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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워킹맘으로 살기 3: 무임금 엄마 노동력

워킹맘

지난주 첫째가 드디어 1학년 수업을 마쳤다. 동시에 나의 ‘녹색어머니회’ 1학년 활동도 끝났다. 녹색어머니회란 아다시피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 등에서 깃발을 들고 아침에 등교하는 어린이들의 교통 지도를 하는 엄마들의 모임이다. 놀랍게도 경찰청 산하 비영리단체다.

녹색 어머니회? 녹색 어버이회!

초등학생, 그중에서도 저학년 아이들은 앞만 보고 돌진하는 경향이 있다. 분명히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좌우를 살펴보고 차가 오는지 확인하고 손을 들고 건너라는 교육을 부모로부터도, 학교에서도 받지만 깜박 잊고 그냥 가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니 녹색어머니회는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중요한 봉사활동인 것은 맞다.

우리 반 엄마들이 운이 없는지 지지난 주 영하 17도까지 떨어진 가장 추운 날 당번이 걸렸다. 두꺼운 바지 속에 내복까지 입고서도 덜덜 떨었지만 다들 조금 힘들어도 보람 있는 활동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했다. 봉사활동을 마친 후 잠깐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녹색어머니회’라는 명칭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엄마들은 요즘 같은 시대에 ‘어머니’라는 명칭은 ‘어버이’로 바꾸어도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다.

실제로 그날 한 아이는 일찍 출근하는 엄마를 대신해 아빠가 나왔고, 평소 출근하다 보면 학교 앞에 엄마 대신 할머니가 나오셔서 교통 지도를 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예전이라면 엄마 대신 아빠가 나오는 것은 아빠가 싫어했겠지만, 요즘은 유치원 행사에도 아빠가 자주 눈에 띌 정도로 아이의 교육에 적극 참여하는 멋진 아빠들이 많아졌다. 이렇게 시대가 변했는데 굳이 녹색 ‘어머니’라는 이름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녹색 어버이회’로 바꾸면 엄마 대신 나온 아빠나 어르신들이 괜히 어색해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워킹맘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봉사활동

많은 녹색어머니회 회원들이 전업주부이지만 나 같은 워킹맘도 상당히 많다. 그 이유는 워킹맘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학교 봉사활동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는 녹색어머니회 말고도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회, 도서관에서 하는 독서지도, 준비물 만들기 등등 매우 다양한 봉사 기회(?)가 있다. 공식 봉사활동은 아니지만 1학년 엄마들은 조를 짜서 교실 청소까지 한다. 다행히 급식은 실버일자리 채용의 일환으로 어르신들을 유급 채용하지만 다른 학교는 어머니들이 급식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가 일하는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시간만 있다면 기꺼이 하고 싶지만 워킹맘 입장에서는 대부분 업무 시간과 겹치기 때문에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녹색어머니회다. 아침 8시~8시50분까지 하기 때문에 출근을 30분~1시간 늦추면 되고, 1년에 총 6~7일이어서 봉사일수도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6년 내내 녹색어머니회를 하는 엄마들도 있다고 한다. 아침 출근 시간이 빠른 회사의 경우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어 위 사례처럼 ‘녹색 아버지’나 ‘녹색 할머니’가 출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대타’가 출동하는 것도 낮에 하는 활동보다는 오전이 낫다.

녹색어머니회라도 하긴 했지만 1년 동안 워킹맘으로서 전업맘들에게 미안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반 대표 엄마는 전업맘 자원자 중심으로 화요일 청소 당번을 자원자 위주로 조를 짜서 정해주고, 담임선생님의 지시를 카카오톡 단체 문자로 수시로 알려준다. (교사도 사람이기에 알림장에 빠뜨리는 게 종종 있다) 단체로 체험학습이라도 가는 날이면 안전을 위해 엄마 두어 명도 따라간다.

학부모 대상 강연, 총회, 운동회, 축제, 참관수업 등등 학교에 갈 일은 너무나 많다. 참여수업이나 운동회 정도는 연차를 내서라도 참가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조차 어려운 회사에 다니는 분들은 결국 참가하지 못한다. 문자로 이런 알림이 올 때마다 워킹맘들은 “참여하지 못해 정말 죄송해요. 내일 가시는 맘들께 감사드립니다”라는 문자를 보내며 안 그래도 집안일 하랴 아이 돌보랴 바쁠 텐데 학교 일까지 도맡아 하는 전업맘들한테 고마워하고, 또 미안해 한다.

무임금 엄마 노동력?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무언가 도움을 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학부모가 청소나 급식, 독서지도까지 하는 게 당연한 건가? 사실은 학교가 직원이나 용역, 전문가를 고용해 해야 할 일이나 꼭 필요하지도 않은 일을 부모가 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취미나 특기를 살려 아이들에게 일일 교사를 한다든지, 학교 운영의 중요한 사안에 대해 학부모의 의견을 구한다든지 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이건 ‘자발적인 봉사’가 아닌 ‘학교 예산 절약’을 위해 무임금 노동력으로 동원된 느낌이다. (참고: ‘레밀리터리블’과 국가 착취의 합리화)

실제로 이때문에 2006년에는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엄마들에게 학교 급식을 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한 릴레이 시위도 있었다고 한다. 그 결과 워킹맘과 전업맘 구분없이 모든 학부모를 강제 동원하는 일은 없어졌지만, 오히려 ‘자발적’이라는 이름으로 전업맘들의 희생이 요구되는 결과를 낳았다. 앞으로는 맞벌이가 늘어나면서 이런 낮시간 봉사 활동에 따른 전업맘들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커질 텐데 이는 매우 부당한 일이다. (참고: 돈만 보고 결혼하는 한국 여자라는 신화)

대부분 초등학교에서 이렇게 엄마 노동력을 요구하지만, 그렇지 않은 학교도 있다. 성남 중앙초등학교는 교통지도 외에는 학부모에게 부담시키는 일이 없다고 한다. 우리 학교도 급식은 실버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어르신들을 유급으로 고용하고 있다. 많은 학교들이 엄마들을 비용절감 차원에서 무보수 노동력으로 이용하는 관행을 바꾸어야 한다. 또한 운동회나 축제, 학부모 강좌 등 다양한 학교 행사는 꼭 필요한 것만 열었으면 한다. 맞벌이가 증가하는 현실을 학교 현장도 받아들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초등학교에 대한 예산도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

말로만 가족친화기업? 실질적으로 도와야

마지막으로 각종 행사에 참가하는 부모들을 위해 기업들은 법으로 보장된 연차 휴가를 원하는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말만 ‘가족친화기업’을 외치면서 아이 학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연차 한번 내려면 엄청난 고민과 눈치보기를 거쳐야 하는 회사가 상당수다. 회사 대표나 인사과는 “연차를 적극 사용하라”고 권장해도 담당 부장이 이를 싫어해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연차휴가는 법과 사규로 보장된 것이고, 요즘에는 연간 몇일은 사용하지 않아도 수당이 나오지 않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권리를 찾을 수 있는데도 당당하게 연차 휴가를 쓸 수 있는 직장인은 아직도 많지 않다.

요즘은 아이 아빠들도 자녀 교육에 적극 참여하는 시대다. 남녀를 불문하고 아이 때문에 연차를 낸다면 (아이가 아파서든 행사 참여를 위해서든) 최대한 배려해 주는 회사가 앞으로 좋은 인재를 오랫동안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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