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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리는데 내 눈앞에 빨간색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Lamborghini Aventador, 5억 몇천만 원쯤 합니다)가 서 있다면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저 비싼 차를 모는 사람은 누굴까? 어디에 살까? 사고 낸 적은 없을까? 운전자 나이가 젊을 것 같은데 부모님 잘 만나 재미있게 사는구나 등등…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차는 신호를 받고 휙~가버립니다.

아마 이런 경험이 종종 있으실 겁니다. 상대방이 얼마나 버는지, 어떻게 해서 그 돈을 벌게 되는지, 그리고 제대로 세금은 내고 있는지 궁금한데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네, 우리나라는 과세정보 비공개주의를 취하고 있습니다. 국세기본법은 과세정보를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하거나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몇 년 전 심상정 의원실에서 국세청에 대해 종부세 납부액 상위 100인이 얼마나 납부했는지를 익명으로 제출하도록 요청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건널목의 람보르기니… 스웨덴이라면 어땠을까?

그런데 북유럽 몇몇 나라에서는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경우라면 스웨덴의 경우 자동차 번호만 알면 그 사람의 성명, 주소, 사고경력 등을 누구나 조회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핀란드라면 그 사람이 얼마에 그 차를 샀는지, 평소에 세금은 제대로 내고 다니는지,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을 좀 더 살펴볼까요? 스웨덴은 매년 납세자들의 소득규모, 자산규모 등을 세금달력(Taxeringskanlendern)이라는 이름의 책자를 통해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알듯 모를듯하시죠? 사진을 한번 보시죠

스웨덴에서는 납세 명단을 요청하면 책으로 보내준다

예전에 집집마다 놓여있던 인명 전화번호부와 비슷하죠? 네, 맞습니다. 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버는지를 그냥 다 보여줍니다. 스웨덴 전역을 22개의 지역으로 구분해서 지역별로 저런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는 것입니다. 무료는 아닙니다. 2013년도 발간분의 가격은 269 SEK(스웨덴 크로네)입니다. 1 SEK가 175원쯤 하니 계산해보면 4만 7천 원쯤 합니다.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조금 싸서 257 SEK입니다. 신청하면 우편으로 보내주는 방식인데, 그냥 재미삼아 보기에는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흥미가 생기지 않습니까?

저 책자를 배포하는 곳에 들어가면 보이는 첫 번째 문장부터 참 놀랍습니다.

  • 당신 봉급을 다른 사람 소득과 비교해보세요

구글 번역을 통해서 보면 영어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어로도 번역할 수 있지만, 외계어 수준이라는 점이 아쉽습니다. 이 책자를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지 설명해 주는 다음 구절도 재미있습니다.

  • 곧 연봉협상 하십니까? 이 책자로 당신 동료가 얼마나 버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새로 취직하셨습니까? 이 책자는 당신이 얼마를 받아야 할지 도와줍니다
  • 당신이 누군가를 안다면 이 책자를 통해 그가 얼마를 버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100년도 더 된 책자, ‘세금달력’

그와 더불어 지자체별로, 그리고 국가의 상위 소득자가 누구인지도 친절하게 밝혀놓습니다. 직장 동료끼리도 연봉이 얼마인지 물어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참으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책자의 발간이 최근에 생겨난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100년도 더 지난 1908년, 1909년에도 이런 책자들이 제작되었습니다.

100년 전에도 납세현황 책이 있었다

물론 100년 동안 변화가 없던 것은 아닙니다. 2008년까지는 자산 자료도 공개되었는데 이후에는 제외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지나친 정보공개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해서 세부 주소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우리로 따지면 00구 00동 정도 수준으로 공개하는 거죠.

노르웨이, 납세자 정보 온라인 검색 가능

또 다른 북유럽의 복지국가인 노르웨이 역시 비슷합니다. 매년 가을 노르웨이 국세청은 모든 납세자의 연간소득과 자산에 대한 공식 문서를 배포하고 이러한 정보는 투명성 강화를 위해 각 언론사에 전달되어 보도됩니다. 이러한 정보는 노르웨이 국세청 세금목록 서비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2011년 자료까지 공개되고 있습니다만, 확인을 위해서는 납세자 번호 같은 ID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공개되는 정보는 이름, 출생연도, 우편번호, 징수 기관, 순자산, 순소득 그리고 부과 세액(국세뿐만 아니라 지방세 및 사회보험료 기여분까지 포함)입니다.  사망자, 주소불명자, 국외장기거주자, 만 17세 미만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국민의 기록들이 공개되는 것입니다. 스웨덴과 다른 점이라면 과거 제공되던 책자가 폐지되고 2010년부터는 온라인을 통한 공개만이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만약 내가 공개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것 없습니다. 무조건 공개입니다. 언론들 역시 이렇게 제공되는 정보를 토대로 별도의 DB를 구축하여 각종 자료를 생산하여 보도에 활용합니다. 이러한 자료를 통해 노르웨이 국민은 과거 동계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종목에서 8개(!)의  금메달을 획득하고 지금은 사업가로 변신한 비외른 다에흘리(Bjørn Dæhlie)가 2008년에 약 60억 원의 수입을 올렸고,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리브 울만(Liv Ullmann)가 약 27억 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2008년 연소득은 2천만 원 정도밖에 안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복지사회, 탈세 방지를 위한 ‘살벌’한 정보공개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탈세를 방지하고 세금납부에 대한 사회적 감시를 강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공동체 구성원 간의 상호 감시를 통해 복지사회의 가장 큰 적인 무임승차자를 가려내고, 재원의 효율적 배분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보기에 살벌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런 정보공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단, 공동체와 관련없는 사항은 철저 보호

국제기구에 의해 이루어지는 각종 투명성 평가에서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을 휩쓰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상대방이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하는지 확인하는 것은 프라이버시 침해가 아니라 당연한 구성원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단, 결혼 여부, 학교 성적, 질병 등과 같이 공동체의 유지와 관련 없는 사항들은 철저하게 보호되는 것입니다.

북유럽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지사회는 나의 일상과 생활이 공동체에 의해 상당 부분 통제받는 데 대해 합의해야 하는 사회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각종 의사결정과정에 나의 의사가 분명히 반영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하겠죠. 과연 우리의 지방자치단체, 행정부, 국회, 사법부 등이 이러한 전제를 충족시키고 있을까요?

우리 사회가 복지사회로 나가는 데 있어 이런 전제가 이미 충족되었을까요? 아니면 곧 충족될 수 있을까요? 그 대답이 무엇인지에 따라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 수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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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1. 정말 한국에선 많은 계층에서 싫어할만 하겠군요. 영세사업자로 살고있는 자영업자들도 좋아할 일은 아니고.. 일단 스웨덴은 많은 세금을 내니.. 저희보다 저항감은 덜할 것 같습니다만.. 우리는 세금에 대해 부정적이니.. 잘 되면 좋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2. 우리나라는 지하경제 활성화…

    그나저나 정말 화끈하군요. 복지, 어설프게 하는 게 아니란 생각도 들고요.

  3. 에휴…물고기들은 자기 급수에 맞는 물에 살지요…하급수의 생태계는 상급수보다 생존 경쟁도 치열하고 변수도 많고…그래도 그냥 거기에 살지요…그들의 먹이가 그 부패에 기반하고 있으니까요.

  4.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들과 국회의원들 중 절대과반수가 옷을 벗어 국정공백이 발생하게 될 겁니다, 아마…….그리고 공무원 아니더라도 날로 먹는 이들이 어디 한둘이 나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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