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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폴리시] 고 황유미 등 반도체 ‘백혈병’ 산재 노동자의 11년 투쟁으로 합의한 기금 500억. 그런데 안전보건공단은 쓰지도 못할 건물 사느라 353억을 날렸다…”국민에게 사죄해야 하는 거 아닌가”(윤재옥, 국민의힘) (⏳4분)

“아주 황당한 일이다. 백혈병으로 고통받는 분들의 피눈물로 만들어진 기금 500억 원을 규정 확인도 없이 부동산 매입에 써도 되는 건가? 정말로 국민들한테 사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윤재옥(국민의힘 의원)

윤재옥(국민의힘 의원)이 23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현중(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을 질타하며 꺼낸 말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백혈병 노동자 희생으로 마련된 500억 원 기금을 받아 수도권 규제 유무도 확인하지 않고 267억 원짜리 건물을 매입한 결정을 비판한 것이다.

공단이 매입한 건물은 법에 막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산업 재해 취약 노동자를 위한 ‘전자산업 안전보건센터’는 수년째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 윤재옥. 사진=윤재옥 페이스북.

이게 왜 중요한가.

  • 반도체 공정에서 일하다가 백혈병 등 산업재해를 당한 이들이 11년간 투쟁하여 보상받은 성과 가운데 하나였다.
  • 2007년 3월 삼성전자 직원 황유미씨 사망으로 사회적 이슈가 된 삼성 반도체 사업장 백혈병 문제는 2018년 11월 사회적 조정을 통해 어렵게 해법을 찾았다.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의 중재에 삼성전자와 백혈병 피해자 단체가 합의를 도출했다.
  • 삼성전자는 백혈병 피해자에게 보상하는 것에 더해 중대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 발전기금 500억 원을 출연키로 했고, 공단은 2019년 6월 삼성전자로부터 500억 원을 기탁받았다.
  • 원래 기금은 ‘전자산업 안전보건센터 설치’ 등에 쓰도록 정해진 돈이었다. 그러나 공단은 규정도 확인하지 않고 건물 구입에 나섰다.
안전보건공단의 ‘반도체 백혈병 기금’ 운용 난맥상을 비판한 조선BIiz 관련 기사. 캡처 갈무리.
김양혁 기자. 2026.09.18.

규정 확인 없이 부동산 매입.

  • 감사원 감사 보고서와 윤재옥 의원실에 따르면, 공단은 사업계획서도 없이 2022년 6월 수원시 권선구 건물부터 샀다. 울산에 있던 산하기관 미래전문기술원(현 스마트안전보건기술원)의 청사 활용을 위해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의 근린상가 건물(연면적 6,183.03㎡)을 252억 원(매입액 240억 원 + 부가가치세 12억 원)에 매입했다. 취득세, 인테리어 등 부대 비용까지 포함하면 267억 원이 들었다.
  • 공단은 매입 전 관련 규제를 확인하지 않았다. 수원은 수도권정비계획법상 과밀억제권역이어서 연면적 1,000㎡ 이상 공공 청사를 두려면 국토교통부 수도권정비위원회 사전 심의를 거쳐야 한다. 공단은 6,183㎡ 규모의 건물을 구입하면서도 수도권정비위 심의를 거치지 않았다.
  • 그뿐만 아니라 지방 이전 공공기관이 수도권에 조직을 둘 때 필요한 지방시대위원회(옛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심의도 빠뜨렸다. 안전보건공단은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에 따라 2014년 울산으로 이전했다.
  • 결국 청사 계획은 무산됐고 건물은 수년간 방치됐다. 감사원은 2023년 9월 공단 이사장에게 주의를 요구했다.

여전히 문 열지 못하는 센터.

  •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는 2024년 12월 “2026년 12월까지 경기광역본부 전자산업 안전보건센터로 활용한 후 별도 재단 혹은 기부 목적에 부합한 재단에 무상기부”하라고 통보했다.
  • 그러나 6개월간 공개 모집에도 건물을 넘겨받겠다는 기관은 한 곳도 없었고, 센터도 여전히 문을 열지 못했다. 지금은 4층 일부만 사무실로 쓰고 나머지 층은 공사 중이다.
  • 공단은 건물 구입에 “조정위원회의 중재판정서 및 삼성전자와의 협약 내용에 따라 전자산업 안전보건센터 설치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해 건물을 매입했다”는 입장이다.
2025년 3월 6일 고 황유미 18주기 추모제에서 방진복을 입고 반도체 산재사망노동자 114명의 영정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 사진: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건물 비용이 산재 예방 사업의 8배.

  • 2026년 9월까지 기금 집행 내역을 보면, 산업재해 취약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기금 352억 5,606만 원 가운데 산재 예방 사업비는 38억 5,311만 원(10.9%)으로 그동안 기금에 붙은 이자 38억 6,956만 원에도 못 미쳤다.
  • 반면, 건물 매입·공사·세금·관리비로는 313억 5,469만 원(88.9%)이 들어갔다. 산재 예방 사업비의 8배에 달한다.

정치적 책임에 관해.

  • 삼성전자가 기탁할 당시 공단 이사장은 박두용이었다. 윤재옥은 박두용에 대해 “이 돈을 어디에 쓸지 계획서도 만들지 않고 퇴임 나흘 전에 이사회에서 건물 매입 계획을 통과시키고 떠났다”고 질타했다.
  • 박두용 뒤를 이은 안종주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 임기가 넉 달 남은 시점에 3년 임기로 임명됐고 취임 두 달 만에 건물을 매입했다”고 비판한 뒤 “앞사람(박두용)은 임기 끝에 일을 벌려 놓고 떠났고, 뒷사람(안종주)은 임기 안에 성과를 남기겠다며 규정 확인도 없이 밀어붙였다”고 비판했다.
  • 윤재옥은 “건물 매입 결정은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졌지만 그 피해는 이재명 정부에까지 이르고 있다”며 “당시 이사장들은 물론, 그 당시 장관, 차관, 기조실장까지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비판했다.
공단 전현직 이사장들. 박두용(2017년 12월 ~ 2020년, 왼쪽), 안종주(제15대, 2022년 1월 ~ 2025년 1월, 가운데), 김현중(2025년 2월 ~ 현재, 오른쪽). 사진 출처는 각각 공단, 본인, 공단 페이스북.

“피눈물로 만든 돈을 이런 식으로…”

  • 윤재옥은 23일 국감에서 “공단이 (삼성전자로부터) 500억 원을 받은 지 8년이 지났고, 이 돈은 백혈병으로 고통받았던 분들의 피눈물로 만든 것”이라며 “목적과 취지에 맞지 않게 돈을 흐지부지 쓸 것 같으면 왜 돈을 받았느냐. 국민에게 정말 사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 윤재옥은 고용노동부를 향해서도 “부동산 취득 승인을 노동부가 했기 때문에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피해자들이 11년간 싸워서 얻은 돈이 이런 식으로 허투루 애물단지 건물에 흘러들어가는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노동부도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김영훈(노동부 장관)은 “(건물 사용에 대한 재심의를 위해) 국토부 장관과 이 문제를 잘 협의하겠다”며 “오늘날 반도체 산업이 있기까지 고 황유미씨 등 수많은 노동자 희생이 있었고, (기금 500억 원은) 그에 대한 삼성 차원의 대책이다. 책임감을 갖고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했다.
  • 윤재옥은 “공단은 구입한 건물을 적정하게 활용하는 구체적 대책을 마련하고 남은 기금도 기금 취지대로 산재 예방에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고(故) 황유미. 1984년생으로 만 23세이던 2007년 3월 6일 백혈병으로 요절했다. 오른쪽은 황유미의 아버지 황상기. 황상기 제공. 재인용 출처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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