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sense]영화감독이 외국에 나갔다. 현지 스태프를 고용해서 영화를 찍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출국할 때 가져간 하드 디스크에 담아 한국에 돌아왔다. 세관은 이 하드 디스크에 관세를 매겼다.
나갈 때는 ‘깡통’ 디스크였지만, 들어올 때는 ‘고액의 소프트웨어(영상물)가 담긴 수입품’이라는 것.
여러분은 이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화를 촬영해 하드 디스크에 담아오면 관세 대상?
어느 영화 제작사의 관세소송 패소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주변의 창작자들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물어봤다. 그래서 한번 정리한다. 사건의 진행 경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주)외유내강은 영화 [베를린]의 영화 제작사다.
- 제작사는 출국할 때 영화 촬영을 담을 저장 도구로 내용이 비어있는 하드 디스크를 가져갔다.
- 하드 디스크는 아타 까르네를 이용해 반출했다.
- 제작사는 2012년 4~6월 독일과 라트비아에 있는 현지 프로덕션 업체와 함께 촬영했다.
- 세관은 영화 촬영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는 제작사에 2억 8천6백만 원을 과세했다.
- 과세 기준은 외국 촬영에 이용한 22억 원(국내 제작진이 쓴 비용 제외)으로 잡고, 부가가치세 2억 2천만 원과 가산세 6천6백만 원을 합친 금액이다.
마지막으로 영화 제작사는 이 결정에 불복해 서울세관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으나 2015년 4월 1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김경란)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아타 까르네를 이용했다?
“아타 까르네”(ATA carnet)란 무관세 통행증으로 세관 검사할 때 제출하면 해당 물품에 대해서는 별도의 관세 서류를 작성할 필요가 없고 관세, 부가가치세, 담보금 등 각종 세금을 부과할 필요가 없다. 이 까르네로 통관이 가능한 물품은 크게 상품견본, 직업용구, 전시품목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상품의 견본, 그리고 직업적으로 이용되는 도구, 그리고 전시에 이용하는 물품들이다.
다만 이 까르네는 일시 수입에 해당하는 품목에, 전시회나 박람회 등에 참가하기 위한 일시수출입을 목적으로 하는 품목을 대상으로 하고, 이를 위해 발급받는 증서이지 세금 면탈(회피)의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게 관세 전문가의 설명이다.
즉, 세관과 재판부는 영화 제작사가 출국할 때 가져간 하드 디스크에는 아무런 내용이 담겨있지 않았고, 다시 입국할 때 가져온 하드 디스크에는 영상이 수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과세할 수 있다고 결정한 것이다.
그래도 의문이 든다
많은 창작자와 제작자는 여기서 자연스레 몇 가지 의문이 들 것이다. 외국에 나가 비용을 들여 소프트웨어를 제작해 노트북에 담아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빈 도화지를 들고 나가 외국의 풍경을 멋지게 표현한 그림을 그려오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래서 관세사에게 물어봤다. 이하 곽신영 관세사와의 일문일답. (인터뷰 진행 및 정리: 민노씨)
[box type=”info” head=”곽신영 관세사 일문일답”]
– 하드 디스크 과세 합당한가.
원칙적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례다. 하드 디스크가 ‘깡통’으로 나갔다가 촬영한 영상물(수록물)이 포함된 상태로 들어왔다면 수입품이다. 그 수입품의 성질은 소프트웨어가 담긴 저장장치다. 따라서 관세율은 0%이고, 부가가치세(이하 ‘부가세’)는 10%다.
어떤 기준으로 과세할 것인지는 개별 케이스마다 다르지만, 부가세를 부여해야 한다는 측면에선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례다. 즉, 과세 대상이 되는 물품의 성질이 나갔을 때와 들어왔을 때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나갈 때는 ‘깡통’ 하드 디스크였지만, 들어왔을 때는 고액의 가치가 있는 소프트웨어다. 양자의 성질은 전혀 다르다.
– 기사를 보면 22억에 대해 세금을 부과했는데 왜 2억 2천만 원이 아니라 2억 8천만 원인가?
2억 2천만 원은 원래 냈어야 했는데 내지 않은 세금(부족세액)이다. 이는 22억 원에 대한 부가세 10%로 산정된다. 하지만 이 부족세액에 대한 가산세가 벌칙금 성격으로 다시 붙는다. 자진해서 납세하면 부족세액의 10%, 세관에서 부과하면 부족세액의 20~40% 정도다.
따라서 부가세(부족세액) 2억 2천만 원에 추가로 6천6백만 원 정도가 가산세로 따로 붙은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 보도를 보면 정확하게 6천6백만 원이 가산세다. – 편집자)
– 일반적인 상식으로 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 같다. 화가가 종이 한 장 들고가서 그 종이에 10억 원짜리 그림을 그려왔다고 치자. 그럼 여기에도 과세하나?
예술품은 관·부가세가 면제다.
– 영화도 예술 아닌가?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관·부가세가 면제되는 품목으로서의 예술품은 회화나 조각 등에 한정된다. 법이 그렇다.
– 그렇다면, 개발자가 노트북을 들고 가서 비용을 들여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왔다. 그럼 이건 과세 대상인가?
당연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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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의문은 깔끔하게 해소되지 않았다. 지금은 클라우드 서비스가 워낙 발전한 시대다. 또한, 클라우드 서비스 이전에 FTP, 웹하드 등 다양한 디지털 전송과 공유가 가능한 도구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국외에서 소프트웨어를 제작한 후 클라우드나 FTP 등으로 전송하면 어떻게 될까. 곽신영 관세사는 이렇게 답했다.
“관세법상 과세물품은 유체물에 한정되고, 무체물(전자적 매개물로 인터넷사이트 다운로드, 이메일 전송 등으로 주고받은 경우)은 관세법상 과세대상이 아니다.”
디지털 시대에 눈여겨볼 흥미로운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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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 제목 중 ‘관세’는 통상 ‘관세 등’으로 표현되는 관세(수입세)와 부가가치세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즉, 영화 ‘베를린’ 제작사에 부여된 세금은, 엄밀하게 말하면, 관세가 아니라 부가가치세입니다. (편집자, 업데이트: 2015년 4월 14일 오후 10시 33분.)
이 글은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독자들의 궁금증에 관해 한 번 더 답하는 뉴스 A/S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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