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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면 우리는 오르페우스가 된다

지인에서 연인이 된 남자가 그랬다.

“그냥 알고 지내던 너와 여자친구로서의 너는 참 다른 사람 같아. 예전에는 친해지기 어려운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자친구가 되니까 정말 다정하고 나에게만 잘해줘.”

사랑하는 연인을 파괴하는 연애의 적은 여러 가지가 있다. 생활의 고단함, 다른 이성, 불확실한 미래, 주변의 반대, 너무 다른 가치관, 과거의 연애, 서로 다른 스킨쉽 허용 범위 등 말이다. 그리고 뜻밖의 강력한 보스몹은 ‘기대’다.

연애의 적(適), 기대

기대가 왜 연애의 적이 될까. 예를 들어보자. 연애 초기에 남자가 여자를 집 앞까지 데려다 줬다. 그게 반복되면 남자가 여자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굳어져 간다. 그리고 여자는 계속해서 남자친구가 내게 그러리라 기대하기 때문에 만약 남자가 피곤하거나 바빠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에 서운하게 생각하고 심지어 애정을 의심한다. 그렇게 사랑은 때때로 사소한 것에 흔들리는 연약한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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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서 전체를 가늠하는 경우가 있다.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애정이나 신뢰라고 다들 알고 있지만, 기념일을 기억하고 있느냐 아니냐 혹은 연락의 횟수가 얼마나 되나 둘은 옥신각신하다가 헤어지기도 한다.

‘잘 가’ 이후가 두려웠지만……

그래서 나는 20대 초반에 연애할 때 철저하게 그 기대를 버렸었다. 100원 단위까지 더치페이를 하고 전화도 시간을 재며 상대방에게 부담되지 않을 정도로만 했다. 데이트 장소는 그의 집과 우리 집 중간으로 잡았다. 특히 헤어질 때 나는 인사를 한 뒤에 뒤를 돌아보지 않고 택시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걸어갔다.

사실 두려웠다. 둘만의 달콤했던 시간이 끝나고 ‘잘 가!’하고 인사한 순간부터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미련한 나는 그것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저하는데 상대방은 너무 산뜻하게 털어버리고 갈 길을 가고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 또한 그런 상대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고, 상대방도 나처럼 응당 그러리라 기대를 품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가 무슨 바람이 분 것인지 아니면 무의식의 호기심에서 여는 판도라 상자인지, 어떤 날은 지하철역의 계단을 내려가다 그를 향해 고개 돌렸다. 멀리서 내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친구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출처: 아이비포리 (CC BY-ND 2.0)

출처: 아이비포리 (CC BY-ND 2.0)

나를 향해 흔드는 손, 나는 오르페우스가 아니다

그때 고등학교 시절 생각이 났다. 나는 초·중등학교를 통틀어서 딱히 친구라는 것이 없었다. 학교가 끝나면 따로 만나서 뭘 먹으러 간다든지 외출을 한다든지 말이다. 어릴 적에는 몸도 마음도 지나치게 또래에 비해서 성숙한 편이었으므로 동갑내기와 나는 말이 안 통한다는 건방진 생각을 갖고 있었고 애들과 노느니 집에 와서 책을 읽는 것이 편했다. 그런 마인드가 티 나게 보여서인지 나는 숱하게 왕따와 은따를 당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아이들이 생겼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런 살가운 감정에 대해서 적응하기 어려웠고, 조심스러웠다. 뭔가 소망을 품으면 그 과분한 기대에 대한 죄로 내 마음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볼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다 집이 가까운 한 명과 시내를 구경하고 밥을 먹고 헤어지는데, 손을 흔들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팔차선 도로의 끝에 다다를 무렵, 무심코 고개를 돌렸더니 길 건너에서 바라보고 있던 친구가 손을 흔들었다.

그때의 기분을 내 짧은 어휘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마음이 움직이는 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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