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인 칼럼]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의 기회… 탄핵 인용과 중임제+결선 투표제 개헌, 동시에 갈 수 있다(⌚6분)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찬성 204명에 반대 85명이다. 생각보다 아슬아슬하게 통과됐다.
탄핵소추안을 다루는 헌법재판소의 심의 기한은 최장 180일이다. 내년 6월 12일 목요일이 시한이다. 헌재에서 인용이 되면 대선은 60일 이내에 치러야 한다. 따라서 아무리 늦어도 다음 대선은 2025년 8월 11일 이전에 치러진다.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이유.
-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탄핵이나 박근혜 탄핵 때보다 쟁점이 단순하기 때문에 180일까지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 그런데 인용 가능성이 100%라고 보지는 않는다. 70~80% 정도라고 본다.
- 일단 현재 헌재 재판관이 6명인데 이 가운데 한 명만 윤석열에 동조해도 탄핵은 기각된다. 윤석열이 “끝까지 가보겠다”고 노리는 것도 이런 가능성을 보기 때문일 거라고 본다.
- 윤석열은 자신이 이겨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을 수도 있다.
노무현은 살아 돌아왔다.
- 윤석열은 지금 자신을 누구에게 투사하고 있을까. 노무현이다.
- 이명수(서울의소리 기자)의 김건희 7시간 녹취록 등에서 김건희가 한 말이 있다. 윤석열은 노무현의 광팬을 자처하고 있다. 혼자 노무현 영화를 보며 몇 시간씩 울기도 했다고 한다. 검사 후배들과 3차로 노래방에 가면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불렀다고도 한다.
- 아마 지금도 자신의 처지를 노무현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수 있다. 노무현이 탄핵에서 돌아왔듯이, 직무 정지 기간 동안 부정선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2004년 촛불 집회처럼 지지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여론이 뒤집힐 것이라고 믿고 있는 걸 수도 있다.
중도‧보수가 최대 5명, 헌재의 변수.
- 지금 공석인 헌재 재판관들은 절차를 거쳐 빠르게 임명될 것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도 빠르게 진행될 것이고 대통령 권한 대행이 임명을 미룰 이유도 명분도 없다. 속전속결로 진행되면 2주 안에 헌재 완전체가 된다.
- 민주당 추천이 2명이고 국민의힘 추천이 1명이다.
- 인용될 확률이 100%가 아니라고 한 까닭은 현재 6명의 헌재 재판관 가운데 윤석열이 임명한 사람이 4명이기 때문이다.
- 김형두와 정정미는 김명수(전 대법원장) 추천이고, 김복형은 올해 9월 조희대(대법원장) 추천이다. 정형식은 대통령 지명 몫으로 윤석열이 임명한 사람이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이들 4명은 기본적으로 보수 성향이다.
- 문제는 상식적인 보수와 윤석열이 노출한 음모론적 극우 보수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식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법조인이라면 다른 판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만 나는 그 상식선을 넘어설 위험이 있는 재판관이 없지 않다고 본다.
4월19일 전에 끝난다.
- 헌재 재판관 9명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3명과 국회와 대법원장 추천 각각 3명씩으로 구성된다.
-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문형배와 이미선은 내년 4월이면 임기가 끝난다. 윤석열은 이들을 적으로 여기고 있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끝까지 탄핵을 피하거나 미루려고 했던 것도 이들 임기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 한덕수(대통령 권한 대행)가 국회 추천 몫 3인의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대통령 몫 재판관을 임명할 권한은 없다.
- 그래서 헌재는 이들 두 재판관의 임기인 4월19일 전에 윤석열 탄핵 심의를 끝내려 할 가능성이 크다.
- 지금 헌재 구성은 진보와 중도‧보수 비율이 2:4다. 여기에 국회 추천 3명이 합류해도 4:5가 된다. 민주당이 2명을 추천하지만 여전히 중도‧보수 성향의 비율이 높다.
윤석열 담화를 다시 보자.
- 목요일 윤석열 담화는 언뜻 미친 소리 같았지만 법리적으로 따져보면 간단치 않다.
- 일단 윤석열은 자기가 벌인 짓이 내란이 아니라고 보는 헌법학자들도 많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없는 것이 아니다. 퍼블릭뉴스에 “헌법의 시각에서 보는 탄핵과 내란죄 논란”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 한 이인호(중앙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계엄권 발동은 헌법의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위헌적인 행위라고 해서 대통령을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 이인호 같은 사람이 다수는 아니다. 하지만 윤석열 입장에서 볼 때는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윤석열.
- 윤석열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걸까.
- 목요일 담화는 윤석열이 직접 작성했지만 윤석열의 검사 선배 김홍일(전 방통위원장)이 함께 검토했다고 한다.
- 많이 알려진 에피소드지만 윤석열은 대학 시절 12.12쿠데타를 주제로 진행한 모의재판에서 재판장을 맡았다. 윤석열은 내란 수괴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지금이야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모의재판이 있었던 날이 1980년 5월8일. 5월17일 비상계엄이 확대되기 9일 전이었다.
- 실제로 전두환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 보안사령부에 근무하던 윤석열의 먼 친척이 윤석열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윤석열을 피신시키라고 귀띔했다고 한다.
윤석열이 ‘전두환과 나는 다르다’고 보는 이유.
- 목요일 윤석열의 담화를 들여다보면 윤석열의 생각이 1980년 언저리에 굳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1980년은 12.12 군사쿠데타 이후 반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고 1996~1997년 전두환과 노태우가 내란 수괴 등 혐의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많이 업데이트됐다.
- 윤석열은 9수 끝에 1991년에서야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1994년에 검사로 임용됐다. 임용 뒤엔 술 마시느라 공부를 제대로 안 했을 수 있다. 전두환처럼 민간인에게 발포하는 정도만 아니라면 합법적인 계엄 선포가 가능하다고 믿고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임기 단축 개헌 가능할까.
- 불확실성을 해소할 방안이 필요하다. 나는 유일하고 확실한, 평화적 방법은 임기 단축 개헌밖에 없다고 본다.
- 개헌안 발효와 동시에 현직 대통령의 임기를 끝내는 걸 부칙을 넣고 헌재 탄핵 결정이 나기 전에 국민투표로 개헌안을 통과시키자는 제안이다.
- 이 경우, 대통령이나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치지 않고 막바로 국민투표로 넘어가기 때문에 윤석열이나 내란 부역자들이 파투 낼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개헌하려면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의 ‘탄핵연대’를 유지하면 안 될 것도 없다고 본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일부 넘어올 가능성이 있다.
- 탄핵도 통과됐는데 굳이 개헌이 필요하냐는 의견도 있고 탄핵에 집중해야 할 상황에 파이팅이 분산된다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6월 항쟁의 경험을 보자.
- 1987년 6월 항쟁은 7월 9일 이한열(열사) 장례식을 시작으로 여야가 개헌 합의에 이르기까지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개헌한 합의가 8월 31일이고 개헌안 국민투표는 10월 27일이었다. 그때 시작한 6공화국이 지난 37년 동안 삐그덕거리면서 굴러왔다.
- 1987년 개헌이 그렇듯 제도가 바뀌는 명예혁명은 단기간에 신속하게 벌어진다. 지금도 어쩔 수 없다.
- 헌재 판결 시한으로 예상되는 4월 19일 이전에 국민투표가 시행되도록 일정표를 짜야 한다. 개헌안은 이미 여럿 나와 있다. 새로 만들 것도 없고 지금까지 나온 개헌안을 기준으로 삼아 논의하면 된다.
- 토론 시한과 일정표만 확정하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라고 본다.
개헌 논의, 탄핵과 별개로 갈 수 있다.
- 국회가 주도하는 개헌과 헌재의 탄핵 재판은 별개의 과정이다.
- 국민투표로 윤석열의 임기가 중단돼도 헌재 탄핵 심리는 계속된다. (새 대통령이 뽑힌 이후에 탄핵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내란 혐의 재판도 마찬가지다.
- 시한도 한정적이지만 개헌에서 담을 내용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경로 의존성이다. 당장 내각제 개헌은 쉽지 않고 현실적으로 4년 중임제와 결선 투표 도입 정도가 최선일 수 있다. 나는 이 정도로도 한국의 정치 환경이 혁명적으로 바뀔 거라고 본다.
대선 승리가 코앞인데?
- 민주당은 개헌에 관심이 있을 리 없다.
- 당장은 내란 특검에 집중하면서 헌재가 가결하도록 압박하는 게 최선의 전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본다.
- 바로 지금이 개헌을 위한 마지막 기회다. 지금 미루면 6공화국 청산도 기약 없이 뒤로 밀리게 된다.
더 큰 판을 보자.
- 지금 민주당은 탄핵안이 인용된다는 전제 아래 60일 뒤 조기 대선 프로그램을 가동하려고 한다. 나는 그러다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본다.
- 6공화국의 마지막 대통령은 윤석열로 끝내고 새로운 대통령이 7공화국을 열도록 하자는 이야기다. 끝이 불행할 수밖에 없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지금이 기회다. 탄핵의 강을 건넌 보수와 진보가 힘을 합쳐 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