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이 대중서비스가 된 시절을 건너고 웹 접속이 그냥 당연해진 흐름 속에서, 온라인 특유의 참여적 속성과 사회 제도의 가장 확연한 참여 방식 중 하나인 선거와 연결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늘 넘쳐났다.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실천행위와 관심 속에서, 턱없는 과소평가도 많았고, 자기 편만 바라보는 눈 먼 열정만 앞선 거품도 많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미 오늘날은 투표소를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소셜망에 지지 세력을 알리며 투표 인증샷을 올리고, 인터넷방송으로 적대진영의 후보의 문제들을 폭로하여 큰 호응을 받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이 왔다는 점이다. 나아가 사적이든 공적이든 일방이든 쌍방이든, 모든 사회적 소통행위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부분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온라인과 선거가 이뤄낼 수 있는 발전은 어떤 것이 가능할 것인가. 이를 살펴보기 위해, 약간 체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비전을 위한 첫째 고려: 영향의 요소들
매체 기술과 그 사용방식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요소로 범주화가 가능한데, 바로 정보 기능, 관계 기능, 관리 기술이다.
첫째, ‘정보 기능’은 선거라는 의결의 바탕이 되는 상황 판단의 기본 재료를 제공한다. 여기에는 후보자와 그들의 정치세력, 관련된 안건과 정책 등에 대한 각종 정보의 제공 및 토론이 포함된다. 뉴스와 토론을 통해서 정보를 입수하고 소화해서 사회적, 개인적 앎의 내역을 채워나가게 한다. 정보를 담아내는 매체가 바로 그런 것을 조율해낸다.
둘째, ‘관계 기능’은 선거를 사회적으로 견인해내기 위한 개인과 공동체들의 역학을 총괄한다. 사회운동 이론에서 핵심적으로 다뤄 온 동기부여, 동원, 네트워킹 등의 주제들이 여기 포함된다. 선거에 나설만한 이유를 얻고, 투표장으로 나서도록 종용받고, 특정한 방향의 선택을 전파하도록 만드는 것은 단지 정보를 주면 스스로 깨닫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 이것 또한, 사람들 사이의 소통을 연결하는 매체가 역할을 해낸다.
셋째, ‘관리 기술’은 선거 진행 자체에 대한 매체 기술이다. 유권자의 의향을 더 정확하고 편리하게 모아내며, 체계적 왜곡(부정행위 등)을 막아내어 선거 자체를 더 수월하게 만든다. 전자투표, 투개표 과정 감시 등이 매체기술 차원에서 연관된 내용들이다.
즉 정보는 판단을 위한 재료가 되고, 관계는 선거에 나서는 사회적 역학이 되며, 관리는 선거절차를 개선한다. 이들은 배타적 범주라기보다는 종종 함께 영향을 미치는데, 예를 들어 ‘후보 단일화 경선 조작의 이슈화’는 관리 기술의 악용에 대한 정보토론을 통해 동기부여를 하고, 관계망을 통해 퍼진다.
비전을 위한 둘째 고려: 매체 기술의 발전방식
미래에 대한 밑그림을 생각할 때 필요한 두 번째 요소는 바로 매체 기술이 집중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가다. 여기에는 훨씬 다양한 내역들이 포함될 수 있겠지만, 나는 크게 네 가지 트렌드에 주목하고자 한다.
첫째는 정보의 정리 및 제시 기술의 발전이다. 가깝게는 더 효율적인 DB설계와 안정적 아카이빙, 멀게는 자연어 처리를 통한 텍스트 분석으로 만들어내는 자동화된 키워드 부여(‘스마트 태깅’)와 의미 연결망 추출 등의 첨단 분야들이 있다. 이런 기계적 방법에 더하여 사회망으로 결합된 사람들의 정리와 추천을 모아내는 기술 역시 중요하다.
둘째는 반응을 뽑아내고 보상을 주는 시스템의 설계다. 더 쉽고 자세하게 평가를 내릴 수 있도록 만드는 참여 시스템이나, 금전적 보상이든 사회적 인정이든 그저 개인적 명예욕이든 즉각적이고 구체적으로 성취를 기록해주는 ‘게임화(gamification)’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셋째는 개인화와 클러스터화(주: 특정 요소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하는 것)다. 상품 추천이든 뉴스 소개든 광고든, 개인의 생활양식과 취향에 맞추어 내용을 제시한다. 사회망에서 누군가와 더 관계를 맺으라는 조언마저도 갈수록 철저히 개인화되어 간다. 그리고 같은 동전의 반대편은 바로 클러스터화다. 비슷한 속성을 지닌 이들을 한층 적극적으로 하나의 범주로 묶어내고자 하는 흐름으로, 소셜미디어 평판 분석 서비스인 클라우트(Klout)의 ‘소셜 유형’ 진단 등이 하나의 사례다.
넷째는 앞서 꼽은 모든 것의 기반에 있는, 데이터 분석력의 발전이다. 동의 하에서든 감시자에 의해서든, 사람들의 온라인상 활동은 갈수록 세부적으로 데이터로서 측정 및 축적되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 세부 데이터가 모여서 만들어내는, 기존 방식으로는 처리하기 어렵다고 여겨진 방대한 데이터세트(‘빅데이터’)를 점점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저장, 분산처리, 가상화 기술 등은 물론이고, 처리를 위해 협업을 동원하는 서비스 설계 기술 역시 여기 포함된다(예: 단백질 구조 퍼즐 콘테스트).
개별 서비스들, 혹은 성공적 서비스 형식들은 종종 위 트렌드들이 같이 결합하면서 만들어지곤 한다. 예를 들어 위키피디아식의 협업 공간 사례는 정보정리와 보상시스템의 창조적 활용이다.
그래서 어떤 것이 가능한가
이제 위의 두 가지를 결합하여, 선거와 온라인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들이 생겨난다. 어떤 것들은 돈만 투자하면 당장이라도 도입할 수 있고, 다른 것들은 더 많은 기술 개발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광경을 상상해보라.
1) 선거에 대한 정보 기능 강화
온라인의 정보 기능이 강화된 선거의 미래상이라면, 원터치로 후보의 모든 행적을 검색하고, 그것을 개인이 필요한 분야와 방식대로 마음껏 추슬러 열람하고, 손쉽게 각종 낭설들을 바로잡은 정보들을 보는 것이다.
행적을 검색하고, 추슬러 열람하고, 낭설들을 바로잡기
먼저, 정치 정보의 종합 아카이브를 생각해보자. 단지 선거 공보물과 해당후보 공식사이트 주소를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 해당 후보의 기존 의정활동 내역을 각 단위 의회에서 한꺼번에 뽑아낸다. 행정 관료 출신이라면 행정 실적과 자료들을 모두 긁어모은다. 정치 외 활동 역시 민간 사이트들의 인물정보 및 뉴스 서비스에서 추출하고 효과적으로 클러스터링하여 제시한다. 모든 것은 링크를 통해서 내부 및 외부의 세부 원문 자료로 연결된다. 이것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역시 공공기관 및 주요 민간 정보서비스업자들의 관련 자료들이 표준화 또는 최소한 충분히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상호 연동을 보장하는 API(주: 특정 서비스의 데이터 또는 기타재원을 호출하여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제공되는 명령어들)를 제공하는 것이다. 선관위가 그런 것을 관리하는 것이 곤란하다면, 그냥 민간 사업자들이 그런 것을 만들 수 있도록 공공자료만 제대로 개방해줘도 좋다. 즉 일반 대중들도 쉽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 형식의 오픈 API이면 가장 바람직하다. 민간 사업자들 역시 해당 데이터를 긁어와서 만들어낸 응용서비스의 API를 개방하도록 하면 정보 취득과 토론 활용에서 더욱 활용도가 높아진다.
선거 정보서비스의 세분화 및 개인화 역시 중요하다. 질문 선택지를 통해서 정당과 후보들의 특정 분야 및 일반 공약 맞춤형 정보를 검색하여 간편하게 비교해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공보물을 여러 가지 놓고 비교하는 것은 각자의 분류 방식도 다르고 분량도 종종 너무 많은데다가 수사만 넘쳐나서, 실제 비교보다는 그냥 이미지 대결으로 끝나곤 한다. 현재는 몇몇 개별이슈에서 시민단체들이 이런 방향의 시도들을 하고 있는데(진보넷에서 구축한 19대 총선 미디어정책 비교사이트가 좋은 예다), 한층 공식적으로 모든 분야에 대해서 이뤄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런 맞춤형 정보를 통해서, 선거에서 정책 정보를 복권시키는 것이다. 선거 정보 검색 과정에서 프라이버시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설문조사, 소셜망에 결과를 자랑할 수 있는 정책 지식 퀴즈 게임(!) 등을 실시하여 투표 주체들의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여 활용할 수도 있다. 특히 자신이 지지하는 진영 외의 입장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대충 무관심하거나 반대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에, 자신이 다양한 입장을 제대로 수용하고 있음을 ‘소셜’하게 자랑할 수 있는(또한 그렇게 못할 경우 망신당하는) 서비스 장치들까지 고안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정보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줄 미래 서비스는 바로 ‘사실 확인’ 기능이다. 선거 과정에서는 각종 사실과 낭설들이 우연히 또는 의도적으로 흘러다니기 마련인데, 그것의 사실여부를 빠르게 파악하고 틀린 것은 바로잡는 것이 합리적 판단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례적인 특정 언론지면의 반론보도 같은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 폴리티팩트(Politifact)의 경우처럼 지역 언론사들과 협업하여 정치 발언 및 소문의 진위를 검증하는 방식은 기본 중 기본이며, 이런 진위 확인 정정을 토픽별로 묶어내며 포털과 SNS등을 통해 손쉽게 폭넓게 확산시키는 적극적 방식들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명백하게 틀린 정보를 담아낸 것으로 판명된 글에 접속하면, 자동으로 “이것은 틀린 정보입니다”라고 배너를 첨가해주는 온라인 서비스를 상상해볼 수 있다.
2) 선거에 대한 관계파트 강화
관계성을 통해 사람들이 뭉치고 서로 자신들의 정파를 찍어달라고 느슨하든 강고하든 자발적 조직화를 하고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어차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서, 따로 뭔가를 덧붙일 것도 없다. 오히려 중요하게 발전시켜야할 부분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클러스터들을 제대로 파악해내는 것이다. 진보/보수/기타로 거칠게 묶는 원시적 구분이 아닌, 특정 사안에 따라서 입장이 나누어지는 온라인 상의 관계망 집합들을 실시간으로 파악해내고 서로 겹쳐보는 것이 향후 기술발전에 따라서 결국 가능해질 수 있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만들어지는 클러스터와 오프라인상에 존재하는 여러 사회적 조건들을 매칭하여 이런 것은 사람들의 입장이 어떤 구체적 조건들에 의하여 얼마나 세부적으로 갈라지는지를 인식하도록 돕고, 더 다양한 방식의 정보교환과 입장 조율을 위한 열쇠가 되어준다. 정치권에도, 개개인들에게도 말이다. 정치연구서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손낙구 저)가 동 단위의 선거성향을 뽑아낸 것만으로도, 관념으로서의 강남좌파가 아닌 부동산이라는 물리적 조건을 다시 끄집어냈던 것을 상기해보자.
정치권에서도, 시민운동 진영에서도 이런 요소들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한층 발전된 맞춤형 선거운동(당선운동, 낙선운동, 이슈 캠페인 등 포괄)에 뛰어들 수 있다. 이런 발전방향의 단초는 현재 미국에서 진행 중인 2012 대선운동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민주당 오바마 선거캠프에서는 페이스북 등을 통해서 유권자들의 정보를 대량 입수하여 대상에 따른 맞춤형 정치광고라는 접근법을 꾀하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청년이라는 애매한 범주를 던져놓고 반값등록금이라는 한정적 제안을 확대하고 반MB 같은 감정만 넘치는 사안으로 세를 규합하는 수준에 머물 이유가 없다. 강원지역 블루칼라 가정의 20대 무직자들을 위한 맞춤형 운동을 하며 그들을 커뮤니티로 묶어내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매체 기술의 발전상을 제대로 반영해낸다면, 그들에게 정책 제안을 하고 또 제안을 받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정치 관심에 대한 효과적 보상, 소셜게임화로 장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 차원에서, 정치 관심에 대한 효과적 보상을 관계망으로 연결된 소셜 게임화를 통해 장려할 수 있다. 이미 실행중인 ‘나와 통하는 정당 찾기‘ 서비스의 강화는 물론이고, 우리 지역 후보들에 관한 정치 지식 퀴즈를 하고 점수를 자랑하는 것은 기본이다. 지역 정책 공청회에 포스퀘어식으로 체크인을 하고(직원들의 지역 정치 참여 종합점수가 높은 회사에 세제 혜택을 주는 등 더 큰 차원에서의 게임화도 필요조건이다), 뉴욕타임즈에서 2011년 미국 연방예산 편성갈등 국면 당시 만든 참여 예산 편성 게임 같은 것을 서비스하여 실제로 좋은 아이디어를 낸 이들에게 명예를 부여한다. 우리 동네 예산낭비 버그사냥대회, 수리가 필요한 공공기반시설을 지목해내는 보물찾기 게임 등 다양한 방식들이 가능하다.
3) 선거 기술 강화
선거 기술 측면의 요점은 투표의 편의성, 과정의 안전성, 개표의 효율성 향상에 있다. 흔히 말하는 전자투표는 투표 편의와 개표 효율에서 장점을 지니지만, 과정 안전성에서 지금까지는 결정적 한계가 있다. 해킹 같은 명백한 위협 이전에, 당장 비밀투표라는 선거원칙이 걸리기 때문이다. 개인 핸드폰으로 투표한다고 해서, 그 개인이 핸드폰을 조작하는 그 순간 정치적 압박이 있는 상황(예: 보수정당에 투표하라 명령하는 상관이 노려보고 있는 사무실)에 처해있지 않다는 보장이 없다. 숫제 핸드폰을 전원 압수해서 누군가가 일괄 투표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궁극적으로 망막인식 후 뇌파 반응으로 투표를 하는 온전히 비밀이 보장되는 기술이 보편화되기 전까지는(물론 그런 생체기술 또한 프라이버시에 관한 다양한 문제점을 낳게 되는데, 자세한 논의는 다른 기회에) 전자투표는 계속 과도기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온라인 매체기술을 통해서 본인확인 절차 신속화 및 전자투표소 증대 및 적용범위 확대 정도에서 당면 과제를 정해야 한다.
과정의 안정성 측면의 다른 부분은 선거 부정 감시다. 회선의 향상, 데이터 정리의 체계화 등을 이루어내면서, 모든 투표소에 대해서 이송과정과 개표 과정 전체의 영상기록을 실시간 고화질 온라인 중계하고 그것을 불특정 다수의 온라인 사용자들이 감시하는 협업형 역감시 모델을 지향해 볼 수 있다. 정당의 선거감시원이 해오던 역할은 계속 유지하되, 그 뒤에 불특정 다수의 보조 증인들을 두는 투명한 과정을 상상해볼 수 있다.
더 자주 더 쉽게 선거를 해서 의정 중간 평가 효과를 낸다
선거 기술의 향상은 좀 더 근본적인 사회제도 변화로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더 자주, 더 쉽게 선거를 하는 것이 비용상 부담이 줄어든다. 국회의원을 한 번의 총선으로 전원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구 및 비례선출의 일정비율을 2년 혹은 그 이하 기간마다 물갈이하도록 구분하면(예: 2012년은 경기, 서울 지역 및 비례의원 A조 / 2014년은 강원, 전북, 경북 지역 및 비례의원 B조) 여야 균형을 자주 전환할 수 있도록 하여 의정 중간 평가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선거 행사의 비용이 덜 드는 만큼 주민투표 등의 절차와 발동조건 역시 간소화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구시대의 선거 기술에 맞춰져 있는 선거운동 규제를 제거해 나아가는 것도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특정기간의 선거운동 불가가 있는데, 다행히 헌법소원으로 인하여 19대 총선부터는 상시 온라인 선거운동이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당일 선거운동이 금지되어 있는 상태다. 더 많은 정보와 관계맺음이 있지만 물리적 투표 저지와는 거리가 있는 온라인 환경에서는 그런 제한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부족하다. 이외에도 여론조사 조건이 더 엄격해졌다든지, 낙선 운동의 적법성을 놓고 계속 논란이 이어진다든지 등 전향적으로 해결해야할 제도적 규제가 적지 않다.
혹은 아예 더 전위적 실험으로 현재 미국의 일부 하계에서 연구중인 미래 선거제 아이디어로는 ‘샘플링 선거’가 있다. 와이어드 2012년 5월호의 소개기사에 실린 스탠포드대 제임스 피쉬킨 등의 발상이 그것이다. 모든 이들이 제대로 모든 지식을 가지고 선거에 임하기를 기대하는 것 보다는, 각 층위를 정확하게 반영하도록 랜덤하게 사람들을 선별하여, 그들이 사안들을 충분히 숙지하고 토론하도록 만든 후 그들이 표를 던지는 것이다(미국 3억 인구 기준으로, 10만명이면 오차범위를 충분히 좁힐 수 있다고 한다). 이 불온한 발상은, 현실의 각종 세부 정체성과 계층들을 정확하게 반영할 샘플링 기술을 언젠가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면, 많은 체계적 편향과 부족한 정보 상태에서 임하는 표를 줄이고 선거 비용 역시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충분히 합리적인 방식이 될 수 있다.
한계점들
하지만 실현을 위해 필요한 것은 결코 기술만이 아니다
이쯤 읽다가 눈치챈 분들도 많겠지만, 위의 ‘상상’ 가운데 상당부분은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도 시도해볼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실현을 위해 필요한 것은 결코 기술만이 아니다. 우선 정보 기능을 보자면, 현재는 기본 수준에서만 공공기관이 담당할 뿐이며, 일부 시민단체들의 특별페이지 외에는 주로 정당과 언론이 한다. 즉 자기에게 유리한 정보를 제공해 내는 것도 하나의 능력으로 간주되는 환경이다. 그런데 시민단체는 늘 재원이 부족하고, 언론은 화제성 사건사고가 아니라면 정책 내용을 상시 보도할 동기가 없으며, 정당 또한 공약을 상시적으로 개발하여 축적하고 제시하기보다는 선거 국면에서 바로바로 인기몰이를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게다가 공공기관은 서비스 확대에 대해서 각종 관료적 검토를 필요로 하기에 발전이 느리다(관련기사 참조).
관계 기능은 더 갑갑하다. 풀뿌리로 자생적 관계망이 형성되는 부분은 지난 10여년간 매우 활성화되었는데, 확연한 정당 조직화가 아니라 이슈 중심의 느슨한 모임과 해산이 반복되다보니(게다가 정치체들 사이에서도 이합집산이 심하다 보니) 데이터를 진득하게 축적하고 무언가를 설계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반**’ 위주로 모이는 클러스터는 겉으로 보이는 강고한 통일성과 속의 다양한 분파의 격차가 크고, 나아가 적으로 세워놓은 상대가 무너지는 순간 구심점이 사라지기에 더욱 애매하다.
선거기술 측면은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아무리 자기 정파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할지라도, 선거비용을 낮추고 투표율을 높이겠다고 하는데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나서기는 어렵다 – 물론 예산 후순위로 밀어버릴 수는 있지만) 좀 더 상황이 유리할 여지가 있지만, 여전히 비밀투표라는 기본원칙에 대한 돌파구가 없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 차원에서, 기술발전은 늘 양날의 칼이고 온라인과 선거의 미래 또한 그렇다. 이미 온라인 정보 기술이 향상되어 사람들은 정책을 더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쓰레기 정보와 거짓 소문, 같은 생각을 하는 동료들만의 “필터 버블”에 빠져버리는 것도 쉬워졌다. 게다가 정보의 양이 늘어난 만큼이나 그런 것을 일일이 찾아가고자 하는 동기 역시 줄어들어서, 눈 앞에 누군가가 밀어 넣어주는 것만 보기에도 지친다. 게다가 매체기술의 노골적인 오남용도 충분히 함께 발전한다. 타겟 스팸, 지능형 흑색선전봇 같은 세련된 장치도, 혹은 활동력은 넘치고 합리적 토론력은 결여된 열광적 정치세력 지지자들이 정상적 담론 발전을 가로막는 것도 쉬워진다.
매체기술의 노골적인 오남용도 충분히 함께 발전한다
어떤 의미에서, 매번 새로운 매체 방식이 나오고 보편화될 때 긍정적 사용방식이 먼저 치고나가서 성과를 올리고, 일상화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오남용의 방식도 늘어나고 그 또한 사회상의 여러 기존 질서를 닮게 되기 전까지의 기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 지향점일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은 완전한 동어반복이 아니라 한 바퀴씩 돌면서 조금씩 더 나은 쪽으로 밀어볼 수 있는(반대로, 밀려날 수도 있는) 나선형임을 인지하고, 지금의 유권자들이 그래도 과거 유권자들보다 전반적으로 더 많이 생각하고 투표하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 정도는 가져보는 것이 나쁘지 않겠다 싶다.
* 이 글은 슬로우뉴스 2호 특집, ‘온라인, SNS, 그리고 4.11 총선’ 열네 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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