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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를 바꿔야 세상이 바뀐다

노숙인이 광장에서 구걸을 하고 있다. 누군가가 툭하고 던진 동전이 데구루루 바닥을 구르자 더듬더듬 주워 깡통에 담는다. 눈을 꿈벅꿈벅, 자세히 보니 이 노숙인은 앞을 못 보는 노인이다. 손으로 쓴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I’m blind. Please help.”
(“시각장애인입니다. 도와주세요.”)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다. 다들 본 척 만 척 발길을 재촉한다. 비둘기들이 푸드득하고 광장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다음 장면, 선글라스를 낀 한 여성이 휙 지나가다 멈춰서 돌아온다. 그리고 팻말을 뒤집어서 뭐라고 쓱쓱 쓴 다음 세워놓고 떠난다. 그러자 갑자기 노인의 깡통에 동전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노인, 한참 뒤 그 여성이 다시 찾아와서 깡통을 들여다 본다. 노인이 묻는다. “뭐라고 쓴 거요?” 여성이 대답한다. “같은 말이에요. 다르게 썼을 뿐.” 카메라가 빙글 돌아서 팻말을 비추자 여성이 쓴 메시지가 나타난다.

“It’s beautiful day. And I can’t see it.”
(“아름다운 날입니다. 그리고 난 그걸 볼 수 없어요.”) 

그리고 나타나는 자막. “Change your words. Change your world.” 말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는 의미다.

몇 년 전 유튜브에서 꽤 흥행했던 영상인데 여기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포인트가 있다. 이 여성은 끝내 노인에게 동전 한 푼 주지 않았다. 아름다운 날이라고 하지만 광장의 날씨는 흐리고 약간 우중충하다. 어쨌거나 우리가 익숙하게 즐기는 날씨의 변화를 노인은 보지 못한다.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불편하게 들이밀기보다는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여기던 일상의 축복을 일깨우면서 우리들 마음속의 선의를 끌어낸다. 짧은 영상이지만, 강렬하고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묵직한 반전으로 여운을 남긴다. 이것이 메시지의 힘이다.

선의와 공감이 사람을 움직인다

나는 올해로 기자 생활 20년 차가 된다. 내가 신입 기자들을 교육할 때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여러분 모두 한두 달 교육 받으면 기자 흉내를 낼 수 있다. 육하원칙만 맞춰도 신문 기사처럼 보이는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좋은 글은 훈련 받는다고 되는 게 아니고 안타깝게도 열심히 뛰어다닌다고 훌륭한 기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수습기자라면 보통 스물여섯에서 스물아홉 살쯤 되는데 결국 그 사람이 3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고민한 모든 것이 그가 쓴 글에 담기는 것이다. 타고 나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서글픈 일이지만, 누구도 자기가 담고 있는 것 이상의 글을 쓸 수는 없다. 기자는 사실을 기록하는 사람이지만, 기록된 사실에는 관점과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이런 말도 한다. “통찰과 식견은 하루이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열심히 뛰어다닌다고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안 될 것 같으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여러 사람을 덜 힘들게 하는 길이다.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 괴로워하거나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실제로 주변에서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기자들을 많이 본다. 메시지 없이 수사만 느는 기자들도 있고 근거와 논리보다 주장이 넘쳐 애초에 기자를 해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기자들도 있다. 기자는 기록하는 사람이지만, 열심히 기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이 본질인가 끊임없이 의심하고 반문하고 새로운 관점과 다른 이야기를 끌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하루이틀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인식을 확장하고 사고의 경계를 넓히는 의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다른 이야기에 열광한다

내가 미디어 전략을 강의할 때마다 보여주는 짧은 영상이 있다. 첫 번째 영상에서는 한 남성이 갑자기 도망치기 시작한다. 두 번째 영상에서는 화면이 어두워지고 카메라가 반대 방향에서 비추면 이 남성이 갑자기 양복을 입은 신사에게 덤벼드는 것처럼 보인다. 서류 가방을 뺏으려는 것일까? 그리고 세 번째 영상, 다시 카메라가 뒤로 빠져서 골목 전체를 비추면 공사장의 난간이 무너지면서 벽돌이 쏟아지는 순간 이 남성이 신사를 덮쳐 목숨을 구해주는 장면으로 바뀐다. 동일한 사건이지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건처럼 보인다.

이 영상은 1986년 영국의 일간 신문 가디언의 광고다.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의 판단을 규정한다. 당신이 읽는 것이 당신의 가치관을 만든다. 결국,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읽을 것인가를 묻는 광고다. 이 광고에서 가디언은 우리 신문에 정말 좋은 기사가 많다고 강조하는 대신 독자들에게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를 묻는다. 굳이 언급하지 않지만, 가디언에서 진실을 찾으라는 제안인 셈이다.

다음 사진을 보자. 벽돌 말고 무엇이 보이는가? 모니터의 밝기나 종이의 인쇄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사진을 처음 보는 사람들 가운데 3분의 1 정도는 담배를 발견하고, 나머지는 담배를 보지 못한다. 담배가 있다고 해도 끝내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그랬다.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이 글의 마지막에 이 숨은 그림 찾기의 해답이 있다.)

벽돌 담배 그림 1

놀라운 대목은 누구든 한 번 담배를 보고 나면 담배를 보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담배가 안 보이던 나에서 담배를 볼 수 있는 나로, 담배를 보지 않을 수 없는 나로 바뀐 것이다. 우리의 두뇌는 소음 속에서 신호를 구분하고 의미를 조합한다. 한 번 의미가 부여되면 그 의미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는 ‘역대급 바이럴’이라고 불렸던 드레스 색깔 논쟁을 떠올려 보자. 누군가는 이 드레스가 흰색과 금색의 줄무늬(이하 ‘흰금’)로 보이고 누군가에게는 파란색과 검정색의 줄무늬(이하 ‘파검’)로 보인다고 해서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앞서 본 담배 사진과 달리 이 드레스의 색깔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 흰금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흰금, 한 번 파검인 사람에게는 영원히 파검이다.

스코틀랜드 가수 케이틀린 맥네일이 텀블러에 올린 사진 한 장으로 촉발된 이른바 '흰금' vs. '파검' 드레스 색깔 논쟁. 이렇게 사람마다 다르게 보는 원인은 착시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가수 케이틀린 맥네일이 텀블러에 올린 사진 한 장으로 촉발된 이른바 ‘흰금’ vs. ‘파검’ 드레스 색깔 논쟁. 이렇게 사람마다 다르게 보는 원인은 착시 때문이다.

드레스 색깔 논쟁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최선의 진실인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파검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상황에서 누군가에게는 흰금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진실은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다. 세상은 선입견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고, 우리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고 실제로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본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몰랐던 사실에 열광한다. 우리는 우리의 인식을 전환하고, 사고의 영역을 확장하는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다. 시간은 짧고 일상은 반복되고 인생은 지루하니까. 뻔한 이야기를 버려야 한다. 그래야 읽히고 그래야 무엇이든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아내를 버리라는 말입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선거를 앞두고 장인의 좌익 활동이 논란이 된 적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의 장인 권오석 씨는 해방 후 남로당원으로 활동했고,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감돼 마산 교도소에서 숨졌다. 상대 진영의 집요한 공격이 계속되자 노무현 당시 후보가 인천에서 열린 경선 연설(2002년 4월)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제 장인은 좌익 활동을 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중략) 저는 이 사실을 알고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잘 키우고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이런 아내는 제가 버려야 합니까? 그렇게 하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그 아내를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여러분, 여러분들께서 이 자리에서 심판해주십시오.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이 아내를 계속 사랑한다고 해서 대통령이 자격이 없다면 저 대통령 후보 그만 두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라고 하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장인이 좌익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고 장인을 두둔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게 핵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면서 강렬한 메시지로 상황을 뒤집었다. 아내를 버리라는 말이냐? 누구도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민주당 후보 마이클 듀카키스는 비슷한 상황에서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듀카키스는 “미국의 가장 좋은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The Best America is yet to come)”는 메시지로 공화당 출신의 현직 대통령 조지 W. 부시에 맞섰다. 선거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53 대 36로 압도적인 우세를 이어나갔는데 세 번째 TV 토론 이후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날 토론도 듀카키스가 상대적으로 잘 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여론 조사 결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문제의 질문은 사회자가 던진 “당신의 아내가 강간당한 뒤 살해됐다면 그 범인의 사형에 찬성하시겠습니까?”였다. 듀카키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확신에 찬 어조로 답변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사형제 반대론자입니다. 내 아내에게 닥친 일이라고 해도 소신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대답이었지만, 유권자들이 기대했던 대답은 아니었다. 부시가 “이렇게 감정도 없는 냉혹한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을 할 수 있겠느냐”고 비꼰 것도 지지율 하락을 부추겼다.

듀카키스의 패배는 사형제 찬반 논란과는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 듀카키스의 교과서적인 답변은 사형제 찬반 논란의 디테일을 전혀 담지 못했고, 인간적인 매력과 신뢰까지 떨어뜨렸다. 만약 듀카키스가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당연히 그를 때려죽이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살인범을 죽인다고 해서 죽은 아내가 살아오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사형제가 범죄를 줄인다는 통계적 근거도 없습니다.’ (사실이 아닌 가정임)

사실 어떻게 해도 네거티브 공격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면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차라리 이렇게 답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건 적절치 못한 질문입니다. 내 아내에게 사과하시길 바랍니다.’ (사실이 아닌 가정임)

많은 사람이 착각하곤 하지만,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에서 물러났던 건 워터게이트 사건이 아니라 거짓말 때문이었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에도 재선에 성공했고, 2년 2개월 가까이 대통령 자리를 지켰다. 닉슨은 집무실 녹음 파일을 제출하라는 법원의 요구에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이 났는데 그가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I am not a crook)”라고 말한 뒤부터 모든 국민이 그를 사기꾼 취급을 하게 됐다. 사기꾼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순간 사기꾼이라는 프레임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정답이 아니라 다른 답을 내놓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떨까? 지난 1월10일 청와대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1가 “대통령께서 현 정책에 대해서 기조를 바꾸시지 않고, 변화를 갖지 않으시려는 그런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를 물었다. 전국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기자회견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불평등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라는 점을 오늘 기자회견문 30분 내내 말씀드렸다”면서 “새로운 답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고 답변했다.

문 대통령은 이 기자를 설득하기보다는 애초에 질문에 적절치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양극화와 불평등 구조를 바꾸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강조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기자에게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던 건 이를 지켜보던 국민들 상당수가 질문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코끼리’를 외면했기 때문에 코끼리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2 만약 문 대통령이 자신감의 근거를 설명하려고 했다면 찬반 논쟁으로 변질됐을 가능성이 크다.

살면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에 맞닥뜨릴 때가 있다. 사실 우리는 날마다 수많은 질문에 직면하는데 뻔한 정답이 아니라 새롭고 다른 답을 요구할 때가 많다. 더 본질적이고, 더 핵심을 짚는 강력한 메시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몇 년 전부터 글쓰기 강좌가 늘어나고 있고 온갖 글쓰기 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내가 수습기자들에게 조언했던 것처럼 글이란 건 공부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글쓰기는 누구나 배울 수 있지만, 중요한 건 메시지다.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말과 글 모두 결국 메시지, 더 근본적으로 인식과 통찰이 있어야 힘을 갖는다. 말은 좀 더 순발력이 필요하지만, 글은 관점과 판단만 잘 살려도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메시지다.

차이 차별성 효과

오랜 경험으로 보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두 가지 키워드는 선의와 공감이다. 같은 맥락에서 불의와 분노도 강력한 메시지를 끌어낸다.

흔히 기자들끼리 제목과 첫 문장만 잘 써도 절반 이상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을 한다. 메시지가 명확하면 스토리텔링은 오히려 부수적인 문제다. 기사가 잘 안 되는 건 취재가 충분하지 않아서고, 스토리텔링이 꼬이는 건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핵심을 요약하고, 메시지를 축약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군더더기를 떨쳐 내야 강력한 글이 된다.

지난 몇 년 사이 미디어 환경이 엄청나게 달라졌다. 이제 뉴스는 패키지 단위로 유통되지 않는다. 뉴스의 브랜드도 의미가 없게 됐다. 어릴 적 아버지는 식사를 하시면서 신문 48면을 넘겨 보셨지만, 이제는 그렇게 뉴스를 보는 사람이 없다. 9시 뉴스를 40분 동안 보는 사람도 급격히 줄고 있다. 콘텐츠 패키지가 해체됐고, 뉴스는 낱개 단위로 흘러 다닌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뉴스의 브랜드를 인지하는 비율이 23% 밖에 안 된다. 세계 최저 수준이다. 언론사 사이트를 직접 방문하는 비율은 4% 밖에 안 된다. 역시 세계 최저 기록이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는 하루 방문자가 4,000만 명에 이른다. 300여 개 제휴 언론사들이 하루 3만 건 이상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것처럼 비슷비슷한 기사가 넘쳐나는데 굳이 뉴스를 찾아서 볼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사람들이 다른 이야기를 갈망한다는 것이다.

동영상의 시대와 새로운 이야기의 구조

스포츠 음료를 만드는 레드불헬륨 기구에 사람을 태워 우주로 올려보낸 적이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스카이 다이버 펠릭스 바움가르트너가 39km 상공에서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는 과정을 유튜브에서 800만 명이 생방송으로 지켜봤다. 실제로 영상에서 보면 지구가 동그랗게 보일 정도의 아찔한 높이다. 올라가는 데 2시간 반이 걸렸는데 떨어지는 데는 9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낙하산을 펴기 직전 최고 속도는 시속 1,357km. 인간이 맨몸으로 음속을 돌파한 최초의 기록이었다.

레드불이 이런 무모한 실험을 밀어붙인 것은 도전과 열정이라는 메시지를 각인시키기 위해서다. 5년 동안 연구와 테스트에 6500만 달러(734억 원)를 쏟아부었지만, 레드불이 얻은 브랜드 효과는 두 배 이상인 1783억 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었다.

레드불의 우주 낙하 실험을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은 기업이 직접 메시지를 만들고 대중에게 직접 전달하는 시대가 됐다는 사례라고 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보도자료를 만들어 기자들에게 보내고 기사가 실려야 소비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언론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거대 자본이 직접 미디어를 소유하고 메시지를 쏟아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메시지가 주류 언론 못지 않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잠재적인 소비자들에게 강력한 각인 효과를 만들어 낸다.

청와대가 피키캐스트와 손잡고 국가치매책임제를 홍보하는 영상을 만든 적 있다. 칭얼거리는 아이를 데리고 시장에 같은데 아이가 갑자기 사라진다. 울면서 골목을 찾아 헤매던 엄마가 아이를 발견하고 보니 아이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로 변신한다. 그리고 빠르게 다시 반복되는 플래시백 화면과 이어지는 나레이션.

“나는 엄마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짧은 단편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흡입력 있는 이야기와 강력한 반전. 이제 정부가 드라마를 만드는 시대가 됐다. 만들어서 어디 방송국에 틀어달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냥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올려놓으면 공유가 공유를 부르고, 수천만 명이 보는 메시지가 된다. 정책은 아직 시행도 하기 전인데 국민들은 드라마에 열광한다.

이 영상에 출연한 이채은 씨는 72초TV에서 만든 웹 드라마 ‘오구실’로 낯이 익은 배우다. 이채은 씨는 ‘오구실’의 캐릭터 그대로 이마트 수입 맥주 광고에도 출연했다. “캔 맥주 하나씩만 사올게”라던 남편이 카트에 산처럼 맥주를 들고 나타나는 반전과 함께 “이마트에서는 하나씩만 사도 수입 맥주가 400여종”이라는 광고 문구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상파 방송사 전략 담당 임원은 “이번 이마트 광고는 대형 광고주들의 이탈이 본격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냥 유튜브에 올리면 되는데 누가 TV에 광고를 내겠냐는 이야기다.

미디어는 누가 소유하고 지배하느냐에 따라 민주적인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이 될 수도 있고 정치 프로파간다로 변질될 수도 있고 마케팅 선전 도구로 활용될 수도 있고 행동하는 시민들에게는 세상을 바꾸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가 만든 성소수자 부모 모임의 프리 허그 영상도 이런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 광장에서 열렸던 퀴어 퍼레이드에 한 어머니가 나타나 성소수자들을 끌어안는다. “사랑합니다.” “잘 왔어요.” 어머니는 아들들과 딸들의 어깨를 토닥토닥한 뒤 엄지를 치켜세운다. “힘내세요.”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환하게 웃는다. 동성애에 찬성하는 사람이든 반대하는 사람이든 애초에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든 이 영상을 보고 생각이 달라지지 않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기획재정부 사무관을 지낸 신재민 씨는 청와대가 KT&G의 사장 선임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이미 지난해 지난해 5월 MBC에 제보해서 기사까지 났던 사안이지만, MBC 보도는 별다른 파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런데 신재민 씨가 직접 올린 영상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놨다. 뉴스는 너무나도 많고 사람들은 이제 뉴스의 맥락에 관심을 기울인다. 선의와 공감, 그리고 나를 드러내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내가 이 시리즈의 연재를 시작하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이야기를 시작하라는 것이다. 이제 누구나 수천만 명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벽돌 담배 그림 2

이야기가 폭발하는 시대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대신해 주지 않는다. 내 이야기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다. 이제 누구나 미디어 전략을 배워야 하는 시대가 됐다. 글의 첫 부분에서 인식과 통찰은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했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있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된다. 인식과 통찰의 힘을 키워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가 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 (계속) 

이정환의 미디어 전략 강좌 

  1. 메시지를 바꿔야 세상이 바뀐다
  2.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7가지 원칙
  3. 저널리즘 씽킹: 기자들처럼 생각하고 기자들처럼 써보자

이 글은 월간 인물과사상“이정환의 미디어 전략 강좌”라는 제목으로 연재하고 있는 글을 슬로우뉴스 원칙에 따라 편집한 글입니다. (편집자)


  1. 김예령 경기방송 기자

  2. 여기서 ‘코끼리’는 미국 공화당의 상징이다.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에서 민주당의 프레이밍 전략에 관해 쓰면서 민주당이 공화당의 프레임에 말려 들지 않으려면, 그 프레임을 전면적으로 거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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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이정환
슬로우뉴스 편집위원 / 미디어오늘 사장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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