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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관한 두 가지 의문, ‘젊음’과 ‘3S’

영화포스터에 관한 책1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가져왔던 의문 두 가지에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우선, 젊음 

먼저 80년대 내내 주구장창 떠들어대던 ‘젊음’ 혹은 ‘청춘’ 타령. 아마 80년대를 살아오지 않은 이들은 무슨 소린가 하겠지만, 그 시절엔 유난히 젊음이니 청춘이니 하는 말이 방송에서 자주 쓰였다. ‘젊음의 행진’, ‘청춘만세’, ‘영11’ 등 정규프로들은 물론이고, 지금도 유튜브 kbs 아카이브 같은 곳에 잔뜩 올라와있는 특집쇼 제목들 중엔 ‘젊음의 대축제’ 어쩌구 하는 게 많다.

왼쪽부터 '젊음의 행진', '청춘만세'(코미디), '영11'

왼쪽부터 ‘젊음의 행진'(1980~1994), ‘청춘만세'(코미디, 1981), ‘영11’

영화계의 흐름을 바탕으로 보자면 60년대 전성기를 맞던 한국 영화계72년 유신을 전후로 확연히 쇠퇴기에 들어가게 된다.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원칙도 없이 행해지던 심의와 검열, 대마초 사건을 필두로 한 연예계 정화 그리고 문공부 등 정부 기관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정책선전용 문화영화, 반공영화, 새마을영화 같은 것들이 단체관람과 지방순회무료관람으로 영화계의 배급시스템을 초토화시키던 상황.

검열을 피하는 동시에 학생단체관람에도 맞는 컨텐츠를 구성하려다 등장하게 된 것이 이른바 ‘하이틴 영화’였다. ‘여고생의 첫사랑'(1971)이 시작을 알린 여고생 시리즈, 얄개 시리즈(심지어 이건 1954년 조흔파의 원작 소설을 20년 만에 부활시킨 것), 스핀오프 시리즈라고 할 수 있는 고교생 시리즈, 그리고 절정을 장식했던 진짜진짜시리즈(임예진이 신의 반열에 올랐던) 등으로 70년대는 가히 고교 영화의 시대였다.

여고생의 첫사랑 (강대선, 1971)

여고생의 첫사랑 (강대선, 1971)

이 ‘하이틴’ 시리즈가 80년대로 넘어서면서 학령대로는 대학생을 타겟으로 하는 ‘청춘물’로 변신하게 된 것. 여기에는 10여년 간 하이틴물이 ‘가난한 친구와의 우정-순수한 사랑-학업의 고민-우리 대학가서 만나’로 마무리되는 뻔한 구조의 반복이어서 관객들이 식상해했다는 점도 있고, 예전엔 대학생이 일상에 보기 드문 구름 위의 존재들이었는데 전두환 정권에서 졸업정원제가 실시되면서 갑작스레 흔해진 ‘친근한 이웃’이 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것은 졸업정원제의 숨은 의도가 그러했듯이 정권 유지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대학생들을 ‘순수한 젊음, 청춘, 낭만’으로 묘사하면서 정치와 분리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70년대 ‘고교생’을 뭔가 다른 시기와 분리된 특정한 시기로 낭만화시키는 영화적 시도가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대학생도 그런 ‘개념적 고립’을 의도한 것이 아닐까 의심된다. 작가들을 길들이기 위해 아무 혐의도 없는 소설가 한수산과 그 동료들을 서빙고에 가두고 며칠 간 혹독한 고문을 가할 때 창살 밖으로 매일 같이 들려왔다는 ‘국풍81’의 음악 소리가 바로 정권 차원의 막대한 지원으로 이루어진 축제의 결과였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그 의심은 더 짙어진다.

제5공화국의 관변 축제 '국풍81'

제5공화국의 관변 축제 ‘국풍81’

그래서 87 민주화운동 이후 마치 누가 정해놓은 것처럼 ‘청춘’ 레토릭은 사라지고 우리는 오렌지족과 x세대를 호명하는 90년대로 들어서게 되었다. 한때 크게 유행했던 ‘x세대’라는 명칭은 실은 ‘기성세대가 개념화하지 않았는데 등장한, 분명히 뭔가 다른 쟤들은 뭐냐’라는 당혹감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3S

전두환 정권의 우민화 정책으로 불리우는 3S(Sports; 스포츠, Screen; 스크린, Sex; 섹스) 중 하나인 영화(screen)에 대해서도 좀 의문이 있었다. 전두환 정권에서 검열을 좀 풀어줬더니만 얼씨구나, 하고 영화인들이 에로영화만 몽창 만들었다고? 영화인들을 단순히 돈에만 눈이 벌건 사람들로 보는 거 아닌가?

책에 담긴 포스터들을 보다보니 이게 80년대에 갑자기 만들어진 흐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서 말한 6-70년대 박정희 정권의 반문화적 정책들로 영화계가 고사 상태에 처하자 한쪽으로는 문제가 없을만한 하이틴 영화 쪽으로 나가고 다른 한쪽으로는 외국 영화를 수입하는 것으로 주된 수입을 얻게 되는데 영화사당 1년에 네 편으로 쿼터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걸 피해가려고 해외 합작 영화를 만들거나 엉뚱하게 해외 영화에 우리 배우, 감독 이름을 집어넣어 가짜 합작영화를 만들어냈다.2

오우삼의 초기작이자 '가짜' 합작영화 [용호문] (1975)

오우삼의 초기작이자 ‘가짜’ 합작영화 [용호문] (1975)

문제는 이 쿼터를 계속 받으려면 국내 영화(당시엔 ‘방화’라고 불렀다)를 몇 편 이상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편 수가 있었는데 돈도 안 되는 영화를 억지로 찍으려니 제작비는 적게 들면서 빠르게 찍고 관객들을 자극해서 본전은 지킬 수 있는 영화(멜로, 에로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포스터에도 70년대부터는 뜬금없이 벌거벗은 남녀가 뒹구는 사진이 어디 구석에라도 반드시 들어가는게 관례가 되었다. 제일 황당했던 건 황순원의 ‘독짓는 늙은이’ 포스터. 카피가 이렇다. ‘밤의 욕정, 눈밭에서… 독짓는 늙은이 꽃다운 처녀를 줏었다.’

독 짓는 늙은이 (최하원, 1969)

독 짓는 늙은이 (최하원, 1969)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사회 정화’의 차원에서 에로티시즘에 대한 검열도 심했기 때문에 포스터로 상상력을 자극하는게 고작이었고, 실제 영화는 야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영화제작자와 관객 모두를 실망(?)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전두환 정권의 3S는 바로 이 부분에서 정치적, 사회적 발언은 더욱 철저히 검열을 하면서도 에로티시즘에 대한 검열을 풀어주어 이미 존재하고 있던 상업적 욕구의 분출구를 만들어 줬다.

임예진, 하이틴과 3S 사이 

임예진은 이 ‘하이틴물’과 ‘3s’의 중간에 낀 상징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틴물에서는 이의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스타이자 요정이었으나 70년대 말이 되면서 하이틴물도 저물었고, 본인도 성인이 되었으니 성인연기자로의 변신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그 시기 여자 아역 배우들은 고정된 이미지를 깨기 위해 ‘성인’으로의 급변신을 꾀하는 과정에서 에로물에 도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소피 마르소가 ‘라붐’의 자장권에서 벗어나려고 ‘지옥에 빠진 육체’를 찍었던 것이 대표적인데, 아무리 그래도 ‘라붐’에서 아버지 역이었던 배우와 진한 베드신을 보여주는 것은 책받침 세대에게는 충격과 공포 수준이었다.

라붐(1980, 위)과 지옥에 빠진 육체(1986, 아래)

라붐(1980, 위)과 지옥에 빠진 육체(1986, 아래)

임예진이 시도한 성인영화인 ‘땅콩 껍질 속의 연가'(1979)도 비슷한 거부감에 부딪쳤다. ‘우리 대학 가서 건전한 만남을 갖도록 해’라던 소녀가 갑자기 전형적인 에로 영화의 베드씬 컷으로 포스터에 등장하니 많은 팬이 절규했던 것도 당연한 이치다. 결국, 이 영화의 대실패로 임예진은 하이틴물에서 3S로, 70년대에서 80년대로 건너가지 못하고 긴 공백기를 가지다가 큰 특징없는 배우로 TV 드라마 조연에 머무르게 되었다.

땅콩 껍질 속의 연가(1979). 하이틴 영화의 상징이었던 임예진은 이 영화의 실패로 '국민여동생'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는다.

땅콩 껍질 속의 연가(1979). 하이틴 영화의 상징이었던 임예진은 이 영화의 실패로 ‘국민여동생’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는다.


  1. [영화의 얼굴], 양해남, 사계절 출판사(2019)

  2. 성룡이 우리나라 와서 하숙하면서 영화 단역 출연하던 게 이 시절이다. 심지어 오우삼도 우리나라에서 싸구려 합작 무협영화 만들다가 능력 없다고 짤리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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