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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하태경 의원(새누리당)이 나와 문창극 총리 후보(어떤 이는 ‘문참극’이라고 하더라)를 두둔하면서 문 후보가 ‘4.3항쟁’을 공산당 반란이라고 말한 것은 일리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에 대한 남로당의 반란이었다는 것이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제주도에서 4.3 폭동 사태라는 게 있어 가지고 공산주의자들이 거기서 반란을 일으켰어요."
기획/디자인: 써머즈

하태경, “4.3은 반(反) 대한민국적인 사건” 문창극 두둔 

김현정 앵커가 제주도민 8만 명이 희생되었는데 그 가운데는 양민이 다수였다고 지적하자, 하태경은 “그 희생자들 중에서는 제외돼야 될 사람들도 있다”면서 국가가 ‘선별해서 추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태경: (……중략……) 제주 4. 3의 성격은 남로당의 군사 무장 부대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방해하기 위해서 일으킨 행위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대한민국이 어떻게 기념을 합니까. 이런 부분은 제가 볼 때는 폭동이라는 단어가 조금 거부감을 줄 수가 있지만 48년 4월 3일에 일어난 일은 명백하게 반 대한민국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김현정: 그 민중항쟁으로 인해서 수많은,제주도 도민들은 8만여 명이라고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만, 많은 희생자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양민 학살이 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폭동이었다라고 단정짓는 것은 좀 과하다라는 이야기를 제주도민들 입장에선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태경: 그러니까 두 가지 성격이 다 있습니다. 발단은 남로당의 무장부대가 일으킨 반 대한민국적인 사건인데, 그 과정에서 진압하다가 경찰에 의해서도 사람이 죽고 남로당 폭도들에 의해서 사람이 죽고. 그래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다 끌어안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추념일은 필요한 거죠.

김현정: 4. 3사건 기념위원회의 위원장이 국무총리가 되는 거거든요. 과연 문창극 후보자가 국무총리가 되어서 이 4. 3위원회를 꾸려갈 수는 있을 것이냐, 이런 의문도 제주도민들이 하시더라고요?

하태경: 저도 이 문제에 대해서 그 전에 지적을 했는데요. 4. 3사건 희생자, 억울한 희생자들에 대해서 국가가 추념일로 지정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고. 매년 그분의 억울한 영혼들을 위로를 해주어야만 합니다만, 그 희생자들 중에서는 제외돼야 될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 남로당의 핵심, 반 대한민국적인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까지도, 심지어 인민군까지도 희생자의 포함되어 있는 것이 있습니다.

– 김현정의 뉴스쇼, 하태경, “문창극, 애국심 투철한 사람”, 2014년 6월 13일 중에서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위대한 나라인지 모르겠지만, 저 같은 주장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한 대한민국이란 국호에서 ‘클 대(大)’자와 ‘백성 민(民)’자를 붙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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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북전쟁과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 

남북전쟁을 미국사에서는 시민전쟁으로 가르친다. 남과 북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분열되었다. 이 전쟁은 이념전쟁이 아니었을까? 따지고 보면 이 역시 ‘연방주의와 반(反)연방주의’의 이념전쟁이기도 했다.

1863년 11월 19일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에게 의해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이 행해진 날이었다. 링컨은 이날의 연설에서 주연설자가 아니었다, 주연설자는 하원의원, 주지사, 하버드대학 총장을 역임한 에드워드 에버렛이이었다. 그는 링컨에 앞서 2시간 동안 연설했지만, 사람들은 단 2분간에 걸쳐 모두 266개 단어로 구성된 링컨의 연설을 기억한다. (참고: 현존하는 게티스버그 연설의 필사본은 다섯 개인데, 어떤 필사본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연설의 구성과 단어 수는 차이가 있다.)

링컨 게티스버그
현존하는 링컨 사진 두 장 중 하나(중앙에 노랗게 필터 처리된 인물). 게티스버그 연설 3시간 전에 찍힌 사진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David Bachrach, 1863년 11월 19일, 퍼블릭 도메인)

“우리는 오늘 정부군과 남부군이 내전으로 인해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구하려다가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마지막 안식처로서 그 전쟁터의 일부를 바치고자 이 자리에 왔습니다. 우리가 하려는 이 일은 너무나 적절하고 타당한 일입니다. 그러나 더 크고, 엄밀한 의미에서 살펴보면 우리는 이 땅을 봉헌할 수도 없고, 우리가 신성하게 만들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싸운 용감한 사람들, 전사자, 생존자들이 이 땅을 이미 신성한 곳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중략……)

우리는 명예롭게 죽어 간 분들이 마지막 신명을 다해 이루고자 했던 대의에 더욱 더 헌신할 수 있는 커다란 힘을 그분들로부터 얻고, 그분들의 죽음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함으로써, 우리 앞에 미완으로 남아 있는 위대한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헌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처럼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일 때, 신(神)의 가호 속에서 이 나라는 새롭게 보장된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는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게티스버그 연설, ‘승리 후’가 아닌 ‘전쟁 중’ 연설

게티즈버그 연설은 북부가 전쟁에 승리(1865년 4월)한 뒤가 아닌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상황(1863년 11월)에서 나온 연설이었다. 미국 북부의 수많은 가정에서 자식들이 전쟁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었다.

게티즈버그 전투는 1863년 7월 1일부터 3일까지 이어진 전투였다. 남부의 리(Robert E. Lee) 장군은 전쟁을 장기전으로 치르게 되면 전쟁 수행 능력이 부족한 남부의 패배가 자명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남부의 전략 요충지인 빅스버그를 북군에 빼앗기자 남부를 지키는 수세적 전략에서 전환해 북부의 수도인 워싱턴을 겨냥한 작전을 진행한다. 남군의 워싱턴 공격작전 마지막 전투가 바로 게티즈버그 전투였다.

리 장군이 이끄는 7만 5천여 명의 남군과 미드(George Gordon Meade)가 거느린 북군 9만 3천여 명이 펜실베니아주의 게티스버그에서 격돌했다. 3일간의 전투에서 2만 3천 명의 연방군과 2만 8천 명의 남부연합군 등 도합 5만 1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북미 대륙에서 벌어진 단일 전투 가운데 현재까지 이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낸 전투는 없었다.

게티스버그 전투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희생당한 군인들 (사진: Timothy H. O’Sullivan, 1863년 7월 5일~6일, 퍼블릭 도메인 )

남과 북 가리지 않고, 이념의 희생자 추모

게티즈버그 연설이 유명해진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몇몇을 이야기해보면 다음과 같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형식상 추모연설이었지만, 그는 이 전투에서 희생당한 병사들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남군인지 북군인지 구분하지 않았다. 그는 남부연합군에 대한 원망도, 북부연방군에 대한 승리의 찬사도 내비치지 않았다.

링컨에 의하면 전사자는 그가 어느 편에 섰던 ‘지상 최고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규정했던 민주주의, 곧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체제의 정착을 위한 대의의 희생자였다.

그는 불과 4개월여 전에 남과 북이 서로에게 총칼을 겨눈 피비린내가 채 가시지 않은 땅에 와서 남과 북의 이념 차이, 증오, 정치 사회적 갈등을 넘어 인류가 지향해야 하는 더욱 크고 원대한 이상과 신념을 위한 희생으로 그들의 죽음을 격상시켰다.

링컨 기념관 게티스버그 연설문
링컨 기념관 남쪽 벽에 걸린 게티스버그 연설문 (사진: Gregory F. Maxwell, 위키백과 공용)

국가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방식은 국가의 존립과 유지를 위해 매우 섬세하고 치밀하게 진행해야 하는 고도의 정치적인 작업일 수밖에 없다. 링컨은 이들을 ‘야스쿠니 신사’ 같이 그들을 국가의 신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인류의 대의를 위해 헌신한 영웅으로 승화시켰다.

또한, 게티즈버그 연설은 어떤 의미에선 ‘노예해방선언’보다 더 확실하게 미국의 미래를 바꾼 ‘조용한 혁명의 선언’이었다. 게티즈버그 연설을 계기로 그동안 법리적 논쟁의 대상이던 국가가 개별적인 주보다 앞선다는 명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항구적인 정치 원리가 되어 미국의 확고한 정치 전통이 되었다.

단, 2분의 연설, 266개의 단어로 이처럼 많은 변화와 국민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배경엔 물론 링컨의 눈물과 고뇌와 실천이 있었다.

전쟁, 죽은 이에 대한 예의 

노자의 도덕경엔 이런 말이 있다.

“전쟁은 사람을 많이 죽이는 것이기에 슬피 울어 애도해야 한다. 설혹 전쟁에서 승리했다 해도 상례로서 처신해야 한다(殺人之衆, 以哀悲泣之, 戰勝以喪禮處之).”

대한민국, 아니 한반도가 정말 통일을 이루고 싶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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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 업데이트: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자진 사퇴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차기 국무총리로 지명된 지 15일만이다. 문 후보자는 2014년 6월 24일 오전 10시에 기자회견을 열어 자진 사퇴한다고 발표했다. (입력:  2014년 6월 24일 오전 10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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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전쟁을 이념이 아닌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바라보니 가능했던것 같습니다
    정말 부러운 세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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