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전환연구소x슬로우뉴스 특집 기획]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이 정점에 도달하고, 남은 탄소 예산이 빠르게 소진되는 2026년, 더 늦출 수 없는 분기점. (⌚6분)
🌞 2026 기후·에너지 10대 전망과 제언 (연재)
“탄소 흑자 예산을 유지할 마지막 해 2026년.”
이코노미스트
📌 탄소 흑자
탄소 흑자(Carbon Surplus)’는 “배출하는 탄소보다 흡수하거나 감축한 탄소가 더 많아 여유분이 있는 상태”를 의미.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간하는 ‘세계대전망’이 2026년을 앞두고 수록한 기후 주제 꼭지의 제목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국제 사회가 약속한 1.5℃ 기후 목표를 지키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경고해 온 대표 매체 중 하나다. 이번에 이코노미스트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1.5℃ 기후 목표를 아예 ‘죽은 목표’로 확정적으로 단언한 것이다. 이는

사실 유사한 진단은 이전부터 반복돼 왔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구 평균 기온의 다년 평균은 이제 1.5°C를 초과할 것”이라며 “(1.5℃ 기후 목표를 넘는 것이) 매우 높은 확률로 향후 10년 이내에 발생할 것”으로 봤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얼마전 에너지 전망 보고서에서 “1.5°C 목표 초과는 이제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1.5℃ 기후 목표를 지키기 위해 남은 탄소 예산은 약 800억 톤 남짓. 그런데 매년 약 500억 톤 가까이 소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상황 속에서 ‘마지막’이나 ‘죽은 목표’는 자극적인 단어가 아닌 현실이다. 2026년, 올해가 1.5℃ 이전 세계의 마감일처럼 읽히는 이유다.
이 가운데 독일 기후 싱크탱크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PIK)는 지구위험경계선(Planetary Boundaries) 9개 가운데 과거에 6개가 이미 초과한 것으로 봤다. 여기에 2025년에는 ‘해양산성화’ 역시 한계선을 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했다. 2026년 기후위기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지표가 잿빛인 것은 아니다. 먼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에서 배출이 정점에 닿고 정체하거나 소폭 감소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는 중국이 스스로 약속한 시점보다 5~6년 빠른 성과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정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 전망은 냉정한 숫자 속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희망의 단서다.

다른 하나는 2025년 태양광 발전 설비용량이 석탄화력발전량을 최초로 추월했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보다 더 많은 전기를 생산했다는 것. 이는 인류가 에너지 전환의 결정적 문턱을 통과하고 있다는 뜻이다. 과학잡지 사이언스가 이를 ‘2025년 최대의 성과’로 뽑았다는 사실은, 이러한 전환이 구조적 변화임을 암시한다.


“탄소 예산은 협상을 기다려주지 않는다”…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무너진 기후협력
지금이야말로 더 긴밀한 국제협력이 절실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국제사회는 분열과 갈등 속에서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2026년은 2020년대 후반의 입구가 아니라, 위기의 속도가 한 단계 더 빨라지는 구간일지도 모른다.
가장 위험한 변수는 미국이다. 2024년 기준 미국의 누적 배출량은 25%다. 중국(12.7%)보다 약 2배 많다. 미국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17.5톤으로 마찬가지로 중국보다 많은 편이다. 누적 배출량을 고려하면 미국은 결정적 변화의 책임 앞에서 앞장서야 한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매우 무책임하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국제기후협력에서 이탈하고 있다. 2025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첫날 파리협정에서의 재탈퇴를 선언했다. 여기에 무려 70여개의 기후대응 정책을 전격적으로 무력화시켰다. 같은해 브라질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 연방정부 대표단을 전혀 파견하지 않았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1기(2017~2020년)와 비교해도 차원을 달리하는 퇴행이었다.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이 무너뜨린 미국 녹색산업 경쟁력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어떻게 힘을 잃었는지도 봐야 한다. 이 법은 조 바이든 전(前) 미국 대통령이 2022년 제정했다. IRA는 15% 최저 법인세를 주요 재원으로 삼아 재생에너지와 기후변화 대응에 3,690억 달러(약 540조 원)를 투자함으로써 대폭적인 온실가스 감축과 녹색산업 제조 부활을 동시에 도모하려는 야심찬 시도였다. 저명한 국제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 역시 IRA가 “기후대응뿐 아니라 사회적·산업적 분배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법이라고 높게 평가하였다.
IRA는 제정 직후부터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재생에너지 투자가 가장 많은 상위 연방 하원의원 지역구 20곳 중 19곳이 공화당 의원 지역구라는 분석도 제시됐다. 이 때문에 초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이를 무력화하기 어려울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IRA는 끝내 무력화됐다. 이른바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이라는 기이한 이름의 법률이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 제정됐기 때문이다.

이 법은 국방비 확대, 불법 이민자 차단을 위한 장벽·구금시설 예산 증액, 복지 지출 삭감 등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해온 각종 문제적 정책을 총망라한 것이다. 아름답지는 않지만 틀림없이 ‘하나의 큰 법’이다. 여기에는 2032년까지 제공될 예정이었던 IRA의 전기자동차 세액공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내용이 포함
“기후 규제 완화하는 EU, 발언권 확장 중인 중국”…한국은?
유럽연합(EU)도 흔들리고 있다. 2019년 그린뉴딜로 기후대응을 이끌어온 EU도, 2022년 러시아 침공에 따른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안보 부담, 러시아산 천연가스 단절, 중국과의 경쟁 심화 속에서 경쟁력과 안보를 앞세우며 기후 관련 규제 속도 조절에 나섰다. 기업의 공급망 전반에서 환경과 인권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확인하고 이를 관리할 것을 규정하는 기업지속가능성실사보고지침(CSRD) 등 주요 제도들이 연기되거나 완화하는 흐름이 대표적이다.
행정부 격인 EU 집행위원회의 기후대응 기조가 흔들리자, 유럽 안에서는 다양한 비판이 제기됐다. 예를 들어 EU가 자금을 지원하는 기후 및 산업 전환 관련 8개 연구 프로젝트 리더십 연합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에게 문제를 지적하는 서한을 보냈다. 프랑스 생태경제학자 알루에 로랑 역시 “유럽은 가장 안전하고 포용적이며 지속 가능한 대륙이 되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U는 미국과 중국 등과의 관계는 물론 유럽 내 극우세력의 반발, 그리고 기후시민의 행보 등 다양한 역학관계에 의해 그 방향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 틈새에서 중국은 녹색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발언권을 키우고 있다. 어느때보다 저렴해진 태양광·풍력·배터리를 앞세워 개발도상국으로 재생에너지 확산을 지원하는 동시에 자국의 실리를 챙기는 방식이다. 다만, 권위주의 국가의 녹색 전환은 기후대응 그 자체보다는 에너지안보나 산업경쟁력에 종속될 위험도 있다. 전환이 ‘패권’의 문법으로만 읽히는 순간, 기후정의나 민주적 정당성은 쉽게 뒷전으로 밀릴지 모른다.
그래서 한국 같은 민주주의 중견국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다. 세계가 미∙중 경쟁을 축으로 갈라질수록, 기후 대응이라는 공동의 숙제를 매개로 ‘가교’ 역할을 수행할 공간이 생긴다. 이는 도덕적 명분만이 아니라, 외교·경제·산업·안보의 현실이기도 하다.
“먼저 가는 길은 손해가 아니라 이익…2026년, 더 늦출 수 없는 분기점”
일각에서는 ‘EU도 머뭇거리는데 한국이 먼저 비용을 치를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발상을 뒤집어보자. 먼저 가는 길은 손해가 아니라 이익일 수 있다. 2000년대 높은 비용을 감수하며 재생에너지에 뛰어든 독일은 에너지 산업과 제도를 선점했다. 2010년대 본격적으로 재생에너지 투자를 확대한 중국 역시 제조역량과 가격경쟁력으로 판을 바꿨다. 결국 전환은 ‘먼저 설계한 쪽이 규칙과 시장을 만든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한국형 녹색전환(K-GX)’은 구호가 아니라 전략이 되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국제경제학자 대니 로드릭의 말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그는 “한 나라가 전 세계에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자국의 경제와 사회와 환경을 잘 돌보는 것”이라고 했다
이코노미스트지의 전망처럼 2026년은 ‘탄소 흑자’가 끝나는 해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전 세계 배출 정점과 재생에너지 급증이 맞물리는 해이기도 하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파리협정의 약속은 지키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1.5°C 기후목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인류는 일시적 초과 가능성, 즉 ‘오버슈트(Overshoot)’를 감안해야 한다. 동시에 이번 세기 안에 다시 기온을 1.5℃ 이내로 낮추기 위한 전환을 지금 시작해야 한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이 정점에 도달하고, 남아 있던 탄소 예산이 빠르게 소진되는 이 시점—2026년은 더 늦출 수 없는 분기점이다.

