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 사회 » 어느 미친년이 죽고 싶은 당신에게 보내는 조언

어느 미친년이 죽고 싶은 당신에게 보내는 조언

이 글은 ‘어느 미친년의 자존감 회복 5단계’에서 이어집니다. (편집자)

소위 정신분석이라고 불리우는 정신과 상담치료를 시작한 것은 스무 살 때였다. 그 당시만 해도 핸드폰에 뜨는 엄마라는 두 글자가 일상을 마비시킬만큼 그녀는 공포의 존재였고, 지난 20년간 그래왔듯 말도 안되는 이유로 나를 학대하던 때였다.

정신과 선생은 내게 가출을 지시했고, ‘드디어 나에게도 광명이!’라는 환희와 함께 집을 뛰쳐나와 할아버지와 둘이서 오손도손 살게 되었다. (지난 글 중에서)

그렇다면 내가 할아버지와 살면서는 행복했을까?

멍청한 기대 

그렇지 않다. 나는 심각한 우울증과 늘 함께였고, 그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분노를 제대로 해소해야 했다. 부모에 대한 분노를 표현할 수 있기까지도 한참이 걸렸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엄마가 언젠가는 나를 사랑해주겠지, 언젠간 나를 안아주겠지라는 이 멍청한 기대 때문에 나는 착한 아이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녀가 나를 미워한다는 사실이 끝없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화를 내는 것이 두려웠다.

가장 통쾌했던 순간 

내가 가장 통쾌했던 순간은 스물두살, 그녀에게 욕을 했을 때였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당한 그대로 물리적 폭력도 행사하고 싶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을 행하는 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든다.

대신 폭력을 행사하는 상상은 꽤 도움이 된다. 과거에 당신이 당하기만 했던 기억을 재구성 해보는 것이다. 상상 속에선 극단으로 가도 괜찮다. 사람이 다치지 않는 곳에서 물건을 깨부숴도 좋다.

잊으려고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슬퍼하고 싶은 만큼 슬퍼하는 과정,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자면 애도의 과정이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다. 사춘기에 보통 애들이 부모한테 대드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나는 체화된 피학 때문에 겪지 못했고, 나중에 어렵게 그 과정을 밟았던 것이었다.

불안을 극복하다 

하지만 20년 이상 쌓인 분노가 몇 번의 폭발로 해소될 순 없는 노릇이었고, 나는 여전히 분노의 이면에 숨길 수 없는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여전히 부모로부터 사랑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그 불안의 근원이었다.

그 불안은 폭력에 대한 저항을 불가하게 만든 이유였고, 지옥같은 시간을 견디며 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끝없이 갉아먹고 그들의 사랑에 의존적인 나약한 존재로 만드는 것도 불안이었다.

내가 그 불안을 극복하게 된 것은 그 두 사람들이 앞으로도 절대 내가 원하는 안정적인 사랑과 신뢰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확인함과 동시에 결국, 내 빈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은 그 누구보다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남자친구든 여자친구든 할아버지든 선생님이든 그 누구도 나를 온전히 만족시키고 충만하게 만들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온몸으로 깨달았다. (도움이 전혀 안 된다는 것은 아니나 의존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내가 할아버지 집에서 살았을 때 나는 할아버지가 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끝없는 사랑과 이해를 받을 거라 믿었다.

정신과 선생 역시 마친가지였다. 나는 나에게 최적화된 공감을 원했고, 그것을 정신과 선생이라면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그건 독심술이 가능하거나 신이 아닌 이상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신을 챙길 수 있는 건 당신

대신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성장하고 있는 페이스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을 말이다. 당신이 건강하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안위와 건강과 미래를 살뜰히 챙기고,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당신을 안전하고 편안하고 즐겁게 만드는 것은 바로 당신이라는 말이다.

주위에 사랑을 주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당신이 받고 싶은 사랑을 그들에게 주면 그들은 응답할 뿐이다. 그리고 그 응답률은 절대 100%가 될 수 없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든 ‘당신을 챙길 수 있는 것은 당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약은 효과가 있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불안이 나를 덮쳤을 때 나는 숨쉬기 조차 힘들었다.

1초에 맥막이 두 번씩 뛰고 밀폐된 공간에 있는 것도 견딜 수 없었다. 누군가의 사랑을 끝없이 갈구하고 나를 불안에서부터 벗어나도록 도울 사람을 찾아 해메이며 나는 괴로워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나 스스로에게 해주고 나를 칭찬하고 소중히 여기면 되는 것을 말이다.

불안장애를 위한 약물은 나에게 듣지 않았다. 오히려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뜨려 나를 더 절망적으로 만들었다. 우울증 약은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데 효과가 있었지만, 결국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읺은 채 복용하는 약물의 한계는 분명했다.

당신을 미워하지 마라 

몸이 고통을 느낄 때만 겨우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앞이 깜깜한 날들만이 나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신이 있다면 내 당신을 죽여버리고 말겠다고 생각했던 날들을 지나 나는 이곳에 도착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고군분투했다.

세상에 고통은 정말 백화점의 옷가지 수 만큼이나 많다.

부끄러운 자식이 되지 않기 위해 성적에 목숨 걸어야 하고, 그 성적이 곧 나의 자아가 되는 삶, 성숙하지 못한 부모가 내뱉는 칼날같은 단어들, 어쩌면 이성을 잃어버린 손찌검들. 혹은 낯선이가 당신의 몸을 더듬고 수치심과 모욕감에 온몸을 불사르고 싶을 만큼 괴로운 순간들.

그때, 부디 당신을 미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의 건투를 빈다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이겨내고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특별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자살하면 다음 생애에 똑같은 괴로움을 또 당한다는 말을 나는 어디선가 들었다. 끔찍하지 않은가? 후생이 있다면 그 생은 행복할 수 있도록 이번엔 착하게 살아보려는 것이 내 삶의 목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업보청산. 나는 종교가 없지만 각종 종교를 짬뽕한 기이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해두자.

내가 잘 살길 바라는 만큼 나는 당신이 잘 살길 바란다. 당신을 스스로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그들로부터 사랑받으며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글은 미스핏츠에서 발행한 ‘어느 미친년의 정신과 탐방기’를 편집한 글입니다. (편집자)

미스핏츠

좋은 기사 공유하고 알리기
슬로우뉴스에 커피 한잔의 여유를 후원해주세요. 필자 원고료와 최소한의 경비로 이용됩니다.

필자 소개

유경
초대필자. 미스핏츠

후생이 있다면 그 생은 행복할 수 있도록 이번엔 착하게 살아보려는 것이 내 삶의 목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내가 잘 살길 바라는 만큼 나는 당신이 잘 살길 바란다. 당신을 스스로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그들로부터 사랑받으며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작성 기사 수 : 2개

©슬로우뉴스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슬로우뉴스 안내 | 제보/기고하기 | 제휴/광고문의
(유)슬로우미디어 | 전화: 070-4320-3690 | 등록번호: 경기, 아51089 | 등록일자 : 2014. 10. 27 | 제호: 슬로우뉴스 | 발행인: 김상인 | 편집인: 강성모
발행소: 경기 부천시 소사로 700번길 47 1동 506호 (원종동, 삼신) | 발행일자: 2012. 3. 26 | 개인정보관리/청소년보호책임자: 강성모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