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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정신분석이라고 불리는 정신과 상담치료를 시작한 것은 스무 살 때였다.

엄마 = 공포 

그 당시만 해도 핸드폰에 뜨는 엄마라는 두 글자가 일상을 마비시킬만큼 그녀는 공포의 존재였고, 지난 20년간 그래왔듯 말도 안되는 이유로 나를 학대하던 때였다.

https://flic.kr/p/7sDxAj João Carlos Magagnin, "CONTROL!", CC BY
João Carlos Magagnin, “CONTROL!”, CC BY

정신과 선생, “가출해” 

정신과 선생은 내게 가출을 지시했고, ‘드디어 나에게도 광명이!’라는 환희와 함께 집을 뛰쳐나와 할아버지와 둘이서 오손도손 살게 되었다.

왜 진작에 나오지 않았냐고 한다면 묶어 놓고 계속해서 전기고문을 당하던 강아지가 개가 되어 목줄을 풀어줘도 도망치지 못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되겠다.

João Carlos Magagnin, help me!, CC BY https://flic.kr/p/5UDaW2
João Carlos Magagnin, help me!, CC BY

자유와 불안 

처음으로 느껴보는 자유는 달콤했지만 여전히 언제 엄마가 찾아와 나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고 있었다. 지옥에서 탈출했다고 믿고 싶었지만 그건 안타깝게도 사실이 아니었다.

불안은 물리적으로 도망칠 수 있는 것이아니었다. 불안의 기원은 가해자로부터 시작했지만, 불안 자체는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João Carlos Magagnin, "DAZED&Confuzed", CC BY https://flic.kr/p/7xGRFG
João Carlos Magagnin, “DAZED&Confuzed”, CC BY

거식증과 폭식증 

중학교 3학년 때 시작된 거식증은 고등학교 내내 날 괴롭혔고,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폭식증이 부메랑처럼 날아왔다. 식이장애는 우울증의 다른 이름이다. 어떤 대상으로부터 발생한 분노가 유발대상과의 적절한 협의점을 찾지 못하고 왜곡되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우울증이고 식이장애 역시 해결하지 못한 분노가 스스로를 학대하는 것으로 표현된 것이다.

결국, 우울증이나 식이장애 모두 죽을 것 같으니 나를 좀 돌봐달라는 표현의 다른 모습인 셈이다.

João Carlos Magagnin, Triton and Me, CC BY https://flic.kr/p/6ZaBR2
João Carlos Magagnin, “Triton and Me!”, CC BY

미친년의 자존감 구축 5단계 

식이장애의 근원에는 매우 낮은 자존감이 자리하고 있다. 나의 경우 십대 이전부터 늘 비난과 위협에 시달렸고, 갖은 욕을 먹으며 스스로가 하찮고 불결하며 쓸모없는 존재임을 각인당했다. 자존감은 인정과 애정, 칭찬을 기반으로 다져지는데 어린시절 형성되지 못한 자존감을 후일 스스로 구축하기란 정말 더럽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스스로 자존감을 찾아가는 과정은 대략 이러했다.

João Carlos Magagnin, _____ , CC BY https://flic.kr/p/85Luk8
João Carlos Magagnin, _____ , CC BY

1. 나는 문제 원인이 아니다  

일단 쓸데없이 비난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어떤 문제의 원인이 자신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데서 자존감 재구축이 시작된다. 세뇌란 깊게 패인 낙인과 같은 것이어서 레이저 같은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을 여러번 거쳐야 그 융기가 희미해지는데 문제의 원인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 역시 끊임없이 되새김질해야 하는 것이었다.

2. 자신을 그 자체로 사랑하라 

그 다음 단계는 본인이 지닌 재능과 가치와 장점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장점을 칭찬하고 발견해 줄 누군가가 있으면 매우 좋겠지만, 그건 행운이 따를 경우이니 스스로라도 자신의 장점을 샅샅이 찾아내어 되뇌고 되뇐다.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환하게 웃어주고 아름다워보이는 점들을 칭찬한다. 물론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자존감이 평균 이상인 이들은 오글거린다고 하겠지만, 나에겐 아무리해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거식증이 그렇다. 거지같아 보이는 나를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기 위해 가장 쉽게 컨트롤 할 수 있고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몸이기 때문에 타인이나 사회가 주장하는 기준에 따라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슬프게도 거식증 감염자에게 완벽의 기준은 없다. 그 기준이 애초에 모호하며 제시자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멸할 때까지 살을 빼다 죽어버리는 경우가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거식증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이상하다는 질타도, 뭐하는 짓이냐는 꾸짖음도, 당장 살을 찌우라는 협박도 아닌 그 사람 자체를 존중하는 사랑뿐이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이 사랑받을만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의 사랑 말이다. 하지만 주위에 그런 사랑을 주는 경우 역시 희박하니 역시 당신은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

João Carlos Magagnin, "Viva feliz!", CC BY https://flic.kr/p/7BRdVL
João Carlos Magagnin, “Viva feliz!”, CC BY

3.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라

당신 잘못이 아닌 것을 아니라고 확인하고 당신의 장점들을 열심히 찾아내보았다면 이제 당신이 좋아하거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을 한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운동을 하거나 영화를 봐도 좋다. 피해를 주는 게 아닌데도 누군가 비난을 한다면 깔끔하게 무시하고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그게 살길이다. 주위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시작해도 좋다.

당신 마음의 소리에 따르는 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봉사활동이나 각종 ‘착한’ 일을 해보는 것도 좋다. 당신이 그만큼 애정이가득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 역시 자존감 구축에 도움이 된다. 단, 그것은 당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어야 한다.

4. 나를 괴롭혔던 걸 글 쓰거나 말로 토해내라 

조금 에너지가 쌓였고 전보다는 그래도 세상이 살만해졌다면 당신을 괴롭혔던 것들에 대해 글로 쓰는 것을 시도해본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쌍욕을 잔뜩써도 좋고 저주를 해도 좋고 뭐든 좋으니 일단 쓰는 것을 시작해본다. 글을 쓰는 일이 별로라면 말을 하는 것도 좋다.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사람이 없는 곳을 걸으며 혼잣말을 해도 된다. 미칠듯한 분노가 끓어오를때 바로 화를 내지 말고 대상이 있는 것처럼 혼자 화를 내거나 욕을한다.

직접 싸우는 것보다 제2의 죄책감이나 후폭풍을 예방할 수 있다.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이나 글을 쓰는 것이 어색하다면 예상 청자나 독자를 두고 스피치나 글을 쓰면 정리가 더 잘 되는 경우도 있다. 실제 나는 익명처리되는 온라인 공간에 무작위 독자를 향해 글을 쓴다.

João Carlos Magagnin, Ohh God!, CC BY https://flic.kr/p/7GuHxW
João Carlos Magagnin, Ohh God!, CC BY

5. 내 문제는 사회와 연결돼 있다!  

문제의 원인을 다층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관점의 공부를 하는 것도 좋다.

당신이 겪은 문제가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나 인식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여성의 몸에 대한 평가는 사회의 기득권을 가진 남성중심의 사고로부터 이뤄진다.

내 몸에 대한 판단 기준이 내가 아닌 것이다. 여기서 당신은 자유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한 것들의 반추는 당신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의 증명이고 당신의 가치를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당신이 자존감을 회복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때로는 사무치도록 외로워지고 그만두고 생을 마김하고 싶을 정도로 괴로울 때가 있을 것이다.

João Carlos Magagnin, triton summer, CC BY https://flic.kr/p/72ffBE
João Carlos Magagnin, triton summer, CC BY

당신의 약점과 상처는 절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삶은 절대 혼자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늘 경쟁에 시달리느라 이기지 못하면 살 수 없다는 강박에 약점을 숨기느라 급급하다면 그것은 당신을 살리는 일이 아니다.

당신의 약점과 상처는 절대 당신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의 삶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삶의 모든 문제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과 떼어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즉, 당신이 겪고 괴로워하는 문제가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며 당신이 약점을 먼저 드러내는 용기를 보였을 때 나도 그렇다며 말을 거는 이들이 분명히 있다. 당신의 수치를 드러낼 때 비로소 당신은 치유에 가까워질 수 있으며 다른 이를 치유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João Carlos Magagnin, Die another day..., CC BY https://flic.kr/p/5YnR7B
João Carlos Magagnin, Die another day…,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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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 이 글은 미스핏츠에서 발행한 ‘어느 미친년의 정신과 탐방기’를 편집한 글입니다. ‘어느 미친년이 죽고 싶은 당신에게 보내는 조언’으로 이어집니다. (편집자)

미스핏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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