려 합니다. (필자)

  1. 김성근 감독의 살려조(組)와 “진짜 프로”
  2. 김성근 스타일의 해부: 프런트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3. 김성근 열성팬: 우리들의 일그러진 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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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2015년 10월 5일) 야당의 인사가 갑자기 야구 이슈로 구설에 오르는 일이 있었다.

구설에 휘말린 한 야당 인사 

손혜원 새정치민주연합 홍보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을 옹호했다. 손 위원장의 주된 논거는 이렇다.

  1.  원년 두산 팬이었지만, 김 감독을 따라 한화 팬이 됐다.
  2.  3년 내내 꼴찌만 하던 팀을 1년 만에 6위로 만들었으니 실패가 아니다.
  3.  흥행에 성공했으면 구단의 수입도 많아졌다는 것인데 김 감독의 연봉 이상 충분한 수입을 거둔 것 아니냐. 광고효과도 컸을 것이다.
  4.  한화는 명장을 부릴 능력이 안 되는 회사다.

김 감독의 연봉만 단순하게 계산할 게 아니라 김 감독 부임 후 비용을 따져봐야 한다. 한화는 김 감독 부임 후 배영수·송은범 등 FA를 영입했고, 일본인 코치 5명을 고용했다. 게다가 에스밀 로저스는 시즌 중 영입된 선수임에도 이적료 포함 100만 달러 이상을 투입했다.

손혜원 새정치민주연합 홍보위원장의 페이스북 갈무리
손혜원 새정치민주연합 홍보위원장의 페이스북 갈무리

특히 ‘한화는 명장을 부릴 능력이 안 되는 회사’라는 인식은 편협해 보인다. 숱한 혹사 논란과 트레이드 논란, 에스밀 로저스의 2군행을 둘러싼 논란 등은 구단이 아니라 김 감독이 유발한 논란이다. 오히려 트레이드에 반대한 단장이 경질됐다. 한화는 김 감독에게 유례없는 전권을 부여했다.

더불어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에 반대하고, 여당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으로 인식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인사가 ‘선수 혹사’ 논란으로 악명이 높은 김 감독을 일방적인 ‘팬심’으로 옹호했다는 것은 구설에 오를만한 일이었다.

손 위원장의 인식은 김성근 감독의 열성 팬이 가지는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곳곳이 썩었는데 백로처럼 고고한 그 사람을 썩은 무리가 해치려고 하므로, 우리가 열렬히 응원하고 지켜줘야 한다는 인식이다.

김성근 열성 팬

김 감독의 열성 팬들은 층위가 매우 다양하다. 대개 김 감독의 SK 와이번스 재임 시절 형성된 팬들이 많지만, 고참 열성 팬들은 쌍방울 레이더스 팬 출신들이 소수 포진해 있으며, 김 감독의 LG 트윈스 감독 해임 과정에서 이에 반발했던 LG 트윈스 출신자들도 있다.

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김 감독이다. 김 감독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열성 팬들을 ‘노리타(노인성애자)’라고 조롱한다. 그 별명이 붙은 계기는 디시인사이드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 어떤 유동닉 유저가 김 감독의 사진 133장을 공유했다며 못 받은 사람들은 다시 보내주겠다고 김 감독의 사진을 대량으로 올렸던 사건으로부터 비롯된다. 어떤 유저는 모니터 가득 김 감독의 사진을 띄워놓고, 커피와 쿠키를 차려놓으며 “감독님과 티타임 중”이라는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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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시인사이드 갈무리
디시인사이드 갈무리

이들은 김 감독이 옮기는 팀마다 팀의 팬을 자처하며 그 팀의 오랜 팬들과 전선을 형성한다. 팬들이 김 감독을 비판하면 김 감독을 옹호하며 팬을 분탕 종자로 몰아붙이는 경우도 있다. 한화 이글스에 오랜 애정을 표현해온 개그맨 남희석이 김 감독을 비판하자, 남희석도 ‘분탕 종자’로 몰렸던 사례도 있다. 이들의 레퍼토리는 고정돼 있다.

“원래 ㅇㅇ팀 팬입니다만, 김성근 감독님 따라 한화를 응원하게 됐습니다.”

‘프런트’라는 썩은 기득권자들에 맞서 당당하게 야구를 해왔고 끝내 ‘해임’이라는 탄압을 당해야 했던 비운의 명장이라는 것이 열성 팬의 인식이다.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탄압당하는 감독님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그들이라는 것이다.

선수에게는 혹독한 팬심 

이들의 ‘팬심’은 해당 팀의 오랜 팬덤을 흔드는 부작용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들은 김 감독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견디지 못한다. 어떤 소재와 주제에 대해서도 논쟁은 환영하고, 권장할 만한 일이지만, 위키형 사이트에서는 게시글을 함부로 삭제하거나 통째로 수정하는 이른바 ‘반달 행위’마저 불사한다는 점은 문제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이들의 다음 레퍼토리다.

“ㅇㅇ팀 선수들은 더욱 혹독하게 굴려야 사람이 된다.”

김 감독을 ‘썩은 기득권자에 맞서는 고고한 아웃사이더’로 인식하면서도, 김 감독과 함께해야 할 선수에 대해서는 일본군식 군기가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감독의 독재화를 조장하는 이중잣대가 적용되는 것이다. ‘혹독한 굴림’에 대한 결과에 대해서는 이렇게 옹호한다.

“꼴찌만 하던 팀을 6위에 올려놓은 것만으로 감지덕지 아니냐.”

손 위원장의 인식이기도 하다. 성과를 위해서라면 사람을 혹독하게 굴려야 한다는 마치 [올리버 트위스트]에 등장하는 악독한 자본가가 연상되는 사고방식이다. 팀의 장기적 계획을 헝클어뜨린 6위가 과연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차치하더라도 단기 성과를 위해 사람을 혹독하게 희생시킬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과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절망 억압 자유 고통

드러난 존재감

이들이 오프라인에서도 존재감을 보인 사건이 그 유명한 ‘문학구장 소요 사태‘와 ‘SK 와이번스 프런트 퇴진 운동‘이다. 2011년 8월 18일, 김성근 감독을 해임한 SK 와이번스 프런트에 항의한다며 그라운드에 난입해 마운드에서 SK 와이번스 유니폼을 태우면서 욕설과 함께 시위했고 이후 프런트의 퇴진을 요구한 사건이다.

물론 당시 맥락은 반드시 김 감독의 열성 팬들만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3회 우승 등 김 감독의 성과에 많은 SK 팬들이 김 감독에게 애정을 기울였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팀의 팬이라면 후임 감독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더라도 팀에 대한 애정은 변치 않기에 감독 개인에 대한 추종은 그리움의 감정으로 바뀌지 응원팀을 바꾸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여기서 김 감독의 열성 팬들이 파생된 것이다. 이들은 후임 이만수 감독에 대한 비난을 이어가다가 김 감독의 한화 이글스 감독 부임 후 한화 팬이 된 것이다.

여론몰이

이들은 곳곳에서 논란을 유발했다. 김 감독의 한화 부임 이전에도 감독이 교체될 예정인 팀과 관련된 게시판 등에 “김성근 감독이 아니면 답이 없다”는 식의 조직적인 부임 청원 운동을 전개했다. 이어 한화 부임 이후에는 야구 관련 사이트마다 해당 팀의 팬들과 전쟁을 치르며 김 감독을 결사적으로 옹호했다. 혹사 논란 등에 대한 정당한 비판에 대해서도 침묵을 강요하며 ‘신뢰’를 주문하는 것이 이들의 주된 논리구조이다.

한화가 경기에서 승리하면 조직적으로 나타나 김 감독을 옹호하며, 패배하면 조직적으로 글을 삭제하며 사라진다. 우리는 이를 ‘여론몰이’라 부른다.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인터넷의 맹점을 십분 활용하며 김 감독 개인의 열성 팬이 팀의 팬으로 위장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이런 ‘작전’의 여파로 해당 팀의 오랜 팬들이 축출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팀보다 감독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팀에 오랜 애정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축출하는 사태, 소위 말하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희생양
h.koppdelaney, CC BY ND

열성 팬에 비친 일그러진 인터넷

일부 야구기자들도 지나치게 김 감독을 옹호하기도 한다. 김 감독의 아들 김정준 한화 이글스 코치의 친구로 알려진 인터넷 매체, 신문 기자들도 김 감독 옹호에 열과 성을 다한다. 이들은 이슈에 목마른 언론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 감독의 발언을 집중적으로 보도해 친김성근 여론을 조성하기로 유명하다. 혹사 논란에 대한 감성적 물타기 등이 주된 패턴인데, 이들의 기사는 열성 팬에게 논리 강화 교과서로 활용된다.

선수 출신 해설위원들도 예외는 아니라서, 김 감독의 부름으로 선수 생활을 더 오래 했던 경력이 있는 선수 출신 해설위원들이 김 감독의 옹호자들로 주로 거론된다. 김 코치의 친구로 알려진 몇몇 해설위원은 투수혹사 논란을 부정하거나, 김 감독의 강도 높은 훈련에 대해서도 “2년은 해야 한다”고 옹호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현재 인터넷 공간은 마치 8.15 광복 이후 좌익과 우익이 세를 과시하며 폭력사태를 일으켰던 해방 후 정국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평범한 사람으로 볼 수 없는, 하루 수십 개 이상의 게시물을 올려가며 댓글이나 게시물을 작성하는 네티즌들이 있다. 이들이 작성하는 게시물들은 과연 여론일까, 아니면 여론 조작일까?

지금까지 3편에 걸쳐 김성근 감독으로부터 엿볼 수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살펴봤다. 선수 혹사 논란은 OECD에서도 가장 오랜 시간 노동하는 우리나라의 노동 시장을 떠올린다. 또한, ‘하면 된다’식의 김 감독 개인 철학이 절대적인 도그마가 되는 한화 이글스의 선수 운영을 보면서 절차와 체계에 대한 존중이 무너진 한국사회의 모습을 떠올린다.

김 감독이 이끄는 2016년 한화 이글스는 어디로 갈 것인가?

한화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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