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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솟 르포 ⑤] 한국 유학 중 미얀마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소수 민족 출신 목사 S. S와의 인연으로 미얀마와 태국의 국경지대 난민촌 ‘매솟’에 방문한 작가의 현장 기록.(⌚7분)

‘미얀마의 봄’은 2011년 군부 통제 완화 이후 시작된 민주화 이행기를 가리킨다.¹ 2015년 아웅산수지가 이끄는 NLD(민족민주동맹)가 총선에서 압승하며 민간 정부가 출범했으나, 2021년 2월 쿠데타로 다시 군부가 권력을 장악했다.

2021년 쿠데타 직후, 미얀마 시위대는 자발적으로 한국의 광주항쟁을 불러왔다. 양곤 거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활동가들은 SNS에 광주와 미얀마를 나란히 놓은 이미지를 공유하며 “한국도 해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퍼뜨렸다.

ⓒ5.18기념재단
2021년 미얀마 쿠데타 반대 시위대. 장소는 양곤. CCO
2021년 미얀마 쿠데타 반대 시위대가 구금된 아웅산 수치 여사 사진을 들고 있는 모습. CC0.

1980년 전두환 군부의 쿠데타와 계엄군 투입, 고립된 도시의 저항, 그리고 국제 사회의 초기 무관심. 미얀마 시민들은 40년 전 광주에서 자신들의 현재를 읽었다. 광주 5·18 기념재단과 광주광역시는 공식 연대 성명을 발표했다.² 다른 점이 있다면, 광주는 열흘간의 항쟁 끝에 1987년 민주화로 이어졌지만 미얀마는 지금도 내전 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미얀마 활동가의 이야기를 듣다 의구심이 들었다. 과연 ‘광주항쟁’과 ‘미얀마 민주화 시위’를 비교할 수 있을까? 민주화를 향한 갈망은 닮았지만, 광주항쟁과 비교하면 미얀마는 더 복잡한 상황 속에 놓여 있었다. 그건 바로 ‘소수민족’ 간의 갈등이다.

민족과 분열

미얀마 소수민족 갈등의 뿌리는 영국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영국은 미얀마를 지배하며 ‘분열 통치(Divide and Rule)’ 전략을 노골적으로 활용했다. 버마족에게는 낮은 지위를 부여하는 대신 카렌족, 카친족, 샨족 등 소수민족을 군과 행정에 우선 등용해 민족 간 위계를 인위적으로 만들었다.³

1948년 독립 이후 버마족 중심의 중앙정부가 들어서자, 식민지 시대에 상대적 특권을 누렸던 소수민족은 하루아침에 주변부로 밀려났다. 1947년 아웅산 장군이 소수민족 지도자들과 체결한 팡롱 협정은 연방제와 자치권을 약속했지만, 아웅산 암살 이후 협정은 사실상 무산됐다.⁴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소수민족 무장세력이 하나둘 결성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미얀마 내전의 첫 번째 불씨였다.

아웅 산(1915~1947, 왼쪽)은 미얀마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며 군인. 미얀마 군대의 설립자로 국부로 추앙받는다. CC0. 아웅산의 딸 아웅산 수치(1945년~ 오른쪽)는 199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다. 2010년까지 미얀마 군사 정권에 의해 가택 연금당했고, 2010년 군사 정권으로부터 부분적 민주화 이행에 핵심 역할을 했지만, 2021년 미얀마 쿠데타로 인해 다시 억류된 상태다. 교도소에서 가택으로 옮겨져 연금 중이며, 지난 8월 국제적십자위원회 관계자 면담으로 생존이 확인돼 생사 불확실 우려가 해소되었다. 위키미디어 공용.

갈등은 1962년 네윈 장군의 쿠데타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무력 충돌로 번졌다. 네윈은 ‘버마식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소수민족의 언어·문화·종교를 억압했고, 이에 맞서 카렌민족연합(KNU), 샨주군(SSA), 카친독립군(KIA) 등 무장조직이 잇따라 결성됐다.⁵ 이후 수십 년간 산발적 휴전과 교전이 반복됐고, 2011년 민주화 이행기에 일부 무장세력과 정전 협정이 체결되며 잠시 멈춰섰다. 그러나 2021년 쿠데타는 모든 것을 되돌렸다. 군부에 맞서 새롭게 결성된 시민방위군(PDF)이 기존 소수민족 무장세력과 연대하면서 갈등은 전국적 내전으로 확산됐다.⁶

그러나 속은 더 복잡했다. 한 단체의 소개로 만난 U는 카렌족이었다. 그는 매솟 지역에 머물면서 미얀마 내 학생 교육과 결집을 꿈꾸고 있었다. 그 역시 ‘광주항쟁’을 말했다. 한때 찬란한 봄을 꿈꾸던 그들에게 ‘광주항쟁’은 상징과 같았다. 그러나 시민방위군으로 연대하던 소수민족은 긴 내전으로 인해 다시 분열되고 있었다.

“시민방위군을 창설한 NUG(국민통합정부)는 2021년에서 2022년까지 힘이 꽤 있었어요. 이들은 강하게 군부와 대립하고 의료, 교육 등을 전폭적으로 지지했죠. 그러나 누가 리더가 될 것인가가 문제였어요. 친, 카렌, 카친, 라카인 네 소수민족이 힘을 나눠 가지기 시작했죠. NLD도 정당 안에서만 리더를 세웠어요. 그러다 보니 NUG와 갈라서게 되고 힘이 약해졌죠.”⁷

연합 체제만 약해진 게 아니었다. 다양한 민족이 묶인 ‘미얀마’라는 국가는 한때 연방제를 꿈꿨으나 그마저 무산되고, 소수민족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다. 카렌족인 U는 자신의 민족만 해도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뉜다고 했다.

“완전 독립, 연방제, 무장 중립, 군부 타협, 해외 망명. 카렌족 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해요. 그런데 민족이 카렌만 있는 것이 아니죠. 친, 라카인, 샨, 그 외에도 무수히 많아요.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또 다른 소수민족도 모두 제각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⁸

충분히 납득가는 말이었다. 실제로 만난 미얀마인은 제각기 다른 입장을 말했다. 어떤 이는 무장 투쟁을, 어떤 이는 독립을, 어떤 이는 망명을 말했고 그들의 의견은 ‘민족 통합적’ 의견이 아닌, 개개인의 의견에 가까웠다. S의 경우 예민한 문제라 직접적으로 묻지 않았지만, 이 문제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교육 쪽부터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 끝이 독립인지, 연방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일행은 말했다.

“큰일을 넘어가야, 그다음을 생각하죠.”

그가 말한 ‘큰일’은 미얀마 내 민주화를 얘기하는 걸까. 하지만 민족마다 제각기 다른 언어, 다른 문화, 심지어 아예 다른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하나만 보고 힘을 모은다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이것이 ‘광주항쟁’과 같을 수 없는 이유였다. 대한민국은 같은 언어,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단일한 민족 정체성을 바탕으로 싸웠다.⁹ 같은 언어와 역사를 공유하는 이들의 싸움과, 다른 언어와 역사를 가진 이들이 뭉치는 것은 너무나 다른 현실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미얀마의 미래

U는 얼마 전 폭격으로 네 명의 아이가 희생된 것에 분노를 느꼈다. 부모가 교회 봉사를 나가던 날, 마을에 폭격이 이어졌다. 집에 남아 있던 네 명의 자녀는 모두 사망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분노 섞인 그의 목소리에서 단호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더 이상한 것은 이런 사건이 지금도 흔히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¹⁰

그나마 새로운 양상은 군부가 주요 도시를 점령했지만, 일부 마을은 자체 군대를 가지고 세금을 걷으며 자치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이었다. 미얀마는 다양한 소수민족이 정글에서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데, 이 모든 마을을 정부가 점령하기 어려워 통제권 밖으로 벗어나게 됐다. U는 군부의 힘이 전보다 약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중심에 있는 도시는 완전히 군부에 넘어갔어요. 그래서 오히려 폭격이나 폭력 사태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요. 그러나 그 밖에서 여전히 군부와 싸우고 있어요. 무장세력이 존재하고 군부는 때때로 마을에 폭격을 가하죠. 그게 현실이에요.”¹¹

대화가 마무리될 즈음 U도, S도, 우리도 모두 미얀마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었다. 다음 세대는 처음부터 군부 독재 정권 아래서 자라올 테고, 그들이 마음속에 어떤 것을 품을지 알 수 없기에. 그래서 어떤 이는 교육을 꿈꾸고, 어떤 이는 무장세력에 동참한다. 무엇이라도 바꿔보기 위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 건, 시간이 더 필요할 거라는 말이었다.

📌 각주

¹ ‘미얀마의 봄’은 학술·언론 용어로 정착된 표현은 아니나, 2010년대 미얀마 민주화 이행기를 가리키는 맥락적 표현으로 널리 쓰인다. 2010년 총선 이후 군부 주도의 민정 이양이 시작됐고, 2011년 테인 세인 대통령 취임과 함께 정치범 석방, 언론 자유 확대 등이 이루어졌다.
— Thant Myint-U. The Hidden History of Burma. W. W. Norton & Company, 2019.

² — 5·18 기념재단. “미얀마 민주화 운동 연대 성명.” 2021.
— 한겨레. “미얀마 시위대, 광주 ‘임을 위한 행진곡’ 불렀다.” 2021.

³ — Taylor, Robert H. The State in Myanmar. NUS Press, 2009.
— Callahan, Mary P. Making Enemies: War and State Building in Burma. Cornell University Press, 2003.

⁴ 팡롱 협정(Panglong Agreement, 1947). 1947년 2월 아웅산 장군과 샨·카친·친 등 소수민족 지도자들이 체결한 협정으로, 연방제와 소수민족 자치권을 약속했다. 같은 해 7월 아웅산이 암살되면서 협정의 이행 주체가 사라졌고, 이후 버마족 중심 정부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카렌족은 협정에 불참했으며, 이는 이후 카렌족 무장 투쟁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 Smith, Martin. Burma: Insurgency and the Politics of Ethnicity. Zed Books, 1991.

⁵ 카렌민족연합(KNU), 샨주군(SSA), 카친독립군(KIA). 각각 1947년, 1964년(SSA-North), 1996년(SSA-South), 1961년에 결성된 소수민족 무장조직으로, 미얀마에서 가장 오래된 무장 저항 세력에 속한다. 네윈 정권의 소수민족 억압 정책에 맞서 결성됐으며,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 Human Rights Watch. “Decades of Conflict in Myanmar.”
— Crisis Group. “Myanmar’s Ethnic Armed Organizations.”

⁶ 시민방위군(PDF, People’s Defence Force). 2021년 5월 NUG가 공식 창설한 무장 조직으로,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합류했다. 기존 소수민족 무장세력과 연대해 군부에 맞서고 있으나, 무기·훈련·병력 면에서 정규군에 비해 열세다.
— Reuters. “Myanmar’s Shadow Government Creates Defence Force.” May 2021.
— Crisis Group. “Myanmar’s Coup and the Spectre of Civil War.”

⁷ NUG(National Unity Government, 국민통합정부). 2021년 4월 16일 쿠데타로 축출된 민간 정부 인사들이 수립한 망명 임시정부. 친·카렌·카친·라카인 등 소수민족 대표를 포함해 구성됐으나, 리더십 배분과 노선 갈등으로 내부 균열이 지속됐다. 현재까지 어떤 국가도 NUG를 공식 정부로 승인하지 않았다.
— NUG 공식 웹사이트.
— Crisis Group. “Myanmar’s NUG and the Path to Democratic Transition.”

⁸ 카렌족 내부의 노선 분열. 카렌족은 미얀마 최대 소수민족 중 하나로 약 7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카렌민족연합(KNU) 중심의 무장 저항 세력 외에도 군부와 협력하는 국경수비대(BGF), 협상 노선의 카렌평화위원회(KPC) 등 다양한 정치·군사 조직이 공존한다. 완전 독립, 연방제 자치, 무장 중립, 군부 타협, 해외 망명이라는 다섯 가지 노선은 카렌족 내부의 실제 입장 차이를 반영한다.
— South, Ashley. Ethnic Politics in Burma: States of Conflict. Routledge, 2008.
— Karen Human Rights Group. “Situation Updates.”

⁹ 한국의 민족 정체성과 광주항쟁. 한국은 단일 언어·문화권을 바탕으로 한 민족 정체성이 강하게 형성돼 있으며, 이는 1980년 광주항쟁 당시 시민들의 연대에 중요한 기반이 됐다. 다만 한국 사회도 현재 다문화 사회로 변모하고 있어 ‘단일민족’ 개념은 재검토되고 있다.
—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광주항쟁 개요.”

¹⁰ OHCHR. “Myanmar: Attacks on Civilian Infrastructure.”
— Airwaves Myanmar. “Airstrike Tracking Project.” 2023.

¹¹ Crisis Group. “Myanmar’s Fragmenting Conflict.”
— International Crisis Group. “Myanmar: The Politics of Rakhine.”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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