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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코리아 칼럼] 유럽엔 노동자를 지키는 두 개의 기둥이 있다. 하나는 노동조합, 다른 하나는 노동회의소다. 정부가 K-노동회의소를 준비 중이다. 그 성공 조건을 알아 보자. (우상범 / 한국노총 연구위원) (⌚6분)

얼마 전부터 ‘K’를 붙인 용어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전 세계적인 한류 열풍과 함께 K-POP, K-컬처, K-드라마가 세계인의 일상에 스며들었고, 최근에는 K-반도체, K-조선, K-AI 등 산업 분야에서도 ‘K’ 브랜드가 경쟁력의 상징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이제 노동 분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K-노동회의소’가 대표적인 사례다.

“오늘 오전 서울에서 ‘(가칭)K-노동복지회의소’ 출범을 준비하는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페이스북) 2026.08.21.

추진 배경은 플랫폼·특고노동자 보호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7월 13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K-노동회의소 설립 구상을 공식화했다. AI 기술혁신과 플랫폼 경제 확산으로 특수고용(근로계약이 아닌 위탁·도급 계약을 맺고 일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특정 사업주에게 업무상 종속돼 있는 노동자)·플랫폼·프리랜서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기존 사회안전망과 노동조합만으로는 이들의 권익을 충분히 보호하기 어렵다는 것이 추진 배경이다.

K-노동회의소는 노동조합처럼 단체교섭을 담당하기보다 다양한 형태의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고 사회안전망을 확대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처럼 모든 노동자가 의무 가입하는 법정기구라기보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복지와 공제 기능을 제공하는 공제회 형태에 가까울 가능성이 크다. 

게티이미지.

공제회는 같은 직업이나 업종의 종사자들이 공동으로 기금을 조성해 생활안정과 복지 증진을 지원하는 상호부조 조직이다. 일반 보험회사와 달리 수익보다 회원의 복리를 우선하며, 퇴직급여와 생활안정자금, 의료·상조, 산업재해 지원 등 사회보험이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는 영역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교직원공제회와 건설근로자공제회 등이 운영되고 있으며, 구성원의 생활안정과 복지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와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를 합치면 이미 200만 명을 넘어섰고, 그 수가 빠르게 늘어나는 현실에서 공제회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고용노동부 연구보고서(2026년 5월)는 특수고용노동자 약 126만 명, 플랫폼 종사자 약 80만 명, 프리랜서 약 66만 명으로, 중복을 조정하면 전체 약 210만 명 규모로 추산하고 있다. 참고로 정부가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언급한 ‘노조 밖 869만 명’은 시간제·임시직 등을 포함한 훨씬 넓은 범주의 비정형 노동자 수치로, K-노동회의소가 우선 겨냥하는 특고·플랫폼·프리랜서 규모와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정규직 중심의 사회보험과 기업복지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K-노동회의소는 노동조합보다 공제회를 기반으로 한 노동 복지 플랫폼의 성격이 강하다.

재정 독립을 지킨 유럽, 정부 곳간에 기대는 한국


문제는 재원이다. 회원 회비만으로는 안정적인 운영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 지원이 불가피하다. 고용보험기금 등 공적 재원을 활용하고,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기업도 재원 분담에 참여한다면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공적 재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정부 정책과 예산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커진다.

오스트리아·독일의 노동회의소가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은 다름 아닌 ‘강제 회비’라는 자체 재원에 있다. 반면 K-노동회의소는 임의가입·자율 회비 구조로 설계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결국 정부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고 그만큼 독립성이 흔들릴 위험을 안고 출발하는 셈이다. 독립적인 노동자 대표기구가 아니라 정부 영향력 아래 놓인 또 하나의 행정조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노동회의소는 무슨 일을 하나요?” (유튜브)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

‘K’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노동회의소 자체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2019년 20대 국회에서 이용득 전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고, 21대 국회에서도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경기지사 재임 시절과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노동회의소 도입을 주요 정책으로 제안한 바 있다. 현재 정부는 ‘일하는 사람 권리 기본법’ 제정을 통해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 등 다양한 노무제공자의 권익 보호와 복지·공제사업을 지원하는 K-노동회의소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법안은 아직 국회 심사가 진행 중이며 언제 통과될지는 불확실하다.

반면 유럽에서는 노동회의소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노동자 대표 제도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노동조합이 단체교섭과 노동조건 개선을 담당한다면, 노동회의소는 정책 연구와 입법 참여, 법률지원, 직업훈련, 상담 등 공공서비스를 중심으로 노동자를 지원하는 상호 보완적 역할을 수행한다.

대표적인 사례인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는 1920년 법률에 의해 설립된 조직으로 약 370만 명의 회원을 기반으로 정부 입법 과정에 참여하고, 노동시장 변화에 대한 정책 연구를 수행하며, 연간 200만 건이 넘는 상담·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 독일 브레멘과 자를란트 노동회의소 역시 노동법 상담, 직업훈련, 정책 연구 등을 수행하며 지역 노동정책의 핵심 기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외국의 노동회의소 운영 현황. 환율은 작성 시점 기준. 이용득 의원 국정감사 자료(2019).

두 나라의 공통점은 노동조합과 노동회의소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분담한다는 점이다. 노동조합은 교섭과 권익 보호를, 노동회의소는 정책·복지·교육 서비스를 담당하며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법률에 근거한 독립성과 강제 회비를 통한 안정적 재원을 바탕으로 전문성과 정책 역량을 축적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특징이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이 노동회의소가 노동조합을 대체하는 조직이 아니라 노동자 권익을 뒷받침하는 보완적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K-노동회의소에 대한 찬반 논란

K-노동회의소를 둘러싼 찬반 논쟁도 적지 않다. 찬성 측은 기업별 노조 중심의 우리나라 노사관계와 10%대에 머무는 낮은 노조 조직률만으로는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 등 미조직 취약계층의 이해를 충분히 대변하기 어렵다고 본다. 무엇보다 근로자성(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아 최저임금·4대보험 등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지위) 인정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사회적·정치적 합의가 필요한 만큼, 그 사이에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를 보호할 과도기적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양극화와 AI 확산에 따른 고용불안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기존 노동조합을 보완할 한국형 노동회의소를 구축해 미조직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플랫폼 노동자와 특수고용노동자는 이미 노동조합을 설립하거나 가입할 수 있고, 지방자치단체의 노동권익센터와 비정규직지원센터 등 다양한 지원체계도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미조직 노동자 보호의 핵심은 새로운 조직의 설립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인정,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보장, 사회보험 적용 확대 등 노동기본권을 강화하는 데 있다는 주장이다. 제도적 기반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K-노동회의소를 설립하는 것은 국가의 노동보호 책임을 새로운 조직으로 이전하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 6월 1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114차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는 ‘플랫폼 경제에서 양질의 노동에 관한 협약(제193호)’이 채택됐고, 스페인은 이미 2021년부터 ‘라이더법(Rider Law)’을 시행하고 있다. 이처럼 플랫폼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 흐름은 새로운 조직의 설립보다 법과 제도의 정비에 맞춰지고 있다. 

지난 6월 1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114차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플랫폼 경제에서 양질의 노동에 관한 협약(제193호)’이 채택됐다.플랫폼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 흐름은 새로운 조직의 설립 보다 법과 제도의 정비에 맞춰지고 있다. ILO.

필요한 것은 새 조직이 아니라 법과 제도

미조직 노동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K-노동회의소도 기존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를 위한 새로운 지원체계를 모색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새로운 조직만으로 노동시장 사각지대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미조직 노동자가 직면한 핵심 과제는 공제나 복지서비스 확대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인정, 노동3권 보장, 사회보험 적용 확대, 고용불안정 해소 등 노동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노동회의소도 법적 지위와 노동조합과의 역할 분담, 산별교섭(산업 단위로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가 임금·노동조건을 교섭하는 체계) 체계, 사회안전망이라는 제도적 기반 위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기반 없이 제도의 형식만 도입한다면 K-노동회의소는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기보다 또 하나의 복지지원기관이나 행정조직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운영 방식 역시 중요한 과제다.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민간위탁 형태라면 재정적 지속가능성이 불안정해질 수 있고, 공공기관 형태라면 현재의 고용센터처럼 행정서비스 제공기관에 머물 가능성도 있다.

때로는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것보다 정공법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조직이 아니라 먼저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사회안전망을 마련하는 일이다. 단기간의 성과에 치우쳐 K-노동회의소 도입을 서두르기보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노동조합과 상호 보완하며 미조직 노동자의 권익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제도로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K-노동회의소에 필요한 것은 ‘K’라는 새로운 간판이 아니라 미조직 노동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법과 제도다. K-노동회의소의 성패는 미조직 노동자의 권리를 얼마나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기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2026.6.17.(수) 쿠팡CLS 본사 앞, 참여연대와 전국택배노동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쿠팡CLS의 계약 외 업무인 프레시백 회수 등 노동 강제 문제를 규탄하고 공정위에 신고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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