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12.3 내란(친위 쿠데타)은 ‘극우’라는 주체가 계엄군에게 총·망치·송곳·작두·5만7천 발의 실탄을 준비하게 하고 고문과 납치 그리고 대량살상까지 염두에 둔 폭력과 야만의 물질적 실체이며 현실이다. (신진욱/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6분)
비상계엄을 발표하는 윤석열. 윤석열은 ‘돌연변이’라기보다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튕긴 필연적인 파편에 가깝다.

2025년을 시작하는 지금 한국 사회가 놓인 시대 상황을 가장 잘 집약하는 단어는 ‘위기’일 것이다. 2024년 12월 3일에 일어난 내란 쿠데타는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위기’였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한국 사회는 또한 법치, 거버넌스, 경제, 외교·안보, 가치와 규범을 망라하는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다. 하나의 ‘사회’로서 통합력과 방향성을 잃고 해체되는 중이라는 뜻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이 이 정도로 깊은 위기의 골짜기로 추락한 것은 처음일 것이다.

계엄 당시에 군 참수부대의 국회 난입, 체포조의 주요 인사 납치와 고문 작전, 국회의장과 양대 정당 대표의 사살 계획 등에서 많은 사람이 지금껏 당연시해 온 어떤 ‘전제’가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했다. 사람들은 이제 한국 사회가 법, 자유, 평화, 인권, 생명 같은 기본 가치들을 존중하는 사회가 아닐뿐더러, 바로 대한민국 국가와 정치 엘리트들이 그것을 파괴하는 주범이라는 사실을 두 눈으로 보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12․3 쿠데타로 사회가 이토록 심대한 위기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더한층 깊은 위기는 그것의 잘잘못을 따지는 규범적 판단에서 사회적 합의가 2016~2017년 박근혜 탄핵 때보다 훨씬 더 약하다는 데 있다. 국민의힘과 정부 각료들, 수많은 극우단체, 적잖은 대형 교회 목사들과 대학교수들, 그리고 보수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계엄령과 윤석열을 비호하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의 위기는 매우 깊고 위중하며 결코 광폭한 대통령 한 명 바꿔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국회에 진입한 계엄군. 실시간 생방송으로 온 국민이 지켜봤다.

세계적 위기와 무관하지 않아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계엄 이후 논의들은 대부분 이를 ‘한국 문제’로만 보고 있는데, 현재의 위기들이 국내적 사안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잘 봐야 한다. 그것은 최근의 여러 세계적 위기와 무관하지 않으며, 또한 한국의 위기가 세계적 위기를 증폭시킬 수도 있다.

지난 몇 년간 세계는 여러 중대한 위기를 연이어 겪었다. 2020년에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구적 보건 위기와 그에 뒤따른 경제, 고용, 고립의 위기를 동시에 겪은 데 이어, 2022년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했고 그 후 미국·유럽과 러시아의 외교·군사적 갈등, 그에 연동된 식량·에너지 가격 상승, 분배 정치와 녹색정치의 재정 부담에 대한 불만 격화, 이스라엘-아랍 지역과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 고조 등이 이어져 글로벌 복합 위기를 형성했다.

이 같은 복합적 문제상황은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사고를 하고 공동체의 자원을 투여해야만 대응할 수 있다.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정치’이고, 그래서 복합 위기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강한 압력이 각국 정부에 가해진다. 하지만 일국적 한계 내에서는 기존의 민주 정치 세력들이 이를 감당할 능력이 제한되기 때문에, 그에 불만을 느끼게 된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비민주 정치 세력들을 향상할 수 있는 공간이 커진다.

실제로 세계적 위기들은 최근 많은 나라에서 극우 정치의 승리를 초래하고 있다.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들의 돌풍과 녹색 정당들의 몰락, 2022~2024년에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유럽 여러 나라 선거에서 극우 정당의 성공, 미국에서 트럼프의 대통령 재선과 공화당의 상·하원 석권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우경화는 경제난, 불평등, 난민, 이주, 전쟁, 기후 재난이 맞물린 글로벌 복합 위기의 영향을 보여준다.

트럼프가 돌아왔다.

군사독재 국가만도 못한 한국의 자유도

그와 같은 국제 환경의 불안정성이 국내 정치에서 윤석열 정권의 출범과 맞물렸다는 것은 역사적 불행이다. 2022년 집권 초반부터 윤 정권은 극우, 반노동, 검찰 정권으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냈다. 대통령은 야당과 여론을 무시하고 겁박하면서 자신의 의지만을 관철하려 했고, 극우 인사들을 고위공직에 대거 임명했으며, 국가기관의 조직 지도부를 심복들로 채워갔다.

2024년 총선의 야당 압승, 김건희 스캔들, 명태균 게이트 등으로 정권이 위기에 처했을 때, 대한민국 국가조직은 이미 비상계엄 같은 극단적 해결책을 진지하게 고려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있었다.

이 시점에 많은 국제 기관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의 급격한 후퇴를 우려하면서 ‘독재화’의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었다. 스웨덴에 소재한 저명한 민주주의 연구기관인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의 연례보고서에서, 2019~2021년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세계 17~18위를 유지했으며 일본, 대만, 프랑스보다 높았고 미국, 캐나다보다는 월등히 높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2년 차인 2024년 보고서에서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 순위는 세계 47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은 중남미와 비교되는 위상이 되었다. 민주주의 수준이 상당히 떨어지는 자메이카, 수리남 같은 나라들이 한국보다 더 민주적인 나라로 평가받았고, 칠레와 우루과이는 한국보다 월등히 민주적인 나라로 평가됐다. 특히 5개 평가 부문 중 한국의 국제 순위가 가장 낮은 것이 ‘선거 민주주의’ 부문이었다. 여기에는 표현, 언론, 결사의 자유 등 가장 기본적인 민주주의 지표들이 포함된다. 독재에 아주 근접했다는 심각한 경고등이 켜져 있었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매년 발간하는 언론자유도 보고서 역시 의미심장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 언론자유도가 세계 30위까지 오르기도 했던 한국은 2024년에 62위로 추락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한국보다 한 계단 위인 61위로 평가된 가봉이 조사 시점에 군사독재 하에 있었다는 것이다. 즉 윤석열 정권 2년 차에 한국의 자유도는 군사독재 국가만도 못한 것으로 밖에서는 평가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해가 가기 전 친위쿠데타와 독재 수립 시도가 일어났다.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서?

어떻게 이토록 급속하게 권위주의화가 진행되었을까?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서’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왜냐하면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았다고 국가기관 전체가 극우화, 독재화한 것이야말로 진정 설명이 필요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요인은 다층적이다. 민주화 이후 항상 거론된 문제는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된 정치제도다. 그래서 지금 다시 내각제, 양원제, 책임총리제 등 다양한 제도개선책이 논의된다. 더 최근의 문제점으로는 ‘포퓰리즘’이 꼽힌다. 대의정치와 헌정 제도를 무시하는 대중정치라는 의미의 포퓰리즘 말이다. 또한 ‘정치 양극화’ 문제도 많이 언급된다. 특히 반대편 정치세력에 대한 증오가 민주적 규범의 준수보다 더 커질 때, 양극화는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하지만 대통령제, 양극화, 포퓰리즘 등의 문제는 12․3 계엄의 가장 날카로운 지점을 놓친다. 즉 대통령의 계엄선포 담화와 계엄사령부 포고령에 나타난 강렬한 냉전 반공주의 이데올로기, 납치·고문을 계획하고 대량 살상까지 염두에 둔 계엄군의 야만성, 많은 군부 엘리트의 정치적 야심과 결속, 그리고 대북 전쟁 도발 행위 등이 그것이다. 갑자기 현실로 불러내어진 것은 5.18과 4.3의 역사,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의 페이지들이었다.

5.16 쿠데타(당시 5.16 혁명)를 다룬 대한뉴스 제314호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박정희 모습.
5월 광주에서 국민을 학살하고 그 피 위에서 체육관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선출되는 전두환.

12.3 비상계엄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냉전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와 국가 폭력의 행동양식을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윤석열이 그동안 수없이 외쳤던 “종북 공산주의”, “반국가 세력”, “체제전복 세력”의 절멸 의지는 담론에 그치지 않고 계엄사령부 포고령에서 실제적인 행동 규제와 ‘처단’ 의지로 제도화되었고, 계엄군이 소지한 야구방망이, 작두, 망치, 송곳 등 고문 도구와 5만 7천 발의 실탄으로 물질화되었다.

이를 단순히 윤석열 대통령의 개인 성향으로 설명할 수 없다. 12.3 쿠데타의 공모자는 윤석열 혼자가 아니라 당, 정, 군, 검, 경, 국정원의 수많은 권력자, 그리고 그들과 연계된 사회 내의 극우 조직과 인사들을 포함한다. 즉 12.3쿠데타는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개인의 망상이 아니라, 그를 정점으로 한 거대한 극우 ‘세력’의 부상(浮上)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12.3쿠데타를 설명하는 데에서 ‘극우’라는 결정적 행위자를 빼놓고 대통령제, 양극화, 포퓰리즘의 문제를 논하는 것은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에서 동떨어진 일반론에 그칠 수 있다.

한국의 극우세력이 이렇게 된 이유

그렇다면 한국의 극우세력은 왜 ‘지금’ 세계를 충격에 빠뜨릴 정도의 힘과 야욕, 광기를 갖게 되었는가?

냉전 반공 극우세력의 조직화는 민주화 직후부터 시작됐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반공단체에 뿌리가 있는 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운동본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등 단체들이 그때 창립됐다.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햇볕정책, 국가보안법 폐지 정책 등에 반발하여 많은 반공반북 단체가 생겨났다. 하지만 우파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보수단체들이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위협하거나 군을 호명하는 일은 드물었다.

노골적으로 내란에 동조하는 국민의힘 의원들.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와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국민의힘 의원들과 함께했다. 공수처의 영장 집행 시도는 명백한 불법이다. (중략) 국민을 기만하고 법치를 파괴하는 위험한 선례가 만들어지는 것을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경원 페이스북 게시물, 2025년1월6일 오후)
“오늘 새벽 저를 비롯한 우리 국민의힘 40여 명의 의원들이 대통령 관저 앞에 모여 공수처의 위헌적이고 위법적인 법 집행을 강력히 규탄했습니다. 저와 우리 국민의힘 의원들은 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공수처의 초법적 행위에 맞서 끝까지 싸워나갈 것입니다.”(김기현 페이스북 게시물, 2025년 1월6일 오전)

군사주의적 반공 냉전 극우가 극도로 능동화, 대중화되고, ‘보수’ 정치를 궤멸시키면서 제도 정치에서까지 주류화한 것은 2019년 하노이 미·북 회담 실패 이후 불과 지난 몇 년 사이의 일이다. 박근혜 탄핵 당시에 극렬한 탄핵 반대 운동들이 일어났지만 12.3쿠데타를 박근혜 탄핵이 남긴 원한 때문으로 볼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 2년 차인 2018년까지만 해도 대통령 국정 긍정 평가는 70%를 넘었다. 특히 남북 간 평화 정착에 대해서는 진보와 보수 시민들을 아우르는 합의가 있었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남북, 북미 관계가 단절되고 적대적 행위가 빈번해지면서 반 문재인·반 민주당 정서는 반공반북의 프레임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필자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강경 보수 시민들의 집회 시의 참여는 2019년부터 급증하여 진보층을 압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동안에 정부의 방역, 백신 정책에 대해 극우의 음모론적 가짜뉴스 컨텐츠와 전달 매체가 대대적으로 확대되었다. 문재인 정권 후반기에 극우 세력의 급성장과 과격화는 국제적인 복합 위기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다.

윤석열은 그런 시대적 환경에서 선택됐다. 2019년 이후 한반도 긴장 고조와 국내 정치 우경화라는 배경 위에서, 윤 정권 첫해인 2022년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이후 서방과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2024년 북한의 두 국가론 공식화와 북한-러시아 밀착 등 국제 정세는 한국 민주주의에 잠재적 위협을 점점 더 높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과 그의 군부 파트너들은 국제 군사 분쟁을 한반도로 옮겨 와서 독재의 기반 환경을 조성할 절호의 타이밍을 발견했다. 윤석열과 김용현이 서해상에 포를 쏘아대고 무인 드론을 평양 상공에 보내면서 쿠데타 준비를 본격화한 시점이 2024년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현실 정치 풀어야 정책의 시간 열린다

이처럼 국제적 복합 위기 속에 발생한 국내 정치 위기는 역으로 세계적 위기들에 한국이 대응할 능력을 마비시키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의 모든 에너지는 독재화를 감행하는 세력과 이를 저지하는 세력 간의 생사를 건 투쟁에 집중되어 있다.

그에 따라 트럼프 시대에 대응하는 외교·경제 전략, 불평등 완화 방안, 젠더 정책, 기후변화 대응과 같은 모든 정책 의제가 공론장에서 사라졌다. 정치 위기는 정치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역할들을 중단시켰고, 지금 한국 정부는 밀려오는 글로벌 복합 위기에 아무런 비전도, 대응도 없는 채로 그저 흘러가는 시간 속을 부유(浮遊)하고 있다.

이 상황이 아무리 안타깝다 해도 민주주의와 거버넌스 시스템을 복원하기 전에는 정책의제들을 다룰 수 있는 현실적 토대가 없다. “또다시 민주-반민주 구도에 갇혔다”고 비판하긴 쉽지만, 군대와 고문 도구의 물질적 현실로 나타난 민주주의 위기를 관점의 문제로 돌리는 것만큼 관념론적인 태도가 어디 있겠는가.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내전은 어쩌면 이제 시작되었다. 현실에서 이런 정치 문제를 풀어야 정책의 시간이 열린다. 하지만 어렵게 정책의 시간이 열렸을 때 대안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다시 정치 위기가 도래할 것이다. 그 시간을 지금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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