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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샘플(Todd Sample), 그는 달랐다. ‘미쿡’ 사람이니 여느 한국 남성과는 다르게 보이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스타일로 한 번에 뚜렷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파란색 줄무늬 정장에 밝은색 체크무늬 셔츠, 노란색 타이 차림의 그는 한 눈에도 도드라져 보였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낯선 외국인’만은 아니었다.

토드 샘플

그와 만나 몇 시간 동안 수다 떠는 동안 우리의 작은 티 테이블에 오른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했다. 한국의 ‘갑과 을’ 문화에서 시작해서 유행에 대해, 우리나라 아저씨들의 전형적인 스타일에 대해, 마음 아픈 세월호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격이 없이 대화를 나누며 맞장구치고 눈시울도 붉히다 보니, 그는 이미 친구였다.

어디나 오래 살아 정이 들면 고향이라는 말처럼, 미국에서 나고 자란 토드 샘플(Todd Sample)에게 한국은 이미 고향이다. 1995년 한국에 와서 19년을 이곳에서 살았으니 말이다.

한국을 선택한 이유, ‘솔직함’

그가 처음 한국에 오게 된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토드 샘플은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일 년 정도 아시아에서 살아봐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과 한국, 두 곳을 염두에 두었는데 친구의 한 마디에 한국을 선택하게 됐다.

일본 사람들은 친절하지만, 마음을 터놓고 친해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친구는 말했죠. 대신 한국 사람들은 좋고 싫고가 그대로 드러날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전 솔직한 태도가 더 좋을 것 같았고 그래서 한국으로 오게 되었어요.

1년을 작정하고 왔는데 지금까지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됐다. 그냥 처음 한국에 왔을 때부터 한국이 좋았다면서 ‘여행’이 ‘정착’으로 바뀐 이유를 설명했다.

한국에서 많은 기회를 봤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고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데, 저는 다른 나라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그것이 나 자신에게는 기회인 동시에 이 사회에 뭔가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고 느꼈던 것이죠.

한국 사람과는 ‘다른 것’이 자신에게는 기회였다는 토드는 처음에는 ‘다른 말’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건국대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미국 사람이니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 가장 수월했을 법한데, 그는 굉장히 따분한 시절이었다고 기억했다.

한국식 일방적 소통 방식… 그 아쉬움

그러다가 2006년부터 코트라(KOTRA), 한국전력 등에서 투자 유치 및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담당 이사로 일했다. 외국에 한국을 알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 한국은 수출로 성장한 나라인 만큼 해외로 뻗어 나가고 싶어 하며 끊임없이 해외에서 기회를 찾는다. 하지만 종종 노력만큼 결실을 거두지 못하는 건 독특한 한국 스타일의 소통 방식 때문이라고 토드 샘플은 진단했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 한국식 소통 스타일입니다. 비빔밥 맛있으니 무조건 먹으라고 얘기하죠!

이처럼 일방적인 대화법의 원인을 토드 샘플은 ‘상대가 다르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단일민족으로 오랫동안 살다 보니 한국 내에서 당연하게 통하는 것이 해외에서도 먹힐 것이라고 습관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역할은 글로벌 마인드를 이해시키고 생각이나 행동에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첨가하는 것.

“토드, 너무 나대지 마세요!”

이 일을 하면서 지난 십 수년간 대한민국의 위상이 세계 시장에서 상당히 높아졌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보람이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그 위상에 걸맞은 성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어 안타까운 일이다.

동료로부터 ‘토드, 너무 나대지 마세요.’라고 눈총을 받을 때나 ‘대충 대충 합시다.’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기운이 빠졌죠.

그는 가장 힘들었던 것이 튀는 사람을 참지 못하는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문화였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다.

한국의 매력은 역동성에 있죠. 리더가 바꾸자고 하면 다들 움직여 한 번에 성과를 내는 놀라운 저력을 여러 차례 경험했습니다.

토드 샘플이 적극적으로 국내 언론 매체에 칼럼을 쓰고 기업들의 임원 강의에 나서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오피니언 리더 층에서부터 글로벌 마인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스타일은 유행과 다르다!

올해 4월, 그는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웰드레스드(Well Dressed)라는 회사를 만들어 스타일 코칭을 시작한 것. 웰드레스드는 단순히 옷을 만들어 주는 곳이 아니라 고객들이 자신의 강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스타일을 찾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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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타일은 유행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스타일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자신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때 일본에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란제리 붐이 일었습니다. 은행이나 대기업에서 유니폼을 입고 근무하는 직장 여성들이 적어도 속옷을 통해서라도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죠. 그들에게는 란제리 패션이 자신감을 얻는 또 다른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스타일을 변화시켜 튀지 않으려는 한국 사회의 마인드 셋을 변화시키는 일이라며 새롭게 도전한 자신의 일에 애정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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