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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하늘 아래, 'cafe 어.'
청명한 하늘 아래, ‘cafe 어.’

여름이 너무 지독히 더워서 그랬는지 가을 내내 하늘이 참 청명했다. 카페라고 들어왔는데 뭔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당황했더라도, 창밖으로 올려다보이는 풍경 하나에 마음이 녹을 수도 있을 그런 날씨가 이어졌다.

9월 10일부터 10월 6일까지 베타 오픈으로 운영하던 그 한 달여 동안, 어쩌면사무소에서 가장 긴장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코기토와 나, 둘이었다. 특히 모르는 누군가가 들어와 앉아있으면 나갈 때까지 내내 둘이 필요한 대화도 잘 못하고 구석에 처박혀 쭈뼛거리며 ‘저 사람은 누군데, 어째서, 어쩌다 여길 온 걸까’하고 머리를 굴리곤 했다. 카페면 당연히 커피 마시러 오는 걸 테고, 처음 보는 손님이 불쑥 들어오는 일도 실은 하루걸러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도 우리가 참, 그랬다. 신기하고, 궁금하고, 설렜다.

한낮, 유모차와 함께 온 남자

그는 그렇게 어느 날 불쑥 들어와 말없이 커피를 마시던 낯선 손님 중 한 명이었다. 우리 또래이거나 좀 더 젊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는 주로 조용한 낮에, 게다가 유모차에 어린아이를 태우고 함께 와서 나의 궁금증을 더욱 유발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한쪽 구석에 처박혀 신경 안 쓰는 척, 속으로 궁금해하기만 했다. 지금이라면 편하게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그랬을 텐데 그땐 진짜 우리가 좀 그랬다. 아이는 유모차에 가만히 앉아 참 순하게 잘 놀았고, 그는 모처럼의 망중한을 즐기듯 이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

공원이 내다보이는 창가 테이블
공원이 내다보이는 창가 테이블

한번은 아이가 조금 칭얼대서 안아 어르기에 “아유, 착하고 예뻐요. 백일은 지난 거에요?”라고 했더니, “봐요, 이렇게 큰데 백일은 훨씬 지났죠. 아이 안 키워보셔서 모르시나 봐요. 하하”하며 육아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찾아와서는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늘 데리고 오던 둘째 아이의 돌잔치를 여기서 하고 싶다는 거였다. 첫째 딸아이와 부인도 함께였다. 그때가 10월 초, 이제 막 베타를 떼고 정식운영을 시작한 초짜 카페 초짜 주인장에게는 놀라운 제안이었다. 언젠가 어쩌면사무소에서 좋은 사람들의 좋은 때, 그러니까 돌이든 결혼이든 취직이든 무엇이든 축하하는 파티가 열리는 상상은 종종 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닥쳐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가까운 가족들과 간소하게 할 거라고, 음식은 요리사를 부를 것이니 공간만 빌려주면 된다고 하여 사실상 우리가 뭐 할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누군가의 소중한 순간을 축하하는 데에 이 공간이 쓰인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찌나 설레고 기쁘던지. “몇 월 며칠 한준서 어린이 돌잔치”라고 건물 앞 선간판에 일정을 써 놓고는 매일 오갈 때마다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다.

그런데 막상 날짜가 닥쳐오고 보니, 우리가 꼭 가야만 할 다른 친구의 결혼식이 하필 그날 그 시간에 겹쳐 있었다. 여기서 열리는 돌잔치는 어떤 분위기일까? 아이는 좋아할까? 뭔가 도와줄 건 없을까? 그런 갖가지 상상은 모두 허공으로 날아가고, 아침에 잔치 준비를 위해 문을 열어주고 나갔다가 끝날 무렵 서둘러 돌아와 보니 이미 잔치는 모두 끝나고 네 가족만 덩그러니 남아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사진은커녕 잔치 구경도 못한 채 어쩌면사무소에서의 첫 돌잔치가 그렇게 지나갔다. 아쉽고 서운하고, 허탈했다.

만나자 이별이라더니

며칠 후, 다시 평소처럼 편한 운동복에 모자를 쓰고 그가 나타났다. 동그란 눈이 예쁜 첫 아이와 막 돌잔치를 끝낸 둘째를 모두 데려왔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알고 보니 다음 달에 저 멀리 시골로 이사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둘째 돌 지나고, 살던 집 정리되면 바로 가려던 참이라고. 만나자 이별이라더니, 돌잔치를 못본 아쉬움이 더욱 배가되는 소식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시간을 보낸 후,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그에게 용기를 내어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느냐고 했다. 그렇게 해서 딱 한 장, 아이들과 그의 사진을 남겨둘 수 있었다. 그날도 그렇게 맑은 날이었다.

뜻밖의 돌잔치로 어쩌면사무소를 따뜻하게 데워주었던 이 소중한 인연, 그 사이 또 얼마나 자랐을까?
뜻밖의 돌잔치로 어쩌면사무소를 따뜻하게 데워주었던 이 소중한 인연, 그 사이 또 얼마나 자랐을까?

그 후 한 달쯤 지났을까… 아이들도 부인도 없이 그냥 커다란 여행 가방 하나를 끌고, 마지막으로 그가 나타났다. 내놓은 집에 처리할 것이 있어 왔다고 했다. 늘 마시던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전화를 몇 통 하고, 여행 가방을 맡겨둔 채 나가더니 한참 후 돌아와 고맙다고 이제 간다고 인사를 했다. 우리는 문을 열어주고, 웃으며 배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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