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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드라마를 보는 사람

막장 드라마란 복잡하게 꼬여있는 인물 관계, 현실상으로는 말이 될 수 없는 상황설정, 매우 자극적인 장면을 이용해서 줄거리를 전개해가는 드라마를 의미한다.

– 한국어 위키백과, ‘막장드라마’ 중에서

‘막장’은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의 아이콘이다. 그리고 막장은 글로벌하다. 세계 공통이되, 문화권에 따라서 막장의 세부 디테일만 조금씩 다르다. 지상파 텔레비전 드라마 상당수는 의도적인 ‘막장’ 레퍼토리를 추구한다. 너나없이 꾸짖는 그 ‘막장 드라마’는 시청률도 잘 나온다. 그 막장드라마, 누가 왜 보는 것일까.

고립된 세계의 목마름이 만들어 낸 신기루

결론부터 말하자. 아무도 말 걸어주지 않고, 따뜻한 손길 하나 주지 않는다. 이 세계는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다. 남편과 자녀들은 그들만의 성채를 쌓아올리고, 친구들로부터는 아주 오래전에 멀어졌다. 이 고립된 세계에 사는 그녀들에게 유일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텔레비전이다. 막장 드라마는 그렇게 고립된 세계에 유배된 소시민, 특히 중산층 이하 저소득층 전업주부의 목마름이 만들어내는 신기루다.

[인어아가씨] 류의 막장드라마는 현실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일탈적 욕구를 적극 반영하고, 그 환상을 재현한다. 소외된 여성의 공격적 본능을 역전된 가부장의 폭력적 판타지로 체화하는 주류(?) 막장드라마들은 이런 사회 구조적 모순에 뿌리박고 있다. 그녀들이 막장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막장 드라마가 특히 더 재미있어서가 아니다. 그들 삶에 내재한 문화적 빈곤함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막장드라마 현상을 손쉽게 꾸짖지 말아야 할 이유다.

지난 1월 영화 관객 2천만 돌파

최근 보도에 따르면 지난 1월 총관객 수가 2천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대한민국 인구가 약 5천만이라고 할 때 놀랄만한 숫자다(통계청 2013년 추계 약 5천2십만). 하지만 통계에 놀라기 전에 대도시 복합상영관이 들어선 조건을 먼저 상기해둘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한국영화 최초로 100만 관객을 이뤄낸 “서편제(감독 임권택)” 가 상영되던 1993년의 조건과 복합상영관이 경쟁적으로 도시 도처에 들어서 있는 2013년의 조건이 같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물론 1993년과 2013년 사이에 한국 영화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불어 월 영화관 관객 수가 2천만 명에 도달했다는 것이 한국 영화가 질적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드러내기보다는 영화가 소비자에게 노출되는 경로가 다양해졌다는 것 또한 명심하자. 그렇다면, 지난 20여 년간 한국영화가 눈에 띄는 성장하고, 이에 따르는 나르시시즘 또한 절정에 이르렀는데, 내 집에 앉아 별다른 수고를 하지 않아도 보게 되는 또 다른 문화 콘텐츠인 텔레비전 드라마의 발전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텔레비전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지난 20여년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텔레비전 드라마가 공영방송국 아래에서 제작되는 편수나 제작 여건이 각종 케이블 방송과 종편, 그리고 소규모 제작사들까지 다양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적으로 매체 비평가에 따르면 텔레비전 드라마는 여전할 뿐만 아니라 흔히들 한국 드라마에는 현실성이 없다고 한다.

설거지하면서 텔레비전을 시청한다는 것의 의미

일반적으로 드라마에 대한 혹평은 극의 전개가 별 의미도 없는데 느리고 밀도도 낮아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 쯤 뒤에 봐도 내내 그 타령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극 전개가 과연 제작하는 입장에서 시청자들에게 대한 충성도가 낮고 방영분 늘려서 광고 한쪽 더 얹으려는 장사치들의 얄팍한 상술이기 때문일까. 물론 텔레비전 드라마가 나오기 위해서는 일정 제작비를 투자하는 광고주나 광고 횟수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제작자 입장에서는 드라마를 시청하고 수용하는 입장을 무시할 수도 없는 것도 사실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재방송이나 IP  TV 같은 것을 제외하고 본방송을 보는 대다수 시청자는 매체 연구자, 즉 전문가가 아니다. 막장 드라마를 보는 대다수 시청자들은 고단한 일과를 마친 노동자이거나 일상적으로 텔레비전 앞에 앉는 일반인이다. 텔레비전을 시청한다는 것이 반드시 어떤 전문가적인 입장이 전제 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주부들이 텔레비전 시청을 가사노동과 병행한다. 그들은 텔레비전을 손과 눈으로 다리미질을 하거나 설거지를 하며 귀로 듣는 셈이다. 따라서, 눈과 귀가 동시에 모니터에 집중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극의 전개가 빠르고 화면의 전개가 빠르면 줄거리를 따라잡기 어렵다. 다시말해, 텔레비전 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영화관에 가서 핸드폰도 만지지 못하며 두시간 내내 영화 내용에 충성해야 하는 상황과 많이 다르지 않겠는가.

정형화된 캐릭터에 대한 비난도 많다. 그런데 캐릭터 역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어야한다. 수험생이 교육방송을 시청하거나 어린이가 부모들이 틀어놓은 어린이 방송을 시청하는 것처럼 집중하는 형태로 시청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물 유형이나 외모 심지어 전형화된 캐릭터가 아니면 드라마의 내용이 헛갈리기 쉽기 때문이다.

brizzle born and bred (CC BY SA)

brizzle born and bred (CC BY SA)

더불어 막장드라마와 연관해 생각해 봄직한 게 문화공공성이다. 한국 영화산업이 연일 관객 신기록의 숫자를 내세워 나르시즘에 빠져있고, 막장 드라마에 대한 품평이 일반화된 지금 이 시점에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과연 문화 산업과 문화상품이 사회 구성원을 어디까지 포함시키고 있는가이다. 대중문화 산업은 문화 소외계층 (장애인, 이주 노동자, 노인, 저소득층)의 문화 소비 욕구를 얼마나 충족시키고 있을까. 도리어 문화산업이 문화 상품을 소비 할 수 있는 소비자와 소비 할 수 없는 소비자로 구분시키고 양극화 하는 것은 아닐까. 2006년 민주노동당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주5일 근무제 실시 이후 소득 최상위 10%와 하위 10% 계층간의 교양, 오락비의 격차는 10배 가까이 벌어진다고 한다. 만약 막장 드라마를 보게 하는 원인이 문화 소외계층의 문화 소비에 대한 욕구가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면 어떡할 것인가. 그렇지만 텔레비전 드라마가 문화적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수단이라는 것은 아니다.

막장드라마 본다고 함부로 비난하지 마!

막장 드라마를 시청하고 심지어 중독되는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이 일하는 여성이든 일하지 않는 여성이든 가사노동이 고스란히 여성의 몫이다.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가 일반적으로 미국 드라마나 영국 드라마 수준에 미치지 못하다는 단순 비교 평가가 텔레비전 드라마의 수준을 나아지게 할 리가 없다. 더욱더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고상한 매체 비평가들이 막장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에게 ‘막장’ 드라마 따위나 본다는 공연한 수치심을 제공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들 말대로 막장 드라마가 있다는 것은 막장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다시 묻는다면, 막장 드라마와 막장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 별개일까.

막장 드라마의 네러티브가 구질구질하고 뻔하다고 비난하는 일은 나중에 하자. 우선은 막장 드라마를 집안에 앉아 시청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고민해야 한다. 돋보기를 쓰고도 신문을 읽기 어려운 노인들, 이들에게 집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사회적/문화적 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한다. 여성에게 전담되는 가사 노동의 책임을 가족 구성원이 함께 나눠야 한다. 문화적 빈곤층에게 다양한 다른 오락거리가 제공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막장 드라마 따위 보라고 해도 보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극장에 가서 영화표를 사고 두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영화에 오롯히 집중하며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는 집안에 있는 가족구성원 누군가의 수고를 담보한 행위라는 걸 먼저 생각해보자. ‘극장 관객 2천만’이라는 확대된 숫자 바깥에는 문화 상품을 소비하거나 구매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몸이 불편하거나 다른 많은 이유로 ‘대중’문화로부터 소외받는 이들이 있다. 잊지 말자, 텔레비전 막장 드라마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왜 있는가를 묻는 것이 먼저다. 더불어 텔레비전과 같은 대중문화가 고작해야 전형적이고 값싼 즐거움을 줄 뿐이라고 비난하지말자. 그러면 좀 어떤가.

사족. 여전히 일년에 한번도 극장에 가지 못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많고도 많다.

2008년 기준 1년간 영화 관람을 한번도 하지 못한 사람의 비율이 40% 가까이 된다.
(출처: 국가통계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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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박군
초대필자, 문화연구가

영국에서 문화를 연구(박사과정)하고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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