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 베테랑 기자 김훤주가 세상 이야기를 따뜻하고 담백한 시선으로 전합니다.
며칠 전 삿갓배미를 보았다. 옛날에는 흔했지만 요즘은 귀해진 삿갓배미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삿갓은 삿갓처럼 조그맣다는 말이고 배미는 한 배미 두 배미 세 배미 하며 논을 헤아리는 단위다.
삿갓배미의 유래는 이렇다. 옛날 농부가 논에서 김을 매다가 세어 봤더니 한 배미가 모자랐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기에 집에나 가야겠다면서 벗어둔 삿갓을 집어 드니까 그 밑에 사라진 한 배미가 있었다.
논이 얼마나 작았으면 이런 말까지 생겨났을까. ‘삿갓배미를 열 개 모아도 한 마지기(200평) 될까 말까……’ 이런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부쳐 먹을 땅이 얼마나 없었으면 가파른 산비탈에 자투리까지 논으로 만들었을까 싶다.
언덕배기 비탈진 땅을 논으로 만들려면 무엇보다 전후좌우 수평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돌로 축대를 쌓고 안쪽을 흙으로 채워야 하는 것이다. 달구지 같은 것은 들어가지 못하니 지게로 나르는 수밖에 없었다.
삿갓배미는 층층이 계단을 이룬 다랑논(산골짜기 비탈진 곳에 층층으로 된 좁고 긴 논)에서 높은 위쪽에 주로 있었다. 같은 노동을 해도 훨씬 더 힘이 들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모내기 때도 가을걷이 때도 무거운 짐을 지게로 지고 비탈을 오르내려야 했다.
이처럼 가성비가 떨어지는데도 옛날 사람들은 삿갓배미를 위해 고달픈 노동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에 이르기까지 쌀 한 톨이라도 더 장만해 자식들 배 곯리지 않으려고 있는 피땀 없는 피땀 갈아 넣은 삶의 터전이 바로 저기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삿갓배미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묵정이가 되어 수풀로 뒤덮이면서 자연으로 돌아간 것도 많고 포클레인이 보급된 덕분에 큰 배미 하나로 합쳐진 것들도 적지 않다. 이번에 본 이 삿갓배미도 원래 모습 그대로는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다랑논은 아름답다. 많은 이들이 함양·합천·밀양·남해의 다랑논을 찾아와 감탄하며 구경한다. 이제 시대가 달라졌으니 앞선 세대가 이룩한 고단한 노동의 결과라는 것까지 굳이 기억할 필요는 없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