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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꺾정 47화] 본질은 사라지고 단일화의 덫만 남는 대선, 결선투표제가 필요하다. (⌚6분) (이소영/대구대 교수)

22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읍소하며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이 과연 유권자를 위해 제대로 일하는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안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니까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칼럼을 통해 유권자의 시각에서 22대 국회와 정치를 비평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선거 시기 특히 대선은 유권자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비전을 제시할 후보를 선택하는 시기입니다. 선거의 주인공은 후보나 정당이 아니라 유권자이며, 유권자의 선택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선거가 거듭될수록 유권자의 알 권리와 목소리가 위축되고 있습니다. 유권자의 시각에서 22대 국회와 정치를 비평하는 중.꺾.정.이 대선을 앞두고 더 자주 시민을 만납니다.

본질을 가리는 ‘단일화’의 정치

이번에도 예외 없이 ‘단일화’의 정치가 한국 대선을 뒤덮었다. 유권자들이 각 후보의 정책과 비전보다는 누구와 누구가 단일화할지, 언제 단일화가 성사될지에 모든 관심을 쏟는 정치적 풍경은 익숙하다 못해 너무나 피로하다.

이번 제21대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엄중한 의미를 갖는다. 단순히 권력의 재편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가 다시금 복원되고 재설계되는 역사적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 현직 대통령이 헌정 질서를 뒤흔드는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 시도를 감행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국가 권력의 정당성이 헌법과 민주적 절차에 근거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고, 결국 사법부는 헌정 질서 수호를 위해 결단을 내렸다. 이른바 12.3 시민저항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로서 시민 주권이 작동했음을 입증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러한 위기를 간신히 넘기고 맞이한 제21대 대선에서 우리는 이번 대선이 민주주의의 본질을 회복하고 정치적으로는 책임 있는 권력 운영의 토대를, 사회적으로는 포용과 연대의 기반을,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도약의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은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선택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중대한 의미를 지닌 이번 대선에서도 또다시 단일화가 선거의 핵심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유권자들은 후보의 정책과 리더십보다 단일화 협상의 향방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언론 역시 후보들의 회동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 과정에서 “과연 누가 어떤 비전과 정책으로 한국 사회를 이끌 것인가?”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 사라지고 있다. 단일화가 선거의 전부가 되어버린 정치 현실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이자 제도적 결함의 방증이다.

승자독식의 구조와 대표성의 왜곡

현행 대통령 선거제도는 단 한 번의 투표로 최다득표자를 당선시키는 ‘단순다수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 제도에서는 과반의 지지를 얻지 못한 후보라도 가장 많은 표만 얻으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 그 결과, 절반 이상의 유권자가 선택하지 않은 후보가 국가 권력을 쥐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으며, 이는 대표성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러한 구조는 유권자의 선택에도 심각한 왜곡을 가져온다. 유권자들은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후보에게 투표하기보다는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 중 ‘차선의 후보’ 혹은 ‘상대적으로 덜 반감이 드는 후보’에게 전략적으로 표를 던지도록 압박을 받는다. 그 결과 유권자의 정치적 신념과 선호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선거는 시민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장이 아니라 여론조사와 승패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전략 게임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 게임에서 소수 정당 후보들은 구조적으로 배제된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더라도 당선 가능성으로 평가받는 선거 환경에서는 언론의 주목을 받기 어렵고, 유권자 역시 ‘사표 방지’ 심리에 따라 결국 다른 후보를 선택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정치적 다양성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정치는 경쟁보다는 생존의 싸움이 되고, 유권자는 지지하는 후보를 선택하는 주체가 아니라 승패를 계산하는 판단 기계로 전락한다.

우리나라는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한다. 특히 모든 선거제도가 그렇다.

이러한 승자독식 구조가 계속되는 한, 한국 정치에서 다양한 목소리와 깊이 있는 논의가 살아날 공간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단순다수제에서는 후보들이 단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어떤 방식이든 표 차이를 줄이는 데 집중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정치적 대립은 점점 더 격렬해진다. 그리고 바로 이런 구조 때문에 후보 단일화는 반복되는 전략이 된다. 제도상으로는 여러 후보가 나올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단일화를 하지 않으면 이기기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다. 유권자도 정치인도 단일화를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선거는 후보가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느냐보다 ‘언제 누구와 단일화하느냐’가 더 중요해지는 상황으로 바뀌어 버린다. 결국 우리는 정치적 셈법이 좌우하는 선거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결선투표제, 세 가지 효과

이제 우리는 단일화의 덫에 갇혀 정작 중요한 논의를 위한 공론장이 차단되는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구조적으로 복원하기 위해 제도 개혁에 눈을 돌려야 할 시점이다. 특히 이러한 승자독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결선투표제’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결선투표제는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두 후보를 대상으로 2차 투표를 실시해 최종 당선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이미 프랑스, 브라질, 핀란드 등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대표성 문제를 보완하는 현실적인 해법으로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2024년 프랑스 총선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위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신인민전선과 앙상블!에 밀려 제3당이 된 마린 르펜(프랑스 민족연합 ‘RN’ 대표). 트럼프의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연상하게 하는 ‘메가(MEGA,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 표어가 보인다. 마린 르펜 인스타그램. 2025.02.11.

결선투표제가 도입되면 다음과 같은 정치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첫째, 극단적이거나 선동적인 후보가 다수의 비호감 속에 당선되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일시적인 여론의 흐름이나 분열된 표심을 틈탄 깜짝 당선을 차단하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둘째, 소수 정당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화된다. 1차 투표에서 의미 있는 득표를 한 후보는 결선 과정에서 정책 연합을 요구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의제를 정치적 아젠다로 부각시킬 수 있다. 이는 다수의 유권자를 대표하지 못하는 기존 양당 중심 구조를 보완하고, 정치적 연합의 문화를 제도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셋째, 결선투표제는 정치적 부패 가능성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결선투표제를 도입한 국가는 부패 수준이 낮은 경향이 있는데, 이는 밀실 정치나 비공식 야합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공개된 정책 연합이 요구되기 때문에 정당 간 협상이 보다 투명해지는 것이다.

유권자의 선택과 문화를 바꾸는 제도

결선투표제는 또한 유권자의 정치적 선택 방식과 선거 문화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다. 현행 단순다수제 하에서 유권자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나 정책적 선호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가장 지지하는 후보가 현실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그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피하고 싶은 후보의 당선을 돕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사표 방지’ 심리와 ‘전략적 투표’는 유권자들을 자율적이고 정치적 신념에 기반한 선택의 주체가 아니라 승패를 계산하는 전략적 소비자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정치에 대한 냉소와 회피로 이어진다. 유권자는 ‘나의 투표는 큰 의미가 없다’거나 ‘결국 둘 중 하나만 된다’는 체념 속에서 점점 더 정치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다. 이는 민주주의의 참여 기반을 약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특히 젊은 세대나 정치적 소수 집단에게는 정치가 자신들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불신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선투표제가 도입되면 유권자는 1차 투표에서는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후보에게 마음껏 지지를 보낼 수 있어 정치적 자기표현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후보자들 역시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자신의 정책과 비전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게 되고, 이는 선거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유권자는 1차 투표에서 자신의 신념을 표현한 뒤, 결선에서는 상위 두 후보 중 현실적인 선택을 통해 판단을 조정할 수 있다. 이러한 선거 과정은 유권자의 만족도를 높이고 선거 결과의 수용성과 정당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런 점에서 결선투표제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민주주의를 더 건강하고 성숙한 방향으로 이끄는 제도적 기반이 될 수 있다.

정치의 중심을 다시 ‘정책’으로

한국 정치가 선거 과정에서 단일화라는 전략에만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적 전환이 필요하다. 결선투표제는 양극화된 정치 구도 속에서 정당 간 적대적 대치를 극복하고 협력과 정책 조율을 유도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제도적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정책도, 비전도, 건전한 토론도 없이 단일화에만 몰두하는 선거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정치의 중심을 다시 정책과 비전, 그리고 책임 있는 논쟁으로 옮기기 위해서라도 결선투표제 도입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물론 결선투표제는 행정적·재정적 부담이 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그보다 훨씬 큰 민주적 대표성과 정치 문화의 개선 효과가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선 이후 새 정부가 출범하면 정치개혁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결선투표제는 유권자의 주권을 회복하고, 한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키기 위한 핵심 과제로서 그 논의의 중심에 놓일 필요가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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