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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재판 특집

1편: 이재용 불법 승계 재판
2편: 이재용 상속세 논란
3편: 삼성과 언론


다음주 월요일 5일 이재용(삼성전자 회장)의 불법 승계 재판 1심 결과가 나온다.

이게 왜 중요한가.


  • 무죄가 나오기 어려운 사건이지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정도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 한국 사회 재벌 개혁 논쟁의 중간 결산 같은 재판이다.
  • 판결 결과에 따라 한국 사회의 원칙과 정의의 기준을 다시 세우게 될 것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 이재용에게는 두 건의 큰 재판이 있었다. (프로포폴 사건도 있었는데 벌금형으로 끝났다.)
  • 하나는 국정 농단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불법 승계 사건이다. 두 사건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다.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도와 달라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말을 사준 사건이 첫 번째둘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배임과 회계 부정을 저질렀다는 게 두 번째다. 만약 말을 사주지 않았다면 국민연금이 찬성 표를 던지지 않았을 것이고 합병이 무산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첫 번째 사건이 유죄면 두 번째 사건도 유죄일 수밖에 없다.

30년에 걸쳐 완성된 이재용의 후계구도.


  • 61억 원으로 시작했다. 1995년 이건희(당시 삼성그룹 회장, 이재용의 아버지)가 61억 원을 줬고 증여세를 17억 원 내고 난 뒤 44억 원이 이재용의 시드머니가 됐다.
  • 1단계: 이재용은 이 돈을 비상장 기업이었던 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에 올인했다가 상장 직후에 처분해 1년 만에 560억 원을 확보한다. 일반인이 살 수 없는 비상장 기업 지분을, 그것도 상장 직전에 살 수 있었던 것부터 특혜였다.
  • 2단계: 이 돈을 제일모직과 에버랜드 전환사채에 나눠서 투자하는데 제일모직 전환사채는 주식을 전환한 뒤 내다 팔아 140억 원을 챙겼고 에버랜드는 32%의 지분을 확보한다. 건실한 기업들이 터무니 없이 낮은 전환 가격에 사채를 발행한 것부터 상식 밖이었다. (이재용 삼 남매의 에버랜드 지분을 합치면 46%에 이르는데 삼 남매가 투자한 돈은 97억 원 뿐. 그때도 배임 논란이 있었고 에버랜드 사장들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
  • 3단계: 이재용이 에버랜드 최대 주주가 된 뒤부터 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삼성생명이 보험 계약자들 자산을 운용하면서 삼성전자 최대주주가 된 상황이라 자연스럽게 이재용-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졌다.
  • 4단계: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이는 과정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인텔이 보유하고 있던 삼성전자 전환사채를 이재용이 넘겨 받았는데 시세보다 6800원 가까이 낮은 가격이었다. 449억 원을 투자했는데 7년 뒤 주식으로 전환했을 때는 3906억 원 가치로 불어났다.
  • 5단계: 삼성SDS 지분을 확보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삼성SDS가 신주인수권부 사채를 발행했는데 전환 가격이 시세의 8분의 1 수준이었다. 이재용이 삼성SDS 주식 8.81%를 확보하는 데 들인 돈은 47억 원이었는데 지금은 1조1156억 원에 이른다. (2024년 1월31일 주가 기준.)
  • 6단계: 2014년 이건희가 쓰러진 뒤에는 본격적으로 승계 작업이 시작됐다. 제일모직과 에버랜드 합병이 출발이었다. 패션 부문을 떼서 에버랜드와 합병한 뒤 이름을 제일모직으로 바꿨고 케미컬과 전자 재료 부문은 삼성SDI에 갖다 붙였다.
  • 7단계: 이재용 후계구도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마무리되면서 일단락됐다. 제일모직(에버랜드)은 이재용의 회사였지만 삼성전자 지분이 없었다. 삼성물산은 삼성생명에 이어 삼성전자의 2대 주주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치면 자연스럽게 이재용의 삼성전자 지배력이 강화된다. 삼성물산이 사실상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지만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의 출자 구조를 끊지 않으면 금산 분리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의 불법 문제에 대해 법원이 최후 보루로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징역 5년을 요청했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 첫째, 이재용에 유리하도록 제일모직 주가를 띄우고 삼성물산 주가를 낮추는 과정에서 삼성물산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쳤다.
  • 둘째, 제일모직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분식회계를 지시했다. 제일모직의 주가를 부풀려서 이재용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합병을 진행했다는 혐의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 만약 국민연금이 찬성 표를 던지지 않았다면 합병이 무산됐을 가능성이 크다. 합병안은 69.5%의 찬성으로 통과됐는데 특별 결의는 3분의 2(66.7%)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10.2%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판단이 결정적이었다. 이재용 등은 청와대를 통해 국민연금을 압박했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삼성물산의 가치를 부풀렸다.
  • 구체적으로 검찰이 제기한 혐의는 다음과 같다.

  1. 첫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재용의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한 프로젝트였다. 명백한 배임이고 자본시장 질서를 교란한 행위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합병 이후 삼성물산 주주들이 30~50%의 평가 손실을 입었다고 보고 있다.
  2. 둘째, 국민연금 가입자들도 손해를 봤다. 박근혜가 비서관에게 합병 문제를 잘 챙겨보라고 지시하자 문형표(당시 보건복지부 장관)가 홍완선(당시 국민연금 본부장)를 불러 합병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압박한 것은 확인된 사실이다. 검찰은 이재용이 말을 사주겠다고 약속한 데 따른 대가였다고 보고 있다. 이미 국정농단 재판에서 유죄로 인정된 바 있다.
  3. 셋째, 국민연금이 근거 자료를 요청하자 이사회에서 검토한 자료라며 딜로이트안진의 보고서를 보내줬는데 이 보고서는 이사회에 제출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이 보고서는 합병 비율이 적정하다는 결론을 내려놓고 꿰어맞춘 것으로 “대외적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어 어떠한 경우에도 제 3자의 열람 및 사용을 금지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4. 넷째, 삼성물산 자사주를 KCC에 넘겨서 합병에 찬성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KCC에 삼성그룹과 거래 관계를 확대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언론에는 KCC가 먼저 제안한 것처럼 보도됐다.
  5. 다섯째, 2.3%를 보유한 일성신약이 반대 표를 던지겠다고 하자 사옥 신축 등을 제안한 사실도 확인됐다. 윤석근(일성신약 부회장)은 삼성이 400억 원에 이르는 건축 비용을 받지 않을 테니 찬성 표를 던져달라고 제안했는데 거절했다고 증언했다. 9만 원에 주식을 매입하겠다는 제안도 있었다는데 이재용 등은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6. 여섯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부실을 숨기고 가치를 부풀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44%를 보유하고 있었고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90%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삼성바이오에피스 주식 가치를 4.5조 원 더 높게 잡아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을 높게 만들었다.
  7. 일곱째,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50%에 콜옵션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겨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를 부풀렸다는 의혹도 있다. 실제로 바이오젠은 2018년 콜옵션을 행사했는데 콜옵션이 있다는 사실을 주주들에게 공개하지 않은 건 공시 위반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젠이 보유한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을 2022년에 다시 사들였다.)
  8. 여덟째,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나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다고 발표했는데 아직까지도 비상장 기업으로 남아있다. 검찰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부풀리기 위한 허위 사실 공표라고 보고 있다.
  9. 아홉째, 에버랜드 부동산 개발 계획도 허위 사실이었다. 10년 동안 1조5000억 원을 투입해서 생태형 테마 파크와 호텔 등을 짓겠다고 했지만 합병 완료 두 달 뒤 취소됐다.
  10. 열째, 주가를 띄우기 위해 자사주를 집중 매입한 것은 시세 조종에 해당한다. 합병 당일 주가가 주식매수 청구권 가격을 밑돌면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이 큰데 주가가 급락하자 제일모직은 44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했다.

  • 검찰은 “금융위 고발로 ‘빙산의 일각(회계부정)’에서 출발한 검찰 수사가 단서를 차근차근 찾아가며 수면 아래 감춰진 ‘빙산(불법합병)’의 실체 및 이를 감추기 위한 조직적 사법방해 범행들을 밝혀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2100배 수익률, 이재용 왕국의 기반.


  • 블룸버그가 집계하는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이재용의 자산은 96억 달러(12조8496억 원)에 이른다.
  • 2월1일 주가 기준으로 이재용의 보유 지분은 삼성전자 지분 1.6%가 8.1조 원에 삼성물산 지분 18.0%가 5.0조 원, 삼성생명 지분 10.4%가 1.6조 원 등이다. 상속세로 2.9조 원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 이재용은 1991년 삼성전자에 부장으로 입사해 2003년에 상무로 승진, 2007년에는 전무로, 2009년에는 부사장으로, 그리고 그해 12월에 곧바로 사장으로 2012년에는 부회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이건희가 2014년에 쓰러져 의식 불명 상태로 있다가 2020년에 죽자 2년 뒤인 2022년 회장에 취임했다.
  • 2009년에도 에버랜드와 삼성SDS 등 이재용의 불법 승계 관련 재판이 있었지만 그때는 전문 경영인들이 뒤집어 썼다. 이번에는 이재용이 핵심 피의자라 성격이 다르다.

어떻게 될까.


  • ‘방 안의 코끼리’처럼 언젠가부터 한국 사회에 재벌 체제에 대한 논의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돌아 봐야 한다. 너무 거대해서 손을 대지 못하고 외면하고 있는 문제다.
  • 검찰은 “이 사건 판결은 앞으로 재벌 기업의 조직 개편과 회계의 기준점으로 작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두 사건은 연결돼 있다. 첫 번째(국정농단) 사건이 과정이라면 두 번째(불법승계) 사건은 결과다. 뇌물을 주고 합병을 도와달라고 부탁한 사건은 유죄 판결이 나서 징역형을 살고 나왔다. 그런데 그렇게 밀어붙인 합병으로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 사건이 더 가볍다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 물론 이재용이 다시 감옥에 갈 가능성도 있다. 과거 두 차례 이재용이 구속될 때마다 삼성전자 주가가 오히려 크게 올랐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삼성전자 정도 사이즈의 기업이 총수 한 명의 부재에 흔들린다면 그게 더 큰 문제다.
  • 이재용 등은 다른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힐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홍완선 등의 재판에서 주주들이 피해를 봤다고 인정한 판례가 있다. 합병에 반대했던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해 1300억 원을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재용이 빠져나가려면 이사회가 알아서 한 일이고 나는 몰랐다고 주장해야 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 어떻게든 이번 판결 이후로 삼성 그룹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결국 3세 승계로 가면서 취약한 지배력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이재용이 물러나고 오너 경영 체제가 끝나면 장기적인 성장 전략보다는 주주 자본주의와 단기 실적주의에 휘둘리게 될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재벌 체제의 경쟁력을 전면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어디까지 예외를 두고 특혜를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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