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서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시간순으로 한눈에 볼 수 있는 ‘국정원 사건 타임라인 사이트’(이하 ‘국정원 사건 사이트’)가 화제입니다. 사이트 제작자에게 ‘왜 만들었느냐’고 물으니 제작자는 첫마디로 “화가 나서요”라고 답했습니다. 이 사건이 정말 화나는 사건인지, 화낼만한 사건인지 확인하고 싶은 분들은 직접 국정원 사건 타임라인을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우선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30대 평범한 미혼 직장인입니다.^^ 제가 뭘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인터뷰까지 하게 되어 굉장히 부담스럽고 신기합니다.
–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왜 만드셨습니까?
화가 나서요. 새 정부가 출범하고도 추가의혹과 관련자들이 계속 드러나는데도 정부와 여당과 언론의 태도, 그리고 특히 이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다수 국민들에 대한 아쉬움이 가장 컸습니다.
– 언제 사이트를 만들겠다고 결심하셨나요? 특별한 계기는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리해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만 쭉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0월에 정부기관과 관변단체들의 대선개입 의혹이 연타로 쏟아져 나올 때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 작업에 사용한 도구는 ‘timeline JS’인데요. 왜 이 작업도구를 선택하셨는지요?
단순하고 깔끔한 유저인터페이스(UI)가 보는 입장에서 이해하기에도 편할 것 같아서 가져다 쓰게 되었습니다. 정말 잘 만든 라이브러리입니다! 기능도 정말 좋고요.
– 작업에 사용한 컨텐츠의 선정 기준도 궁금합니다. 유독 동영상이 많은 것 같은데, 이는 의도적이었는지요?
아무래도 텍스트보다는 영상이 표정과 상황을 보고 듣는 게 더 공감하기가 좋을 것 같아서 비중을 많이 두었습니다. 텍스트 같은 경우 저 자신이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에 직접 작성하면 치우칠 것 같아서요. 웬만하면 언론사 기사도 최대한 객관적인 기사만 취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 작업 시간은 얼마나 걸리셨나요?
라이브러리가 웬만한 기능은 다 해주어서 기술적인 부분은 다행히 빨리 끝났습니다. 다만, 일자별로 주요 이슈들을 선정하고, 그 출처(동영상, 뉴스)들을 찾고, 출처들 중에 객관적인 걸 비교하려는 과정이 일주일 정도 걸렸습니다. 그 일주일에는 ‘사건 관계도’도 포함되고요. 사실관계가 틀릴까 봐 이것도 찾아보고 비교해보는데 시간이 좀 걸린 것 같습니다.
– 단독작업이었나요? 협업이었나요?
네, 협업입니다. 언론이나 다른 네티즌들이 잘 정리해놓은 자료들 덕분에 굉장히 수월하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으니까요.
– 무엇을 기대하고 만드셨습니까? 아마도 상당한 시간과 기회비용을 쏟아낸 일이었을 텐데 말이죠.
사건에 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좀 더 쉽게, 몰랐던 것까지 알게 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사건에 관심이 없던 분들도 관심을 가지고 심각성을 공감하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게 가장 컸습니다.
– 이번 작업은 정권에 대한 비판 입장을 담아낸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큽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현 박근혜 정권을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더불어 정치권 일반에 관한 평소의 생각을 들려주신다면요.
개인적인 의견을 물었으니 주관적으로 말해도 되죠? ^ ^;;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정통성이라 봅니다. 현 정권에는 그게 없고요. ‘정통성’이 없다는 걸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전통성’은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정권에 대한 비판 입장을 담아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라 봅니다. 이 사건에 대한 걸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라고 보는 게 바로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건 여야, 좌우를 떠나 ‘국민, 국민’ 입에 달면서 국민을 가지고 논거라고 봐요. 당장은 내 편이라고, 내가 직접 피해 보는 게 아니라고 어물쩍 넘어가면 분명 본인과 주변인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올 것이라 보고요. 그때 돼서 그걸 깨닫고 고치기에는 ‘많이 늦었구나’, ‘힘들겠구나’ 이렇게 될 거로 생각합니다.
– 주된 비판 대상은 국정원입니다. 국정원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저에게는 조롱 대상입니다. 고학력 고임금의 저질활동 기관이랄까요? 국민과 국가의 안전과 정보를 지켜야 할 기관이 국민을 대상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분열시키고, 특정인을 당선시키기 위해 했던 일련의 수작들이 너무 저급하고, 유치해서 조롱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처벌과 제도적 장치를 통해 개혁하고, 개혁된 모습을 보여준다면 당연히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든든한 기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 시절이 하 수상합니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 괜찮은가’ 시리즈를 만들었던 김연수 씨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80만 원의 선고유예를 받기도 했는데요. 이번 작업의 법 위반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합니다만, 자기 검열이랄까요. 그런 마음의 부담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이게 요 몇 년 새 더욱 심해진 것 같아요. ‘김일성 ㄱㅅㄲ, 나 종북아님’ 을 해보라 한 것도 아닌데 묻기도 전에 그걸 말 안 하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렇게 심적으로 위축되면 표현의 넓이도 위축되고, 생각도 틀에 갇히게 되는 것 같아요. 굉장히 무서운 현상 같습니다. 저도 한번 외칠게요.
‘김씨 삼부자 ㄱㅅㄲ!’
– 타임라인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기록이 없다면 역사라는 게 없을 것이고, 역사가 없다면, 잘못은 과거의 것을 반복할 테고, 잘한 것은 또 고생해서 잘하게 될 것 같아요. 일기를 쓰다 보면 그 과정에서 반성과 보람도 이루어지게 되잖아요. 참 재밌고 의미 있는 순간들인 것 같습니다.
– 이번에 수행하신 작업은 언론이 마땅히 해야 하는 작업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언론 보도에 관해선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사건 관계도’에 짧게 묘사된 언론에 관한 설명(해석)을 보면 언론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평가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언론의 사명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공익을 위해 객관적으로 잘못된 건 밝혀내고 질타하고, 잘된 건 칭찬해주고 알려야 하는 거라 봅니다. 대부분의 영향력 있는 언론들이 그 순기능이 전혀 안 되고 있는것 같고요. 그 안에서도 올바른 보도를 하려는 분들과 해직된 많은 언론인들, 그리고 대안언론인들도 참 힘들 거라고 봅니다.
– 주 작업인 타임라인 작업뿐만 아니라 ‘사건 관계도’와 ‘개드립 어워드’ 등의 작업 등 사이트를 전체적으로 구성하는 데 상당히 공이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작업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은 어떤 것이었는지요?
사건 관계도에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요. 가령, ‘A가 B에게 전화했다.’ 이 단순한 결론도 기사를 찾다 보면 1) C가 ‘A, B 둘과 통화했다’ 라고 주장한 것도 있고, 2) A는 ‘통화한 적이 없다’는 것도 있고, 3) B는 ‘내가 A에게 전화했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떤 것이 정확하고 객관적인지 비교하고, 나중에 변화가 있는지, 추가된 게 있는지,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해야 하는 게 제 머리로는 참 힘들었습니다. 개드립 어워드 같은 경우는 워낙 주옥같은 발언들이라 자연스레 외워졌습니다.
– ‘개드립 어워드’는 아주 재밌는 장치인 것 같습니다. 개드립 선정 기준은 무엇이었습니까?
제 주관적으로 어불성설, 인면수심, 언어도단스러운 발언들이 기준이 된 것 같습니다.
– ‘개드립 어워드’ 투표 외에는 딱히 독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치가 적은 것은 사소한 아쉬움이었는데요. 이 점은 보강하실 생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줄 게시판 정도를 만들 생각도 있었지만, 나중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누더기처럼 될까 봐 추가 안 했습니다. 단순히 주 목적이 타임라인이니 둘러보고 가는 정도의 기능이면 충분하다 생각했습니다. 모바일로 접속할 때, 사건관계도 하단에 카카오톡과 카카오스토리 공유 기능을 추가했고요.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제가 이용하지 않는 관계로….. 이기적이죠? ^ ^;;
– 아직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앞으로도 작업을 이어가실 생각인지요? 더불어 사건 종결 후에도 사이트를 유지하실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많은 사람이 납득할 만한 처벌과 개혁이 이루어진다면 사이트가 필요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계속 열어둘 생각입니다.
– 국정원 사건 사이트와 같은 정치 비평적 작업을 앞으로도 하실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관련 작업을 혹여 생각해두고 계신 것이 있는지요?
워낙 크고 중요한 사건이라 저 같은 사람도 이걸 만들게 된 것이니 앞으로는 이런 사건이 안 일어나길 바라고 있습니다.
– 끝으로 못다 한 말씀이 있으면 한 말씀 부탁합니다.
‘설마 이런 거 만들었다고 나 따위의 뒤를 캐고, 주변인들을 힘들게 하겠어?’ 라고 허무맹랑한 생각도 해봤지만, 그런 허무맹랑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들을 보아왔잖아요. 조금은 두렵습니다. 이런 것에 두려움을 갖는 세상을 만들었다는 죄책감도 크고요. 그래도 매우 느려졌을 뿐이지 뒤로 가는 건 아니고, 더디게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box type=”note”]정부를 비판하려면 누가 시키기도 전에 자발적으로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을 먼저 욕하는 것으로 사상 검증을 받아야 하는 사회 분위기는 과연 누가 만든 걸까? 이렇게 기록에 충실한 사이트를 만들면서도 두렵다고 말하는 OOO 님의 용기를 응원하며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든 국민이 두 눈 뜨고 지켜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box]
“이것 만들었다고 뒤를 캐거나 주변인 괴롭힌다”에 500원 건다
자칫 회사에 누를 끼칠 것 같아 조심스럽습니다. 저도 김일성 삼부자를 X새끼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에 존경할만한 인물 찾기 어려운데 이 분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대단하시고 응원합니다!! 그러나 고학력에 고임금에 정규직에 거기다가 ‘윗분’의 인권보호까지 완벽하게 받는 엘리트 ‘김직원’님들이 댓글 안되는 이사이트에 어떻게 해꼬지 할지 걱정이네요.
화이팅!
갈수록 힘이 빠지는 요즘입니다. 기대할 것도 기대고 싶은 곳도 없는, 사막같기도 하구요.
상식이 그리워지지 않길 바라며……
응원할게요!
대단하시네요. 응원합니다.
애국하면 역적으로 몰리는 슬픈 현실에서 진실은 반드시
국민의 편 이라는 것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셨네요
이런 분들이 있어 대한민국이 있는 것입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카톡으로 공유도 된다니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