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한 독자께서 한화 이글스로 바라본 세상 이야기를 보내셨습니다. 슬로우뉴스는 자신이 서 있는 삶의 자리에서 다양한 분야에 애정과 인식을 쌓아가는 ‘생활 속 전문가’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편집자)[/box]
친가, 외가 모두 충청도다. 특히 야구를 좋아하는 아버지 어깨너머로 방송에서 해주는 야구 중계 코흘리개 시절부터 참 많이 봤다. 1999년 우승할 때도 기억 많이 난다.
그러나 내가 정작 한화 야구를 끊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모태 팬심, 아니 부전자전 팬심 때문은 아니다. 우승의 추억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꼴찌를 도맡아 하는 최근 몇 년이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다. 흔히 한화 팬들을 두고 맨날 꼴찌 하는 팀을 응원해준다면서 정말 해탈했다느니, 대단하다느니 말하곤 한다. 내가 봐도 정말 한화 팬들 부처님 소리 들어도 될 거 같다.

꼴찌가 일등을 이기는 경기
그런데 바로 그 지점이다. 바로 한화가 꼴찌라는 점이 내가 한화 야구를 끊지 못하게 한다. 지금 현재 프로야구 꼴등 한화의 승률은 3할 7푼 7리다. 세 번 싸우면 적어도 한 번은 이긴다는 거다. 이런 스포츠가 있을까.
다른 스포츠는 보통 실력 차가 확연하면 꼴찌가 일등 이기기 정말 힘들다. 그런데 야구에선 그게 가능하다. 꼴찌가 일등이랑 맞붙어서 처참히 져도 다음날 신 나게 이기는 경우도 많다. 스포츠를 넘어서 우리네 세상살이를 보자. 지금 우리 사회에서 꼴찌를 해도 세 번 중에 한 번은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곳이 있을까. 난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더라.
지금 우리 사회에선 한 번 지면 다시 훌훌 털고 일어서기 힘들다. 내가 일어서고 싶어도 세상이 그리 쉽게 놔두질 않는다. 그래서 난 야구장에 가서 즐겁게 춤추며 응원하는 우리 한화 팬들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다이아몬드 구장 안에선 꼴찌도 세 번 중에 한 번은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그 희망이 땀방울을 흘리게 하고 비 오는 날에도 비 맞으며 응원하게 하고 선수들과 함께 울고 웃게 한다.
편법과 반칙을 아웃 시키는 스포츠
야구장 안에선 아직 규칙이 있고 심판이 있고 그걸 지켜보는 관중의 힘이 살아 있다. 성과주의가 가져오는 부작용이 있다곤 하지만 적어도 그 체제를 완벽히 구현해내려 모두 함께 노력한다. 편법과 반칙은 곧바로 아웃이다. 때론 심판의 잘못된 판단으로 팬들이 분노하기도 하지만, 그 분노의 힘으로 비디오 판독 같은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선수 노동조합과 같은 선수협의회를 구성하려 했다 실패한 부산의 영웅 최동원도 팬들은 여전히 프로야구의 전설로 기억한다. 수많은 일터의 정당한 싸움들, 그리고 그 싸움을 이끌어가는 리더들. 우리네 세상은 그들을 기억이나 할까. 아니, 하고 싶어 할까.
그렇기에 우리네 세상보다 야구장 속 세상이 더 낫다. 우리 사회는 공정한 심판은 고사하고 심판이 있기나 하는 걸까. 아니, 심판도 바라지 않는다. 공 하나하나마다 상황을 기록하는 그런 경기 기록관이 있기나 한 걸까.
물론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해마다 한화는 꼴찌를 한다.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이리 해보고 저리 해봐도 쉽게 꼴찌를 탈출하지 못한다. 아등바등 해도 쉽사리 바뀌지 않는 우리네 세상을 보는 것 같다. 혁명 뒤에 늘 제자리로 돌아간 근대 프랑스 역사처럼.
꼴찌도 언젠가 이길 희망이 있는 세상

그러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던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멀리서 보면 세상은 조금씩 나아져 왔다. 물론 아직도 모든 이가 자유롭고 평등하지 못하고 여전히 지구 어디에선가 로켓포가 날아다니고 전쟁이 벌어진다. 그리고 아이들은 피를 흘리고 죽어가면서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난 그 억겁의 회귀와 윤회 속에서도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거라 믿는다. 마치 꼴찌를 도맡아 하는 한화가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날이 언젠가는 반드시 올 것처럼.
그래서 난 한화 이글스의 마지막 팬클럽이 되고 싶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처럼. 적어도 꼴찌 또한 세 번 중에 한 번은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세상. 그게 바로 내가 꿈꾸는 세상이니 말이다. 당신들의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
아직 잘 모르겠다면, 한화 이글스 경기에 한 번 찾아가 보시라. 적어도 나에겐 그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웃음이자 눈물이자 희망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