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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조선일보는 아래와 같은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일보 IMF

해당 기사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1997년 우리나라 외환위기 당시 IMF는 25%의 고금리, 대기업·금융기관 구조조정 등 가혹한 조건들을 강요했다. 일각에서 너무한다는 비판과 함께 재협상론이 나오자 IMF는 당시 15대 대통령 선거 후보들에게 ‘자금지원 협상 이행각서’까지 받아냈다. 과거 한국에선 이랬던 IMF가 지난달 26일 그리스의 부채를 30% 탕감해줄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 강조 표시는 편집자) 

1997년 당시 재협상론을 주장했던 것은 일각이 아니라 김대중 후보다. 여당에 경제파탄 책임을 물으며 재협상을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김대중 후보가 한국의 국제 신망을 떨어트려 경제불안을 부추긴다며 연일 난리를 피웠다. 당시 조선일보 사설을 잠깐 살펴보자.

한 야당 대선후보가 제기한 이 재협상론은 IMF 협상 타결에도 불구하고 외국 투자자들로 하여금 한국정부가 구조개혁을 신속하고 완전하게 실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빠지게 했는데 이런 우려감은 『김대중씨가 IMF 조건들을 하나하나 재검토하겠다고 발언함으로써 더욱 증폭되고 있다』(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는 것이 외국의 일반적 시각이다.

이같은 외국의 불신은 현재의 다급한 국내 상황을 신속하게 개선하고 극복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고 위기를 장기화시킬 뿐이다. 이 점을 정치권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위급한 상황에 처한 경제현실을 단순한 정략의 차원에서 이용하려는 발상은 무책임한 단견이며 해악적인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물론 이번의 IMF 지원협상은 우리 정부의 다급하고 미숙한 처지로 인해 부당하고 불리한 조건들을 적지 않게 포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IMF의 지원에 관련된 국제적 협약인 한、 우선은 성실하게 협약을 지킨다는 신뢰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전제가 된다.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추락한 대외신인도를 조속히 회복하는 일이며 이는 다른 어떤 노력보다도 외국에 대해 약속을 지키고 구제개혁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는 일이 될 것이다. 정치적 목적이나 근시안적 단선 논리 때문에 문제의 본질과 심각성을 외면하는 어리석은 주장은 작금의 심각한 경제 현실의 개선에 장애가 될 뿐이다. (* 강조 표시는 편집자)

– 조선일보, [사설] 불신 심화시킨 재협상론, 1997년 12월 11일 자(종합, 3면)

IMF의 요구라고 언론을 통해 알려졌지만, 기실 대선후보들에게 협상 이행각서를 받아낸 것은 IMF가 아니라 김영삼 정부였다. 상술하면, 이회창 후보는 여당 후보로서 정부가 요구한 합의이행 각서에 직접 서명했고, 김대중 후보는 정부가 요구한 각서에 서명하지 않고, 김영삼 대통령에게 별도 서한을 보내 합의 내용을 원칙적으로 이행하겠다고 했으며, 이인제 후보는 당직자가 대신 날인하는 형식을 밟아 합의이행 각서에 서명했다. (참고 기사: MBC – IMF,대통령 후보들에게 합의이행 각서 요구.)

김대중이 집권하면 당장에라도 빨갱이 세상이 되는 것처럼 여론을 몰고, 재협상론을 “무책임한 단견”, “근시안적 단선 논리”, “어리석은 주장”이라고 주장한 장본인이 바로 조선일보다. 그런데 자신이 한 일은 까맣게 잊은 채 18년이 지난 지금 자신은 아무런 책임도 없는 양 보도하니 정말 뻔뻔하기 짝이 없다.

빚을 탕감하려는 그리스의 시도를 보며 한국 사람들이 억울해하는 건 당연지사다. 우린 그렇게나 혹독한 구조조정을 당했으니까. 그런데 한국의 국가부도는 달러화가 일시적으로 모자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나라가 망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재협상을 했다면 채무를 조정하거나 적어도 훨씬 나은 조건으로 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었을 거다. 적어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해고되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거나 노숙자가 되어 길거리에 나앉지는 않았을 거라는 얘기다.

지난 2010년, 당시 IMF 총재였던 스트로스-칸은 한국에 요구했던 구조조정에 대해 “당시 어떤 실수가 없었다고 말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잘못을 인정했다. 또 그는 “IMF는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며 앞으로는 심한 부작용이 예상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IMF 총재도 후회하는 그런 심한 구제금융안을, 오직 정권을 사수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선후보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끔 온갖 자극적인 언어를 동원해 종용한 것이 바로 조선일보다.

18년이 지난 지금도 반성을 모르는 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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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한가지 가벼운 사족을 달자면 당시 대선후보들에게 김영삼 전대통령이 각서를 요구한건 사실이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그것을 요구한건 IMF였습니다. IMF쪽에서 돈을 빌려주기 위한 조건으로 각서를 요구했고 그에 따라 김영삼 전대통령이 후보들에게 각서를 요구한것이니 각서요구에 대한 관계는 ‘IMF->김영삼->후보들’로 볼 수 있고 김영삼 전대통령은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중간자 역할이었을 뿐이지요.(어디까지나 차기대통령 각서요구 건에서만 그렇다는 겁니다)

  2. 조선일보의 후안무치함을 비난하려는 것이라면 ok. 하지만 해당기사 및 해당사항에 대해 어떠한 반성이 가능한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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