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한국, ‘돌봄’을 조기 대선 핵심 의제로 삼아야 하는 이유 (윤자영 충남대 교수) (⌚8분)
팬데믹 이후의 회복 과정, 사회경제적 양극화, 기술 혁명의 가속화, 기후위기의 심화, 그리고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은 전 세계적으로 복합적인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젠더와 인종, 국적, 지역에 기반한 차별과 불평등은 개인과 집단의 목소리를 억압하며 사회적 소외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총체적 위기는 사회 전체의 안정과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소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돌봄은 지속 가능한 사회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부상했다.

돌봄,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필수적 요소
돌봄은 인간의 생존과 복지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행위이자 가치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돌봄은 여성에게 부과된 개인적 책임으로 간주되어 왔으며, 이로 인해 돌봄의 경제·사회적 가치가 과소평가되었다. 돌봄은 단지 가족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윤리적 차원의 핵심 의제로 떠올랐고, 사회적 연대와 공공선을 재구성하는 중심축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돌봄은 단순히 특정 집단의 권리 보장이나 삶의 질 향상을 넘어 사회 전체의 구조적 변혁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사회가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반을 재평가하고, 돌봄을 사회적 책임으로 확장하고 이를 통해 사회 부정의와 불평등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돌봄이 일자리나 서비스를 넘어 사회적 연대와 공공선을 재구성하는 중심축이자 시대 정신이 되어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24년 6월 3일부터 14일까지(현지 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112차 연차총회를 개최하고 ‘괜찮은 일자리와 돌봄 경제에 관한 결의안(Decent Work and the Care Economy Resolution)’을 채택했다.

돌봄은 경제적 생산성을 유지하고, 노동력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일 뿐만 아니라, 젠더 평등과 사회적 연대를 촉진하는 핵심 요소임을 이 결의안은 강조한다. 괜찮은 일자리를 보장하고 돌봄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은 단순히 돌봄 노동자와 수혜자를 위한 조치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번영을 위한 필수적인 투자이다. ILO 결의안은 전 세계적으로 돌봄 노동이 노동 시장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재조명하고, 지속 가능한 돌봄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2025년 한국 정부는 이에 부응하여 돌봄 노동의 공공성 강화, 성평등한 돌봄 체계 구축, 돌봄 노동자의 권리 보장과 이를 통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할 정책적 성찰을 하고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돌봄은 생산성을 지탱하는 중요 기반
전통적인 성장 중심의 경제 모델은 GDP 증가와 같은 양적 성과에 초점을 맞추며 인간의 복지와 공동체의 안정성을 간과해왔다. 단기적인 경제 성장을 목표로 하는 모델은 자주 인간의 복지와 돌봄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GDP와 같은 양적 성과에만 초점을 맞추며 사회적 불평등과 환경적 지속 가능성 같은 질적 가치를 희생시킨다.
이는 사회적 연대와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활동인 돌봄을 경제 체계에서 부차적으로 취급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자연 자원의 무분별한 착취와 탄소 배출 증가로 기후 위기를 가속화하며,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 자체를 위협했다. 특히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하에서 기업과 자본은 돌봄 노동을 공짜 자원으로 간주하며 이를 착취하거나 무임승차하는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는 개인과 기업이 돌봄이라는 공공재 생산에 참여할 아무런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는다.

돌봄은 경제적 생산성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이다. ILO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무급 돌봄 노동은 연간 약 10조 달러의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전 세계 GDP의 약 13%에 해당하는 규모다. 양질의 공공 돌봄 서비스에 대한 투자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촉진하고 고용 창출 효과를 가져온다.
여성주의 경제학자 낸시 폴브레(Nancy Folbre)는 “돌봄 노동은 경제적 가치로 제대로 평가되지 않아 무급 혹은 저임금 노동으로 방치되고 있다”며 “돌봄 노동은 인간 역량 형성에 필수적이며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에 기여한다”고 지적한다. 돌봄은 여전히 여성과 이주자에게 불균등하게 부과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사회적 참여를 제한하며, 돌봄 노동의 가치를 저평가하는 문화적, 제도적 문제를 지속시키고 있다.
초고령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돌봄 노동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를 동시에 부양해야 하는 ‘샌드위치 세대’의 돌봄 부담은 새로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었다. 한국은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초과해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2024년 12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인 가구는 2018년 이후 지난 5년 간 33.8% 증가했으며 이는 전체 가구 수 증가율의 세 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요양시설과 장기 요양보험 제도 확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은 돌봄 수요를 충족하기에 부족하다.

한국 사회는 저출생과 고령화로 인한 심각한 돌봄 공백에 직면해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정부는 이주 노동자의 유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돌봄 노동의 국제적 및 계층적 이동은 세계화된 경제 구조와 불균등 발전,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증가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돌봄체인(care chain) 개념은 글로벌 차원에서 돌봄 노동이 저임금의 비공식 노동으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과 돌봄의 책임이 경제적·사회적 계층에 따라 위계적으로 분배되는 현실을 조명한다. 돌봄체인은 본질적으로 국가나 기업보다는 개인과 가족에게 돌봄의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를 형성하며, 이는 공공 돌봄 시스템의 정착을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돌봄을 개인이나 가족이 아닌 사회 전체의 책임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돌봄을 재구성해야 한다. 철학자 조안 트론토(Joan Tronto)는 돌봄을 “사회적, 생태적 연대를 강화하는 윤리적 실천”이라고 규정하며, 돌봄이 없는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돌봄은 단순히 노동이나 서비스의 차원을 넘어서서 인간의 존엄성과 연대를 기반으로 한 윤리적 책임이다. 그는 돌봄이 개인의 생존과 복지를 넘어 공동체와 사회 전체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정상 가족’과 맞벌이 가구 중심의 돌봄 정책
돌봄의 사회화는 돌봄을 특정 성별이나 계층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고 책임을 나누는 구조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단순히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하며 상호 의존적인 사회를 만든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추구해왔던 돌봄의 사회화는 협소해지고 왜곡되었다. 현실에서 돌봄의 사회화는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많은 경우 ‘나는 하기 싫고, 저렴하게 남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차원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하다.
이런 태도는 돌봄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고 돌봄 노동자와 수혜자가 돌봄을 통해 공존과 연대를 도모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적 문제를 낳고 있다. 가정과 기업, 심지어 국가는 돌봄 노동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외주화하며, 돌봄 노동의 중요성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돌봄의 사회화의 본질적 의미를 재정립하고 돌봄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
가정 내 돌봄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 육아휴직, 가족 돌봄 휴가와 같은 다양한 정책을 시행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주로 이성애 부부로 구성된 이른바 ‘정상 가족’과 맞벌이 가구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돌봄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육아휴직이나 가족 돌봄 휴가는 법적 가족 관계를 기준으로 지원이 이루어지며 동성애 가족이나 비혼 근로자는 이러한 혜택에서 배제되기 쉽다. 육아휴직 제도는 안정된 일자리와 높은 소득을 가진 가구가 주로 혜택을 누리고 있다. 고용 안정성이 낮거나 비정규직인 근로자는 휴직을 사용할 여력이 없거나, 휴직 사용이 직업 안정성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는 돌봄 정책이 계층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비혼 근로자 중에는 부모나 형제자매와 같은 가족 구성원을 돌봐야 하는 경우도 있으나, 기존의 정책은 이러한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가족, 비혼 근로자, 비전형 근로자와 같은 다양한 가족 및 개인의 돌봄 필요를 포함하도록 정책을 확장하는 것이 시급하다.
공공 돌봄 서비스와 같은 사회적 안전망을 확대하는 것은 돌봄의 공백을 메우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최소한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공공 돌봄 서비스의 확대를 위해서는 돌봄 노동자에 대한 적정 임금 보장, 근로 조건 개선이 필수적이다. 국가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돌봄 예산을 확대하고, 이를 통해 양질의 공공 돌봄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지역사회 기반의 돌봄 체계를 구축해 지역 내에서의 돌봄 부담을 경감하고, 돌봄을 연대와 협력의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돌봄 체인의 악순환에 발을 내딛기보다는 더 평등하고 지속 가능한 돌봄 체계를 구축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때이다.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가 서로를 지원하며, 돌봄 문제를 공동의 책임으로 여기는 문화적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지역 기반 돌봄 생태계 구축은 청년층의 실업 문제와 돌봄 분야의 일자리 수요 증가를 연결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돌봄은 연대와 협력의 상징이자 목적
청년층과 남성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돌봄 일자리의 형태를 설계한다면, 돌봄 노동의 성별 고정관념을 해소하고 사회적 연대와 경제적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다. 기술과 전문성, 유연성을 결합한 새로운 돌봄 일자리 모델은 청년들에게 안정적인 고용을 제공하는 동시에, 사회적 돌봄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생태적 관심은 돌봄을 단지 인간 중심의 활동으로 보지 않고 지구와 생태계를 돌보는 활동으로 확장할 것을 촉구한다. 이는 기후 변화 대응, 생물 다양성 보존, 지속 가능한 자원 관리와 같은 활동을 포함하며, 모든 생명체와 생태계를 돌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지역사회의 생태 복원 활동, 재생 가능 에너지 전환, 지역 기반의 농업 확대는 모두 추가적인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돌봄의 확장은 새로운 형태의 부담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돌봄 노동의 증가가 여성과 같은 특정 집단에게 집중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이를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구현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돌봄의 사회화, 즉 사회 책임은 돌봄의 경제적 가치와 윤리적 책임을 조화롭게 연결하고, 성장 중심의 경제 모델을 넘어 인간과 생태 중심의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로 전환할 것을 촉진한다. 돌봄의 보편적 권리는 단지 정책의 확대가 아니라, 사회적 인식과 구조의 변화를 요구한다. 돌봄을 특정 계층이나 사회적 관계에 제한하지 않고, 모든 사람의 권리로 확장하는 것은 더 평등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핵심적인 과제다.
돌봄은 단순히 노동이나 서비스에 머물지 않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연결을 기반으로 한 연대와 협력의 상징이자 목적이다. 돌봄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연대는 고립과 소외를 해소하고 개인과 집단 간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더 큰 공공선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