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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 노동당 부대표의 부음에 부쳐

2014년 3월 8일.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향년 35세. 아직 세상을 떠나기엔 너무 아까운 나이입니다. 중학교 기간제 교사였던 박은지 부대표는 진보신당 대변인, 노동당 대변인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한국 진보정당사에 짧은 생을 치열하게 써내려 간 박은지 부대표의 명복을 빕니다. (편집자)

나는 오랫동안 진보정당 지지자였다. 그러나 내 참정권은 얄팍한 한 달에 돈 만 원으로 끝이었다. 내내 글자 그대로 페이퍼 당원이었다. 아니 ‘당우’였다. 지역 모임 한 번도 안 나갔고 연락이 와도 생을 깠으며 별달리 취미도 없었다. 심지어 특별 당비 전화가 와도 내야지 내야지 하다가 까먹은 기억이 여러 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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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집회에 나가도 당 이름 아래에는 머쓱해서 서지 않았다. 당내 정보를 북한에 갖다 바친 간첩 하나 보위하겠다고 자주파들이 당을 깨는 걸 보고는 이따위 진보정당이라면 개나 갖다 주라고 펄펄 뛰었고 그 뒤 돈 만 원의 참정권은 진보신당으로 이양됐으나 그나마 그 당이 갈라지면서 알량한 참정권 행사를 포기하게 된다.

이후 진보정당에 대한 내 생각은 대충 이렇게 정리됐을 것 같다. 정말로 필요하지만 거의 가능성 없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이른바 좌파 후보가 두 명으로 따로국밥을 차리는 걸 보고는 또 한 번의 헤드뱅잉을 했거니와 정당이 해산되고 새로운 이름들이 등장하고 또 다른 당이 창당된다고 부산할 때에도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친구 녀석이 평등 사회당 당명이 어떠냐고 내게 진지하게 물었을 때 “평등 평화당으로 해라 평평당 좋잖아,” 심드렁하게 내뱉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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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진보 정당의 깃발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는 건 알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필요하다고도 생각했지만 나는 그들의 가능성을 부인했다. 하지만 오늘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전 진보신당 대변인의 삶에서 나는 ‘가능성’이란 ‘필요함’에 비길 단어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여러 사람들이 올려 주는 그녀에 대한 회고와 뒤늦게 알게 된 그녀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그녀가 왜 진보정당을 택했고 자신의 인생을 걸었는지를 생생하게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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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가 진보신당 시절 피켓 시위에 참여한 모습 (사진: 정지홍)

고인이 교사 생활을 했다는 기사를 흘낏 본 적이 있었기로 전교조 출신으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기간제 교사였다. 이력서를 여든아홉 통 쓴 끝에 어느 학교에 기간제 교사가 됐는데 아이를 가지자 곧 해고 통보를 받는다. 전교조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학교에서는 만만하기만 한 기간제 교사는 그렇게 학교를 나와야 했다. 그때 그녀에게 진보정당은 절박한 희망이었다. 17년 가까이 월급 따박따박 받아먹으면서 직장 생활하던 월급쟁이는 그 가능성을 논하며 고개를 둘레둘레 젓던 정치세력이 그녀에게는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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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4439_471546796269351_1980662676_n그 당의 입으로서, 또 젊은 정치인으로서 거리에서 온라인에서 마이크 앞에서 그녀가 행한 활약을 오늘에야 다시 읽고 본다. 그리고 그에 철저하게 무관심했던 나를 본다. 10년 전, 민주노동당 시절 나는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이 나라에서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사회적 소수와 약자에 대한 연대를 보여 주고 있는 정당은 어디냐? 네가 말끝마다 되뇌는 귀족노조의 횡포에 맞선 비정규직의 투쟁에 가장 관심을 보이는 정당이 도대체 어느 정당이냐? 이 나라 사회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들이 가죽 신 위를 긁을망정 좀 긁어달라고 다리를 내밀 정당이 어디라고 생각하느냐.” 지금도 내게 그 답은 같지만 나는 그 답을 적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고인은 짧은 삶을 짜낸 먹물로 굵고도 깊게 그 답을 쓰고 갔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일면식이 한두 번 있었으나 그래서 더욱 아쉬운 진보정당 정치인이자 학교 후배의 명복을 빈다. 이제 세상에 남긴 모든 한과 아쉬움과 슬픔 벗어 버리고 훨훨 좋은 데로 가시기 바란다. 남은 건 살아남은 자의 몫이니 절대로 되돌아볼 것 없다. 하지만 평생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아홉 살배기 아들만큼은 잊어버리지 말기 바란다. 다시 태어나도 기억하기 바란다. 그 아픔을 어루만져 주기 바란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한때 내 알량한 참정권의 대가였던 돈 만 원이면 고인의 장례위원회 위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많은 분들의 도움과 참여 있으시기를.

우리은행 844-07-071039 예금주 정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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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산하
초대필자, 작가, PD

소심한 40대 직장인입니다. [그들이 살았던 오늘](2012)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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