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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쇼, 인간과 대화한 최초의 침팬지

강력한 올해의 책 후보를 만났다.

[침팬지와의 대화]는 침팬지들에게 미국 수어(手語)를 가르쳐 인류와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들의 언어 발달과 의사 소통 관련 인지심리에 대해 30년 동안 연구해온 로저 파우츠 박사의 자서전, 그리고 1965년 서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직후 사냥꾼에게 생포되어서 미국에서 42년을 살고, 최초로 사람과 수어(手語)로 의사소통한 침팬지 워쇼(Washoe)의 평전을 합친 책이다.

미국에서는 1997년에 출판되었는데 우리글로는 20년이 넘은 2017년에야 번역되었다. 하지만 늦게라도 번역해주셔서 고마울 따름이다.

침팬지와의 대화, 로저 파우츠, 스티븐 투켈 밀스 저/허진 역 | 열린책들 | 2017년 09월 15일 http://www.yes24.com/Product/goods/49857619

침팬지와의 대화, 로저 파우츠, 스티븐 투켈 밀스 저/허진 역 | 열린책들 | 2017년 09월 15일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이 녹아 있다.

  • 언어 능력은 인간만이 가지는 우월한 능력이라는 가설이 철저하게 패배하는 과정
  • 인간과 침팬지와 같은 영장류의 경계가 흐릿하다는 증거들
  • 침팬지 집단의 사회화 과정 없이 실험실 또는 동물원에서 인간들과 상호작용하며 야생과는 다른 방식으로 집단생활을 하는 침팬지의 생태
  • 시골뜨기 대학원생이 학계의 세계적인 스타로 성공하는 과정
  • 자신의 피실험체와 깊이 교감하며 사랑하게 된 과학자의 고뇌
  • 연구비를 계속 지원받고 실험실을 유지해야 하는 랩 책임자의 중압감
  • 동물에 대한 실험윤리의 자각과 지난한 발전 과정

이 책은 침팬지와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진화론을 이해하기 좋다.

“‘침팬지’라는 단어는 ‘가짜 인간’이라는 뜻의 콩고 방언에서 왔다. 서아프리카인들은 침팬지를 인간에 가까운 존재부터 인간과 똑같은 존재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보았다.  (중략) 구로(Grouro)족의 일파는 스스로 침팬지의 후손이라고 믿는다. 바울레(Baoule)족은 침팬지를 ‘인간의 사랑하는 형제’라고 부른다. 바크웨(Bakwe)족은 침팬지를 가장 가까운 혈족으로 여길 뿐 아니라 예전에는 실제로 침팬지를 인간처럼 매장했다. 베테(Bete)족은 침팬지를 ‘야생 인간’ 혹은 ‘숲으로 돌아간 인간’이라고 부른다. 기나긴 세월 동안 침팬지와 나란히 살아 온 서아프리카인들은 절대 침팬지의 사고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들은 침팬지가 석기를 만들어서 사용하고, 토착 식물을 이용하여 병을 치료하고, 사냥 같은 사회적 행동을 조직하고, 심지어는 원초적인 형태의 정치 문화까지 가지고 있음을 목격했다.” (69쪽)

수어(手語)를 통해 인간과 최초로 소통한 침팬지 '워쇼' (사진은 영어본 표지)

수어(手語)를 통해 인간과 최초로 소통한 침팬지 ‘워쇼’ (사진은 영어본 표지)

더불어 언어학에 관심있는 분들에게는 특히 추천하고 싶다.

“어린이의 언어 발달과 마찬가지로 워쇼는 사물, 범주, 관계에 대한 이해가 발달하면서 동시에 언어를 발달시켰다. 워쇼는 수화, 범주, 또는 관계를 배운 다음 그것을 다른 상황으로 일반화시키고 일상 행동에 통합시켰다. 침팬지의 의사소통 행위와 아이의 의사소통 행위는 다윈이 예측한 것처럼 똑같은 인지적 뿌리에서 나온 것처럼 보였다.” (136쪽)

“내가 보기에 현대 심리학자들은 초기 유인원 언어 연구자들처럼 잘못된 의사소통 채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았다. 자폐아에게 음성 언어를 강요하는 것은 침팬지에게 음성 언어를 강요하는 것만큼이나 말이 되지 않았다.” (234쪽)

무엇보다 인간은 동물과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는 [침팬지 폴리틱스]와 함께 이 책을 권해드리고 싶다(관련 글: ‘일진과 찐따: 교실의 정치학, 임명묵 – 편집자).

책 침팬지 폴리틱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부터 소위 세계적인 언어학자라는 노암 촘스키 교수가 낸 대중 교양서들이 꽤 인기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언어학 분야의 대가가 왜 더는 자신의 분야가 아닌 국제정치나 불평등 문제 등에 대한 책을 연거푸 내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는데 이 책을 보고 해답을 찾았다.

인간 고유의 언어적 본능이 있고, 통사론의 모든 규칙이 새겨진 언어기관이 존재한다는 촘스키의 언어장치이론이 1969년 미국 수어(手語)를 배운 어린 침팬지 워쇼에 대한 가드너 부부의 사이언스 논문을 필두로 한 여러 비슷한 연구들로 인해 설명력을 잃은 상황에서 종신교수의 상처난 자존심을 치유하기 위한 활동들이 아니었나 싶다.

“워쇼와 함께 지낸 지 단 8주만에 한 살짜리 룰리스는 인간과 침팬지에게 자주 수화로 말했다. 흥미롭게도 룰리스는 우리가 주변에서 사용했던 일곱 가지 수화는 하나도 습득하지 않았다. 룰리스는 워쇼와 앨리에게서만 배웠다. 입양 18개월 후, 룰리스는 20여 가지 수화를 자발적으로 사용했다. 룰리스는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서 인간의 언어를 배운 최초의 동물이었다. 이로서 룰리스는 언어 습득이 우리와 침팬지가 공유하는 학습 기술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을 뿐 아니라 언어의 전파가 문화적 현상임을 보여 주었다.” (306쪽)

“내 생각은 이렇다. 우리의 선조는 유인원 사촌들과 마찬가지로 양쪽 두뇌를 모두 이용하여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양쪽 두뇌는 손짓을 하는 양쪽 손을 제어했고 좌뇌는 오른손을, 우뇌는 왼손을 담당했다. 그러나 인간의 혀가 정확히 움직이면서 말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자 인간의 두뇌는 중대한 신경학적 문제에 직면했다. 양쪽 두뇌가 하나의 혀를 제어하려고 경쟁하자 그 결과 일종의 음성 마비가 온 것이자. 두 운전자가 핸들 하나를 두고 싸울 때처럼 말이다. (사실 이러한 양쪽 뇌의 경쟁은 말을 더듬는 원인 중 하나다.) 인간의 두뇌는 혀의 음성 운동 제어를 한쪽 뇌에 할당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429쪽)

저자 로저 파우츠 박사는 침팬지들과의 오랜 교류를 통해 그들을 이웃집에 사는 사람들과 다름 없는 존재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제인 구달과 함께 침팬지 등 영장류들을 학대하는 동물실험실의 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에 나서게 되고, 충분히 학계에서 자기 연구소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상황에서도 포획 침팬지들의 번식에 반대하며 그에 따른 불이익을 감당해왔다.

로저 파우츠 (출처: goodreads.com) https://www.goodreads.com/photo/author/104554.Roger_Fouts

로저 파우츠 (2015년 모습, 출처: goodreads.com)

파우츠 박사의 생각을 따라면서 동물권에 대한 내 생각도 많이 변한 것 같다. 우리나라 법에서 동물은 물건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권리의 객체일 뿐 주체가 될 수 없다. 동물보호법도 소위 ‘동물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대한 내용은 없고, 사람들이 지켜야 할 사항과 위반할 때의 처벌에 대해 규율하는 법일 뿐이다.

가정이긴 하지만 내가 수어(手語)를 배워서 침팬지들과 일정 기간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하고 지내본다면, 그런 뒤에는 동물을 물건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노예나 다른 인종들도 한 때 말하는 물건 취급을 받았던 시절이 그리 멀지 않다는 걸 감안하면 오래 지내지 않아 인류의 범주가 한 번 더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렇게 되길 바란다.

“우리는 과학이 항상 객관적 지식을 고결하게 추구하면서 진실을 향해 전진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과학자는 자기 시대의 편견을 체화한다. 그리고 과학자는 무지를 지식인 척 포장할 수 있고 그들이 주장하는 ‘사실’이 윤리적 경계를 세우고 뒷받침하는 데 쓰일 수 있기 때문에 편협한 일반인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불행히도 역사가 증명하듯 무지와 오만이 결합하면 해당 문화의 윤리적 우주 바깥의 존재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4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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