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20대. 하지만 꿈도 우정도 사랑도 잃어버렸습니다. 목소리마저 잃은 채 먼지처럼 떠다닙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소리쳐야 합니다. 슬로우뉴스가 20대의 목소리 [미스핏츠]와 함께 합니다. (편집자)
0. 야부우우리
오랜 친구와의 저녁 약속(=술 약속)시간. 꽤 늦을 것 같다는 친구를 기다리며 서성대다가 근처에 위치한 세계과자 할인점에 들어가 보았다. 어딜 갈 때마다 보이던 곳이라 ‘언젠가 가보겠지ㅎ’ 했던 이곳. 미루고 미루다 그제야 가보게…… 아니 영접해보게 된 것이다.
꽤 가격이 싸길래 한두 개 집어 들었던 게 시작이었는데 나올 때 보니 나의 손에 들려있던 건, 갖고 나온 가방보다 더 큰 검은 비닐봉지, 그리고 그 안에 든 12,000원어치 과자 한 뭉탱이. 뭔가에 홀린 듯이 막 집어 들었던 게다. 근데 묘하게도 다른 (지름신이 강림했을) 때와는 다르게, ‘아씽~ 또 지름. 망함. ㅠㅠ’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더랬다. 왠지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나온 느낌적인 느낌?
친구와 만나서도 테이블에 과자를 쫙 늘어놓고 여기 대박인 것 같다고 엄지도 치켜들고 하며 또 한 번 썰을 풀어냈던 나였다.
그렇게 구입한 지 며칠이 지난 오늘, 그때 산 과자를 오독오독 씹어먹는 와중에 머릿속에 물음표가 ‘뿅!’ 떠버렸다.
“근데 이거 갑자기 어떻게 이렇게 싸게 파는 걸까”
“이런 가게가 최근 들어서 ‘믿힌듯이’ 생기는 이유가 뭐지”
“모양새는 점포정리 직전에 물건 늘어놓고 파는 가게 모습이던데 장기적으로 쭉 이어질 수 있는 시장이려나”
등등… 박궁금증참지못해 씨의 뇌리를 스치고 간 수많은 의혹. 결국, 참지 못하고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져보기 시작했다.
1. 보오오온론
1-1. 수입과자가 왜 싼 건데요, 그니까.
- 찾아봤다, 기사. 반복됐다, 문구.
어디서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언론에서는 ‘수입과자는 최근 환율이 낮아지고 여러 국가와 FTA가 활발하게 체결되면서 오히려 국내과자보다 절반 이하의 가격이 형성되기도 한다’는 식의 문구를 아주 그냥 복붙한 듯 반복한다. - 다른 근거도 있었다.
올 3월, 전국에 33개의 지점을 갖게 될 정도로 성장한 기업형(!) 수입과자 할인점인 ‘레드버켓’. 이 회사의 설명을 따르면 수입과자를 이렇게나 싸게 팔 수 있는 데는 ‘해외 직수입’과 ‘병행수입’이 큰 역할을 했단다.
정리해보면, 해외 직수입과 병행수입이라는 ‘유통 경로의 확대’와 ‘환율 하락’에 따른 원화 가치 상승, 그리고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한 관세의 부담 완화. 이 세 가지의 조건이 수입과자가 낮은 가격대로 팔리게 될 수 있는 데 직접 작용했다는 거다.
하지만…… 모른다, 경제. 경제 빠가사리인 1인으로서 저 기사들을 읽고 나서 어느 하나 조금이라도 이해된 구석이 없었다.
그래, 일단 대충 알아들었다 쳐. 수입 환경이 좋아진 거겠지. 근데, 그걸 떠나서, 과자 말고도 의류, 잡화, 화장품 등 영향을 받을만한 다른 소비시장도 많은데 말이야! 왜 수입과자 시장만 이렇게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거냐구!
그렇다.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잠시 수입과자 시장을 떠나 우리의 질소 천국, 한국 과자 시장에 눈을 돌려보자. ‘제품을 신선하게 보존하기 위해’ 넣어 준 질소. 아낌없이 때려 박아 준 질소. 터질 듯한 과자 봉지만큼이나 내 속도 터질 듯하다. 그에 반해 수입과자는? 양은 많고 맛도 있고 가격도 더 싸다. 질소 장난도 치지 않고, 영양 면에서도 (아무리 국산 과자 브랜드가 스스로 영양 만점 과자처럼 광고한다고 해도) 국산 브랜드에 뒤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영양 면에서 좋다는 건 아니고…… 국산이나 수입품이나 과자를 먹으면서 영양을 바라진 마th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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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watch?v=cxCItzhgPOo
“과자를 산 건지, 상자를 산 건지 모르겠다”는 기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올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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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너무 많았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국산 과자 브랜드의 기만에 뿔난 소비자 앞에 ‘하늘과 세계화가 내린 신의 조건’을 갖고 ‘매우 적절한 타이밍’으로 수입과자 할인점이 등장했던 것이 이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에 원동력이 됐다고 할 수 있겠다.
1-2. 이러다가 환율 상승 + FTA 만기 등 조건에 변화가 생기면 이 시장도 망해버리는 거 아닌가, 걱정되는데 말입니다.
…는 나의 경기도 오산이었다. 저 조건 따라 흥망이 결정될 시장이었다면 애초에 이렇게 시작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수입과자 시장만이 가진 또 하나의 신의 조건이 있다. 바로 수입하는 ‘양’(한 봉지에 든 양 말구요, 한 번 수입할 때 들여오는 상품의 수량)의 ‘어마무시한’ 규모다.
과자 수입 시장에서 직수입과 병행거래가 큰 효과를 보이는 이유는 대량의 상품을 한 번에 수입해서 낮은 가격에 파는 ‘박리다매’의 판매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과자는 수입상품군 중에서도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편이기 때문에, 대량의 상품을 입고해도 그만큼 물량이 빠지는 시간이 빠르다. 따라서 많은 양을 한 번에 수입해도 무리가 없는 것이다. 이 경우 직수입과 병행수입이 가져다주는 메리트는 더욱 극대화된다.
반면에 화장품이나 잡화 등의 경우는 가격에서 해외 직수입이나 병행수입에 따른 메리트가 크지 않다. (화장품을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사는 방법은 ‘면세점 구입’이지, 직수입 또는 병행거래를 통한 상품 구입이 아니다.) 화장품 시장은 소비자로부터 주문이 들어온 소량의 상품만을 직수입하는 방식으로 물건을 판매하기 때문에 대량 구입에 따른 유통비 절감의 메리트를 보지 못한다.
1-3. 인테리어가 참 불안해요 – ‘당장 내일 망한다고 해도 의아하지 않을 것만 같은’ 수입과자 할인점의 노점 향기
수입과자 시장’만’의 이러한 메리트가 입소문을 통해 퍼진 것일까. 자고 나면 새로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입과자 할인점이 확장하는 속도는 무슨 바퀴벌레 번식하는 속도만큼이나 어마어마하다. 실제로 컨설팅 업체에서는 최근 수입과자 할인점에 대한 창업 문의가 엄청나게 밀려들고 있단다.
하지만 ‘수입과자 바람’에 편승해 만들어진 지점이라는 것을 굳이 티 내려고 하는 건지, 매장 분위기나 진열된 제품의 모습은 소비자의 신뢰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한 모습이다. 간판 대신에 현수막이 걸려있는 건 둘째치고, 바구니에 담긴 제품은 관리되지 않은 채 밖에 덩그러니 놓여 있고, 딱히 제품에 대한 설명도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얼마간 흥하다가 곧 꺼질 인기’라는 인상만을 남긴다.
환율 하락과 FTA로 인한 관세 완화, 직수입과 병행거래를 통한 낮은 유통비, 거기에 국산 과자에 대한 불신 + 박리다매가 가능한 상품의 특징까지. 다시 환율이 올라간다 해도 수입과자 시장이 갖는 메리트에는 크게 타격이 가지 않을 듯싶다. 하지만 아무리 ‘유리한 조건’을 바탕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관리적인 측면에서 지금의 상황보다 개선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상품의 이미지, 소비자의 신뢰도만 낮게 형성될 뿐 지속적인 호황을 맞기는 어려울 것 같다.
1-4. 가격은 착하더라도 깔건 까야지 – 한글표시 위반, 최소판매 단위 위반에 유통기한 임박한 상품이 유통되기도?!
‘노점틱’한 가게 분위기의 문제가 인테리어 때문만은 아니었나 보다. 수입과자 할인점에서 꽤 자주 일어나는 불법상행위 때문에 또 골치란다. 잠시 눈을 감고 수입과자 할인점이 가게 밖에 내놓고 파는 과자들을 떠올려보자. 5개에 천 원, 3개에 천 원 등 믿을 수 없는 가격으로 판매되는 다양한 과자들. 와사비 과자나 우마이봉과 같은 인기 과자류가 많아서 그냥 지나치기는 힘든 구간이다. 그런데 이렇게 판매되는 것 중에 위법으로 분류되는 것들이 적지 않다.
와사비 과자나 우마이봉의 경우, 대용량 포장제품(벌크제품)을 판매처에서 임의로 뜯어서 낱개로 판매하는 과자다. 이 과자들을 잘 살펴보면 영양성분표나 원재료를 한글로 표기하지 않고 해당 국가의 언어로만 나타나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덕후지만 일본어는 약해요) 이 또한 식품위생법에 의거, 한글표시사항 위반으로 식약청의 적발 대상이 된다.
판매되는 양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최소판매 단위보다 적어 적발되는 경우도 있다. 점주들이 대용량 상품으로 파는 것보다 대용량으로 나온 것을 뜯어 낱개 상품으로 내놓아야 더 잘 팔린다는 점을 이용해 최소판매 단위보다 적은 양의 단위로 상품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2. 겨어어얼론
난 잘 됐으면 좋겠다. 별 고민 없는 인간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적당히 맛있고 적당히 싼 게 아니라 진짜 맛있고 진짜 엄청 싸니까 좋다.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합리적 소비의 기준을 훌쩍 넘겨버리는 엄청난 시장이 출몰한 것 같달까.
그래서 좀 우려도 된다. 수입과자 시장은 아직 초창기 시장으로서,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무한하다. 하지만 시장 조사 없이 여기저기 자리만 나면 새로 생기는 수입과자 할인점과 그 안에서 버젓이 이루어지는 위법 행위를 보며, ‘붐(boom)’을 맞은 산업에 득달같이 달려드는 한국 특유의 과잉 경쟁 시장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시장 밖에 서 있는 제3자가 아닌, 거리를 지나다니다가 ‘혹’해서 할인점으로 들어가고 마는 한 명의 호갱…… 아니 한 명의 여대생으로서, 이 시장에 무한한 관심이 가는 한편 괜한 걱정이 들기도 한다.
서울 구석탱이에 위치한 우리 동네에서도 찾아볼 수 있게 된 수입과자 할인점. 과연 1년, 아니 반년 뒤에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는지. 유심히 관찰해보는 것도 (관찰하면서 과자 또한 한 뭉탱이 사오는 것도) 꽤 재밌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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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가 [미스핏츠]에 올린 글입니다. 슬로우뉴스 편집원칙에 맞게 표제와 본문을 수정, 보충했습니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