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력 매체 중 하나인 월스트리트저널에는 두 스타 기자가 있었습니다. 한 명은 월터 모스버그(Walter Mossberg), 다른 한 명은 카라 스위셔(Kara Swisher)입니다. 이 둘이 주축이 되어 2003년 ‘디지털의 모든 것(D: All Things Digital)’라는 제목의 컨퍼런스를 개최합니다. 그리고 이 컨퍼런스의 이름을 따 2007년 ‘올씽스디(All Things D)’라는 매체가 생겨납니다.
그리고 이 컨퍼런스에는 2003년부터 ‘올씽스디’가 사라지는 2013년까지 D1부터 D11까지의 이름이 붙습니다. 이후 두 스타 기자는 새로운 매체를 창간하는데, 그 이름은 바로 ‘리코드(Re/code)’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주최하는 코드 컨퍼런스(Code Conference)가 이번 주에 열리고 있습니다. 이 컨퍼런스는 올 씽스 디지털 컨퍼런스의 후신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올 씽스 디지털 컨퍼런스
올 씽스 디지털 컨퍼런스는 테크 업계의 거물 중에서도 최고만 엄선해서 게스트로 초빙하기로 유명했는데요. D1부터 스티브 잡스를 부릅니다. 스티브 잡스는 등장하자마자 “이 의자 좋은데요.”(Nice chair.)라는 특유의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테크 업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빌 게이츠, 에릭 슈미트, 엘론 머스크 등이 참석했습니다. 형식은 조금 독특했습니다. 월터 모스버그와 카라 스위셔가 한쪽에 의자를 두고 앉고, 반대편에 게스트가 앉은 후에 모든 참석자가 청중을 바라보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여러 올 씽스 디지털 컨퍼런스 중에서도 아직도 회자가 되고 개인적으로도 인상 깊었던 에피스드가 몇 개 있었는데요. 두 가지만 소개해보죠.
D5: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애플 창업자이자 아이폰의 조물주라고 불리는 스티브 잡스. 윈도우, 오피스 등 우리의 PC에서 떼어 놀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소프트웨어들을 만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빌 게이츠. 앙숙이라고 불렸던 두 거물이 2007년 열린 D5에서 드디어 한 공간에서 대화를 나눕니다.
이 행사 이후에는 수많은 패러디물이 생겨나는데, 아마 인터넷 유머 게시판을 즐겨 보신다면 한번쯤은 보셨을 장면일 것 같습니다.
D10: 아리 엠마뉴엘, 그리고 버지 편집장
앙투라지라는 미드의 극 중 모델인 아리 골드(Ari Gold)라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모델이 된 실존 인물인 아리 엠마뉴엘(Ari Emanuel)이 D10에 등장합니다. 직업은 할리우드 스타를 관리하는 에이전시의 CEO.
자기가 관리하는 스타들이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들이 불법복제가 무분별하게 되고 있는데 ‘미국의 대형 통신회사인 AT&T, 버라이즌과 구글이 이런 불법복제를 막아야 하는데 안 막고 있다’며 일갈을 합니다.
방청객 질문을 받는 시간에 키가 큰 방청객 한 명이 질문을 합니다. 질문하는 마이크가 너무 낮아 꺼벙한 자세로 “네(아리 엠마뉴엘)가 틀린 것 같은데?”라면서 비유를 시작합니다. ‘네가 한 이야기는 결국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도둑 탓을 하기보다는 도둑이 타고 온 차나 도로를 탓하는 것이다’라고요.
하지만 아리 엠마뉴엘은 매우 심기가 불편했는지 이 방청객을 완전히 듣보잡 취급하며 꺼지라는 식으로 대응합니다. 그래도 이 방청객이 굽히지 않고 끝까지 할 말을 하자 결국 “F**king Idiot”이라는 발언까지 하게 되죠.
허나 이 듣보잡 방청객의 이름은 조슈아 토폴스키(Joshua Topolsky). 엔가젯에서 2008년 8월부터 2011년 3월까지 편집장(editor-in-chief)으로 근무했죠. 그가 엔가젯을 관둔 후 창간한 매체가 바로 버지(The Verge)입니다.
영상에는 안 나왔지만 아리는 조슈아에게 “너 어디서 일하냐?”(Where do you work?)이라고 묻습니다. 마치, ‘네가 어디서 일하는지 내가 알면 네 보스한테 이야기해서 잘라버릴 거’라는 말투로요.
화가 잔뜩 난 조슈아는 분노의 칼럼을 씁니다. 제목도 “아리 엠마뉴엘, 여기가 내가 일하는 곳이다.”(Ari Emanuel, this is where I work)로 달고 말이죠.
코드 컨퍼런스
그리고 이번 주에는 코드 컨퍼런스가 열리고 있습니다.
올 씽스 디지털 컨퍼런스의 후신답게, 거물들이 총출동합니다. 주요 인사를 살펴보죠.
- 세르게이 브린(구글 공동 창업자)
- 사티아 나델라(마이크로소프트 CEO)
- 딕 코스톨로(트위터 CEO)
- 드루 하우스턴(드롭박스 창업자 겸 CEO)
- 브라이언 크라자니치(인텔 CEO)
- 스티브 몰렌코프(퀄컴 CEO)
- 손정의(소프트뱅크 창업자 겸 회장 겸 CEO) 등등
이쪽 업계에서는 이름만 대도 누구인지 바로 감이 오는 인물들이 대거 게스트로 포진하고 있습니다. CEO급만 이 정도고, 애플의 수석 부사장인 애디 큐와 크레이그 페더리기도 등장합니다.
초대연사만 대단한 것이 아니라, 웹사이트도 깔끔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심지어 iOS와 안드로이드용 앱까지 만들어 놨습니다. 영상은 모두 리코드 비디오 센터에 올라오고 있고요.
이 글을 쓰는 시점(2014년 5월 28일 오후)에는 세르게이 브린과 사티아 나델라가 등장한 상태입니다. 이틀이 더 남았는데 과연 다른 거물들은 등장해서 어떤 말을 해줄지 기대가 됩니다.
[box type=”note” head=”부록: 버지(The Verge)의 라이브 블로깅”]
버지의 라이브 블로깅은 대단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데,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경쟁매체의 컨퍼런스를 이렇게나 자세히 취재한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세션 내용을 버지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해서 보도해주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더욱이 케이시 뉴턴 선임기자(Senior Reporter)의 독특한 유머감각도 돋보입니다.
아래는 세르게이 브린 편 라이브 블로깅에서 나온 유머를 몇 개 발췌, 번역해봤습니다. (*화자 언급이 없는 건 케이시 뉴턴 기자의 독백이고, 나머지는 모두 화자 이름을 표기했습니다.)
‘크록스’
https://twitter.com/ow/status/471466419469553664
(라이브블로깅을 하면서) 지금까지 몰랐는데, 세르게이 브린이 크록스를 신고 있다. 내 코앞에 앉아있는 억만장자가 크록스를 신고 있다. (링크)
크록스: 이 신발이 당신을 억만장자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 (™) (링크)
또 하나 눈의 띈 건, 브린이 크록스를 신고 있는데, 구글 글래스는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링크)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면, 크록스는 최종선발전을 통과했지만 구글 글래스는 그렇지 못했다. (링크)
‘무인자동차’
스위셔: “반드시 한 명이 죽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자동차는 누가 죽을지를 어떻게 판단하나요?” (링크)
브린: “아무도 안 죽을 수도 있습니다.” (링크)
브린: “카라는 트럭이 뒤에서 박아도 살아남을 것 같다.” (링크)
결국, 브린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카라 스위셔는 트럭에 치일 수밖에. (링크)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 기자들이 저널리즘을 위해 하는 희생이다. (링크)
‘호텔키’
“월트 씨. 여기 제 호텔키가 있어요. 오늘 밤을 위해서.” 브린이 호텔키가 주머니에서 흘러나오자 한 말. “구글 글래스는 벗고 있을게요. 약속합니다.” 헉.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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