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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 베테랑 기자 김훤주가 잘 드러나지 않은 세상 이야기를 따뜻하고 담백한 시선으로 전합니다.

우리가 절에 가면 수많은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 가장 손쉽게 볼 수 있는 것은 2500년 전에 룸비니에서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 석가모니불(Gautama Buddha)이다. 부처님은 이 밖에도 많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만 해도 미륵불·비로자나불·아미타불·약사여래불 등 여럿이 있다.

그런데 이들 부처님을 보면 모두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들어온 수입산이다. 불교 자체가 외래종교이다 보니 당연한 것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도 1800년 가까이 되는 만큼 토종 부처님이 한 분 정도는 있을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찾아봤더니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도 자국산 토종 부처님이 있었다. 일연 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 ‘남백월의 두 성인 노힐부득(努肹夫得)달달박박(怛怛朴朴)’이라 실려 있는데 경남 창원에 있는 백월산이 그분들의 고향이다. 

부처님의 탄생지라 하면 무언가 대단할 것 같은데 백월산은 그렇지 않고 해발 428m로 별로 높지 않고 빼어난 명산도 아니다. 다만 정상에 서면 낙동강이 손에 잡힐 듯 다가서고 철새 도래지로 널리 알려진 산남·주남·동판저수지가 가로로 누운 몸매가 선연하다. 

백월산 정상. 멀리 주남저수지가 보인다. 사진 김훤주.

석가모니불 이전에도 과거불이 있고,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 있습니다. 석가모니의 계율인 4성제 8정도를 원칙적으로 고수하는 불교를 상좌부 불교(옛 명칭 ‘소승불교’)라고 하는데요. 상좌부 불교에서는 현재까지 출현한 부처가 석가모니불까지 28불이며, 미래불인 ‘마이뜨레야'(미륵보살)은 29번째 부처라고 합니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토종 부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좀 더 엄격하게 고수하는 상부좌 불교가 아닌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승불교의 맥락에서 이해하면 좋습니다. (편집자)

‘삼국유사’ 이야기를 간추려보면 


삼국유사에는 길게 나오는데 줄이면 이렇다. 부득과 박박은 백월산에서 따로 수도하고 있었는데 서기 709년 4월 초파일 해 질 무렵 스무 살 색시가 재워달라고 했다. 박박은 수도처를 더럽힌다며 내쫓았고 부득은 안쓰럽게 여겨 받아들였다.

그런데 색시는 뜻하지 않게 갑자기 아이를 낳고는 목욕까지 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부득은 부끄럽고 두려웠으나 불쌍한 생각에 색시를 함지박에 앉히고 물을 끓여 씻겨 주었다.

색시는 관음보살이었다. 물은 향기를 풍기면서 금빛으로 바뀌었다. 부득은 색시가 시키는 대로 함지박에 들어가 몸을 씻었다. 그러자 미륵 부처가 되면서 몸에서 금빛 광채가 났다.

책읽어주는 구연동화 한국역사동화 부처가 된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출처 북토비영상도서관.

이튿날 아침 박박은 부득을 찾아갔다. 박박은 부득이 지난밤에 계율을 어겼을 것이라 짐작하고 놀려줄 심산이었다. 그런데 박박이 생각지도 못했던 모습에 깜짝 놀라자 부득은 박박에게 조금 남은 물로 씻으라고 말했다. 

덕분에 박박도 아미타 부처가 되었다. 다만 물이 모자라서 몸에는 얼룩이 남았다. 이튿날 소문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찾아오자 그분들은 한바탕 설법을 베푼 다음 구름을 타고 날아갔다.

이를 알게 된 경덕왕이 757년에 백월산에 큰 절을 세우고 남사(南寺)라 했다. 764년 7월 15일 절을 준공하고 금당과 강당에 온전한 모습의 미륵존상과 얼룩진 흔적이 남아 있는 아미타상을 제각각 모셨다.

옛적 남사 자리에 세워진 억불사의 현신성도미륵지전. 사진 김훤주.

이 전설에 담긴 의미는


여태 확인해 본 바 이 전설에 담겨 있는 의미는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노힐부득이 성불한 미륵불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56억7000만 년 뒤에 일체 중생을 구제하는 미륵불의 다양한 변신 가운데 하나로 본 것이다.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용화전에 새겨져 있는 도상(道相)이 대표적이다.

두 번째는 부득과 박박의 태도 차이에 주목해서 풀어낸 얘기다. 박박은 계율에 매이는 바람에 관음보살을 내쫓았지만, 부득은 계율을 넘어 자비심을 베풀었기에 관음보살을 맞아들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보이는 형식보다 안 보이는 마음가짐이 더 소중하다는 얘기다

억불사의 관음보살상. 보통은 약봉만 들고 있는데 여기서는 아기를 한 명 안고 있다. 사진 김훤주.

전무후무하고 유일무이한


그런데, 이처럼 형식보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주제는 ‘삼국유사’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어 나타난다. 이를테면 자장법사도 문수보살이 누더기 옷차림에 죽은 강아지를 망태기에 담고 나타났을 때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좀 더 생각해 보면 여기에는 이를 넘어서는 다른 측면이 숨어 있다. 

이런 것이다.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중국을 통해 인도에서 수입한 부처들만 있었다. 그런데 부득과 박박이 미륵 부처가 되고 아미타 부처가 되면서 수입 일변도에 변화가 생겼다. 그분들은 제각각 토종 부처 제1호와 토종 부처 제2호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토종 부처의 출현을 알리는 사건은 ‘삼국유사’는 물론이고 다른 불교 관련 설화를 통틀어 보아도 이 이야기가 유일하다. 전에도 없었고 뒤에도 없었다. 이로써 부처 수입국에서 자체 부처 보유국으로 위상이 높아졌다. 

지금 백월산은


말하자면 527년 이차돈의 순교 이후 180년 만에 성취한 우리 불교의 독립선언이었다. 이렇듯 대단한 사건이 일어난 백월산이지만 불교계의 특별한 대접은 없다. 부득과 박박의 수행처가 어디였는지 표지도 없고 경덕왕이 왕명으로 세웠다는 남사는 오래전에 없어졌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특별한 대접이 있어야 할 까닭도 없다. 낙동강 따라 흘러도 그만이고 주남저수지처럼 머물러 있어도 그만이다. 가끔 백월산 마루에 올라가 부득과 박박이 눈에 담았을, 일대의 황홀했던 습지 경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복잡하게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따져서 하는 얘기는 아니다. 그냥 재미있고 유명한 전설이니까 조금 색다르게 다른 맥락에서 한 번 살펴보고 곱씹어보아도 좋지 않을까 해서 한 번 써본 글이다. 재미있자고 하는 말에 두 눈 부릅뜨고 정색하고 달려들기는 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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