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호 칼럼] 오늘은 [달러 전쟁] (2024, 살레하 모신)에 관한 서평입니다. (6분)

달러 전쟁 (Paper Soldiers: How the Weaponizaion of the Dollar Changed the World Order, Saleha Mohsin, 2024, Portfolio. 서정아 역, 2024, 위즈덤하우스)

살레하 모신(블룸버그 기자)은 경제-정치-국제관계라는 삼각 축에서 ‘달러’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역대 미국 재무부 인사들을 광범위하게 인터뷰한 결과물이라 정책의 결정 과정과 정치적 논란까지 접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실무가들에게 매우 유용하다. 책의 주제는 ‘환율과 관련된 거시경제정책’ ‘금융 제재 수단으로서의 달러 체제’ 둘로 구분할 수 있다.

두 번째 부분은 대다수 이코노미스트에게 생소할 것이다. 나는 과거 이와 관련된 일을 해 본 적이 있어서 특별히 관심 있게 읽었다. 미국에서는 달러와 금융 제재에 대한 책이 여러 권 나와 있는데 이 책이 가장 쉽고 생생해서 입문서로 특히 좋다고 생각한다.

강한 달러, 약한 달러

클린턴 정부 두 번째 국무장관 로버트 루빈이 “강달러가 미국의 이익”이라고 선언한 이후 이 슬로건은 지금까지 30여 년간 미국 정부와 세계 금융시장의 금과옥조가 되었다.

금융업 통신업의 탈규제 및 세계화와 함께 강달러를 통해 미국은 막대한 해외 자금 유입으로 정부의 차입 비용을 낮게 유지했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었으며,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는 막대한 이익을 누릴 수 있었다.

단점도 있었다. 미국 제조업 가격 경쟁력은 직격탄을 맞았고, 제조 기업은 공장을 해외로 내보내거나 사업을 접었다. 제조업에 고용되었던 노동자들은 실직자가 되었다. 미국 내륙(러스트 벨트라고 부르기도 하고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내려다보는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플라이 오버 스테이트라고 부르기도 한다)이 경제적으로 텅 빈 지역으로 변모했다.

로버트 루빈(Robert Rubin, 1938년생, 빌 클린턴 정부하에서 1995-1999 미 재무부 장관 역임) 사진은 위키미디어 공용. 2014.
20세기 대부분 동안 세계 최대 철강 제조업체 중 하나였던 펜실베이니아주 베들레헴에 있는 베들레헴 스틸의 녹슨 철강 더미. 하지만 1982년 베들레헴 스틸은 대부분의 생산을 중단했다. 2001년에 파산 신청을 했고 2003년에 해산했다.

대부분의 정치인과 금융기관과 주류 언론은 이를 무시했다. 의회는 루빈을 끔찍하게 아껴 상원 금융위원회 위원장 밥 팩우드(공화당, 오레곤)는 인사청문회 10분 만에 루빈 지명을 인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민주당 소속 재무부 장관들은 철저하게 이 노선을 견지했다. 특히 루빈의 후임인 래리 서머스와 오바마 1기 재무장관 팀 가이트너는 루빈 장관 밑에서 각각 차관과 부차관보를 역임한 골수 루빈계였다.

공화당은 민주당과 다소 결이 달랐지만, 큰 틀에서는 루빈의 자장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첫 재무부장관 후보로 폴 오닐을 지명했다. 그는 알루미늄 생산업체 Alcoa의 CEO이자 닉슨 행정부에서 예산처(OMB) 차장을 지낸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었지만 금융 경력은 없었다.

뉴욕타임스 상원 인사청문회 전날 “오닐은 수출업자이기에 달러 약세를 선호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러한 의문에 대해 그 어떤 발언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댜. 이 기사를 본 투자자들은 미국 채권을 내다 팔았고 달러는 급락했다. 다음날 오닐은 청문회 모두발언을 “저는 강력한 달러를 선호합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와 미국 메인스트림 언론의 제조업 출신 재무부장관 길들이기는 이만큼 강력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스톤은 오닐이 재무부 장관을 마친 후 모셔갔다. 월스트리트는 그런 식으로 보답했다. 부시는 두 번째 재무부 장관도 철도 업체 CSX의 CEO 존 스노를 임명했으나 결국 임기 후반에는 골드만삭스 출신 행크 폴슨을 재무부장관으로 선택했다.

조지 W. 부시 정부의 재무장관들. 왼쪽부터 폴 오닐(72대), 존 W. 스노(73대), 행크 폴슨(74대).

트럼프 1기 재무부장관은 스티븐 므누신이었다. 2018년 1월 스위스 다보스 포럼 기자 간담회에서 므누신은 ‘약한 달러는 무역과 기회 창출 측면에서 우리에게 유익하다’라고 당연해 보이는 발언을 했는데, 이것이 보도되자마자 투자자들은 달러를 투매했고 하루 만에 달러 가치는 2.1% 하락했다. 므누신은 몇 시간 후 바로 수습에 나섰고,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서 마지못해 ‘궁극적으로 달러 강세를 목표로 한다’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날 므누신의 발언은 단순한 실수는 아닌 것 같다. 월스트리트가 약속한 강달러와 세계화의 과실에 대한 장밋빛 약속에 정치권과 언론이 취해있었을 때도, 노동조합과 제조업계는 강달러 노선을 폐기할 것을 촉구해 왔다. 2016년 대선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가 중요 정치인 중 처음으로 이에 주목했다. 그는 러스트벨트 노동자의 표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중국과 유럽이 자국 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어 미국에 수출을 늘리는데, 왜 미국은 수수방관하면서 미국 기업과 일자리를 지키지 않느냐고 여러 차례 비난했다.

제77대 미 재무부 장관 취임 선서를 하는 므누신(왼쪽에서 두 번째).

이 책이 나온 후 트럼프는 대선에서 다시 한번 승리했고 2기 취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번에도 트럼프는 재무부장관을 월스트리트에서 구했다. 헤지펀드 거물인 스콧 베센트를 지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오바마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을 역임한 민주당 측 논객인 제이슨 퍼먼까지 나서서 “그는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즉각 환영했다.

트럼프 당선 이후 시장은 대체로 강한 달러를 점치고 있고, 단기에는 이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중국 타게팅이나 생산시설 국내 이전만으로 러스트 벨트 제조업이 부활할 가능성은 작다. 그 시점에 경제 정책은 어떻게 진행될까? 국내 정치 측면에서 이들에게 다가가야 하는 정치권이 강한 달러에서 일정 부분 물러날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압력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모두 느낄 것이다.

달러라는 치명적 무기

이 책의 두 번째 주제는 금융 제재이다. 2001년 911 테러는 미국의 군, 정보기관, 국무부뿐 아니라 재무부의 모습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에 나서면서 ‘달러의 힘을 활용해서 전 세계 테러 네트워크의 금융 기반을 공격’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국 재무부는 전통적으로 ‘국내금융실’과 ‘국제업무실’의 양대 축으로 구성되었는데, ‘테러금융정보실’이 핵심 부서로 추가되었다. 국제적으로도 ‘자금세탁 방지 국제기구’는 ‘자금세탁 및 테러금융방지 국제기구(FATF)’로 확대되었다.

그중 핵심은 스위프트(SWIFT; 국제은행간통신협회; 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였다. 이 기구는 1973년 벨기에에 설립되었지만,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감독을 받는다. 스위프트는 금융기관이 아니라 예금계좌도 없고 투자 자산도 없다. 전 세계 금융기관의 거래 메시지를 주고받는 시스템을 독점적으로 운용한다.

스위프트 홈페이지 모습.

이를 통해 국제 무역대금, 투자거래, 외환거래의 결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스위프트에서 배제된 금융기관은 정상 영업이 불가능하다. 911 이후 미국 정보당국은 스위프트가 보관하고 있는 거래 정보에서 테러리스트의 흔적을 찾으려고 시도했다. 거래의 대부분이 달러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스위프트는 미국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양측은 ‘스위프트가 미국에 협력하되 미국은 이를 남용하지 않는다’라고 합의했다.

미국 재무부는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서 전면에 나섰고, 이 전선은 더욱더 확대되어 갔다. 이란과 북한의 핵 개발 과정에서도 미국 정부는 양국을 달러 네트워크에서 배재하였고, 심지어 이들과 거래하는 제3국 금융기관도 제재하려고 하였다. 이때 오바마 2기 재무부 장관이었던 잭 루는 달러의 무기화 남용 위험을 경고하였다. 달러의 힘은 전 세계가 달러를 쓰는 것에서 나온다. 미국이 이 힘을 남용하면 각국은 달러 네트워크에서 이탈해서 다른 통화 다른 결제 시스템으로 이동하게 될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달러의 무기화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경종을 울린 것이다.

달러의 무기화 남용 위험을 경고한 잭 루(제76대 미 재무부장관). 사진은 위키미디어 공용. 2010.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직후 바이든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에서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은 재무부장관과 상의도 하지 않은 채 ‘러시아 중앙은행이 해외에 예치한 달러화 인출을 봉쇄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보고하였다. 그는 이 경제 제재가 ‘핵무기급’이라고 특별히 강조하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조치를 받아들일 것을 암시하면서 재무부 장관 재닛 옐런에게 의견을 물었고 옐런은 판단을 보류하였다. 이 조치가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달러화 보유를 기피하게 할 위험을 염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안보실은 이를 밀어붙였고 옐런은 수용하였다.

잭 루의 경고와 옐런의 염려는 시간을 두고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브라질 대통령 룰라는 2023년 중국 상하이에서 ‘왜 모든 국제 거래를 달러로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달러를 피할 방법을 모색할 것’을 촉구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인도 등 글로벌 사우스의 여러 나라에서도 유사한 목소리가 퍼지고 있다. IMF에 의하면 2000년 이후 전 세계 중앙은행 보유고 중 달러의 비중은 10%포인트 이상 하락하였다. 이것을 보고 ‘여전히 달러의 위상은 굳건하다’와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중 어떤 것에 주목할지는 논쟁의 대상이다.

관련 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