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민이는 휠체어를 타는, 하체보다 상체가 튼튼한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입니다.
수민이를 ‘거부’한 공교육
날 때부터 소아암이 있던 수민이(가명)가 태어났을 때 몇몇 의사들은 수민이를 포기하라고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환경이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수민이를 치료했습니다. 수민이 할머니 할아버지도, ‘장애인을 위한 세상은 좋아지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병은 완치됐지만, 후유증으로 걷지 못하게 된 장애아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마음대로 누릴 수 없는 게 현실이었습니다.
아이에게 꼭 필요한 교육의 권리가 그랬습니다. 수민이가 처음 접한 공교육의 반응은 ‘거부’였습니다.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내는 어린이집 원장부터 마음은 있지만, 장애아 받을 여력이나 특수교사 인력이 없다며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수없이 마음에 상처 입은 저와 우리 아이를 받아준 곳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이었습니다. 공동육아는 부모들이 교육 공동체를 이뤄 남의 아이도 내 아이처럼 함께 품앗이하며 키우는 곳입니다. 공립도 구립도 아닌 사설 어린이집이지만 엄마들이 번갈아가며 우리 아이를 업고 아침 나들이를 가 주는 정성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것
그때, 우리 아이를 위해 좋은 교육은 무엇인지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됐습니다. 아메리칸 인디언 오마스 족의 격언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의 노력이 필요하다.”
– 에리코 로 (김난주 역), [아메리카 인디언의 지혜] (열린책들, 2004), 63쪽
공동체 안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살던 곳은 공동육아에서 초등학교로 공동체 교육이 이어지기 힘든 상황이라, 아무 연고도 없이 무작정 이사 온 곳이 ‘혁신학교’ 근처였습니다.
네. 지금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폐지냐 존속이냐를 놓고 토론이 벌어지는 바로 그 혁신학교 말이죠.
장애인에게 좋은 사회, 모두에게 좋은 사회
혁신학교에 대한 사전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핀란드 교육과 비슷하다는 말도 들었고, 발도르프 교육과 비슷하다는 말도 들었고, 중요하게는 공교육의 틀 안에서, 애들에게 성적이나 등수를 강요하지 않는, ‘다 같이 함께 하는 교육’을 표방한다는 정도의 추상적 정보뿐이었지요.
결론적으로, 우리 아이는 지금 무척 특별하면서 멋진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장애인에게 좋은 사회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회라는 말도 있지요. 지금 우리 아이가 다니는 혁신학교가 존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행복한 이 교육환경이 제발 중단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체험을 통해 안 이 행복한 교육 환경을 한국 모든 아이에게 적용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적습니다.
휠체어 탄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체육 시간’
휠체어 타는 우리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체육 시간입니다. 고무줄놀이를 할 때 휠체어 탄 아이는 고무줄을 손으로 잡을 수 있고, 달리기를 할 때는 몇 미터 앞에서 출발한다는 규칙을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거든요. 휠체어 탄 아이는 참여하게끔 배려받지만, 이기게끔 배려받지는 않습니다.
이런 배려는 학기 초 담임선생님과 특수학급선생님이 먼저 저희 아이를 위한 특수학습지도안을 만들면서 살뜰하게 챙겨 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시험과 상장 그리고 차별이 없는 학교
하지만 교사의 배려만으로 아이가 학교를 즐겁게 다닐 수 없겠죠. 아이들 사이에서도 배려가 뿌리박혀 있습니다. 이 학교에는 시험이 거의 없습니다. 즉, 성적으로 차별하지 않습니다. 회장 부회장 제도도 없습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지위로 차별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자체 개최하는 경진대회나 상장이 없습니다. 상을 받았네 마네 여부로 차별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장애 여부로 차별할 가능성은 없지요. 아파트 평수나 핸드폰 유무를 갖고 차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옆 동네에서 제 조카가 게임기가 없다는 이유로 노는 아이들 사이에서 끼워주지 않는 ‘은따(은근한 따돌림)’을 당한다는데, 우리 학교에서는 그렇게 차별하는 건 나쁘다는 걸 입학하면서부터 몸으로 체득합니다.
일상에서 평등을 체험하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왕따 문제가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죠. 실제로 우리 학교에는 장애아가 14명이나 있습니다. 학교의 따뜻한 분위기 소문을 듣고 일부러 이사 온 부모님들이 많지요.
평등과 배려의 원천 커리큘럼
이런 평등과 배려의 문화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남다른 커리큘럼에서 나옵니다. 아이 숙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요즘 우리 반에는 반 아이 서른 명에 대해 “ㅇㅇㅇ 의 좋은 점” 숙제가 매일 나옵니다. “oo는 친구를 잘 도와줘요. oo는 웃긴 표정을 잘 만들어요.”와 같은 내용은 아이들끼리 친하지 않고는, 친구를 잘 관찰하지 않고는 쓸 수 없는 내용이죠.
이렇게 ‘친구 알아보기’ 숙제가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일반 학교보다 긴, 30분의 쉬는 시간 덕분입니다. 줄 서서 오줌만 누면 빨리 뛰어들어가야 하는 쉬는 시간이 아닙니다. 수업시간 80분, 쉬는 시간 30분. 그만큼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깁니다.
특히 요즘처럼 아이들이 학교 끝나면 이리저리 사교육으로 내몰리는 현실에서 친구와 학교 안에서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 길다는 건 특히 우리 아이처럼 타인과 어울릴 기회가 절대적으로 적은 아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쉬는 시간 동안 친구들과 책 읽고, 어울려 놉니다. 공감 능력을 키우고, 분쟁을 조정하고 함께 사는 법을 배웁니다. 이게 바로 지금 모든 교육감 후보들이 목놓아 부르짖는 인성 교육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혁신학교 공부 방법
그렇다면 혁신학교에서는 공부는 어떻게 가르칠까요? 남다른 80분 수업을 위한 통합 교과 커리큘럼을 만들기 위해 학교 선생님들은 매주 학년별 회의를 밤늦게까지 엽니다. 문제집이나 주입식 시험 중심이 아니라 교구나 자연물, 학생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아이들이 흥미를 갖고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을 할 수 있게 학습방법을 연구하십니다.
국어 시간에는 아이들이 색색의 공책에 자작시를 적으며 자연스럽게 받침 있는 단어를 익힙니다. 수학 시간. 까르르 까르르 몸놀이하며, 카브라 쌓기를 하며 연산을 배웁니다.
음악 시간. 음악이론보다 리듬을 신명 나게 타는 창의 음악 시간에 참여하는 아이들을 보다 보면 케이팝 스타 박진영 심사위원처럼 어떤 아이들은 몸에 ‘소울’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그러다 음악 소질을 발견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 학교 입학식에서는 고학년 현악 합주단이 축하곡을 연주합니다.
회장 부회장 없지만 리더십을 가르칩니다
학부모들이 마음 편하게 아이들을 보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아야겠네요. 학부모상담 때는 음료수 하나도 가져오지 말라는 공문이 알림장, 가정통신문을 통해 두 번 세 번 내려옵니다. 롤케익 하나 들고 상담 갔다가 선생님께서 도망가셔서 민망했던 기억이 있네요. 아 참, 일하는 부모를 위해 저녁 시간에도 학부모 상담이 이뤄지는 것도 좋습니다. 다른 학교에서는 낮에만 상담시간을 잡아서 직장 눈치 보며 상담하러 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회장 부회장 제도가 없다는 것도 부모들에게는 장점입니다. 학기 초, 부모가 회장 출마연설문 봐주느라 골머리 썩거나 아이들이 회장 되는 것에 급급해 “회장 되면 햄버거를 매달 쏘겠다”는 식의 공약을 날릴 일이 없죠. 학부모에게 회장-부회장 제도가 없다는 건, 회장 엄마를 중심으로 선생님 눈치를 보느라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다는 걸 뜻합니다. 제가 아는 어느 학교에서는 소풍 갈 때 회장 엄마가 주도해 백화점 최고급 도시락 맞추고 옆 반이랑 도시락 수준을 비교하며 스트레스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회장 부회장 엄마들이 학부모회를 주도하는 대신, 부모 중 원하는 사람이 학급대표를 맡아 아이들을 위한 부모 활동에 나섭니다. 자율적인 부모모임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엄마들은 독서모임, 아빠들은 아이들과 텃밭 가꾸고 학교에서 야영을 계획합니다. 일 년에 한 번씩 아이들과 함께 참여하는 김장봉사나 책 박람회 같은 행사를 개최합니다. 이렇게 차곡차곡 학부모들끼리 교감을 쌓아온 결과 남의 아이도 내 아이같이 돌보는 공동체 정신의 싹이 막 돋아나 개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회장 부회장 제도가 없는 대신, 아이들은 다모임 활동을 통해 리더십과 토론 능력을 키웁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휴대폰을 허용해야 하나’에 대해 아이들이 모임을 하고 토론의 리더를 뽑아 자유롭게 토론합니다. 다양한 취미와 흥미, 주제에 대해 리더십을 키울 기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특히 장애아에 대한 배려는 ‘모든 다른 것’에 대한 존중과 배려, 공감능력 형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있습니다.
공감이 밥 먹여 주느냐고요? 밥 먹여 줍니다!
공감이 밥 먹여 주느냐고, 그게 교육에서 무에 그리 중요하냐고 하시는 분들이 혹시 계신지요? 실제 공감 능력이 핵심인 EQ(Emotional intelligence)가 높은 사람들이 돈도 더 잘 벌고 사회에서 더 성공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도 보셨겠죠. 국민을 분노시킨 것은 무능함이기도 했지만, 유족을 향한 인신 공격형 악플부터 시작해 유족들을 위로한답시고 오히려 유족들을 더 서럽고 슬프게 만든 높은 분들이었습니다.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우리 공동체를 더 고통스럽게 합니다.
어린 시절 수학문제 하나 더 푸는 것보다 사회에서 꼭 필요한 공감능력을 키우는 것이 백배, 천배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대학교에 간다 해도 직장에서 다른 직원들과 팀플레이를 하지 못하거나, 의사/변호사를 하며 환자/의뢰인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성공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장애아 눈높이 교육이 의미하는 것
장애인에게 좋은 사회가 모두에게 좋은 사회라고 하듯이, 장애아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다면 어떤 아이의 눈높이에도 맞춰 교육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교육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실력이 모자란다고 생각하면 침대에 맞춰 강제로 늘리고, 성적 이외 다른 소질이 있어도 성적을 위해 강제로 그 소질을 억압하고 잘라내곤 하지요.
이제 침대에 아이를 맞추지 말고 아이에게 침대를 맞춰야 하지 않을까요. 소득이 교육의 품질을 좌우하는 시대를 이대로 그냥 놓아두기보다는 교육현장을 완전히 혁신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놀며 스트레스 풀며 재미있게 배우는, 공감과 창의성 가득한, 이렇게 좋은 혁신교육을 특혜라며, 그래서 철회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혁신교육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고 학교별로도 편차가 크기는 하지만, 아이들의 행복과 교육 미래를 위한 실험으로 볼 수 있는 혁신교육의 싹을 지금 잘라야 할까요?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만족도가 높은 혁신학교를 지금 폐지해야 할까요?
혁신학교가 사라지면…
물론 혁신교육이 만능 해결사는 아니지만, 많은 부모가 일부러 혁신교육을 찾아 이사올 정도로, 그래서 주변 부동산 가격이 오를 정도로 지켜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교육 실험입니다. 핀란드 교육혁신은 40년이나 걸렸다고 하네요.
아이가 아이답게 자라나게 도우며, ‘공감’을 배우고 ‘행복’해지는 이 혁신교육의 실험을 좀더 오래 지켜봐 줄 수 있기를, 그래서 모든 한국학교에 퍼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혁신학교가 사라진다면 체육 시간을 좋아하는 휠체어 탄 아이에게는 너무나 슬픈 일이기 때문입니다.
공감 백프로입니다.
퍼가면 불펌일까요?
퍼가겠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혁신학교 축소/철폐를 주장하시는 세명의 보수후보들이야말로 공감능력이 심하게 부족한 분들이니 지금이라도 혁신학교에 입학하셔야할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