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탄핵 국면에서 단연 눈에 띈 사람이 우원식(국회의장)이었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의원들을 소집해 계엄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켰고 이후 두 차례 윤석열 탄핵소추안 투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차분하고 품위 있는 모습이 돋보였다.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이 많아 간단히 정리해 본다.

모두가 기다렸던 메시지, “다음 단계로 나아갑시다.”

  • 국민이 궁금해할 탄핵 다음 스텝을 매우 간결하게 정리했다.
  • 무엇보다 전체적인 구성이 좋았다. 국회와 헌법재판소 공무원들이 모두 제 할 일을 할 테니 국민들도 일상에 전념해 달라는 메시지였다. 국민으로 시작해 국민으로 끝났다.

“국민 여러분의 용기와 헌신이 이 결정을 이끌었습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삶으로 증명됩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갑시다.”

“취소했던 송년회, 재개하시길 당부드립니다. 자영업 소상공인 골목경제가 어렵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리의 희망은, 국민 속에 있습니다. 희망은, 힘이 셉니다.”

  • 이 연설이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음도 알 수 있다. 문장들이 영어로 옮겨도 쉽게 옮길 수 있도록 쓰여 있다.
  • 예) “국민의 헌신이 이 결정을 이끌었다”—> Your dedication/commitment (to democracy) led to this decision
  • 무엇보다 이 메시지의 감동을 완성한 것은 광장과 국회를 2중 분할한 화면 송출이었다. 이 연설을 작성한 메시지 수석이(검색해 보니 전 청와대 메시지 담당) 예상할 수는 없었겠지만 마침 광장에서 흘러나온 노래 ‘다시 만난 세계’의 가사와도 기가 막힌 합을 이뤘다.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 마, 눈앞에선 우리의 거친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다시 만난 세계’ 가운데.)

  • 현장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디오 상태가 좋지 않아 연설을 잘 들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 대신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연설의 BGM이 된 셈이다. 실제로 광장 노랫소리를 강조한 MBC 중계와 광장 소리를 줄인 SBS의 중계와 비교해 보면 MBC 중계에서 연설문의 느낌이 훨씬 더 극적으로 살아난다.

“국회의원 선서를 지켜달라.”

  • 1차 탄핵안 표결 때 국민의힘 의원들이 단체로 불참하자 투표 종료 시각을 늦추면서 투표 참여를 촉구했다.
  • 이런 말을 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여러분께 호소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한다’는 내용이 담긴 국회의원 선서를 지켜달라.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을 지키고,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 이날은 국민의힘 의원 3명이 참여하는 데 그쳤지만 이날의 경험이 2차 표결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을 불러 모았을 것이라 믿는다.

(사진은 왼쪽부터 우원식이 12월3일 저녁 국회 담을 넘는 모습, 11일째 국회의장실에서 먹고 자고 하는 모습, 마지막은 탄핵소추안 의결서 송달 확인서.)

역사적 순간, 판단력과 절제력이 돋보였다.

  • 우원식은 내내 법질서를 깨는 일 없이 본인의 임무에 충실하고 절차를 정식으로 진행했다.
  • 3일 밤엔 국회 앞에서 막아서는 경찰들 앞에서 항의할지 생각하다가 일단 투표를 주재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 담장을 넘었다고 한다.
  • 일부 의원들이 빨리 표결하자고 재촉하는데 “국회가 정한 절차에 오류가 없도록 진행해야 한다”며 서두르지 않았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애가 탔지만 나중에 절차를 문제 삼을 수 있다고 보고 차분하게 절차를 밟았다.
  • 하지만 극적인 순간에서는 중요한 결정을 이야기하기 전 약간 뜸을 들인다거나 의사봉을 두드리는 강도를 조절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요즘 말로 ‘드뮤어(demure; 얌전한, 단정한)’ 했다. 절제되고 우아했다.

넥타이 색깔조차 사려 깊고 뜻깊었다.

  • 우원식이 그동안 맨 넥타이를 보면 의장으로서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특정 정당의 색깔로 오해받을 수 있는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다만 중요한 결정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정치적 스승인 고 김근태(전 민주당 의원)가 물려줬다는 초록색 넥타이를 착용했다. (김근태의 지역구는 서울 도봉구, 우원식은 노원구다.) 이 넥타이는 재미있게도 광장에서 가장 주목 받았던 응원봉인 NCT의 망치봉 색깔과 일치한다.
  • 가슴에는 제주 4.3비극을 상징하는 동백꽃 배지를 국회의원 배지와 함께 달았다.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총평: 국회와 광장을 연결하는 완벽한 메시지와 엔딩.

  • 최근 한국갤럽 조사에서 우원식은 정계 요직 인물 가운데 ‘신뢰한다’는 응답이 5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18세 이상 1002명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 총평을 하자면 우원식은 단순히 국내뿐 아니라 해외까지 이 광경이 중계되고 보도될 것을 생각해서,
  • 진행은 차분하게,
  • 메시지는 임팩트 있게,
  • 광장의 국민들과 연결될 수 있도록 비주얼 상징을 빼놓지 않았다.
  • 한국이 질서 있고 차분하게 민주주의 절차를 지켜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에 입증하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실제로 한국의 대외 신인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한다.
  • 우원식이 의사봉을 두드리는 모습을 세계 시민들이 지켜봤다. 민주주의의 법적 결집체인 국회와 실질적 결집체인 광장의 비주얼이 민주주의(국민이 주인 되는)의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상징적 모습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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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양극으로 언론이 매도당하지만.. 붓이 칼이라고 배웠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깊고 정제된 글이 마치 우원식 의장과 결
    이 같게 느껴집니다.
    우원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우의장 연세가 저랑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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