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20대. 하지만 꿈도 우정도 사랑도 잃어버렸습니다. 목소리마저 잃은 채 먼지처럼 떠다닙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소리쳐야 합니다. 슬로우뉴스가 20대의 목소리 [미스핏츠]와 함께 합니다.
치어리더 박기량을 아시는지? 나는 야구를 안 봐서 모르겠지만 꽤 유명한, 웬만한 연예인 뺨치는 유명 치어리더다. 얼마 전 10월 11일, 그녀가 MBC ‘세상을 바꾸는 퀴즈-세바퀴’에 나왔다. 그녀는 이 방송에서 치어리더로서의 생활을 이야기하다 눈물을 보였다. 한 연예뉴스는 그녀의 에피소드를 이렇게 요약했다.
기업 운동회에서 아빠뻘 관중에게 “술 한 잔 따라보라”며 유흥업소 아가씨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고생을 많이 했다. 치어리더라는 직업 때문에 별별 관중을 다 겪었단다. 대놓고 몰카를 촬영하는 관중, 먹던 걸 던졌던 관중도 있었다. 박기량은 치어리더 일에 회의를 느꼈다며 울었다. 방청객과 연예인 패널은 그녀를 위로했다. 뭐 그런 놈이 다 있냐! 성희롱으로 고소해버려라! 변호사 패널은 그렇게 말했다.
세바퀴 안에서의 훈훈한 분위기와 달리 온라인상의 분위기는 냉정했다. 수많은 댓글이 박기량에게 비난의 화살을 쐈다. ‘그렇게 짧은 치마에 몸을 다 드러내고 춤을 추면서 그럼 관객에게 뭘 바랬느냐’ 부터 시작해서 ‘세상에 얼마나 험한 일이 많은데 그깟일로 방송에서 우냐’, ‘우는 거 지겹다’ 까지. (참조: 미디어다음 관련 뉴스 댓글 기준, 추천수는 글을 쓸 당시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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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어리더도 하나의 직장인데 그런정도의 어려움없으면 그냥 할줄알은것인지….ㅉㅉㅉ 일반직장인은 매일 하루가 지옥같이 느끼면서 출근하는 사람들에게는 뭐라 말할수 있으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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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어리더들아, 그런 탓 하지말고 옷복장부터 바꿔라 그리고 그 현란한 몸동작으로 술에 취한 정신이 약간 혼미해진 자들 앞에서 추태를 부리니 어찌 그런 변을 안 당하랴 몸동작을 할때 젖퉁이는 출렁출렁 속옷은 바람에 뒤집혀져 보였다 사라지는 환상을 술 취한 지들에게 보이면서 그 어떤 이성적인 매너들을 원하는가? 물론 술에 취하지 않은 자들은 그나마 평정심을 찾고 속으로만 상상하며 가끔 힐끗거리기만 하지 우선 옷 복장과 그리고 그 현란스런 몸동작을 바꿔라 순수한 응원 모드만 표출 될 수 있도록 하면 아마도 많이 개선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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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따랐다면 유흥업소 수준의 여자가 되는 거고
안 따랐으면 그냥 아닌 거다
어차피 치어리더 하면서 어느 정도 따가운 시선은 감수해야 되는 거 아니냐
스스로 본인이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살면 된다 울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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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티비에서 이러지말자…
동정표 얻으려는거밖에 안보여
성희롱 당했다고 우는 사람을 두고 “네 옷이 잘못”이라고 말하고, “일인데 감수해야지”라고 말하며, “동정표 얻냐”며 비난한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떳떳한 비난 저속한 질투
‘포털 네티즌들이 미친 거냐?’ 아니다.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걸 표현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만한 분위기가 존재한다. 욕해도 돼! 같이 욕하자! 그런 파이팅의 분위기가 이런 발언을 가능케 한다. 이 댓글러들은 마치 ‘재판’이라도 하듯이, 고객이 클레임이라도 걸듯이 떳떳하게 박기량을 비난한다.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집단적으로 화를 내는가? 사람들은 ‘그게 네 일이잖아. 참아야지. 넌 대가를 받잖아.’ 이렇게 말하며 화를 낸다. 그녀의 불평은 부당하다고. 이건 ‘거래’다. “그런 줄 모르고 치어리더 했니? 그건 니가 판 거야” 사람들이 산 그녀의 노동 안에는 치어리딩만 있는 게 아니다.

치어리더의 노동은 1+1 이벤트?
이쁜 얼굴로 웃고, 춤추고, 잘 뻗은 다리를 보여주는 것까지 그녀의 노동에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런 걸 다 돈 주고 산 거고 그러니 그녀가 치어리더라는 직업으로 먹고사는 것인데, 왜 이제 와서 불평이냐. 사람들은 이 불평이 거래 정의에 합당하지 않다고 우긴다. 그래서 그녀를 욕하면서도 그렇게 당당하다.
박기량이 원해서 판 가치가 아니라도 상관이 없다. ‘그건 당연히 끼워 파는 거 아니야?’ 이렇게 대꾸한다. ‘아니, 저는 ‘치어리딩’이라는 노동을 팔았을 뿐이에요.’ 항변해도 소용 없다. 사람들은 ‘알면서’ 팔아놓고 왜 이제 와서 딴 소리냐고 욕을 한다. 지가 팔아놓고 왜 지가 억울한 척이야? 그런 저속한 질투고 투덜거림이다.
어떤 사람들은 ‘치어리딩’을 볼 돈을 지불한 걸 치어리더를 맘껏 훑어보고 술 따르게 할 권리도 샀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성희롱 해도 상관 없어요’라고 말한 적 없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잘못이다. 그건 너무 명백해서 얘기할 필요도 없다.

우리 안에 있는 평범하게 길들여진 잔인성
그렇다면, 이들이 단순히 후안무치에 “개무식 상팔자”를 외치는 사람들이라서 이런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정말 치어리더는 치어리딩만으로 소비 되는가? 치어리더가 쭉쭉빵빵, 예쁜 얼굴이라는 기름기를 쪽 뺀 상태로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가? 아니지. 당연히 아니다. 치어리더는 ‘아름답고 잘 빠진 짧은 치마를 입은 발랄한 여성’의 이미지도 함께 판다. 박기량이 뛰어난 치어리더라는 말을 붙여도 똑같다. 그녀도 ‘아름답고 잘 빠진 짧은 치마를 입은 발랄한 여성’으로 소비된다.
성 이미지를 사고팔면서 사람들은 그런 거래를 ‘경제적 정의’로 정당화한다. 그녀가 그런 이미지를 판 적이 없다고 항변해도 사람들은 ‘우리가 이미 샀어. 이 사회에서 원래 그런 식으로 네 이미지가 소비되는 걸 몰랐니? 순진한 척 하지마’ 라며 욕을 한다. 왜 그녀가 그런 방식으로 이 사회에서 소비되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솔직히 저런 댓글 다는 사람들 나는 별로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어떤 식으로든 방어하고픈 마음도 개미똥만큼도 없다. 그렇지만 저들을 ‘이해 못 할’ 소수 괴물로 취급하는 건 정말 오해다. ‘소수 꼰대 남자’나 ‘일베’나 하는 말이라고 당신이 생각한다면, 당신 생각은 틀렸다.
선배 언니 왈, “그냥 이쁨 받는다 생각해라”

대학교 축제 때의 이야기다. 나는 우리과 주점에서 서빙 담당이었다. 손님 중 하나는 “내가 너희 선배”라며 자리에 앉았다. 얼굴도 모르는 십수년 위의 선배였다. 그는 서빙 하러 온 김에 앉아서 같이 술을 먹자고 나를 붙들었고, 술을 따라보라고 시켰다. 나는 마음 속에 차오르는 찝찝함을 애써 무시하고 고분고분 술을 따랐다. 앉아있는 자리가 가시방석이었다. 그래도 웃는 얼굴로 억지로 앉아 자리를 지켰다.
나중에 간이 주방으로 가서 그릇을 정리하다가 친구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이러이러해서 기분이 나빴다. 그런데 안 따를 수도 없고 그냥 술을 따르고 앉아있다 왔다. 친구는 ‘아이구 기분 나빴겠다’ 하며 나를 위로했다. 그 소리를 듣고 뒤에 있던 선배 언니는 내가 위로를 받고 있는 꼴이 보기 싫었는지, 짜증을 버럭 냈다. 아니 모르는 사람이어도 그냥 선배가 이뻐해준 건데 뭐가 문제냐고. 그냥 이쁨 받는다 생각하면 되는 거 아니냐. 빨리 나가서 일이나 해라.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
‘그냥 예뻐해주면 예뻐해주는 대로 받아라’. 고분고분 술을 따르면 예쁨을 받을 수 있다. 내가 별로 예쁨 받기를 원하지 않는대도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 그렇게 충고한다. 내가 ‘예쁨 받기’를 거부하고 “왜 나에게 술을 따르라 하시냐” 묻는 것 자체가 사회 부적응으로 취급된다. 여기서 포인트는 이런 여자후배를 혼내는 사람이 항상 ‘여자 선배’라는 거다.
여자 선배는 안다.
- 술 따르라는 말이 기분 나쁠 수 있다는 것
- 그치만 그냥 이쁨 받는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다 좋게 끝난다는 것
- 자기는 이미 ‘다 좋게 끝내자’ 생각하고 넘긴 일인데 후배가 징징대는 게 고깝다는 거
그냥 일이라고, 처세라고 생각하면 좋잖아.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충고한다. 그냥 덕 보면 될 걸 왜 괜히 까탈스럽게 구냐는 짜증이다. 차별이고, 불편해도, 그 차별로 덕을 본다면 그냥 좀 넘어갈 수도 있는 거 아니냐. 그렇게 묻는다. 덕 보는 위치면서 뭐 그렇게 말이 많냐. 이용해라. 그게 처세다.
그게 처세다 그냥 넘어가면 다 좋잖아!
처세. 남자도 여자도 다 처세하면서 사회생활을 한다. 그런데 여자는 누군가한테 예쁨 받는 위치에 서는 게 처세가 되고 정치가 된다. 딱히 그런 위치에 놓이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마구잡이로 그런 위치에 놓는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사진)은 골프장 캐디 성추행 사건에 대해 “내 딸처럼 귀엽고 손녀처럼 정답고 해서” 그랬다고 답했다. 그냥 이뻐해준 거라는 변명. 성희롱 레퍼토리 중에 “그냥 손녀 같아서” “딸 같아서” “이뻐해주고 아껴주다보니” 이런 게 제일 많다. ‘예쁨 받는 위치’에 자꾸 여자들을 놓는다. (그런데, 대체 누가 언제 이뻐해달랬니?)
그리고 성희롱하고 협박하는 놈들은 “알 만한 사람이 왜 이러냐”고 한다. 그 ‘알 만하지?’라고 묻는 룰 자체가 이미 성의 정치학이 개입된 룰이다. 여성이 선 운동장 수많은 곳이 이렇게 기울어져 있다. 적당히 처세한다고 생각하라며 성희롱을 견디라고 말한다. ‘짤리고 싶냐. 내가 누군지 모르냐. 한 번 그냥 대줘라. 술 따르는 게 뭐가 어렵냐. 내가 다 뒤를 봐주겠다. 이뻐해주겠다.’
이러나 저러나 닐리리 썅년
여자가 요구받는 처세는 딱 ‘이쁘고 싹싹한 여자 후배’의 역할이다. 웃긴 건 ‘그런 처세 안 할래요’하면 여성주의 열사 취급을 받으며 욕을 먹고 ‘열심히 요구하신 역할을 수행해보겠사와요’ 하면 여우같은 년이라며 욕을 먹는다는 거다. 이러나 저러나 닐리리 썅년이다.
여러 또래 대학생들과 애들 가르치는 일을 한 적 있다. 개중에 나이가 압도적으로 많은 남자사람이 하나 있었다. 선생님들은 비록 다 대학생이지만 애들 앞에선 서로에게 ‘선생님’이란 호칭을 썼다. 하루는, 애들이 없는 곳에서 선생님끼리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이 나이 많은 남자사람은 내게 “그냥 오빠라고 불러. 그게 더 가까운 것 같고 좋잖아”라며 능글능글 굴었다. 그래서 나는 “아니, 전 오빠라고 부르는 건 싫은데… 선생님이라고 할게요.” 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남자 사람은 킬킬 웃다가 “너 혹시 페미니스트 뭐 그런 거냐?”하고 조롱했다. 그 사람 딴엔 농담이었다.
그 농담에 뭐가 섞여있는지 우리는 잘 생각해봐야한다. “오빠라고 부르기 싫음” 이꼴 “까탈스러움” 여기까지는 다들 쉽게 연결한다. ‘애가 처세를 잘 못하네’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제는 “까탈스러움” 이꼴 “페미니스트” 이꼴 “재수없음, 웃음거리”까지 간다. 이렇게 생각하는 남자들이 하고 많고 쎄고 쎘다. “에이 그거 그냥 미친놈이네” 정말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길. 여성으로서의 불편을 표출하면 조롱을 받는다. 이런 사회다.

‘이쁘고 싹싹한 여자 후배’ 역할을 하면 “아이구 잘 한다 아이구 이뻐라 아이구 섹시해 소녀시대 춤도 잘 추네” 이러다가 “사실 그런 거 하기 싫었어요…”하면 “뭐야 왜 이제 와서 피해자인 척 쩔어”하면서 욕한다. 저한테 개이득일 걸 알고 행동했으면서 왜 이제 와서 모르는 척이냐! 그렇게 비난의 화살을 신기전 수준으로 쏜다.
박기량의 눈물을 보고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낀다. ‘너도 다 알았잖아?’ 그렇게 의도했든 안 했든 상관없이 그건 다 ‘알 만한’ 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를 욕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성희롱 하는 새끼들이 ‘너도 다 좋아서 가만 있었던 거 아니냐’고 오해하는 거랑 비슷한 지점이다. 자기가 의지적으로 ‘여성’의 위치를 이용하지 않았대도 ‘너도 다 좋아서 가만히 있었던 거 아니냐’는 식으로 비난한다.
여대 축제에 놀러오세요?
‘페미니스트 열사’와 ‘고분고분 귀염+초섹시 수지 같은 후배’의 사이에서의 줄 타기. 여성이 사회에서 처세하고 살기 참 어렵다.
올해 숙명여대 학생회는 축제에서 ‘과도한 노출’ 의상을 규제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두고 ‘21세기에 복장규제라니 이게 웬 말이냐!’ 하며 언론은 앞다투어 보도했다. 해당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시민들 혀 차는 소리가 모니터 밖까지 들려온다. ‘쯧쯧쯧- 때가 어느 때인데 복장을 규제하나.’ 그렇게 혀를 찬다.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 기사 댓글에 숙명여대 학생의 글이 몇 보였던 것이다. 그녀들은 얘기한다. ‘그만큼 문제가 많았으니 그런 것 아니겠냐. 알지도 못하면서 일방적으로 보도한다. 학생들끼리 충분히 이야기하고 결론 내린 문제다.’ 이런 댓글들이 보였다. 그리고 축제 후에 숙명여대 학생들은 오히려 이번 축제가 마음이 편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사실 진짜 아이러니다. 그렇게 어우동 모자를 쓰고 대학축제를 누빌 때는 아무 말이 없더니, 규제를 한다니까 언론이 대학 축제를 조명하기 시작했다. ‘규제’를 시작으로 오히려 그 전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여대생의 이미지를 대학축제가 팔아먹었는지 다시 보게 된 거다. 가게 문 닫으니 찾아오는 격이다.
어쨌든 사람들은 어떻게 간호사복을 입고, 어떻게 저런 야한 이미지를 써서 축제홍보를 하냐며 성상품화가 지나치다, 요즘이 바로 말세다 말이 많았다.
근데 말은 바로 하자. 성을 자발적으로 상품화하는 대학생들의 존재가 방증하는 건 ‘충분히 그래도 된다’고 용인해주는 사회 분위기 아닌가? 그런 풍조를 부추기고 소비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으레 그래왔잖아’라며 입 다물고 즐기고 있지 않은가? 성희롱 당한 치어리더가 우는 건 그렇게 욕을 하면서, 불쾌하더라도 선배에게 다소곳이 술을 따르는 게 처세라고 가르치면서 어떻게 그렇게 떳떳한지? 결국 그냥 ‘숙대생’자체의 문제고, ‘박기량 치어리더’의 문제고, ‘술 따른 여대생’ 개인의 잘못으로 돌릴 것인지?
이중인격의 사회, 소시처럼 현아처럼 입으라면서?
소녀시대와 현아가 거리마다 전광판에 보이는 마당에 (게다가 소녀시대처럼, 현아처럼 입기를 끊임없이 권유하면서) 막상 그렇게 입고 그 질서를 이용하면 삿대질을 한다. 낮에는 현모양처, 밤에는 섹시걸을 원하는 것만큼이나 모순. 통통한 여자가 좋다면서 송혜교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모순이다.

아마 숙대에도 “그냥 예쁨 받는다고 생각해. 그냥 축제잖아. 그냥 재미잖아.” 이렇게 조언한 선배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예쁨 받는 위치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잘 이용하라고 가르친다. 왜 원하지도 않는 ‘예쁨 받는 위치’에 놓여야 하는 지는 논의하지 않는다. 다들 우리는 아주아쭈우~ 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건 개인의 ‘선택’이고 ‘능력’이라고 치부한다. 여성도 여성문제를 말하지 않고, 차별이 있다는 것에 대해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누군가는 자신이 예쁨 받는 위치에 놓이는 것을 이용한다.
웃기는 이분법, 만만한 ‘쌍년’ 아니면 ‘꼴페미’
사회는 여성이 이러한 차별을 이용하길 권장하고 있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능력치로 계산하고, 팔고 이용하라고, 우리가 원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면 그게 네 경쟁력이 된다고 현혹한다. 적당히 이용하면 ‘처세를 잘 한다’고 칭찬하고, 반발하면 ‘꼴페미’(꼴통 페미니스트)라고 배제하고, 노골적으로 이용하면 ‘김치녀’라고 돌 던진다. 그렇게 차별의 질서를 세우고, 세상 모든 여자는 창녀거나 성녀, 이러나 저러나 닐리리 썅년이 된다. 웃기는 이분법이다. 이래도 성의 정치학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그 질서를 영리하게 또는 영악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해도 그건 여전히 차별이다. 사회의 차별을 한 여성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써먹는데도, 그게 ‘차별’이라는 사실은 변함 없다. ‘예쁨 받고 싶을 때’만 예쁨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예쁨 받고 싶지 않은데’ 굳이 박희태 국회의장에게 손녀딸 취급을 받아야 한다든가. 성희롱 받는 걸 네가 억울해할 처지냐는 박기량에 대한 핵펀치 같은 게 그 예다.
박기량의 눈물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본인이 떳떳하면 되는 거 아니냐. 왜 우냐”며 비난한다. 본인이 떳떳하면 된다? 누군가 당신 치마 속에 카메라를 넣어도 군말 없이 춤추기를 강요한다고 생각해보라. 그런 짓을 하면서 사회는 박기량을 욕 한다. 돌 던지기 전에 자기가 든 돌부터 살펴라.
당신은 뭐가 그렇게 떳떳해서 박기량의 눈물을 욕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