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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4일, 서울을 비롯한 중부 지방에 많은 눈이 내렸다. 이 날 오후 2시 기준으로 서울에 25.8cm의 눈이 쌓인 기록적인 폭설이었다.

(2010년) 1월 4일 중부지방 폭설로 뒤덮인 서울의 탑골공원. (CC BY-SA 2.0)
(2010년) 1월 4일 중부지방 폭설로 뒤덮인 서울의 탑골공원. (CC BY-SA 2.0)

2010년 1월 폭설, 지붕 없는 지하철역 입구

농사를 짓든, 차를 몰든, 걸어 다니든 간에 아침에 내린 눈은 모두를 힘들게 했다. 출근하러 도착한 지하철역 입구부터 계단까지 눈이 쌓여 있었는지 치우긴 했는데 진창이 되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역 입구의 에스컬레이터는 멈춰 있었고 발판과 손잡이에 있던 눈 혹은 물 때문에 내려가는 길이 무척 위태로웠다.

여기저기 다녀보면 지하철역 입구에 지붕이 있는 역이 꽤 많은데 왜 이곳에는 없을까. 2010년 4월경,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서울도시철도공사와 서울시 민원을 통해 문의했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블로그에 남겼다.

그 당시 썼던 글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지하철 출입구의 지붕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임기 중에 만든 디자인서울 가이드라인에 따라, 가능하면 설치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안전/유지관리상 필요한 경우 심의를 거쳐서 설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서울도시철도공사 측과의 전화통화에서는 사실상 심의가 통과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지하철캐노피2 (CC BY-NC-ND)
지하철캐노피2 (CC BY-NC-ND)

결과적으로 ‘지속적으로 서울시에 캐노피의 필요성에 대하여 건의하고 있으며, 도시계획 변경등 외부 여건 변화시 지붕(캐노피) 설치를 재검토할 것’이라는 도시철도공사의 답변은 받았지만, 그 후로도 한동안 변화는 없었다.

2010년 9월 21일, 추석 전날

그리고 2010년 9월 21일. 그날은 추석 전날이었다. 일찍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서울 남서부 등 일부 지역에 시간당 100mm 이상 쏟아졌으며, 서울 쪽 관측 기록은 하루 259.2mm에 달한 기록적인 폭우였다.

이미 고향으로 가는 기차표를 예약해 두었기 때문에 여전히 지붕이 없는 지하철역 입구를 거쳐 서울역까지 어찌어찌 도착했다. 하지만 역에서 만나기로 했던 동생은 일부 지하철 노선이 물에 잠기고 버스조차 중간에서 회차하는 바람에 결국 서울역에 오지 못했다. 동생은 우여곡절 끝에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 한참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저녁 늦게나 본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뒤로도 눈과 비가 올 때마다 이런 기억들을 떠올리며 위태롭게 역으로 내려가는 날이 계속되었다.

2013년 5월, 지하철역 입구 지붕 설치가 결정되다

그리고 2013년 5월이 되었다. 퇴근길에 지하철역 바깥으로 나가려는데 무언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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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지하철역 입구에 지붕을 설치한다는 것이다. 3년 전에 썼던 글이 떠올랐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붕 설치가 결정되었는지도 알고 싶어서 도시철도공사에 문의했다. 도시철도공사 담당자는 전화 통화에서, “2010년 폭우 때문에 광화문역 등의 침수 피해를 겪은 이후 시민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지붕 설치를 추진해왔고, 최근 서울시에서 ‘캐노피 표준형 디자인’을 마련하여 이에 따라 일부 역 입구부터 차례로 지붕을 설치하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기존에 지하철역 입구의 지붕(캐노피)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서울시민디자인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디자인서울 가이드라인이 지붕은 가급적 설치하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 심의라는 절차의 번거로움 때문에 적극적이 추진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의 세계를 관찰하는 것이 디자인의 출발점

미국의 디자인 기업 아이디오(IDEO)의 CEO 팀 브라운은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관찰해야 한다. (…) 그들의 세계를 관찰하고 경험해야 한다. 이것이 위대한 디자인의 출발점”이라 말한다. 하지만 오세훈의 디자인 서울은 오랫동안 지하철역 입구 지붕에 관해 ‘미관상’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의 불편을 강요해왔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지붕 설치가 추진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심의 절차 없이 바로 적용 가능한 ‘캐노피 표준형 디자인’은 박원순 시장 취임 5개월 만인 2013년 3월 13일에 발표되었다.

[box type=”note” head=”도시철도공사의 온라인 답변 전문”]

안녕하십니까?
항상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 운영에 깊은 관심과 격려에 감사 드립니다.

도시철도공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5~8호선 외부 출입구는 건설시 대부분 캐노피를 설치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5~8호선 역사 중 일부 출입구에만 제한적으로 캐노피를 설치하였으며, 서울시에서는 도시의 차폐감을 줄이고 개방감을 높여 시원한 공공공간을 제공하기 위하여 2008년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수립하여 출입구 개량 및 신규 설치 시 캐노피 설치를 가급적 지양하도록 권고하였으나,

최근 서울시에서는 캐노피 없이 설치된 출입구 이용 시 눈, 비로 인한 시민의 불편 사항이 있어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 출입구 중 캐노피가 반드시 필요한 개소에 대하여 선별적 설치를 위한 표준형 캐노피 디자인(안)을 마련하였으며, 이에 따라 우리 공사에서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외부출입구에 우선적으로 캐노피 설치를 추진 중으로 올해는 장한평역 #3번 출입구를 포함, 10역 10개소에 캐노피 설치를 9월 중순까지 완료 예정으로 추진 중에 있으며,

* 2013년 캐노피 설치 대상역(10역10개소) : 장한평(#3),아차산(#3),굽은다리(#4),강남구청(#1),단대오거리(#1),송정(#4),애오개(#4),마포(#3),행당(#1),군자(#5)

아울러, 우리 공사에서는 외부출입구를 이용하는 승객의 안전을 고려, 중장기적으로 캐노피 확대설치를 추진하고 있음을 알려 드리오니 이점 널리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매일 매일이 오늘보다 더 좋은 하루되시길 바라며 앞으로도 도시철도공사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는 제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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