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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닭.”

유신독재의 서슬이 시퍼랬던 1977년, 내가 속했던 동아리의 단합대회용 풍자극 제목이자 소재였다. 국어사전은 “닭대가리”를 기억력이 좋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조롱하는 뜻으로 풀어내지만, 유신독재는 수많은 닭대가리 인간을 만들어내었다. 스스로 판단할 수도 없고 판단할 능력조차 빼앗긴 사람들. 그저 먹이만 쫓아 주인이 부르는 대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그러면서도 어쩌다 주워 먹은 부스러기 하나로 득세한 양 세상에 군림하던 인간들.

(출처: 정부기록사진집 7권에 실린 박정희, 닭 이미지 합성)
(출처: 정부기록사진집 7권에 실린 박정희, 참고: 닭 이미지 합성)

법원의 자기면죄부

긴급조치 제9호의 피해자들이 국가배상청구를 하였을 때, 이 유신닭의 망령은 여지 없이 되살아난다. 짧은 기억력에 생각 없음을 더하면서 저 유신의 패악을 정확히 반복재생산하는 사법권력의 반동,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것은 잘못이지만, 그 사람에게 주먹을 휘두른 행위는 잘못이 아니라는 억지.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3 민사부의 판결(이하 ‘이 사건 판결’이라 함)은 그 전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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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나온 판결

  • 위헌 판결된 긴급조치 피해자가 제기한 손해배상 패소 사건
  •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3 민사부 재판장 김선희 부장판사
  • 2013가합544003, 2015가합520667(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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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명의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원고가 되어 진행된 이 사건 판결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그중 각하된 부분은 법리적으로 무리가 없다. 재판부는 문동환·문정현 두 원고가 제기한 청구에 대해, 재산상의 손해 부분은 민주화보상법에 의하여 이미 보상을 받은 것이기에 각하하고 정신적 손해 부분만 적법하게 청구된 것으로 보았다. 같은 내용의 헌법재판소의 결정(2018.8.30. 2014헌바180)을 존중한 것이다.

문제는 두 번째 부분이다. 긴급조치는 위헌무효라 하더라도, ①그것을 선포한 대통령의 행위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한 통치행위기 때문에 법원이 판단할 수 없으며, 또 ②그 긴급조치에 따라 영장 없이 구금하여 수사를 진행하고 기소하고 또 법원이 유죄판결을 하여 징역과 자격정지로 원고들의 신체와 정신과 일상을 파괴해 버린 행위는 국가배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사법농단은 여전히 우리 법원을 관통하고 있는 폭력적인 현실임을 재판부는 이렇게 판결로 드러내고 있다.

1974년 1월 8일 TV를 통해 이른바 ‘긴급조치 1호’를 발표하는 김성진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의 모습, 당시 김지하 시인은 긴급조치를 소재로 한 시 '1974년 1월'을 썼고,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1974년 1월을 죽음이라 부르자 오후의 거리, 방송을 듣고 사라지던 네 눈 속의 빛을 죽음이라 부르자"
1974년 1월 8일 TV를 통해 이른바 ‘긴급조치 1호’를 발표하는 김성진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의 모습. 당시 김지하 시인은 긴급조치를 소재로 한 시 ‘1974년 1월’을 썼고,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1974년 1월을 죽음이라 부르자
오후의 거리, 방송을 듣고 사라지던
네 눈 속의 빛을 죽음이라 부르자”

판결로 반복된 ‘사법농단’

권위주의 체제에서 ‘통치행위’라는 개념은 그 정권이 행사하던 폭력을 법의 이름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이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통치행위든 뭐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면 모두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단호하게 선언한 바 있다. 금융실명제나 행정수도이전과 같은 정치적 결단에 대해서조차 헌법재판소는 그 위헌성 여부의 심사에 주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소중한 국민의 기본적 자유와 권리가 그 조치들에 의해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박정희 전대통령의 긴급조치 선포행위에 면죄부를 던져주었던 대법원의 선례(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48824)가 있기는 하다. 이 사건 판결은 그 선례를 그대로 복제한다. 이 사건 판결이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음은 바로 그 때문이다.

첫째, 그 대법원 선례는 최근의 사법농단에 깊이 연관된 맥락에서 결정된 것이다. 사법이 정치권력과 유착하여 좌고우면함에 전혀 주저함이 없었던 그 시절에, 스스로 청와대와 정치적 거래에 나섰던 그 대법관이, 바로 그 정치권력의 전신이라 할 유신정권의 폭력에 희생당했던 사람들이 제기한 사건을 주심이 되어 처리하였다.

그 대법원판결이 판결이유조차도 겨우 6줄짜리 한 문장으로 왜소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신정권을 등에 업고 등장한 당시 정권에 누가 되지 않아야 했기에 단순무식하게 단정적인 문장 하나로 민주화운동의 전과정을 지워버렸던 것이다(→ 한상희, 역사를 유신독재 시절로 되돌린 대법원의 판단, 오마이뉴스, 2015. 4. 11.)

이 사건 판결문은 그래서 사악하다. 대법원의 선례가 나왔던 경과가 저러했고, 그것이 최근 터져 나온 사법농단사태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이미 다 드러난 이 시점에, 그것을 아무런 반성도, 회의도, 하다못해 억지법리라도 추가해 보려는 몸짓조차도 없이 무작정 “복붙”하여 버렸다.

이번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대법원을 박근혜 정권의 주구로 전락시켰다는 역사적 평가에 직면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오늘(22일) 법원의 조건부 보석을 수용해 구속된지 179일만에 석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이번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은 ‘긴급조치는 위헌이지만, 국가는 배상책임이 없다’는 양승태 대법원의 논리(박근혜 정부와의 재판거래용 판결 중 하나로 지목받는 바로 그 판결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둘째, 이 사건 판결은 재판부 자신이 법원판 갈라파고스임을 자백한다. 저 양승태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 우리 사회는 물론 법률가사회에서도 수많은 비판이 일었다. 민주화의 과정을 거스르는 역사적 퇴행이자 보수의 반동이라는 비난에서부터, 통치행위개념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다른 대법원 판례나 헌법재판소 결정들에 근거한 비판들, 그리고 사법농단사태와 관련하여 그 정치적 음모론까지도 거론하는 전사회적인 논란들까지도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이 사건 재판부는 그 모든 이야기들을 일거에 무시해 버렸다. 마치 자신들은 다른 세상, 다른 시공간에 사는 양, 지난 5년간의 세상사들에 완전히 눈 감아 버리고 오불관언의 아집만을 드러내었을 뿐이다. 오로지 법원의 무오류성이라는 신화에 빠져 국민들이 뭐라고 말하건 세상일이 어떻게 바뀌어가건 아랑곳없이, 상급법원의 선례만 붙잡고 맹종하면서 국민 위에 군림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 사건 판결은, 또 다른 권력으로 변신해 버린 저 사법농단 사태의 축소판이 되어 버린다.

우리는 시키는대로 했습니다? 

이 사건 판결의 두 번째 논점 역시 ‘눈 가리고 아옹’ 식의 형식논리로 일관한다. 원고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고등법원의 재심판결들은 긴급조치 자체가 위헌·무효라는 점을 이유로 하였다. 이 사건 판결은 이 점을 교묘하게 역이용한다.

원래 이 사건은 긴급조치 제9호에 따라 피의자들을 영장도 없이 체포·구금하여 수사하여 죄를 뒤집어 씌운 것이었다. 이 사건 원고들은 당시 수사관들이 긴급조치 제9호가 시킨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영장도 없이 체포·구금하여 가혹행위로 진술을 강요하며 수사한 것은 잘못이며, 그것을 시정하여야 할 법원조차도 이 불법수사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여 유죄의 판결을 내린 것 또한 불법한 행위인 만큼, 그로 인해 자신들이 입게 된 피해를 배상하라고 요구하였다.

원래 공무원은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명령이 위법한 것이라 판단하면 그 명령 수행을 거부하여야 한다. 법치주의는 이를 요구하는 헌법명령이다. 최근 문화체육부의 블랙리스트 사건은 이 의무위반에 대한 단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법원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재판에 적용될 법이 잘못된 것인지의 여부는 법원이 스스로 판단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일단 판결을 멈춰야 한다. 대체복무제 윤곽이 나오기 전까지는.
공무원은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명령이 위헌, 위법한 것이라고 판단하면 그 명령 수행을 거부해야 한다.

긴급조치와 같은 국가폭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를 집행하는 수사관은 물론 그것을 적용하는 법원은 당연히 이 긴급조치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 만일 그렇다면 그 긴급조치는 헌법이 요구하는 절차와 요건에 따라 이루어진 것인지, 그리고 그 내용은 헌법명령에 따라 필요최소한의 수준에 그쳤는지 여부는 법원이 하여야 할 기본적인 직무내용에 해당한다. 이 사건 원고들의 주장은 이렇게 당연한 법리를 전제로 한다. 수사관도 법원도 이런 당연한 직무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자신들은 되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판결은 이런 주장을 간교하게 외면한다. 수사관의 강제수사가 불법하다는 원고 측 주장에 관해서는 이 사건 판결은 앞의 통치행위론을 반복하여 기각한다. 그러면서 공무원은 위법한 직무명령을 거부하여야 할 법적인 의무를 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은밀하게 감추어두었다.

또한, 법원이 잘못된 판단을 하였다는 주장에 관해서는 원고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고등법원의 재심판결에다 그 핑계를 갖다 댄다. 원래의 유죄판결이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 확정한 것이라면, 당시 재판부는 증거도 없이 유죄판결을 한 잘못이 있는 만큼 국가가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유는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무효”라는 점이었다. 이 사건 판결은 이 점을 확대해석한다. 원고들에게 고통을 야기한 것은 법원의 판결이 아니라 그렇게 판결하게끔 명령한 이 긴급조치 제9호가 아니냐, 당시의 수사관과 마찬가지로 그 재판부는 긴급조치 제9호가 시키는 대로 군소리 없이 충실하게 재판을 했을 따름인데 거기에 무슨 잘못이 있느냐는 항변을 내어 놓은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는 아이히만식의 변명이 여기서 그대로 반복된다.

"그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악마적이지도 않았다. 우리 모두의 안에는 아이히만이 있다"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나치 전범으로 재판 중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모습 (1961년 4월 11일 예루살렘 지방법원)
“그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악마적이지도 않았다. 우리 모두의 안에는 아이히만이 있다”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중에서)
나치 전범으로 재판 중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모습 (1961년 4월 11일 예루살렘 지방법원)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긴급조치 제9호’는 그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긴급조치 제9호가 해제 내지 실효되기 이전부터 이는 유신헌법에 위배되어 위헌·무효이고, 나아가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하여 침해된 기본권들의 보장 규정을 두고 있는 현행 헌법에 비추어 보더라도 위헌·무효이다.

-대법원 2013. 4. 18. 결정 2011초기689 전원합의체 결정.

위 인용은 이 사건 판결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대법원 판결의 한 부분이다. 긴급조치는 현행 헌법에도 위반되지만, 당시 유신헌법에 비추어보더라도 그 발동요건과 한계를 위반하여 위헌·무효라는 것이다. 비록 유신헌법이 긴급조치에 대해 사법판단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였더라도, 그 조항은 긴급조치의 발동 요건과 같은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사항까지 심사하지 못하게 막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절차나 요건충족여부에 대한 최소한의 심사는 국민의 권리에 대한 최후의 보루라고 자부하는 법원의 몫이었고,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인 공무원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수사관은 물론 당시 법원조차도 이런 판단을 하지 않았다.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여야 할 사법권을 담당하였던 법원도, 사법경찰관도 제 역할을 하지 않았고 그 책임을 저버렸다. 물론 그 서슬 퍼런 폭력 앞에서 긴급조치가 위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공무원은 드물었다. 그걸 탓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보를 양보하여, 그 당시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렇게 말하지 않은 것이 정당하였다고 강변하는 행태만큼은 이 민주화 시대에는 더는 있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이다.

이 사건 판결은 그래서 뻔뻔하다. 국민이 사법관에게 부여한 그 사법심사(국가권력의 위법성 여부를 따지는 것)의 권한을 송두리째 내팽개쳐 놓고도 조금의 반성도 없이 되려 당당함을 내세우는 그 악다구니가 이 사건 판결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법원 무오류’ 신화와 그 광신도들…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무효라는 것은 그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유신헌법 그 자체에도 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당시 법원은 이 위헌무효인 긴급조치를 적용하여 영장 없는 강제수사를 적법하다고 판단하였고, 그 불법수사의 결과를 바탕으로 원고들에게 유죄를 선고하여 오만 고통을 다 겪게 하였다. 한마디로 잘못된 법을 적용하여 원고들에게 막중한 손해를 초래했다. 서울고등법원 재심판결은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한 마디로 축약하여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무효이므로 (그 적용을 받아 유죄판결을 받은) 피고인들은 무죄다’라고 판결하였다. 그 이상의 이야기는 군더더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사건 판결은 굳이 이 재심판결의 의미를 최소한의 수준으로 축소하고자 안간 힘을 다 한다. 재심판결은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무효라는 것만 말했지, 원래의 재판 자체가 엉터리였거나 불법이었다고 말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식이다.

이번 고등법원의 판결은 명백하게 자신의 개인정보, 그것도 질병정보라는 민감정보가 미국 기업에 팔려나간 명백한 피해자들의 정신적 피해 보상 요청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피해자들에게 그냥 입 다물라고 말하고 있다.
이 사건 판결은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 무효이므로 그 적용을 받아 유죄판결 받은 피고인들은 무죄라는 판결의 의미를 취소한으로 축소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여기서 재심판결을 보자.

“원심이 유죄로 판단한 조치는 그 범죄사실에 적용할 법령인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 여부 판단에 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다.”(서울고등법원 2013. 7. 3. 선고 2011재노130)

물론 이 때의 법리 오해는 많은 경우 국가배상책임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법이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고, 그 다양한 해석이 있음으로써 민주적 법치의 원리가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심판결은 법리 오해가 아니라 해야 할 법리판단 자체를 하지 않은 것이라 사정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유신헌법 제53조에 규정된 요건 자체가 충족되지 않은 긴급조치 제9호가 당연무효에 해당하는가의 여부에 대해 어떤 고려도 하지았다.

실제 당시만 해도 통치행위라는 개념에 대해 우리 사법권은 나름 충실히 심사하고 또 의미 있는 판결들도 내놓았다. 한·일협정에 반대한 6·3사태에 대해 계엄령을 선포한 군사정권의 행위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는지 아닌지에 대해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은 각각 다른 결정을 했었다. 대법원은 일본의 유사사례를 참조하여 통치행위는 일종의 재량행위로 그것이 당연무효인 경우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판시하였다.(대판 1964.7.1. 선고 64로159) 아울러 1968년 김철수교수는 고시계라는 잡지에 “통치행위의 이론과 실제”라는 논문을 기고하여 이런 대법원과 일본 판례의 입장을 충분히 소개한 바 있다.

요컨대, 당시에도 ‘통치행위’는 사법판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선례였고, 또 이에 대한 학계의 뒷받침도 있었다. 그래서 당시 대법원의 선례에 비추어보더라도, 유죄를 판결한 원심법원은 긴급조치 제9호가 통치행위라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기 이전에, 최소한 “발동요건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있는지의 여부는 심사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법원은 이런 심사를 전혀 하지 않음으로써 유죄판결법원은 직무를 유기한 셈이 되었고, 그 결과가 재심법원에 의하여 유죄판결을 무효화하는 판결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단순한 법리오해와 다른 측면이다. 법리오해는 판단이 잘못된 것이지만, 이 경우는 판단 일탈이다. 그리고 그 판단 일탈로 인하여 불법하고 무효인 법률(긴급조치 제9호)를 적용하는 판결을 하였고, 그 결과 원고들에게는 되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초래했다.

명백히 위헌 위법한 통치행위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판례('63년 대법원)와 헌법학자 김철수의
당연무효인 통치행위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63년 대법원 판례는 헌법학자 김철수의 ’68년 논문(“통치행위의 이론과 실제”)을 통해 이론으로도 지지된 바 있다.

적어도 이 사건 판결의 재판부가 민주화시대에서 법치주의가 가지는 의미를 조금이라도 고려했다면, 그리고 지난 촛불집회 이후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법농단의 패악에 추호만큼의 반성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식의 판단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건 판결이 요지는 간단하다.

‘법원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긴급조치 제9호에 따른 유죄판결은 긴급조치 그 자체의 오류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그것을 적용하여 유죄를 선고한 법원의 오류는 아니다. 그러니까 법원이 잘못 판단했다는 이유로 국가배상을 청구한 것은 기각한다. 그것이 이 사건 판결의 논리다.

법원을 배회하는 망령

“나는 내 책임 몫만큼 상관의 지시를 수행했을 뿐이다. 그 임무 수행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었고, 그 명령을 거부하는 용기를 낼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무의미하다. 나 하나가 저항해도 아무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 어처구니 없는 아이히만의 항변은 원고들을 폭압적으로 수사한 수사관과 유죄판결법원을 거쳐 이제 이 사건 판결을 한 재판부에 의해서 다시 반복된다. 잘못된 것은 히틀러의 명령일 뿐, 그리고 저 긴급조치 제9호일 뿐, 그것을 선포한 자도, 그것에 따라 폭압적인 수사를 한 자도, 그리고 그에 빌붙어 유죄판결을 내린 자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벌써 70년 전 뉘른베르크에서, 동경에서 전 인류의 이름으로 정리·청산되었던 이 평범한 악들이 이제 유신닭의 망령이 되어 세상을 배회한다. 사법농단의 잔해를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이 시대를 비웃으며 말이다.

박정희는 1974년 5월 13일, 유언비어 날조 및 유포 금지, 헌법 부정 및 비방 금지, 집회 및 시위 처벌을 핵심 내용으로 한 긴급조치 9호를 발동했다. 이 위헌적이기 짝이 없는 긴급조치는 1979년 12월 8일 5년 7개월만에 해제됐다. (출처: 긴급조치 9호 발동을 보도한 당시 중앙일보)
박정희는 1974년 5월 13일, 유언비어 날조 및 유포 금지, 헌법 부정 및 비방 금지, 집회 및 시위 처벌을 핵심 내용으로 한 긴급조치 9호를 발동했다. 이 위헌적이기 짝이 없는 긴급조치는 1979년 12월 8일 5년 7개월만에 해제됐다. (출처: 긴급조치 9호 발동을 보도한 당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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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필자는 한상희 교수(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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