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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코리아 칼럼] 교육과 숙의, 무엇보다 책임이 수반되지 않는 당원 주권은 계파의 투표 기계로 전락해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7분)

지난 8월 17일 더불어민주당 전국당원대회가 끝났다. 권리당원 152만 5,745명에 투표율 50.3%,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가치 구분을 없앤 1인 1표제가 처음 적용된 전당대회였다. 2026년 2월, 전당대회에 적용할 당헌·당규를 개정한 뒤 정청래 전 당대표는 “당원 주권시대가 열린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는 소회를 밝혔다.

당 지도부 선출 선거에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가치가 동등한 게 ‘당원주권 시대’의 시작이라면, 그 시작을 먼저 열어젖힌 것은 2014년 새누리당이었다. 더불어민주당보다 12년이나 더 빨랐다. 

지난 8월 17일 민주당 당대표로 김민석 후보가 선출됐다. 더불어민주당.

당원 주권?, 먼저 도입한 국힘은 어떻게 망가졌나?

당 지도부 선출 과정을 개방하는 면에서는,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언제나 앞서 있었다. 당대표 선출에 일반 국민 여론조사를 처음 반영한 것도 2004년 한나라당이 먼저였고, 대의원 1만여 명이 뽑던 당대표를 21만 선거인단이 뽑게 만든 것도 2011년 한나라당이었다. 당원, 대의원 구분 없는 1인 1표를 제도화한 것도 먼저였다. 당원 추첨제를 없애고 당비 내는 책임당원 전원에게 자동으로 투표권을 부여해 1인 1표제를 제도화한 것도 2014년 새누리당이었다.  더불어민주당보다 무려 12년 먼저 당원주권을 도입한 셈이다. 

그 당은, 그때 왜 그 길을 갔을까? 여론조사 선거는 탄핵 역풍과 차떼기 수사로 궁지에 몰리면서 ‘민심을 수혈하겠다’는 명분으로 도입되었다. 선거인단 확대와 당원 전원 투표권은 특정 계파가 장악한 대의원 조직표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대신, 팬덤을 가진 정치인의 당원 조직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치밀한 계산의 결과로 도입되었다. 물론 명분은 당원 권한 확대였고, 제도 개혁에 반대했던 계파는 이 당연한 명분에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이유로든 당원 권한을 확대해서 민주적인 정당을 만들겠다는 명분은 타당해 보였다. 문제는 그 뒤의 행보다. 그 당은 딱 거기에서 멈춰선 뒤, 퇴행에 퇴행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렀다. 책임당원 요건은 월 2천 원씩 6개월 납부 요건에서 월 1천 원씩 3개월로 줄어들더니, 다시 1년 내 1회 납부로 낮아졌고, 계파들은 조직적 당원 모집 경쟁에 나섰다. 당원에게 표를 주는 제도만 남고 당원을 시민으로 훈련하는 제도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경선 규칙은 승자의 필요에 따라 여론조사 대 당원투표의 비율이 70 대 30, 50 대 50, 100 대 0, 80 대 20으로 춤을 췄다. 2021년 전당대회에서는 여론조사에서 앞선 이준석 대표가 당원투표 1위 나경원 후보를 뒤집었다. 다섯 달 뒤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반대였다. 여론조사에서 10%포인트 이상 앞선 홍준표 후보가 아닌 당원투표에서 앞선 윤석열 후보가 대선후보로 선출되었다.

2023년에는 20년 가까이 유지해 온 여론조사 반영을 아예 폐지하고 당원 100% 경선으로 김기현 체제를 만들었다가 1년도 못 가 무너졌다. 계엄과 탄핵을 거친 2025년 8월에도 여론조사에서 20%포인트 뒤진 장동혁 후보가 당원투표의 힘으로 대표가 됐다. 

대의기구가 사라진 자리를 채운 것은, 숙의하는 당원이 아니라 특정 계파가 동원한 투표 머신이었다. 2021년 신천지 교인들의 집단 가입 의혹, 2023년 통일교 교인들의 집단 가입 의혹은 그냥 벌어진 일이 아니다. 아무런 훈련도 받지 않고, 그 어떤 책임도 질 필요 없이 1천 원 당비만 몇 달 내면, 당 지도부와 공직 후보 선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그 당의 시스템이, 그 당 유력 정치인들의 타락과 맞물려 빚어낸 일이다. 이제 그 당은 그렇게 끌어들여진 투표 머신들에 의해 포획되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있다. 당원 주권을 앞세운 제도의 종착지가 윤석열의 선출이었고, 내란 옹호 정당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윤석열 후보가 홍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당시 여론조사에서는 홍준표가 앞섰고 당원투표에서는 윤석열이 앞섰다. 서복경 대표는 국민의힘의 경선 규칙이 승자의 필요에 따라 여론조사 대 당원투표의 비율이 널뛰듯이 바뀌면서 결국 윤석열 선출로 이어졌다고 비판한다. 2022.03.07. 국민의힘.
지난 광복절, 올림픽 공원에 찾아간 장동혁(국힘의힘 대표). 2026.08.15.

경계에 선 2026년 민주당 전당대회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로 돌아와 보자. 순회경선 일정표를 보면 모든 권역에서 권리당원 투표가 합동연설회보다 먼저 시작해 먼저 끝났다. 충청권은 7월 28일부터 31일까지 투표한 뒤 8월 1일 연설회를 열었고, 마지막 경기·서울 권역도 8월 12일부터 15일까지 투표를 마친 뒤 16일에야 후보들의 연설을 들었다.

후보 간 토론과 검증이 시작되기도 전에, 지역 당원들의 소중한 한 표는 이미 투표함에 들어가 있었다. 정청래 당대표 후보는 강원 지역에서 강원도 당원을 앞에 두고 ‘호남’ 당원에 호소하는 연설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게 웃어넘길 일일까?

당원이 얻어야 할 정보, 누려야 할 토론과 숙고의 기회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아예 빠져 있었다. 물론 76만 8,053명이 투표한 50.3%의 투표율은 역대 최고 수준의 참여다. 하지만 참여의 양이 숙의의 질을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당원이 무엇을 보고 듣고 토론해서 어떻게 결정할지에 대한 설계가 없는 선거제도는, 아무리 규모가 커도 당원을 주권자로 만들지 못한다.

‘명청대전’으로 관심을 모았던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김민석 후보가 54.08%를 얻어 당선됐다.  50.3%의 투표율로 역대 최고 수준이었지만, 이 과정에서 토론과 숙고의 기회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아예 빠져 있었다는 비판이 높다. 2026.08.02. 부산 합동연설회 모습. 더불어민주당.

왜 이런 일정표가 전당대회 준비위원회를 통과해 아무 견제 없이 집행될 수 있었을까? 투표는 요식이고 결과는 계파 지형이 결정한다는 전제 없이 설명하기 어렵다. 실제로 전당대회 기간을 지배한 논란은 후보들의 노선과 정책이 아니라 후보의 과거 이력, 그리고 누가 ‘친명’이고 ‘친청’이며 ‘친석’인가에 대한 감별이었다. 사실 익숙한 풍경이다. 국민의힘 계열 정당에서 당원 권한이 최대치로 확장되던 그 시기는, ‘친이’, ‘친박’, ‘진박’ 감별법이 횡횡했던 그 시기와 일치한다. 우연일까? 아니다. 

정보와 숙의가 비워진 자리는 진영 정체성으로 채워진다. 국민의힘이 먼저 걸어간 길이 정확히 그랬다. 당원의 표가 계파의 자원으로 취급되기 시작하면, 정당은 노선을 겨루는 조직에서 사람에 줄 서는 조직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끝에서 어떤 후보가 선출되는지를 우리는 이미 목격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먼저 간 길로부터 무슨 교훈을 얻고 있는가? 이번 전당대회 일정표는 아직 아무 교훈도 얻지 못했다는 답안지처럼 보인다.

당원 주권? 민주당은 어디로 갈 것인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민주화 이후 더 나은 민주주의를 요구해 온 시민들의 정치개혁 요구와 끊임없는 제도 개혁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시민들은 정당이 검은돈으로부터 독립하라고 국고보조금을 늘려 주었고, 정책정당이 되라고 경상보조금의 30%를 정책연구소에 쓰도록 법에 못 박았다. 여성과 청년 대표를 훈련하고 키우라고 여성추천보조금과 청년정치발전비를 만들어 주었다. 민주당 계열의 당비 납부 당원은 1997년 1만 4천 명에서 2024년 131만 1천 명으로 늘었고, 2018년에는 당비 수입이 국고보조금을 처음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기 두 당의 운영 경비는 시민들의 세금으로 충당되었다. 온갖 법적 보호장치와 세금으로 유지되어 온 정당 조직, 그리고 탄핵 국면마다 정당의 문을 두드린 시민들의 선택이 만들어낸 것이 오늘날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정당이다. 요컨대, 오늘의 거대 당원 정당은 그 당 내부자들만의 창조물이 아니라 40여 년에 걸친 시민들의 기대와 투자의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물어야 한다. 두 당은 지금 그 기대와 투자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가?

청래(당시 당대표) . 국회 본청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2026.02.06.(금).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이 지금 금과옥조처럼 붙들고 있는 당원 주권의 첫 번째 실험은, 국민의힘에서 이미 실패했다. 국민의힘이 앞서 간 당원 주권의 길은 그 당을 망가뜨리는 것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면 더불어민주당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선, 당원을 권리에 부합하는 책임의 주체로 세우는 제도와 실천을 당장 설계해야 한다. 입당할 때부터 대한민국 헌법과 민주주의의 역사, 정당의 규율과 규범에 대한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또한, 매년 정기적으로 민주주의 교육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당원이 민주주의자일 때, 윤석열 같은 이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는 비극을 막을 수 있다. 경상보조금의 일정 비율을 당원 교육·숙의 프로그램에 의무 편성하고 집행 내역을 매년 공개하도록 제도화해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제도로 안착시켜야 한다. 

둘째, 모든 당원은 지역위원회나 전국위원회 활동을 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정당의 일상 활동에 참여할 책임을 부여해야 당원에 의한 정당이 가능해진다. 당직 선거, 공직후보자 선거 때 투표만 하는 당원으로 당원 주권 정당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일상적으로 당원이 정당의 활동을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당원의 권한은 책임에 비례해 설계해야 한다. 정기교육 이수 여부와 정당활동 참여 정도에 따라 지역위원회, 시도당위원회, 중앙위원회 등 참여 권한을 차등화해야 하고, 당직 및 선출공직 후보자 출마와도 연계해야 한다. 책임을 크게 지는 당원일수록 권한도 커야 하고, 반대로 책임을 지지 않는 당원은 권한도 줄여야 한다. 

셋째, 당원이 당내 정치에 매몰되지 않고 국가적 시야를 갖고 한국 민주주의의 책임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 연금과 돌봄, AI 시대 산업구조 재편, 지역 소멸 등 국가적 의제에 대한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당원들이 정당의 정책을 제안하고 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일반 기업에서도 직원들에 대해 매년 정기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데, 대한민국 원내 제1당이자 집권당인 정당에서 신입 교육도, 정기교육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국고보조금은 이런 데 쓰라고 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152만 권리당원은 더불어민주당만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 에너지가 계파 동원의 연료가 될지 민주주의의 저력이 될지는 지금부터의 설계에 달렸다. 더불어민주당이 1인 1표제를 정당민주주의의 완성이 아니라 경고로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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