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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조지 오웰이 쓴 [1984], 아시지요?

B: 물론입니다. 빅 브라더의 철저한 감시 아래 모든 것을 통제당하며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전체주의 국가에 대한 이야기지요.

A: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으신 게 언제인가요?

B: 네, 제가 읽은 것은…… 읽은 것은…… 읽은 것은…… 응? 안 읽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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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유명해서 슬픈 소설 [1984]의 운명은 대개 이렇다. 너무 유명하니 안 읽었어도 그 내용을 알고, 그러니 읽은 척 할 수 있다. 이런 일이 오래 지속되면 자신도 읽은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잠재심리의 위대한 섭리 때문이다.

1984

서구에서는 사람들이 안 읽고도 읽은 척 하는 명작들에 대한 조사 결과가 종종 나온다. 그중에 [1984]는 늘 앞자리에 놓이곤 한다. 오웰이 이 소식을 듣는다면,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를 일일 듯싶다.

‘세계 책의 날’ 웹사이트가 2009년에 영국 이용자 1,34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5%가 ‘책을 읽지 않고도 읽은 척 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런 작품 중 1위는 [1984]로, 전체 응답자의 42%가 이 작품을 자신의 지성을 과장하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그다음은 차례대로 ②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31%) ③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25%) ④ [성서] (24%)의 순위였다.

2013년에 실시된 또 다른 설문조사에서도 [1984]는 ‘안 읽어도 읽은 척하는 책’으로 여전히 1위였다. 이때의 순위는 다음과 같다.

  1. [1984], 조지 오웰
  2. [전쟁과 평화], 레프 톨스토이
  3. [위대한 유산], 찰스 디킨스
  4. [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린저
  5. [인도로 가는 길], EM 포스터
  6. [반지의 제왕], JRR 톨킨
  7.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8. [죄와 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9.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10. [제인 에어], 샬럿 브론테

[1984]는 또 다른 조사에서는 6위였고, 읽지 않고도 읽었다고 말하는 SF 소설 중에서도 6위였다. 한 리스트는 7위로 올려두면서 “텔레비전 광고를 (그것도 유튜브로) 보고 나서 읽었다고 착각하는 대표적인 책”이라고 했다. 유튜브 광고란 아마도 1984년의 애플 컴퓨터 광고를 말하는 것일 게다.

YouTube 동영상

[1984]는 [타임]이 뽑은 현대 100대 영문 소설 중 하나이고, [뉴스위크]가 뽑은 100대 명저에도 들어가 있으며, BBC가 추천하는 꼭 읽어야 할 책에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잘 안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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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가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은 영광이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아쉬운 이유는, 이 작품에는 ‘안 읽어도 알 수 있는’ 핵심 주제 말고도 많은 비유과 통찰이 담겨 있다는 점 때문이다. 엑기스만 뽑아내고 지나쳐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이다. 게다가 고문, 추적, 감시, 연인의 밀회, 섹스 장면도 나온다. 정치적 주제를 다룬 지성적 소설이긴 하지만, 책 한 권 분량의 장편이니 나올 만한 것은 다 나오는 셈이다.

It was a bright cold day in April, and the clocks were striking thirteen.

4월의 맑고 쌀쌀한 날이었다. 시계들이 열세 번을 쳤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것은 영어로 된 문학 작품 중에서 아주 유명한 도입부 중 하나라고 한다. 책의 내용 중에서 나에게 인상적인 부분들을 몇몇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번역은 모두 정회성이 옮긴 민음사 판이며, 숫자는 이 책의 페이지다. 회색 부분은 원뜻을 잘못 전달할 우려가 있어 내가 가필한 부분이다.)

물론 언제 감시를 받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사상경찰이 개개인에 대한 감시를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행하는지는 단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사상경찰은 항상 모든 사람을 감시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내는 소리가 모두 도청을 당하고, 캄캄한 때 외에는 동작 하나하나까지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야 했는데, 오랜 세월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그런 생활이 본능적인 습관이 되어 버렸다. (11)

그는 펜촉을 잉크에 적시고 잠시 머뭇거렸다. 짜릿한 전율이 뱃속을 훑고 지나갔다. 종이에 글을 쓴다는 것은 결단력이 필요한 중대 행위였다. (16)

그래서 만일 사람들이 당의 거짓말을 믿는다면 — 그리고 모든 기록들이 그렇게 되어 있다면 — 그 거짓말은 역사가 되고 진실이 되는 것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이것이 당의 슬로건이다. (53)

그의 생각은 이중사고의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 진실을 훤히 알면서도 교묘하게 꾸민 거짓말을 하는 것, 철회된(상반된) 두 가지 견해를 동시에 지지하고 서로 모순되는 줄 알면서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믿는 것, 논리를 사용하여 논리에 맞서는 것, 도덕을 주장하면서 도덕을 거부하는 것, … 잊어야 할 것은 무엇이든 잊어버리고 필요한 순간에만 기억에 떠올렸다가 다시 곧바로 잊어버리는 것 … (53~54)

“자네는 신어(newspeak)를 만든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는 데 있다는 걸 모르나? 결국 우리는 사상죄를 범하는 것도 철저히 불가능하게 만들 걸세. 그건 사상에 관련된 말 자체를 없애버리면 되니까 간단하네. … 세월이 흐를수록 낱말 수는 줄어들고, 그에 따라 의식의 폭도 좁아지게 되는 거지. …” (75~76)

그녀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궐기대회나 자발적인 시위에 참가하여 목청껏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처형하라고 외쳐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정작 그 이름들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거니와, 그 당사자들이 무슨 죄를 저질렀다고 믿어본 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 그리고 ‘이 분 증오’ 시간에는 그 누구보다도 거세게 골드스타인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고 했다. 하지만 골드스타인이 누구이며 그가 어떤 정책을 내걸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216~217)

정통성(통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면서도 정통적인 태도를 갖는다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가를 깨달았다. 어떤 면에서 당의 세계관은 그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 받아들여졌다. … 말하자면 그들은 무지로 인해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므로 미치지(狂) 않는다.) 그들은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집어삼켜도(집어삼키는데, 그래도) 탈이 나지 않는다. 곡식 낱알이 소화되지 않은 채 새의 창자를 거쳐 그대로 나오는 것처럼 뒤에 아무런 찌꺼기(잔여물)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221~222)

그러나 이 같은 식의 일률적인 부의 증가는 계층적 사회의 파괴를 초래할 위험을 안고 있다. … 만약 부가 일반적인 것이 되면 차별이란 있을 수 없다. … 모든 사람들이 시간적 여유와 함께 경제적 안정을 똑같이 누리게 되면 빈곤에 허덕인 나머지 사회에 무관심했던 대중이 마침내 눈을 뜨게 되고, 또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면서 결국은 소수의 특권층이 존재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깨닫게 됨으로써 그들을 몰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계층 사회의 장기적인 존속은 가난과 무지를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하다. (267)

또 전쟁을 하고 있다거나 전쟁이 위험하다는 의식(전쟁을 하고 있고 그래서 긴급한 상황이라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모든 권력을 소수 특권 계급에게 이양하는 것이 생존을 위해 당연하고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분위기이다. … 전쟁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결정적인 승리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황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다. 필요한 것은 전쟁 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이 당원들에게 요구하는 지성의 분열은 전쟁 분위기 속에서 더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269~270)

(서로 대립하는 세 나라는) 어디든 똑같은 피라미드형의 사회 구조, 반신성화된 지도자 숭배, 계속되는 전쟁에 의해, 그리고 그 전쟁을 위해 존재하는 똑같은 경제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세 초국가는 서로 상대국을 정복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를 느끼지(도) 않는다. … 사실 세 열강이 대립 상태를 유지하는 게 오히려 안정적이다. 그것은 마치 세 다발의 옥수숫단처럼 서로를 떠받쳐 주는 격이다. … 세 나라는 서로 정복할 수 없기 때문에 저마다 독립된 하나의 우주를 이루고 있는데, 그 안에서는 어떤 사상이든 마음대로 왜곡할 수 있다. … 그러나 전쟁이 비현실적이라 해도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전쟁은 잉여 소비재를 소비시키고 계층적 사회가 필요로 하는 독특한 정신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이다. … 전쟁은 이제 단순한 국내 문제일 뿐이다. … 전쟁은 이제 지배 집단이 국민을 상대로 벌이는 싸움이며, 전쟁의 목적도 영토의 정복이나 방어가 아니라 사회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있다. (276, 278~279)

과거의 어떤 정권이든 시민들을 끊임없이 감시할 힘이 없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인쇄술의 발달로 보다 쉽게 여론을 조작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은 영화와 라디오로 인해 한층 더 용이해졌다. 특히 텔레비전의 발명으로(텔레비전의 개발과) 동일한 기계가 동시에 송수신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짐으로써 사생활은 마침내 종말을 고했다. 모든 시민, 적어도 요주의 인물들을 24시간 내내 경찰의 감시 아래 둘 수 있고…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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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들은 물론이고 서울의 대형 서점 세 곳에서 현재 번역되어 팔리고 있는 [1984]를 모두 찾아보았다. 번역자들은 다 다른데, 60년대에 번역한 책에서부터 아주 최근에 새로 나온 책에 이르기까지 명백한 오역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나는 잘 이해할 수 없다.

1984

  • 원문: 자그마하고 연약한 (몸집인) 그의 체구는 당의 제복인 푸른색 헐렁한 작업복 때문에 더욱 빈약해 보였다. (이 문장에서 ‘얼굴’은 나오지 않는다.)
문예출판사, 김병익 옮김
문예출판사, 김병익 옮김
민음사, 정회성 옮김
민음사, 정회성 옮김
문학동네, 김기혁 옮김
문학동네, 김기혁 옮김
열린책들, 박경서 옮김
열린책들, 박경서 옮김
동서문화사, 박지은 옮김
동서문화사, 박지은 옮김
보물창고, 전하림 옮김
보물창고, 전하림 옮김

이 책들은 모두 ‘figure’를 ‘얼굴’로 잘못 옮겼다. 번역자 한두 명이 그랬다면 실수나 취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일제히 이렇게 되는 이유는 대체 모르겠다.

서점과 도서관에서 찾아본 책 중에서 더 클래식(정영수 옮김), 부북스(김설자 옮김), 코너스톤(박유진 옮김), 홍신문화사(김성훈 옮김), 펭귄클래식(이기한 옮김) 등에서는 몸, 몸집, 모습, 외모, 체구 등으로 제대로 옮겼다. (물론 이 책들의 전문을 검토해 본 것은 아니므로 다른 부분은 확언할 수 없다.)

내가 통독한 책에서도 자잘한 누락과 오역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서 아쉬웠다.

그렇더라도 [1984]는 꼭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오웰이 1940년대에 일구어낸 통찰이 과거의 향수나 공상적 흥미에서가 아니라 현실적 필요의 의미에서 곱씹어 볼 가치가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전체주의, 권위주의는 어느 구석에나 일정한 양으로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런 그림자가 민주 사회에 드리워지는 것을 경계하고 ‘어둠이 없는 밝은’ 세상을 지향하는 사람에게 [1984]는 바이블이라고 해도 괜찮을 듯싶다. (참고로 영화화된 버전은 권하고 싶지 않다.)

4월 4일,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두려움에 떨며 작고 서툰 글씨로 금지된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1984년 4월 4일.

어젯밤엔 영화를 보러 갔다. 모두 전쟁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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