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인터뷰] 민주주의라는 추상명사를 구체적인 일상의 풍경으로. ‘민주주의기술학교’ 이창림 인터뷰. (⌚9분)
여는 말: 민주주의라는 ‘기술’
“도저히 귀로 들어 줄 수 없는 추상적인 단어들이 너무 많다. 그리하여 땅의 이름만이 위엄을 지닌다. 어떤 숫자, 어떤 날짜, 어떤 땅의 이름만이 사람들이 말할 수 있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들이다. 영광, 명예, 용기, 신성과 같은 추상적인 어휘들은 마을 이름, 도로 번호, 하천 이름, 연대 번호, 날짜들 같은 구체적인 이름들 곁에 갖다 놓으면 지저분하기 짝이 없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무기여 잘 있거라’ (1929), 열린책들, 이종인 옮김.
흔히 정치라고 불리는 반(反)정치의 언어, 아니 그 소음 중에서도 나에게 “도저히 귀로 들어 줄 수 없는 추상적인 단어들” 중 하나는 민주주의다. 물론 그런 나에게도 윤석열 비상계엄의 순간에는 그 단어가 뜨거운 불덩이 같은 것으로 나에게 온 적 있다. 윤석열 일당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민주주의가 아주 구체적인 단어로 변해 나에게 왔다. 돌멩이처럼, 불덩이같이 내 가슴 속에 잠시 머물렀다. 하지만 그 민주주의는 이내 온갖 정치꾼들의 잘난 이야기들 속에서 다시 “도저히 귀로 들어 줄 수 없는 추상적인 단어들”로 다시 희미해졌다.
코딩이나 뜨개질 혹은 목공처럼, 미술이나 음악 혹은 문학처럼, 민주주의에도 기술(art)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삶의 풍경 속에서 누군가와 소통하고, 여럿이 갈등하고 다투면서도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은 관념적이거나 체계적 지식이라기보다는 몸으로 체화된 ‘예술적 기교’에 가깝다. 그것은 지식만으로도 체험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낱개로 떨어진 경험과 지식이 몸으로 체화해 그 구별이 사라질 때, 그 한 몸의 지혜가 민주주의 기술이라는 나무로 자라 삶을 좀 더 살 만한 풍경으로 만든다.
‘민주주의기술학교’는 민주주의를 ‘일상의 문화’로 만들어가는 걸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2010년 이후로 자연스럽게 문제의식을 함께 한 사람들이 모였고, 이창림은 그들 중 한 명이다. 이창림에게 일상으로서의 민주주의에 관해 물었다.
📢 2025년 12월 2일 나눈 대화를 이창림의 ‘독백’ 문투로 편집해 정리한다. 이창림도 퇴고 과정에 참여했다.
아이가 있어서 그런지 청소년들에게 애착을 느낀다.
이창림, 민주주의기술학교. 2025.12.
더 나은 세상, 덜 망가진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고 싶다.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바꾸자
민주주의기술학교는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과 만들었다. 때는 2010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더 체인지’ 활동을 하면서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바꾸자’는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 소통하고, 그러다보니 민주주의를 일상에서 문화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바꾸는 것’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관련한 공부를 했다. 책을 읽었다. 책을 읽고, 모임을 하고, 그런 모임을 정례화하니까, 어 이거 그러면 학교 아닌가? 그런 생각에 이르렀고, 그런데 어떤 학교지? 정치 학교인가? 아, 이 민주주의라는 게 실은 몸에 익히는 기술(아트)이구나. 그래서 기술학교라고 이름 지었다. 그때 이미 ‘더 공부’라는 모임이 있었는데 의기투합해서 좀 더 조직성을 갖추게 됐고, 그게 ‘민주주의기술학교’다.
개인 활동과 조직 생활은 다르다. 나 홀로 할 수 있는 일과 함께해야 할 일에서 규칙이랄까 방법론도 아주 다르다. 당연히 내 주장만 할 수 없고, 그만큼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함께 만들어 가는 일종의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나도 내 주변도 이전과는 좀 달라진 점들이 있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와 방법을 표현하는 단어는 ‘합의’다.

부담감과 보람
조직을 만들었을 때 사회적으로 뭔가 공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압박이랄까? 압박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부담스러운 숙제를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기도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주로 교육과 학습이다. 그런데 교육과 학습이라는 게 눈에 보이는 성과가 바로 드러나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그런 부담감을 좀 더 크게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만나거나 교사 연수를 한다든가 활동가들과 함께 마을에서 워크샵을 한다든가 하는 것들… 이런 자리를 통해 모이고, 대화하며, 토론하고, 꿈꾸는 것들은 그 자체로 큰 보람을 느낀다. 큰 기쁨이다. 그리고 이 정도면 해볼 수 있겠다. 뭐든 시도해 볼 수 있겠다. 다음에 만난 자리에서 ‘그렇게 해봤는데, 괜찮더라!’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보람을 느낀다.

회의 대 회의
최근 시민운동 영역에 젊은 에너지가 부족해 보이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안타깝다. 꽤 오래 전이긴 하지만, 활동가로서의 전망을 가진 사람들로 에너지가 넘치는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청년들이 활동가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지금은 ‘존중’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활동가를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어떤 조직 문화도 그것이 발현되는 공간, 장소, 방법으로서의 ‘회의’도 그런 존중이라는 방향성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대안이라는 걸 도출하고, 이견과 갈등을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조화를 이루는 합의로 끌어내는 걸 돕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그 방법인 ‘회의’와 ‘대화’의 과정에 관해 생각하고 비판(회의)해 보자. 그 과정에서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해보자고 했다.
많은 조직에서 영리든 비영리든 회의를 한다. 어떤 사람은 그 회의가 아주 어렵고, 불편하고 지루할 수도 있다. 다른 구성원의 에너지와 잘 조화해 시너지를 내야 할 텐데, 회의 자체가 불편하면 그런 시너지는 언감생심이다. 관리자 입장이든 참여자 입장이든 다른 조직원은 어떤 상황에서 자신의 에너지를 잘 발휘할 수 있는지를 관찰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엄격하고 경직된 것이라면 그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그래서 그런 탐색의 과정, 학습의 과정이 ‘놀이’와 같은 것이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조직 내부에서 그런 과정을 담당하지 말고, 그때 우리(민주주의기술학교) 같은 신뢰할 수 있는 외부인(제3자)이 그 과정을 조율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그 형식은 내부 강의나 교육, 컨설팅의 형식으로 진행할 수도 있고, 외부 워크샵의 일부 프로그램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

요즘 괜찮아요?
강의든 교육이든 이렇게 조직의 민주주의를 함께 배우는 것이 우리 민주주의기술학교 사업 중 하나인데, 아주 많진 않다. 아무래도 비영리의 중간 조직이 그런 예산을 책정하는 일도 많지는 않고, 그런 에너지를 쓰겠다는 노력 자체가 많지는 않다. 그래서 지원센터 같은 곳의 물적 지원을 받아서 지원할 단체들을 선정(공모/응모)해 도움을 드리는 경우가 잦다. 가령, ‘조직문화 워크샵’ 같은 것. 사실 ‘컨설팅’이라는 표현은 잘 안 쓰고, ‘워크샵’이라는 표현을 더 자주 쓰는 것 같다. 이런 기회가 많아지면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끝으로 조직 속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해서 말하면, 지금까지의 갈등을 조화로 만드는 ‘필승 노하우’ 같은 건 없는 것 같다. 왕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직 상황과 맥락, 각 조직원의 구성과 그동안의 문화적 유산, 이런 구체적인 조건이 백이면 백, 다 다르다. 모든 갈등의 문을 열어 줄 마스터 키는 없다. 조직을 함께 개선하려는 의지와 시도가 유일한 지름길 아닌 지름길이다. 그런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게 내 잠정적인 결론이다.
가령, 하나의 가정적인 사례를 생각해 보자. 5명이 있는 조직에서 한 명은 꼰대 상사이고, 한 명은 조직을 바꾸려는 의욕을 가진 친구. 나머지 셋은 방관자라고 가정하면, 어떻게 조언할 수 있을까? 나라면, 쉬는 시간에 커피 마시면서 ‘요즘 괜찮아요?’ 가볍게 물어보라고 할 것 같다.
어떤 계기를 마련해야 하는데, 그게 무슨 대단히 큰 이벤트일 피요는 없다. 팀의 미션과 비전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거나 하는 무거운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다. 가볍게 하지만 조금은 진지하게 그 말 한마디, ‘요즘 괜찮아요?’를 꺼내보면 좋겠다. 그런데 그 ‘요즘 괜찮아요?’를 꺼내기가 아주 어렵다. 그걸 꺼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고, 그 말을 꺼내는 사람이 조직, 팀에서 신뢰받는 사람인지도 중요하다. 그러니까 팀원에게 신뢰받는 사람이 어쨌든 변화를 주도할 수밖에 없고, 그 말을 꺼내고, 뭔가 시도해 보는 게 중요하다.

내가 꼭 나서서 해야 해?
앞서 말한 젊은이들이 원하는 ‘존중’을 달리 표현하면 내가 굳이 나서서 왜 그렇게 나를 희생해야 하지? 그냥 ‘월급 루팡’이 더 나을 것 같은데? 그런 사고방식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그런 느낌을 받는 일이 요즘은 많은 편이다. 나에게도 아주 어려운 문제인데, 나는 당위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구성원 중 한 명으로서의 내 역할이랄까.
‘그런 일을 꼭 내가 나서서 해야 해?’ ‘누군가 하면 옆에서 도와줄 수는 있지만 내가 나서긴 싫어’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다. 그런데 내 삶을 돌아보면, 나는 그렇게 나서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했던 사람 같다. 다만, 그때는 늘 혼자가 아니었고, 내 옆에는 항상 누군가 있었다.
‘난 절대 손해 보지 않을래.’ 그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내 주변에는 ‘그런 정도 일은 나도 할 수 있어’라고 마음 먹을 수 있는 사람들도 아직 여전히 많다. 많을 것 같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할 수 있다. 방관자들조차도 마음 속에서는 뭔가 싹틀 수 있고, 뭔가 해보고 싶지만, 방법을 모를 수도 있으니까.
민노씨가 말한, 수영장에서 가볍게 아는 척하고 인사하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힘들게 느낄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주 사소한 문제라면 사소한 문제인데, 그런 일상의 사소한 불편함이 정말 잘 안 풀리기도 한다.

풀뿌리
나 개인으로는 ‘풀뿌리’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거. 권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고, 자신의 삶을 바꾸는 것. 그게 자치의 원리와 연결된다.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인 거고. 기술학교에서 각자 방점이 다르겠지만, 나는 그걸 중심으로 생각한다. 그 안에서 토론하고, 그 안에서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의 사소한 것들, 밖에서는 민주주의를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강의하고 워크샵도 하고 하는데, 집으로 돌아오면 내 맘대로 해보고 싶은 때도 있다. 이제 청소년이 된 자녀와 함께 있을 때 내가 맘대로 결정하고, 그 결정을 자녀에게 통보하고… 그런 경우가 나에게도 있다.
‘아, 이건 아닌데…’ 그런 마음이 들면서도 밀어붙인 적 있었는데, 나중에 생각하면 좀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말하는대로 사는 게 참 어렵구나’하는 생각도 한다. 미성년자 자녀를 위해서 성인인 내가 선택한 것이긴 하지만, 내 방법이 자녀에겐 독단적이고 독선적으로 느껴질 수 있었을 것 같다. 100번을 수평적으로 민주적으로 잘 하다가도 한 번 그렇게 하지 못 하면 그게 (자녀에게는) 크게 다가오니까… 그땐 내가 뭔가 ‘조바심’을 느낀 것 같기도 하다. 지금 꼭 뭔가 해야 한다고 외부적인 압박을 받았거나…

조직: 밥은 먹고 다니나
민주주의기술학교는 사람들이 모이고, 떠뜰고 꿈꾸는 걸 돕는 조직이고, 그렇게 일상의 변화를 만들어가도록 돕는 조직이다. 구성원은 대략 9명이고, 나에게는 이 일이 주된 직업인데, 그런 분이 다섯 분 정도 된다. 상근 역할을 하는 분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회계 업무와 같은 것.
하지만 어떤 분은 4대 보험 있는 다른 직장에 다니시는 분도 있고 그렇다. 그 분도 충분히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고. 하지만 이 일에 대한 대가를 얻기는 하지만, 거의 받지 않고. 그런 분들 외에는 조직이 작아서 업무나 범위가 다소 유동적이다. 이사장 박온정 한 명이고, 나머지는 이사다. 감사도 한 명 있다.
근근히 지속하는 정도다. 영리 조직 같은 급여 체계가 있지는 않으니까. 일을 나눠서 서로 부담을 더는 방식이다.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물리적 대가는 늘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고, 멤버들도 이런 물적 대가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서…. 그래서 고민이다. 계속 점검하고, 이야기하고, 우리의 미션과 지속가능성을 계속 고민하고 있지만, 뾰족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민주주의기술학교는 지리산 포럼 프로그램에 늘 참여해오고 있다. 지리산 포럼과는 아주 친한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인적으로 조합원, 후원자가 겹치기는 하지만, 조직과 조직으로 보면 완전히 별개의 조직이다. 민노씨가 지리산 포럼에서 기술학교가 진행한 프로그램을 아주 재밌었다고 말했지만, 외부에서 보는 시선은 ‘저 사람들은 모여서 뭘 하고 있지?’ 그리고 ‘저런 일(기술학교)은 급여를 거의 포기해야 참여할 수 있는 거 아냐?’ ‘안정적인 (경제적) 생활을 담보할 수 없지 않을까?’ 불안이나 우려를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계획: 달리기처럼
조직문화와 관련해서는 꾸준히 활동 범위를 넓히고 싶다.
공부 모임도 좀 더 폭넓게 확대하고 싶고.
지방선거가 있어서 우리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함께 이야기 나눠보려고 한다.
기술학교 멤버를 떠나서 시민교육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린이 청소년을 만날 때가 있는데,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고,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가진 어떤 자정능력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고…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시민의 한 명으로서 상황을 잘 파악하고 판단하고, 그렇게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런 과정에 기여하면 좋겠다는 생각한다.
요즘 달리기를 꾸준히 하는데, 하다보니까 늘더라. 꾸준히 하니까. 민주주의도 문화도 꾸준히 하다보면… 뭔가 해보고 싶은데 답답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자녀가 청소년이라서 더 그렇겠지만, 청소년들에게 애착을 느끼는데, 더 나은 세상, 덜 망가진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