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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아주~ 옛날 사진기에는 말이지요. 노출계가 없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사진기가 멍청해서 지금 밝은지 어두운지 몰랐어요. 사진가가 시키는 대로 찍을 뿐이지요.

휴대용 노출 계산표. 1900년.
휴대용 노출 계산표. 1900년.

밝은지 어두운지 몰랐던 ‘바보’ 사진기 시절

그래서 사진가는 중요한 노출을 외우고 다녔습니다. 대강 지금 이렇게 이렇게 사진기를 설정하고 찍어야 사진이 너무 어둡거나 밝지 않고 적절한 밝기로 나온다는 공식 말이에요.

인기 있는 건 써니 16 규칙(Sunny 16)이었습니다.

“해가 쨍한 날, 조리개를 16에 놓고, 셔터스피드는 지금 카메라에 넣은 필름과 같은 속도로 맞춰서, 직광을 받는 피사체를 찍으면 적정 노출이다.”

그래서 사진가는 이런 기준을 머리에 넣어두고 상황이 변하면 적절하게 계산해 사진 촬영했습니다.

‘지금은 내 공식에서 날이 흐리니까 좀 더 밝게 찍어도 되겠군.’
‘날이 밝은데 조리개를 더 열고 싶으니까 셔터를 더 빨리해야겠군.’
‘내가 외운 공식에서 지금은 그늘에 있는 사람을 찍으니까 노출을 조금 낮춰야겠군.’

이런 식이었죠. 유능한 사진가는 몸으로 노출을 느꼈죠. 배꼽 노출계라고 해야 할까요? 천재가 아니라면 노출 노트는 필수였습니다. ‘어디서, 무슨 날씨에, 무엇을 찍을 때 노출 설정은 무엇무엇이 좋다.’ 이렇게 말이죠. 자기만의 노트와 경험으로 좋은 노출을 경험으로 배워갔죠.

드디어 기계가 노출을 계산하다

기계가 노출을 사진가 대신 계산해주는 데에는 사실 시간이 오래 걸렸지요. 1930년대가 되어야 비로소 노출계가 등장했습니다. 1932년 ‘웨스턴 노출계’는 배터리가 없어도 둥근 계산자를 사용해서 사진가가 f/스톱값과 필름 감도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셔터를 계산해주었지요.

Weston 617 모델. 1932년
Weston 617 모델. 1932년

명암과 농담으로도 세계는 충분히 정교하다 

우리 조상들은 검은색 하나로만으로도 어쩜 그리 그림을 잘 그렸는지요?

안창수. '쌍호'
안창수. ‘쌍호’

수묵화를 보면 사실 색이 하나가 아닙니다. 사실 색이라기보다는 명암이 다른 것이지만요. 먹을 진하게 갈아서 완전한 검은색으로 쓸 수도 있고, 물을 타서 옅은 회색으로 칠할 수도 있죠.

이렇게 농담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세상을 정교하게 묘사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 형태, 멀고 가까움을 칼라가 없어도 흑색의 짙고 옅음만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거죠.

수묵화나 흑백 텔레비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색을 스펙트럼으로 표현한다면 아래와 같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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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시스템(Zone System)이란 무엇인가?

1939년 발표한 이래 사진의 적정 노출과 올바른 현상을 위해 널리 교육되어 온 존 시스템은, 보통 앤셀 애덤스가 고안했다고 알려져있지만, 그 자신도 밝히고 있는 바 사진감광술에 관한 19세기 연구를 잘 정리한 것에 가깝습니다.

이 시스템은 방금 보여드렸던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가는 스펙트럼을 몇 개의 영역으로 나눠서 이론적으로 구분하기 시작합니다. 뭔가 기준을 만들어야 구분할 수 있고, 구분해야 사진을 찍거나 현상할 때 기준에 따라 일관되게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10개로 구분하기도 하고, 11개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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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등급을 나누면 사진을 찍거나 필름을 현상할 때 기준이 생기지요. 여러분이 수묵화를 그릴 때 이 표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두운 나뭇잎을 그릴 때 종이에 붓을 대기 전에 연습지에 붓을 그어보고 이 표와 대조해서 이 정도 농도면 좋겠어~ 할 때 그리기 시작하면 되겠지요?

이렇게 흑백 사진에서 존 시스템을 사용하면 체계적으로 사물을 정확한 밝기, 더 실제에 가까운 밝기로 묘사할 수 있게 됩니다.

안셀 애덤스의 존시스템 예제 사진
안셀 애덤스의 존 시스템 예제 사진

보통 컴퓨터 모니터 밝기는 제조사마다 조금 다를 수도 있고, 사람마다 다르게 조정해서 사용하기도 하는데요. 만약 위에 있는 표의 10개 영역이 충분히 구분되어 보이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모니터 밝기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존8와 존9가 정확히 똑같은 색으로 보인다면 지금 모니터 밝기가 너무 밝은 거에요.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물을 정확한 노출로 표현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질감이 있는 백색이 질감을 잃지 않도록 세심하게 노출을 관리해야 하지요.

명암차이를 보는 능력

세상에는 어느 정도의 밝기 범위가 있을까요? 우리가 눈으로 보는 가장 밝은색이 흰색이라면 그것보다 더 밝은 게 있을까요? 없을까요?

정답은 ‘있다!’

완전히 빛의 밝기가 0인 곳에서 시작해서 빛의 밝기는 무한대로 나아갑니다. 그중에서 사람의 눈은 일부분만을 취해서 볼 수 있고, 또 아주 제한된 범위에서 빛의 차이를 구분하지요.

예를 들어 아래 그림에서 완전한 검은색 존0 영역의 A를 포토샵에서 아주아주 살짝 밝게 수정해서 제가 A’을 만들었거든요. 사람 눈은 이 차이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지요.

완전히 검은색 A (존0 영역에 해당) ㅣ 포토샵에서 살짝 밝게 만든 A’
좌: 완전히 검은색 A (존0 영역) ㅣ 우: 포토샵에서 살짝 밝게 만든 A’

그리고 잉크의 한계도 있습니다. 눈으로 볼 때는 분명 구분이 되던 부분이었는데 종이에 인화하면 표현력에 한계가 생기지요. 보통 대형필름이 아닌 경우 가장 밝은 영역, 가장 어두운 영역에 있는 색들은 구분하기 어렵게 출력됩니다.

그레이 18%의 의미 

흑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카메라는 어느 정도로 명암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 세상의 모든 색을 존 시스템의 중간쯤 되는 존5 로 바라봅니다.

카메라에 검은색 점 하나를 주고 이게 밝기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면, “몰라 존5”라고 대답하지요. 하얀 색 점 하나를 주고 물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카메라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존스케일에서 딱 중간을 기준으로 삼아야 질감과 디테일이 살아나니까요. 원래 그 사물이 밝은지 어두운지는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고, 뭔가 있으면 표현해주는 게 더 중요하다 이거지요.

이건 측광 방식과 관계 없습니다. 점 하나를 주어도 존5이고, 넓은 평면을 주면 조각으로 나누어서 각각 존5로 계산한 뒤에 평균 냅니다. 왜? 최대한 질감을 살려야 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카메라가 흑백텔레비전을 보면서 화면이 너무 까맣거나 너무 하얗게 되지 않고 회색이 되도록 텔레비전 명암을 언제나 가운데로 돌려놓고 싶어한다는 걸 알아야 하죠. 카메라가 딱 좋아하는 존5 영역은 빛을 18% 반사하는 그레이(회색)카드와 같은 명암 지점입니다.

1. 반달곰

그러므로 여러분이 카메라랑 같이 흑백 텔레비전을 보는데 거기에 멋진 검은색 반달곰이 나오면 카메라가 일어설 거에요. 이거 왜 이렇게 깜깜해? 아무 것도 안 보이네. 화면을 회색으로 맞춰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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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젠장!! 뱃살까지 너무 드러나니 멋진 반달곰이 갑자기 맥주 좋아하는 40대 아저씨 되었습니다. 하지만 카메라는 만족합니다. “역시 이제 가슴 털이 보이는군. 화질이 좋아졌어!”

2. 북극곰

북극에서 수영하는 순백색의 북극곰 장면. 정말 감동적이고 예쁜 장면이야~ 라며 흑백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이 카메라놈의 자식 또 일어납니다. 이거 왜 이렇게 허옇게 나오는 거야? 그리고 다시 회색으로 텔레비전을 맞춰놓죠.

아니! 젠장!! 나의 폴라베어를 돌려줘. 목욕 안 한 북극곰이 되었습니다. 칙칙해 죽겠네요. 하지만 카메라는 이제야 가슴털이 한올 한올 보인다며 좋아라 합니다. "중요한 건 가슴털이라구!"
아니! 젠장!! 나의 폴라베어를 돌려줘. 목욕 안 한 북극곰이 되었습니다. 칙칙해 죽겠네요. 하지만 카메라는 이제야 가슴털이 한올 한올 보인다며 좋아라 합니다. “중요한 건 가슴 털이라구!”

그러므로 보통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는 이 곰이 원래 태어날 때부터 검은 애인지 흰 애인지 상관 없어 합니다. 뭐가 묻은 건지 원래 어두운 털이 나는 건지 알 바 아니죠. 그저 가슴 털이 중요할 뿐이에요.

검은색 많을 때 오히려 어둡게 / 흰색이 많을 때 오히려 밝게

그래서 검은색을 화면에 가득 채워도 회색으로, 하얀색 A4지를 가득 채워서 찍어도 회색으로 열심히 바꿉니다. 이제 매번 자리에서 일어나 화면을 회색으로 고쳐놓으려는 카메라에 사진가는 지금은 검은색은 검은색으로 좋고, 흰색은 그대로 두어도 좋다고 말해주어야겠지요.

즉, 화면에 검은색이 많을 때는 카메라를 밝게 하는 게 아니라 어둡게 해야 합니다. (카메라는 검은색을 회색으로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밤에 사진 찍을 때는 밤처럼 나오게 하려면 노출 보정을 마이너스(-) 쪽으로 조정해야 합니다.

화면에 너무나 눈부신 흰색이 많을 때는 카메라를 어둡게 하는 게 아니라 밝게 해야 합니다. (카메라는 흰색을 회색으로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흰 눈밭을 찍을 때는 노출보정을 플러스(+) 쪽으로 조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존 시스템은 카메라의 노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잘 이해해두면 노출 보정할 때 도움이 됩니다. 물론 요즘은 디지털 시대니까 한 번 찍어보고 어두우면 밝게 해서 다시 찍으면 되겠지만요.

칼라 시대의 존 시스템

사실 컬러 사진 시대가 되면서 존 시스템을 응용하는 게 더 복잡해지고, 사진가도 내가 지금 새빨간 색을 화면에 많이 포함해서 찍으려고 하는데 흑백으로 보고 있는 내 카메라는 이 빨간색을 밝다고 생각할지 어둡다고 생각할지 헷갈립니다.

칼라조견표
칼라조견표

그래서 이런 표를 보기도 하는데요.

그냥 칼라도 대체로 흰색에 가까우면 카메라가 흰색 쪽으로 인식하고, 칼라도 더 짙고 어두운 색에 가까우면 카메라가 검은색 쪽으로 인식한다고 생각하세요.

외우기보다는 경험적으로 많이 찍어보는 게 좋습니다.

35밀리 카메라에서는 2스탑 내에서 너무 벗어나지만 않으면 후(後)보정도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 번 테스트 샷을 날려보면서 감을 익히세요.

이번 강의는 여기까지!

다음 시간에는 조리개-셔터-ISO의 개념에 대해서 정리해보겠습니다.

* 도전과제:

집에서 가장 하얀 물건을 찾아 찍기 전에 노출 보정하고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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