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젊은 교수님
강의실에서 나는 주로 ‘교수님’이나 ‘선생님’으로 불린다. 가끔은 ‘강사님’이라며 내 정확한 직위를 상기시켜 주는 학생들도 있고, 간혹 ‘저기요’하는 말도 듣는다. 굳이 호칭을 어느 하나로 바로잡아 준 일은 없지만 ‘저기요’에게는 “여기는 식당이 아니잖아요.” 하고 가볍게 주의를 시켰다. (강의실에서의 호칭 문제도 언젠가 에피소드로 다루려 한다.)
‘형’이나 ‘오빠’로 나를 부를 때
그런데 가끔 ‘형’이나 ‘오빠’라는 호칭도 듣는다. 물론 의도적인 것은 아니고 대부분 학생이 곧 민망해하며 사과하곤 한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죠. 괜찮아요.” 하고 그저 멋쩍게 웃고 말았으나, 요즘에는 “듣긴 참 좋은 소리네요.” 하고 가볍게 받아 주기도 한다.
사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어디 가서 형이나 오빠라는 호칭을 듣기도 쉬운 것이 아니어서 무척 싱숭생숭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학생들 앞에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나 아직 대학생처럼 보이나 봐.” 하고 친구들에게 자랑했다가 면박을 듣기도 했다.
31살에 강의를 시작했으니, 스무 살 학생들과 정확히 11살 나이 차이가 났다. ‘학생’이라기보다는 ‘동생’이나 ‘후배’라는 친근한 생각이 종종 들었다. 누군가 ‘형’ 하고 불렀을 때 ‘응, 왜?’ 하고 답하려다가 말을 삼킨 경험도 있다. 나만의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세대적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런데 ‘젊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산인지 나는 점차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지못미’와 ‘안습’, ‘버카충’과 ‘개이득’
2015년 1학기, ‘목차 구성법’에 대해 강의하던 중이었다. 제목에는 핵심 키워드와 글의 방향성이 함께 드러나야 하고, 그것이 충족된다면 개성 있게 표현해도 좋다, 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논문DB에 접속해 어느 논문 한 편을 다운받아 그 목차를 보여 주었다. “둘만을 위한 ‘완소’ 공간 활용하기”라는 소제목을 보고, 학생들은 의아해했다. (이안나, 「모텔이야기 : 신자유주의시대 대학생들의 모텔 활용과 성적 실천의 의미 변화」, 여성학연구, 2013.2 참조)
그래서 나는 그 어떤 용어이든, 예컨대 ‘완소’든 ‘지못미’든 ‘안습’이든 사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대신 작은따옴표(‘’) 부호 표시를 반드시 해 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작은따옴표(‘’)는 글쓴이가 해당 용어를 어떤 특별한 의미를 담아 의도적으로 사용했음을 나타낸다.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가 예로 들었던 ‘지못미’와 ‘안습’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요즘 누가 그런 용어를 쓰느냐는 다소 장난스러운 반응이었다. 내가 생각해 보아도 뭔가 부적절한 예시구나 싶었다. 첫 강의를 시작한 2013년에야 상용어였다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러면 예시를 바꾸겠다고 답하고 어느 때보다도 더 열심히 기억을 더듬다가 ‘버카충’(‘버스카드 충전)이라고 말해 버렸다. 학생들은 “에이”하고 야유를 보냈다. 다시 고민을 거듭하다가 “그러면 ‘개이득’은 어떤가요?”라고 했더니 모두가 “오”하고 박수를 보냈다. 누군가가 “그런 건 어떻게 아세요?” 하고 물어서 “저도 인터넷 합니다.” 하고 답해 주었다.
세대 차이가 가져온 위화감
민망하고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이지만, 나는 강의실을 나서면서 전에 없던 위화감이 들었다. 언젠가 학생들과 일상어로 소통이 되지 않는 때가 반드시 오겠구나 싶었다. 그것은 내 노력으로 극복하기 힘든 세대적 경계선이 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젊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산인지 느꼈고, 동시에 곧 상실하게 될 ‘젊음’이 애틋해졌다.
젊음은 누구에게나 존재했던 것이고, 동시에 누구나 상실하는 것이다. 그 어떤 노교수에게도 젊음의 시기는 있었다. 나는 학생들과의 소통이나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럭저럭 그것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내 젊음에 대한 학생들의 호감과 그로 인해 적절히 무화된 세대적 경계에서 나온 것이었다. 내 능력이나 특별함으로 규정하기엔 너무나 오만하고 염치없다는 데 생각이 닿았다.
대학원생 조교를 하던 시절, 학과 사무실에서 잠시 쉬던 어떤 50대 시간강사께서는 학생들을 ‘새로운 종족’으로 규정했다. 학생들의 일상어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예를 들면 ‘지못미’가 대표적이었다. “지못미 그게 뭐야?” 하고 물으셔서 “나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를 줄여 말하는 겁니다.” 하고 답해 드렸다. 선생님께서 다소 복잡한 표정을 지으셔서 나는 ‘아니 TV만 틀어도 늘 나오고 인터넷에 널려 있는 건데 왜 모르지,’ 하고 한심하게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무척이나 죄송한 일이다.
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
모든 선생님은 학생과 소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것은 세대적 좌절을 겪은 이들이 그 경계를 넘어서려는 위대한 시도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나는 석사과정을 밟을 때, 박사과정 선배 B와 함께 자취했다. 그는 운 좋게 서울 모 대학 교양 강의를 얻어 일주일에 두 번씩 서울과 지방을 왕복했다. B가 아침 일찍 말쑥한 정장을 차려 입고 “오늘도 좋은 하루!” 하며 밝게 웃고 출근하면, 나도 주섬주섬 학과사무실에 올라갈 준비를 했다.
그런 그는 대개 자정이 다 돼서야 돌아왔다. 4시간 강의를 위해 8시간 운전을 한 그는 거의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기름값도 나오지 않는 강의였건만, 그는 이마저도 감사한 경험이라며 성실히 출퇴근했다. 가끔 울상이 되어 들어오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눈앞에서 뭐가 번쩍하더라고. 과속카메라를 또 못 봤어.” 하고 말했다. 그러니까 온종일 일하고 오히려 국가에 세금 몇 만 원을 내고 오는, 그런 성실한 국민이 되는 것이다.
한 번은 그를 기다려 치킨과 시원한 맥주를 내놓았다. 지쳐 있던 그는 필요 이상으로 감사하게 술상을 맞이했다. 그래서 나도 무척이나 뿌듯했다. 강의는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학생들이 도무지 웃지를 않아.” 하고 답했다. 내가 아는 한 B는 50대 시간강사보다 더하면 더했지 도무지 인터넷이든 TV든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대신 공부는 참 열심히 했다. 그는 내게 대뜸 학생들을 웃길 한 마디를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효과가 있으면 ‘치맥’을 사겠다고 해서, 나는 꽤 오랜 시간 고민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가 어떨까요?”
선배, 지못미…
나는 당시 즐겨 보던 웹툰에서 나온 유행어를 그에게 소개했다. 그는 ‘그게 뭐야’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맙다고 말했다. 술자리가 끝나고, 나는 그 유행어를 현실에 적용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잠시 생각해 보았는데, 누가 와도 분위기를 살리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러다가 ‘뭐, 형님이, 알아서, 하겠지’ 하고 말았다.
2주가 지나고 역시나 자정이 다 되어 퇴근한 B의 손엔 치맥이 들려 있었다. 나는 그를 반갑게 맞았다. 난데없는 야식에 기뻐하며 맥주를 가득 담아 건배하는데, 그가 무척이나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그거 해봤는데, 반응이 너무 없어서 내가 실수했나 싶어서 한 번 더 써먹었어. 근데 아무래도 나는 안 되려나 봐 미안하다. 이번 학기 강의 평점은 기대하지 말아야겠어.”
나는 뒤늦게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에게 사죄의 의미를 담아 맥주를 꾹꾹 눌러 담아 주었다. 그리고 술자리가 파할 무렵 조심스레 말했다.
“저, 형님 혹시 ‘지못미’라고 아시나요…”
날 ‘웃프게’ 만드는 선배, 존경합니다
B는 지금도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배 강사 중 한 명이다. 언제나 열심히 연구하고, 강의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 언제나 노력한다. 더는 나에게 “요즘 학생들이 많이 쓰는 유행어가 뭐니?” 하고 묻지는 않지만, 종종 “‘웃프다’는 게 뭔 줄 알아? 넌 아마 모를 거야. 내가 어제 배운 건데 이게 뭐냐면 말야…”하는 식으로 나를 웃프게 만들곤 한다.
나는 학과 사무실에서 마주친 50대 시간강사도, 곁에서 오랜 시간 지켜본 선배강사 B도 모두 존경스럽다. ‘신종족’과 소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 2013년의 언어를 2015년에 적용할 수 없고, 다시 도저히 더는 소통할 수 없다고 생각할 후 세대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강의 평가 주관식 문항에 예외 없이 등장했던 “젊은 교수님이라 우리를 많이 이해해 주셔서 좋았어요.” 하는 답안도 추억이 될 것이고, 젊음을 상실하는 만큼 다른 무엇으로 나를 채워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세대적 소통과 교감은 감사한 것이지만, 그것을 당연함으로 여기지 않기로 했다. 젊음이 나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기에, 언제나 겸허함으로, 나의 지도교수들, 그러므로 나의 학생들을 맞이하려 한다.
학생과 소통하려 노력하는 모든 선배에 대한 존경을 담아 이 글을 쓴다.
논문 제목의 ‘신자유의시대’는 ‘신자유주의시대’의 오타 같은데, 맞다면 수정 부탁드립니다..
예리한 지적 감사합니다 :)
바로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